나는 그 자식의 몸속으로 들어가 분필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내가 그 자식한테 당한 일을 칠판에 썼다.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나는 칠판에 쓴 대로 아이들을 향해 크게 외치고는 교무실로 달려갔다. 교장쌤이 카메라 앞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 앞으로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그리고 웃음 띤 얼굴로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학교 근처 빈집에서 인성이한테 개미를 먹였습니다. 개미가 만병통치약이라면서요? 인성이의 몸에 음료수를 뿌려 개미가 붙게 했습니다. 온몸에 허옇게 난 각질 뜯어먹으라고요. 그리고 담임이 저를 의심하길래 학교에서 쫓겨나도록 일을 꾸몄습니다. 제 말이면 껌벅 죽는 애들이 있거든요.』
나한테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 알 수가 없어 모든 얘기를 늘어놓을 수는 없었다. 핵심적인 얘기만 하고 그 자식 몸에서 빠져나왔다. 그 자식은 주변의 쌤들한테 붙들려 카메라 밖으로 끌려 나갔다. 나는 우리 반으로 되돌아왔다. 그때까지도 여기저기서 폰카를 찍어대고 있었다. 누군가 우는 소리도 들렸다. 나도 곧 울고 싶어졌다. 정아가 계속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눈앞에 두고도 말이다.
조회가 중단되고 어영부영 한 시간쯤 지났을 때 학생 모두 집에 가라는 방송이 나왔다. 그 자식은 학생부실에 갇혀 방금 전 일은 자기가 한 게 아니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얼마 안 있어 그 자식의 엄마가 달려오고, 술 쩐 내를 풍기며 담임이 달려왔다. 그리고 우리 가족도 달려왔다.
“동영상 봤습니다! 반장이란 애가 우리 아들을 괴롭혔다고요? 나 참 기가 막혀서… 대체 어떻게 생긴 앤지 얼굴좀 봐야겠어요!!”
-고마워… 내가 부탁한 대로 해줘서… “니, 니 모, 목소린, 계, 계속, 드, 들을 수, 이, 있는 거야?” -글쎄… “뭐, 뭐라고? 자, 잘 안들려.” -이젠 너하고 얘기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거 같다… “뭐? 뭐, 뭐라고? 크, 크게 말해!”
그날 밤, 그 자식과 그 자식의 엄마, 그 자식의 아빠가 거실에 모였다. 그 자식의 집에 드나드는 동안 실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 자식의 아빠는 아들의 정수리를 노려보더니 이미 결론이 났다는 투로 말했다.
“당장 정신병원에 입원해. 거기서 조금만 있다가 유학가면 돼. 학교엔 돈좀 더 내면 되고.” “에…?”
그 자식의 퀭한 눈이 아빠를 잠시 쳐다보다 말았다.
“너는 공부 스트레스로 정신이 이상해져서 그런 헛짓거릴 한 거야. 우리나란 정신이상이면 살인도 면해진다.” “저… 저… 아… 안 미쳤어요…”
그 자식의 눈동자가 소리 없이 떨렸다.
“네가 오늘 한 짓은 누가 봐도 미친 짓이었어! 그 꼴을 보면 누구라도 네 정신이 이상하다고 말해줄 거다!” “ ! ”
그 자식의 엄마는 어깨를 웅크린 채 소매로 눈물만 찍어내고 있었다.
“차, 차라리 소년원에 가면 갔지 어, 어떻게 저보고 정신이상자 행세를 하라고 할 수가 있어요…?” “그럼 개미를 먹인 건, 제 정신으로 할 수 있는 짓이냐?”
그 자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버진… 아버진 그보다 더 한 짓도 하시잖아요…” “뭐? 뭐라고? 이 자식이!”
두툼한 손이 그 자식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그 자식이 뺨을 감싸 쥐고 일어섰다.
“당신은 인간도 아니야…” “뭐, 뭐야? 이 자식이!!” “당신은 엄마를 벌레 취급하잖아…” “뭐야?! 그래서 니네 반 애한테 벌레를 먹었냐? 그게 말이나 돼?!!” “그래!! 약한 애 괴롭히니까 아주 재밌어 죽겠더라!! 당신이 엄마를 왜 그 따위로 취급하는지 너무나 잘 알겠더라!!” “뭐야? 이게 진짜 미쳤구나??”
다시 날아오는 두툼한 손을 그 자식이 붙들었다. 아저씨는 양 손목을 아들한테 붙들린 채 바동바동 댔다.
“이… 이 자식이… 이거 안 놔??” “나도… 오래 잡고 있을 생각… 없어… 경고하는데… 앞으로 엄마… 인간 취급 안하면… 이젠 당신 차례야…”
그 자식이 아저씨의 손목을 놓으며 뒤로 세차게 밀었다. 소파로 나가떨어진 아저씨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거실 한쪽에 놓아둔 골프채를 집어 들었다. 그 사이 아줌마는 그 자식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 나갔다. 하지만 그 자식은 이미 마당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정아가 나를 불렀다. 정아는 인터넷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이거, 봐. 도, 동영상이, 이, 인터넷에, 떠, 떴어. 바, 반장이, 치, 칠판에, 그, 글씨 쓰는 거랑, 티, 티비 화면, 찌, 찍은 거랑. 지, 지금, 아, 아주 나, 난리야.”
나는 누가 가장 먼저 인터넷에 동영상을 올렸는지 알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이, 이런, 더, 덧글도, 있어. 바, 반장이, 주, 중학생 때, 그 아빠가, 며, 몇명한테, 하, 학비를, 대, 줬는데, 바, 반장이, 그, 애들을, 부, 부하로, 사, 삼았대.”
나는 온 힘을 다해 목소리를 키웠다.
-정아야, 미안하지만 내가 부탁하는 날 우리 집에 가 줄 수 있어? “가, 가서?” -우리 엄마를 한번만 안아줘.
정아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나는 솔직해지기로 했다.
-나… 니 몸에 한번만 들어가도 될까? “그, 그러다, 영, 영, 사, 사라지면?”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 그러다 사, 사라지면?!” -그건… 나도 몰라…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내 부탁 들어달라고 너에게 부탁하는 것뿐이야… 면목 없지만 부탁할게…
정아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아, 알았어… 그, 그렇게… 하, 할게…”
나는 또 부탁할게 생각났다.
-하나 더 있어. “왜, 왜, 자꾸, 그, 그래..? 아, 아주, 가, 가, 갈 사람, 처, 처럼?” -니가 맨날 쓰고 있던 거 소설이지? 그럼 내 이야기도 소설로 써줘.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