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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完)
게시물ID : readers_239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쁘지효
추천 : 0
조회수 : 26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2/05 22: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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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여보세요?"

"다행히 네 번호가 맞구나. 내가 너와 연락하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니?"

 경황이 없어 그냥 가져다 댄 휴대전화 너머에서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넘어온다. 받는 사람의 입장따윈 전혀 고려치 않는 목소리, 살아가며 더이상 들을 일 없을 것 같았던 목소리가 다그치듯 말한다.

 어머니, 어머니란 세글자는 내게 다른 사람들과는 다소 다른 방향의 감정을 가져오곤 했다. 당신께선 나에게 당신의 모습을 투사했고 그것을 위해 나를 줄에 매단 인형처럼 조율해댔다. 이에 내가 당신의 기대에 미치지않자 당신은 과감히 차선책을 택했다.

"학교에까지 전화를 했단다. 휴학 했다더구나. 그래, 연을 끊고 산 이상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겠지. 하지만 이건 예의가 아니잖느냐? 병무청에서 우편 하나가 왔더구나. 이런 일로 내가 굳이 시간을 내어 네게 전화를 해야겠니? 이제 스스로 할 나이잖아, 안그래?"
 
 궤변이다. 오래 전 그 날, 집으로 돌아온 내가 피에 절은 손을 씻고 있을때 부모란 작자는 경멸 어린 눈으로 나를 한번 쳐다보곤 다시 잠자리로 들어섰다. 다음날, 그들이 내게 가장 먼저 한 일이라곤 우리 가문에 먹칠은 하지말라며 연을 끊는 일이었다.

 그 후 나는 곧장 집을 박차고 나왔다. 그들의 차선책인 동생을 내버려 두고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도 날 그들의 그늘 아래 있다 멋대로 생각하곤, 여전히 나를 자기 인생 하나 결정 못하는 아이인냥 알고 옛 거주지에 입영통지서를 보냈다.

 "끊어."

 씹어내뱉듯 한마디 단어만을 내뱉곤 하얗게 질린 손으로 전화를 끊어버린다. 뱃속에 묵직한 돌덩이 하나가 짓누르고 있는듯 무겁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 하나가 스물스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스스로 해결해주지. 입술을 잘게 뜯은 나는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되돌린다.

13.

 늦은 아침. 피로에 절은 몸으로 달칵하고 문을 연다. 낯선 인기척에 움찔 놀라지만 한차례 늦게 찾아온 아이의 목소리에 안심을 하고 들어간다.

 하지만 어쩐일인지 검은 에나멜 단화 곁에 잔뜩 흙이 묻은 작은 운동화 한켤레 하나가 널부러져있다.

 갸아아아앙

 고양이 울부짖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신발도 신은 째로 집 안으로 들어간다. 안에 누군가가 있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것인지 밝은 갈색 머리의 아이가 현관문으로 쫄래쫄래 걸어온다. 곁에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 하나가 발톱을 세운 고양이를 들고 서있다
.
 "어! 나 형 봤어! 저번에 횡단보도!"

 어린 타겟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한손으로 나를 가리키더니 외친다. 고양이는 그 틈을 타 타겟의 손을 벗어난다.

 "아저씨, 아저씨가 찾던게 얘 맞죠?"

 타겟 옆에서 아이가 살포시 웃으며 말한다. 위험하다. 이 아이는 나를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꼬인걸까.

 그래, 아이를 집으로 들인 날이었다. 그때부터 항상 나를 감싸던 완전무결한 가면은 자꾸만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맡은 일은 고양이가 놀다 버린 실타래처럼 꼬이기 시작했다. 

 이제야 스승의 말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뭔가가 생기면, 이 일을 그만둬야 할때다.

 "천재는 단명이라던가... 아무래도 죽어야겠다."

 뒷목을 강하게 내리치면 기절을 한다던가, 아무튼 나는 두 아이를 기절시켰다.

13.

  속보입니다. 오늘 (2일) 새벽 2시 40분쯤 서울시 OO구 OO동 원룸에서 액화석유가스(LPG) 폭발로 추정되는 불이 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원룸 거주자 황모 씨(25)와 근처에 위치한 아파트에 사는 아이(5)가 숨졌으며 불은 이웃집까지 번져 인근 원룸 일대가 대피하는 소난이 일었습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전소한 원룸의 주방에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입니다.
 
 콰앙!

 머릿속에서 환청이 들렸다. 환청이라기보다는 먼거리의 소리를 들었다는 표현이 낫겠나?

 내 예상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지금쯤 내 아지트는 가스폭발이라는 그다지 놀라울 것 없는 화재로 불타올랐을 것이다.

 주인은 전소, 어찌된 일인지 이웃 주민의 아이도 휘말려 사망. 전소된 사체의 주머니 속 휴대전화는 용케도 살아남아 내 신원을 증명. 주인은 집에서 고이 자다 배고픔에 라면을 끓이려다 집 안 가득찬 가스 냄새를 못맡고는 쾅! 내가 생각하는 사건의 전개도는 이렇다.

 5살배기 타겟은 뭐, 사실 이미 죽어버린 마당에 그리 신경쓰이진 않는다. 죄를 뒤집어쓴다해도 이미 죽어버린 마당에 되돌아갈 생각 따윈 하지도 않는다.

 이 나라는 죽은 사람에겐 관대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무마하려 들 것이다. 가령 집에 있는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러왔다 등으로 말이다.

 한가지 걸리는 점은 있다. 고양이 집에 고양이가 없다는 것. 그러나 그걸 알아차릴 사람이 있을까? 그런 안일한 생각이 불쑥 든다.

 지금쯤 여럿을 눈살 찌푸리게 하고있을 내 시체는 다름 아닌 어른 타겟이다. 원치않긴 했지만 풀옵션 가격을 받아버렸으니 의뢰자에게 타겟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보냈다. 철저하게 난자된 시신의 모습을 말이다.

 악행의 사슬을 두텁게 할겸. 사실은 그날 화풀이 할 대상도 필요하기도 했다. 게다가 가장 난도가 높은 위장 실종이다 이정도면 의뢰비값은 했다 자부해도 좋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엑셀레이터를 주욱 밟는다. 부아아앙 하고 엔진이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내가 왜 여권도, 건강 보험도, 기타 여럿 편리한 카드도 다 포기하고 이런 짓을 했냐면... 글쎄, 세금을 안내려고? 농담이고, 사실 언젠가는 이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신분이 없는 편이 숨어살기엔 더욱 편하니까.

 이렇게 과격한 쪽은 아니었고 실종사 언저리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군입대랄까? 사람 수십을 죽인 살인자가 군대에 있는것도 웃기지 않는가, 차라리 감옥을 가고 말지. 군입대는 학업을 명목으로 20대 후반까지 미룰 수 있다하니 1~2년간 더 미룰까 싶다가도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기회가 되니 저질러버렸다 정도?

 아이는 내가 없으면 다시 그곳으로 끌려갈테니 말이다.

 "아저씨, 우리 어디가요?"

 조금 잠긴 아이의 목소리가 나를 공상에서 끄집어 낸다. 조급한 마음에 속도를 냈더니 덜컹하는 소리에 잠을 깼나보다.

 "......글쎄"

 [한번 맡은 의뢰는 무슨일이 있어도 해결한다.]

 아직 의뢰가 하나 남았으니 그걸 하러가볼까 한다.

 참, 아이에겐 이름을 하나 지어줬다.

 연목,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그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같은 이 아이를 만난 누군가가 아이를 잊지 못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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