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ㅂ 이번엔 조회수가 50개 넘었더니 납치태그때문에 수정 못하게 한다라면서 글 못쓰네.
댓글도 못달게 하고 글도 7개 넘어가기전엔 다시 못싸게 하고....존내 토론을 할 수가 없는 구조구만.
여기에도 댓글을 못다는 상태니 가급적 꽉꽉 눌러담겠음.
아마 질문사항에 대한 재반박 하려면 또 글 7개 넘어가야 할거같음. ㅅㅂ 존나 귀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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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첫번째 댓글.
A. 일단 링크는 뭘 말할라고 건건지 모르겠는데 동경대 출판회 발간문서에 관한 내용이 하나도 없는 링크임.
오카모토 미노루 라는 이름에 대한 언급은,
이와 관련 김병태(79) 건국대 명예 교수는 “박정희가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관동군 23사단 72연대에 배속됐는데 거기 연대장의 이름이 오카모토였다”며 일본군 고급장교와의 관련성을 시사했다.
이 항목뿐인데, 당시 연대장 이름이라는거지 하급장교가 연대장을 맏지는 않았겠지?
저 항목 자체도 헷갈릴 수 있었다는 내용을 암시하는 내용이라 생각한다.
니가 건 링크에서도 말하듯, 박정희가 창씨개명을 한 시기는 1941년 쯤으로 추정한다.
이때 군관들은 창씨개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분위기였다는게 정론. 그래서 그나마 원래 이름과 유사하게 개명한거고.(니가 건 링크의 글에도 나온다.)
그리고 동경대학교 출판회의 글은 그 글을 링크해주면 찾아보겠음. 그런 글을 본적 조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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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모토 히로시(岡本寬)는 다른사람이란건 이해했네....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로 혼돈한거에 대한 내용은 빈약한것 같은데?
A. 당연, 두개를 착각한 것에 대한 내용은 입증책임이 일단 내쪽에 있는게 아니지.
나는 이래서 그랬을 것이다라는 간접적 이유제시도 할 필요 없어 사실.
근데 착각한 이유까지 밝혀내라면 참 억지주장이 아닐 수 없지.
아마 착각해서 그런 주장이 나왔을 것이다 라는 나도 추측을 제기해주는거지,
문건상으로 보나 어디에도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이 등장한 적이 없다.
그러니 입증책임은 그쪽에 있는거지....
그런 질문은 마치 "신은 없다." 라는 반론에 "신이 없다는걸 증명해봐" 라는 식의 논리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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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근데 다카키 마사오건 오카모토 미노루건 중요한건 박정희가 친일행적을 했다는 것 아닌가?
A. 아니, 친일행적을 어디까지로 규명하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단지 군관이 되었다는 것 정도.)
그 외의 내용은 설명하고자 하면 제대로 된 글 써줄 자신도 있다.
한가지 언급만 미리 하고 넘어가면 독립군 토벌과는 관계가 멀다. 그게 될 리가 없고,
심지어 독립군이 와해된게 1921년이다.
아마 팔로군을 이야기 하는거라면, 팔로군이 뭔지부터 찾아보길 바란다....
이걸 독립군이라고 이야기 해야하는가에 대해서 논쟁을 하고자 한다면 언제든지 받아들여 줄 수 있다.
(팔로군은 조선인이 섞여있긴 하지만 항일운동하는 중국 공산당계열의 군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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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대구사범 앨범은 의미가 없습니다.
졸업하고 창씨개명했어요. 2년뒤던가... 39년부터인가 창씨개명 실시했을 겁니다.
졸업사진에 나온 오카모토는 창씨개명 이전이므로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놈이에요.
A. 정확하게 알고말하자. 창씨개명은 1941년이였고 이때가 다카키 마사오로 개명한다.
그리고 그 이름을 1945년까지 썼는데, 이 이름도 마음에 안들어서 바꿨다는건 대체 그럼 몇년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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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달아주고 싶은데 오유 시스템이 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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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부정은 하는데 그건 이 글이랑 논지가 다르고, 하고자 하면 최소 세시간은 걸릴거다.
예전에 설명해본적 있는데 그정도 걸리더라.
대충 위에 설명하는 팔로군에 대해서부터 찾아보고 나랑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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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일본군 장교로 있었단 것만으로도 친일은 입증되지 않나요?
창씨개명 안하면 학교도 못나오게 했다는데...
A. 그래. 소극적 의미의 친일이라면 맞는이야기가 될수도 있다.
근데 단순히 그때 군관학교 입학만으로 친일이라 규정짓는건 또 잣대가 애매해지지.
이건 또 다른 이야기긴 한데, 박정희가 태어났던 1917년은 대한제국이란 나라가 이미 없어진지 7년이나 지난 시기였다.
안타깝지만 일본 제국의 식민지에서 자라난게 박정희고.... 당시 교과서 같은거 보면 참 시대가 암울했다고 생각될거다.
국민학교 1학년 교과서 내용중 하나가 이거였다.
이런 상황에 조선 이라는 나라에 애국심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는 거다...
태어나서 배운게 이런건데 말이지. 그래서 독립군이 추대받아야 하는거고,
악성 친일파가 아니면 친일파를 규정하기 어렵다는 말도 이래서 나오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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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약자로 써도 두 글자는 유사하다.
더 자세히 알아보길 바람.
참고로 그 밑에 댓글은 니가 예시조차 잘못들었어.
이 사람을 참조하길 바람.
미노루 라는 같은 발음일 뿐, 아예 다른 글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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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30분동안 썼더니 나도 힘빠진다. 한명도 아니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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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글 읽고 내용 더 추가했다.
준 문건의 의문제기하는 원문 다 읽어봤다.
結局、朴正煕の創氏名は「高木正雄」で,その「チョーセンジン臭さ」を嫌って(どこがチョーセンジン臭いのかよくわかりませんが),関東軍への任官時に「岡本実」に変えたのかもしれませんな。ただ,戸籍名は変更していないでしょう。創氏改名申告時以外の「改氏」,「改名」は,原則として認められていないから。
手元にある陸士卒業者名簿(『陸軍士官学校』秋元書房1969)の57期に,朴正煕も,高木正雄も,岡本実も載っていないのはなぜだろう。
이 말이면 이 사람도 의무문으로 글을 쓴걸 알 수 있다.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이 2005년판 글에서 뜬금없이 나왔는데, 왜 육사 졸업자 명단에는 오카모토 미노루 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을까?
-> 글의 뉘양스에서도 알 수 있듯, 본인도 헷갈리고 있어한다.
그리고 나는 원문 글에서 그 근거를 제시했듯, 아마 착각 때문일거라 추정한다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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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히로시(阿部寬) 도 이렇게 쓴다. 원래 어떻게 쓰는지 보여주고 싶은데 여기서 어떻게 보여줘야하나?
여하튼 생각보다 비슷한게 사실이긴 함.
그래서 나도 착각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는거고.
여하튼 이정도면 어느정도 반박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창씨개명건은... 김대중 대통령도 '도요다 다이쥬'로 개명한적 있었지.
당시 우리나라 사람의 80%가 창씨개명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이건 까기 위한 근거가 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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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적 논쟁인건 맞는데 그렇게 가길 원하잖아?
원래 토론이라는게 주장의 근거의 근거의 근거의 근거... 그러니까 아주 뿌리부터 다른생각이 시작되서 거의 문제가 나오더라.
하여간 누군가를 설득시키고 이해시키는건 정말 어느정도 압도적이지 않으면 씨알도 안먹히는 이야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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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시간 오후 11시 49분, 마지막 글 수정하는데, 딱히 질문이랄거도 없고 더 이상 그럴싸한 글도 안달리는거 같아서 이만 접으려고 한다.
나도 자고 내일 출근해야지 ㅡㅡ
여하튼 이정도면 납득했으리라 믿고.... 혹시 반박사항이나 질문사항 있으면 밑에 댓글 남겨주면 나중에 보고 다시 글 싸던지 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