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첫사랑이라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몇년만에 연락이 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은 알고 있습니다. 그냥 혼자서 웃다가 항상 눈팅만 하던 오유에 내 첫 글을 올립니다. 난 정말 씁쓸하게 웃겼거든요. 그런데 정말 재미 없는 글을 올려서 미안합니다.
내 딸이 아픈 날, 네 딸의 사진을 봤다.
어렴풋한 너와의 기억이 떠올라서였는지, 떠올릴 것도 없는 짧은 기억의 끊을 놓지 못하고 이렇게 살고 있는 내가 바보 같아서 슬픈 밤이다. 이젠 네가 날 기억이나 하련지... 난 지금 무척이나 행복한데 왜 갑자기 떠오른 기억으로 짧은 밤을 길게 지새우려 하는지...
이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네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살고 있는지, 행복한지, 내가 궁금하기는 한 건지, 이런 생각을 접은 지도 이제는 10년이 지났다. 아직도 사랑이란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난 그때 참 어렸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그래서 기억의 짧은 끈을 아직 부여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좋아져서 군에서 제대해서는 멀리 있어도 가끔 통화를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직접 들을 수 있었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엔 커뮤니티를 통해서 네 삶을 가끔 허락도 없이 들여다보곤 했다. 네가 없어도 난 잘 살았고 술이 취해야만 네가 기억이 났고, 그 취기에 수많은 실수를 했으며, 넌 아무렇지도 않게 그 실수들을 받아주었고 난 그게 당연한 듯 다시 술을 마시고 전화하고, 넌 날 달래주고.... 그렇게 여러번 반복을 하던 내 실수는 ‘나 결혼해’라는 한마디로 날 절망에 빠뜨리면서 끝이 났었다. 난 역시 나쁜 놈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면서...
지금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라는 말은 위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행복하지? 라고 묻고 싶다. 어차피 난 네게 거짓투성이였으니까. 너와 함께 있으면서도 네게 잘 한 것이 하나도 없고, 헤어진 것도 나 때문이고, 모든 것이 나 때문이었다는 것이 참 슬프다. 널 만나서 사랑하고, 잘못하고, 헤어지고, 그리워하고, 또 행복하길 바라는 내가 참 나쁘다. 널 만나서는 나쁜 남자였고, 널 사랑하며 다른 사람도 사랑했고, 네게 잘못하던 그 순간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잘하고 있었고, 네가 그리우면서도 난 다른 사람과 함께 있었고, 네가 행복하길 바라는 지금 그 마음이 진심인지도 모르는 난 정말 구제불능일이다. 시간이 흐르면 그 모든게 사랑이었다고 혼자 추억하며 즐기고 있을 난 정말 구제불능이다.
추억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추억을 스스로 변색해서 기억하기 때문이다.
널 처음 만난 날. 평상시처럼, 흔한 소개팅처럼 아무 대책 없이 나갔다가 한 눈에 반해버리고는 이제 운명을 만났다며 즐거워 한 그 날, 다시 그 날로 돌아간다면.... 난 더 형편없는 초라한 놈팽이가 되겠지? 짧은 커트머리에 뿔테 안경. 이쁘진 않았지만 더없이 매력적인 그 첫인상을 아직도 기억한다. 네게 난 어떤 기억인지 묻지도 않았고 그럴 시간도 없이 그 해 겨울 스무살은 짧게만 지나가 버렸었다. 한번만 그 스무살로 돌아간다면 난 첫눈에 반했다고 우스운 농담이나 하며, 내 이상형을 이제야 만났다고 쉽게 고백하지 않았을 거다. 넌 내게 쉽게 다가왔고 쉽게 떠나갔기에. 다시 돌릴 수 있다면 난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키우고 있다. 지금 모든 기억은 나의 좋은 기억일 뿐인데, 네게는 힘들고 지치는 기억일 수도 있는데, 난 무슨 자신감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은 것일까? 나의 시간을 돌릴 수 있어도 우리의 시간은 나 혼자서 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널 첨 만나고 그리고 헤어지고, 15년 동안 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너의 기억을 키우고 있었다. 이 말도 거짓인 것이 15년 동안 항상 키운 것도 아니고, 가끔 생각나면 슬쩍 들춰보는 나만의 추억일 뿐이면서 난 15년 동안 간직한 추억이라 명하고 있다. 넌 나와의 그 짧은 시간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인지하지도 못하고, 키워나가는 것이 아닌, 소리 없이 사라진 기억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난 그 기억을 아름답고, 더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꾸고 있다. 색이 옅어지면 사실과 다르게 내가 색을 칠하면서...
너의 기억- 남잔 첫사랑을 잊지 못한데
감히 내가 네 행복을 운운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네 행복을 바란다. 살짝 지켜 본 네 삶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참 행복해 보였다. 나도 남부럽지 않은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 날 바라보는 아내, 아직 말은 못하지만 날 보면 웃어주는 딸을 보면 참 행복한 놈이라는 것을 느낀다. 짧았기에 잊혀 지지 않는 기억이라고 애써 위안하며 술 한 잔 마신 날 그냥 갑자기 기억난 이름이라고 생각하련다. 첫사랑이라 내가 이름 짓고 그렇게 기억하는 것도 미안하긴 하다. 사랑이라 부르기엔 어렸고, 또 사랑이라 부를 만큼 잘 해준 것도 없으니까. 근데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더라. 첫사랑이 별거냐 시간이 흐른 뒤 누가 /‘네 첫사랑은 누구야?’ 라고 물었을 때 생각나는 한 사람이겠지 뭐. 지금 네 곁에 있는 남자의 첫사랑이 너였으면 좋겠고,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고, 나 같은 놈 생각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지금 주어진 행복 영원히 지키며 살테니까. 너도 너의 행복 영원히 지키며 사랑하고 감사하며 건강하게 살아라. 나 사는 동안 아마도 널 쉽게 잊지는 못하겠지만 넌 날 잊고 살아도 좋을텐데... 좋든 싫든 그 스무살 무렵의 짧은 기억 나만 색칠하고 그렇게 좋은 기억으로 살게... 이젠 연락하지 마라..특히 내가 술 마신 날엔... 다신 연락하지 마!!! 추억의 색깔 회색으로 변해버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