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기사는 osmu를 설명한 것이고..
이것을 통해서 제 생각을 한 번 말해보자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플롯(이야기)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고, 그 이론이 2000년 가까이 이어져왔지요.
(캐릭터 없는 문학은 존재해도 플롯 없는 문학은 존재하지 못하죠.)
그런데 요즘 문학사조를 보면 캐릭터의 깊이와 입체감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또 보면 얼추 맞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문학이란 삶과 맞닿아있는 것인데, 깊이있고 입체감을 중요시한 캐릭터는 인간적이므로 삶과 가장 맞닿아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문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공감력을 획득할 수 있으므로, 정말 좋은 문학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현대문학사조를 따르고 있습니다.)
물론 예술에 왕도가 어디있겠냐만, 과연 이러한 사조가 2000년인 군림한 아리스토텔레스를 이길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많은 문학사조들이 명멸하고, 그 끝에는 해체이론이 모든 것을 해체해 버린 이 포스트 모더니즘 속에서, 더 나아갈 것들이 있나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지만 결국 순간적인 반짝임과 같은 문학사조들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고루해져 그 특유의 신선함이 없어지므로, 그 또한 무상하지요.
(예를들어. 박민규와 김애란같은 경우를 보면, 따라하는 문청들이 많으나 결국 마이너 카피에 불과하고, 결국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방법으로
고루해져 가는 개미지옥에 빠져버리는 셈이지요.)
결국 회귀하는 것은 고전적인 방식의 항상성인데, 그렇다고 이러한 고전적인 방식만을 인정하기에는, 문청들의 피가 끓는 것을 막을 수 없지요.
이러나 저러나
역시나 문학은 재밌습니다.
답이 없어요. 씨발.
아 소설쓰기 힘들어 죽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