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헤.. 지금 다른 사람 말하는거 맞죠? 걔는 주민번호가.. 821203-2...인데요..?"
"네.. 맞아요."
서..설마..
"에이~ 잘 못 아신거 아니예요? 제가 아는 혜린이는요.. 정말 건강하구 제가 아는 혜린이는요.. 잘 웃고 제가 아는 혜린이는요.. 말도 잘하고... 제가 아는 혜린이는요.. 술도 잘 마시고.. 혜린이는... 놀땐 놀 줄 알고... 그리고..머리도 안빠졌는데!!!!!! 무슨 소리하는거예요!!!"
간호사는 나의 언성이 높아지자 약간 당황한 듯..
하지만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아직 본격적으로 항암치료를 받지 않아서 그래요.."
마..말도 안된다.. 이건..
난 여전히 흥분한체로 말했다.
"걔는 지금! 왜 치료를 안받는건데요!!"
"..."
간호사는 친절하게도..
자세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혜린이는.. 8개월 전..
병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계속 치료를 해야하고
들어가는 비용도 장난이 아니라는 것..
치료를 시작하면.. 몸이 더 약해 진다고..
그냥.. 이대로 살아간다고...
남은 삶.. 당당하게..
비실거리다가 병실에서 죽는 것보다..
아파도 그냥.. 세상에서 죽어버리겠다고..
...
하..
그..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런데..
그렇다고 날.. 떠나버린 건가?
더 이상 간호사를 귀찮게 할 수 없었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초리도 눈초리였지만,
내가 더 이상 그 곳에서 서 있을 자신이 없었다.
난 근처 편의점으로 뛰어가 소주를 사들고 집 앞에 왔다.
맨 정신으론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마셨다.
그렇게라도 해야 미친듯이 뛰는..
터질 것 같은 이 심장을 식힐 수 있었으니까..
정혜린.
너.. 너무한거 아니야?..
날 떠난 이유가 설마.. 넌 이제 죽을꺼라는.. 이유 때문이야?..
...
이미 그녀의 번호는 삭제 해버렸지만..
기억 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수십번을 눌렀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전화해서 뭐라고 하지?
...
이미 헤어진 사람이다.
그렇게 모질게 날 떠났던 혜린이다.
그렇게라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정혜린.
바보같은 혜린이..
이러면 내가 행복해 할 줄 알고?
훗....
실성한 듯.. 콧 웃음이 자꾸 나왔다..
술을 몇병이나 마셨는지 모르겠다.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더 멀쩡해진다...
후..
이럴땐 어떻게 해야하지?
이런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왜 내가.. 이런 비극의 슬픈 주인공이 되어야하지?
아니.. 그녀와 난 끝난 사이니까..
엑스트라일 뿐인가?...
이..이건 꿈이야..
그래.. 이건 꿈이다.
자고 일어나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난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애써 부정했다.
전화하면 그녀가 받을까?..
그녀도 내 번호를 알고 있을텐데?..
공중전화를 써서라도 해볼까..?
...
내가 전화를 해서 나라고 하면 받아줄까?..
아냐.. 갑작스레 그러면 안되겠지..
내가 안다는걸 눈치 챌지도 몰라..
아..
병인데 왜 속였냐고?
죽을꺼 알면서 왜 나에겐 한 마디도 못 했냐고?..
왜.. 마지막 순간까지 나와 함께 하지 못 하냐고?
..
나라도 못 하지..
....사랑하는 사람 자기 때문에 아파하는 꼴 어떻게 봐?
암~ 못 하지....
ㅅㅅㅣ..바....못 하지이!!!!
그래도 이건 너무 하잖아!
이건...
차라리 그냥 몰랐으면 좋았을 뻔했다....
그게
..나도 그녀도..
그래.. 모르는게 좋겠다..
그녀가 날 떠난 이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해되지 않았었다.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았었다..
...
하지만...이제서야 어느정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지금 보니까..
그녀는. 혜린이는 충분히 그럴 사람이다..
지금 여기서 내가 알아버린다면..
그녀는..
자기가 생각했던 계획이 무로 돌아가버리고 말테다...
그리되면..
그녀는..당장은 웃어도..
나중에..
아주 나중에.. 또 슬퍼 질지도 모른다..
지금도 육체적으로 다가오는 고통도 참기 힘들텐데..
내가 알아버린다면.
아니..내가 왜 그랬냐고.. 그래버린다면.
더.. 힘들어지겠지...
아닌가..?
내가 같이 감싸 안아줘야하나?..
이럴땐..
이럴땐 어떡해!
어떻게 하냐구!!!!!
바보같이..
이런것도 모르고..
다른 여자랑 히히덕 대고있었다니..
...
난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사로 잡혔다..
생각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누가 그랬던가..
무작정 생각을 했다.
무엇이 좋을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를 위해서.
뭐가 좋을지..
어떻게 해야.. 그녀가 조금 더 덜 아프게..
....
이.. 세상..
떠 날 수 있 을 지...
다음에 계속....
안녕하세요.. 저는 7년정도 글쟁이 노릇하고 있는 놈입니다. 이 글은 군시절(04년도쯤)에 직접 적었던 글이구요.. 개인적인 자랑(?)으로는 05년도 쯤에 영화 제의를 살짝 받았던 작품인데... 투자사를 못 찾아서 결국 엎어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