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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에서 철이 들기까지 part 1
게시물ID : emigration_2395짧은주소 복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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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 3
조회수 : 116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1/03 09: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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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슴' 체로 가겠슴

본론 바로 ㄱㄱ



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금수저로 태어났슴. 하지만 부모님의 행색이라던지 씀씀이는 워낙 검소하셔서, 저도 그런 영향을 많이 받은거 같슴.

아버지는 대기업에서 종사하시면서 빨리 자수성가 하신 스타일이심. 나이 40전에 건물소유만 5채 넘으셨으니..

어머니도 비슷한 업종에서 일하셨으나, 나를 낳으면서 관두셨다고 들었슴.



질풍노도의 시기 중1~2, IMF 가 닥쳐오면서 우리집도 쓰러진 여럿가정중 하나였슴. 

아버지는 어떻게든 일으켜 세우실려고 개인사업을 차리시면서 까지 아둥바둥 거리셨으나, 그 당시에는 누구나 그랬듯이 너무 상황이 안 좋았슴.  내가 완전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았지만, 당시 아버지는 부도를 막지 못해서 교도서 까지 갔다왔다고함. 이 썰도 풀려면 끝도 없어서 다음에 시간날때 풀겠슴.

여튼 우리가족은 이민을 결국 결심하고, 훌쩍 연고지도 없는 아무도 없는 나라에 이민을 오게 됨.

당시 부모님의 상황을 말하자면, 아마 두분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된다는 의무를 많이 느끼신듯 함.

그리고 나의 상황을 이야기 하자면, 중1~2 시절은 누구나 그렇듯이 사춘기를 겪는 시기고, 비관적인 사고를 많이 갖는 시기임.

게다가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학업도 따라가기 힘들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너무 보고싶고 그랬슴.

4살 정도의 터울이 있는 누나가 있는데, 누나는 한때 향수병에 심하게 걸려서 "한국~ 한국" 노래를 부르다가 결국 대학교까지 끝내놓고 다시 한국에 감.

아무튼 아버지 어머니 상황상, 누나나 나를  돌볼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슴. 

아마 두분의 책임은 "돈"을 벌어오는게 우선순위 였던거 같슴.

그러니 성적이 좋았겠슴? 가끔 정신이 들어서 벼락치기를 미친듯이 할때는 제외하고는 계속 바닥을 기고 있었음.

앞서 말했듯이, 부모님은 바쁘셔서 가끔이나마 "학교에서는 어떻니?" 물어보는게 다였슴.

상황이 이렇다보니, 부모님이 나를 내팽겨쳐둔다는 거 + 사춘기의 콜라보레이션에 의해서 부모님과의 마찰이 시작되었슴.

학교 땡떙이는 밥먹듯이 했고, 이 나라는 대학입시 시험을 4주로 나눠서 치는데 (4주 내내 치는게 아니라, 시험 있는 날만 가는거) 

내가 좋아하는 과목만 시험 치러 갈 정도였슴. 당연히 부모님은 아직도 모르심.

한때는 게임에 꽂혀서 새벽에 일어나서 게임하고 학교에서는 잠자고 그랬슴. 

이민 생활을 좀 해보신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민자들한테 교회생활은 필수임. 

교회에서 연애도 여러번 했슴. 걔네들은 다 유학생이였는데,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나랑 놀아서 그런가 잘 풀린애들 하나 없더라 ㅋㅋㅋㅋ

당시 학교에서는 당시 유학 붐이 있었던지라 한국 학생들이 겁나 많았슴. 

나도 유학생들이랑 어울려 놀았는데, 결국 우리 학년 한국애들중에서 대학 간 애 한명도 없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애 생기면 대학생될때까지 유학 안보낼꺼다. 부모님눈에 벗어나면 애들 어긋나는건 시간문제다. 

물론 가뭄에 콩 나듯 가~끔 유학 잘 마무리 짓는 애들도 있긴한데 진~~짜 희박하다. 거의 도박이라 보면 됨.



아무튼 이제 나도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을 갈려고하는데 

내 성적으로는 갈데가 없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그런말이 있지 않나? 외국 대학은 들어가기는 쉬워도 나오기가 힘들다고

내 성적으로는 당시 들어가지지도 않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나라에도 재수라는게 있는데, 한국하고는 조금 다른 계념이지만 있긴 있슴.

아무튼 재수를 하기로 정하고 사정상 다른 도시에서 생활해야되기 때문에 집을 알아보고 다니는데,

너무 쪽팔리더라.....

다른 친구들은 대학이 붙어서 자취 하느라고 집을 알아보고 다니는 반면에 나는 재수한답시고 집을 알아보고 다니는게 너무 쪽팔렸슴.

그리고 이 나라에서는 학생 수당이 나오는데, 재수하면 안 나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내 자취 생활은 시작됬슴.

한 1~2달 됐을까? 고등학교때 아는 친구놈이 연락이 왔슴. 이놈은 현지에서 태어난 놈이라, 한국말이 엄청 서툴고, 엄마아빠가 교수라 그런가 이놈도 공부를 꽤나 잘했슴.

이놈이 아직 자취방을 못구해서 그런데 같이 살자고 연락이 왔슴.

앞서 말했듯이 나는 학생수당이 안나와서 오로지 부모님께 의지하고 있었기때문에,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려고 바로 오케이 했슴.

아마 이때가 내가 이민온지 6~7년 됐을텐데, 너무 챙피한 이야기지만 이때도 영어가 안돼서 버버벅버버버버벅벅 될때였다.

이 룸메랑은 영어로 이야기를 했는데, 이때 영어실력이 좀 는듯 함.


part 2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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