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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나는 너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
게시물ID : readers_239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계피네이발관
추천 : 8
조회수 : 378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2/09 23:3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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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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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나란히 선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앞에 앉은 남자가 코를 조금 크게 골 때마다 너는 나를 보고 웃음을 참는 듯한 표정을 해 보였고 나는 그런 너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것뿐이었다. 나는 어떤 말을 해야 네가 나를 한 번 더 생각해줄 지 내리기 직전까지 고민했고, 너는 말이 없는 성격이었다.

지하철역 계단을 오르며 나는 오늘따라 날씨가 춥다고 생각하며 네가 목도리를 둘렀는지 안 둘렀는지 너의 하얀 목을 흘깃 쳐다보았다. 너는 춥다는 듯 너의 두 팔을 감싸며 날 쳐다보았다. 네가 나에게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물어왔을 때 나는 너의 집 방향을 가리켰다. 너는 잘 됐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난 바보같이 너의 등 뒤로 비치는 눈아픈 지하철 간판 네온사인보다 지금 네 웃음이 더 밝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강물에는 가로등과 건물 불빛과 신호등과 사람들과 너와 내가 비쳐 보였다. 너의 까만 눈동자에는 나의 새빨개진 얼굴이 비쳐 보였다. 나의 마음도 네 눈동자에 비쳐 보이고 있을까 궁금했다. 나는 느리게 걸으며 너를 흘깃흘깃 쳐다보았고 너는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너와 눈이 마주치면 나는 모른 체 하고 너의 운동화 끈을 쳐다보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입을 열었다 네 앞에서 이상한 말을 해 버릴까 두려웠고, 너는 말이 없는 성격이었다.

길가에는 가로수가 많았고 그 나무들은 하나같이 다 목련이었다. 목련꽃은 늦은 밤에도 목련꽃이었다. 난 문득 내 옆을 걷던 네가 목련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너와 한 번 더 눈이 마주치자 넌 날 보고 목련꽃처럼 웃어 보였고 난 그 때 바보같게도 시간이 딱 열두 배만 더 느리게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늦은 밤 도시의 마지막 불빛마저 꺼지고 야간 점멸 신호등의 주황 불빛만이 남을지라도 너를 질리도록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일 아침 물안개가 부옇게 올라오고 텅 빈 버스가 한두 대씩 다니기 시작하면 사진 오십 장에도 다 담지 못할 너를 조그맣게 만들어 품 속에 담은 다음 일분에도 네다섯 번씩 꺼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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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에서 너의 집까지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너는 나에게 하얀 손을 흔들었다. 난 이제 너를 꽤 오랫동안 못 본다는 사실에 기분이 내려앉았다. 나는 애써 너에게 웃어 보였지만 내 아쉬움은 표정보다도 빨리 너의 눈동자에 비친 것 같다. 너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에게 "어디 아파?"라고 물었지만 나는 바보같게도 '괜찮아'라는 평범한 말 대신에 "내일도 나랑 같이 걷자"라는 이상한 말을 해 버렸다. 너의 얼굴은 진달래꽃처럼 분홍빛으로 변했고 나는 내가 한 말을 깨닫곤 땅강아지처럼 땅 속을 파고들어가고 싶었다. 너는 이내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고는 "모레도 같이 걷자!"라고 외치며 집으로 뛰어갔고, 나는 금요일 저녁처럼 행복해졌다.
출처 가수 프롬의 노래 '너와나의'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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