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의 방법」,「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책에서 발견한 문학의 새로움 2005069004 불어교육과 안 지혜
Ⅰ.들어가면서 문학작품을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물음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작품을 읽고 작품의 형식과 주제를 외고 그에 관한 문제를 푸는 것이 진정 문학을 대하는 자세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어릴 적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들은 왠지 재미가 없었다. 특히 소설의 경우에는 교과서에는 작품 전체가 실려 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줄거리를 보고 전체 내용을 파악하고 문제를 푸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한번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도 있었다. ‘교과서에 실릴 정도라면 정말 유명하고 재미있는 작품일 텐데, 왜 이렇게 재미가 없을까?’ 그 때 가졌던 의문에 대한 답을 이제야 찾아냈다. 「시 읽기의 방법」,「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이 두 권의 책이 나에게 진정 문학작품을 대하는 자세는 어떤 것이며, 그를 어떻게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알려 주었다. 문학작품은 학습의 대상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함께 느껴야 할 하나의 삶과도 같다. 그런 것이 입시위주의 교육현장에서 문학작품을 외고 공부하는 것으로 변질된 것이 안타깝다. 이러한 현 세태에서 문학을 가르치기 위한 공부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시를 어떻게 읽힐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이 두 권의 책은 실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책들을 읽고, 사실 나에게도 막연한 듯 느껴졌던 시가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시 읽기의 방법」은 ‘시 한편 한편이 이런 시이다.’ 라고 일러주는 책이다. 하지만 책에 나온 개별적인 시 작품을 알았다기보다 ‘어떠한 시를 만나더라도 이런 느낌으로 읽어내고 받아들이면 되겠구나.’라는 느낌을 배울 수 있었다. 「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는 책을 읽는 자체만으로 깜짝 놀랄 경험이었다. 절대적 진리인양 믿어왔던 교과서와, 그에 딸린 참고서들이 시와 소설, 그 자체에 대한 접근을 얼마나 어렵게 했는지 하나하나 알아갈 수록 놀라웠다. 책 표지에 찍힌 한국간행물 윤리위원회 선정 제42차 청소년 권장도서라는 표기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자신들이 어렵게 접근하고, 배우고 있는 문학작품이 실은 교육가들의 실수에 의해 잘못 설명되고 있고 그런 것을 교과서라고 버젓이 배워야 하는 모습이 얼마나 우습게 느껴질까. 이 책은 교사가 먼저 읽고 부끄러운 교과서와 참고서들을 놓고 그것들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본 보고서에서는 이 책을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 몇몇 문학작품을 바라보고, 더 나아가 문학작품과 학생 사이의 매개자로서 배우는 입장에서 내가 가졌던 의문과 아쉬움을 보완할 답변을 이끌어 내고자 한다.
Ⅱ. 독자이자 매개자로서 책 내용 살펴보기 ⅰ.독자로서 ①「시 읽기의 방법」 책을 읽다보면 교과서에 수록된 유명시인의 작품도 있고 널리 알려진 시인의 묻혀 있는 작품 혹은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시인의 작품도 있다. 어느 작품을 먼저 읽든지 쉽게 읽혀서 좋았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시이거나 익숙한 시인에 대한 낯선 시들에 저자 나름의 해석을 해 본 것이다. 저자는 책의 머리말에서 ‘좋은 시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빛나고 있기 때문에 그 해석과 설명도 획일적일 수는 없다.’ 라고 말한다. 그런 그의 말대로 책은 여러 가지 관점과 폭넓은 배경지식으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작품만을 ‘자세히 읽기’뿐만 아니라, 시대적 상황이나 작가의 개인사를 총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시의 이해를 돕고 있고 관련 있는 작품이나 같은 시인의 다른 작품들과의 연계를 통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책을 읽고 특히 마음에 남은 부분은 유치환의 ‘너에게’ 라는 작품을 해설하던 도중 저자가 한 말이다. ‘읽어서 모르는 데가 없으면 초보 독자는 안도하는 한편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다.’ 이 구절을 읽고 뜨끔했다. 뭔가 쉽게 읽히고 이해가 잘 되면 ‘나도 이렇게 잘 이해되는 시를 쓰다니.’ 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뭔가 심오한 뜻이 담긴 듯한 시, 화려한 수사를 사용한 시들. 그런 것들이 잘 쓰인 시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일침을 놓은 한마디였다. 쉽게 읽히면서도 그 울림이 잊히지 않는 그런 시들이 정말 명시라는 것. 이 책은 그것 하나만 하더라도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고 있다.
☀ 유리창I - 정지용 책의 목차를 살펴보다가 가장 먼저 찾아 읽은 것이 정지용의 유리창I이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처음 만난 이 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이기도 하다. 유리창 밖의 밤을 바라보는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이다. 창밖의 어른거리는 불빛들, 그 창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면서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기에 좋은 밤의 유리창이다.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라고 말하고 있다. ‘열없다’는 말은 ‘약간 부끄럽고 계면쩍다’는 뜻이다. 한밤중에 유리 창가에 붙어 서 있으니 화자도 얼마쯤 계면쩍게 여겨서 “열없이 붙어 서서”라고 한 것이다. 열없이 붙어 서서 그가 하고 있는 일은 입김을 흐리우고 즉 입김을 불어가며 유리를 닦는 일이다. 그런 유리에 밤하늘의 별이 반짝하고 보인다. 그것을 시인은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라고 적고 있다. 기막히게 참신하고 인상적인 어법이다. 이 작품의 핵심적인 대목이자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는 감각적인 시행이다. ‘물먹은 별’ 은 문자 그대로 물기 머금은 별로서 화자의 눈에 뜨인 별이 얼마쯤 물기 머금은 것으로 비쳤던 것이다. 시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이 부분과 함께 “외로운 황홀한 심사” 라는 부분이다. 외로움이 또한 황홀하다는 이 부분은 외로움을 단지 슬프고 우울한 것이라고 한정짓지 않고 외로움을 더욱 풍부한 감정으로 느껴지게 해서 좋아한다. 이 책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본래 “‘황홀’이라는 낱말은 눈부시게 화려하다거나 강렬한 기쁨의 뜻 말고도 한 가지에 정신이 쏠려 어리둥절한 상태를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두 줄은 어린 아들을 폐렴으로 잃고 난 뒤에 썼다는 전기적 사실이 시인 박용철에 의해 밝혀짐으로써 그 뜻이 분명해진 대목이다. 그러한 사정을 모르더라도 이 작품이 어떤 상실의 슬픔과 연관된 것임은 전후 맥락으로 분명하다. 그러나 폐렴 때문에 잃은 아이라는 사실을 알 때 마지막 두 줄의 뜻이 분명해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첫 대목 몇 줄이 죽은 아이의 이미지라든가 물먹은 별이 죽은 아이의 이미지라고 해석하는 것은 부질없는 과잉 해석일 뿐이다. 텍스트에 충실하기도 사실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1920년대부터 시를 발표해 온 정지용은 시인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시작을 영위한 20세기 최초의 전문적인 시인이다. 그는 시가 말로 빚어진다는 것을 열렬히 자각하였고 “언어미술이 존속하는 이상 그 민족은 열렬하리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한국어로 시를 쓴다는 것은 겨레의 존속에 기여하는 일이기도 하였다.
☀ 거리 - 박남수 이 시는 풋풋한 시골의 느낌과 아련한 헤어짐의 순간이 머릿속에 오버랩 되는 시였다. 젊은 여인이 무엇 때문에 노인을 떠나는지 알수 없으나, 차창에 눈물을 글성글성하는 모습으로 미루어 보아 자신의 의지로 노인을 매몰차게 버려놓고 가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녀가 떠나는 상황에서 늙은이로 지칭되는 노인의 말이 흡사 소설 심청이를 떠오르게 했다. “-네가 가문 내가 어드케 눈을 감으란 말인가.” “-네가 가문 누굴 믿군 난 살란?” 이란 노인의 푸념섞인 혼잣말이 가슴을 아련하게 했다. 책에서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심상치 않은 인간극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의 묘미는 노인의 푸념과 하소를 논평 없이 보여주고 나서 독자로 하여금 밤 정거장에서 벌어지는 인간극의 의미를 완성하도록 하는데 있다. 진한 서도 방언이 간결하면서도 실감 있다. 노인의 성별은 밝혀 있지 않으나 남성으로 상정하는 것이 이 장면의 극적 상황을 고조시킨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노인은 아들을 잃은 후에 며느리마저 잃게 되는 것이리라. 며느리가 그냥 친정으로 돌아가는 것인지 아니면 후살이를 가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잔주쯤의 술집으로 벌이를 가는 것인지 시인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더욱 이 극적 장면은 독자의 뇌리에 오래 남아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