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을 보는 순간, 그만 비명이 터졌다 [가상시나리오] 미디어법 '날치기' 3년 뒤 대한민국
출처 : 새 대통령을 보는 순간, 그만 비명이 터졌다 - 오마이뉴스
올해는 2012년. 어제 내가 좋아하던 예능 프로그램 <유한도전>의 PD가 갑작스레 교체됐다.
하긴 얼마 전부터 신문 지면에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담당 PD가 '친북좌파'라는 사상 검증론이었다.
신문들은 입을 모아 이 프로그램이 반정부 성향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혹은 <유한도전> PD가 북한의 지령을 받고 국민 의식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음모설도 있었다.
마침 뉴라이트 계열 시민단체들이 "인기를 이용해 국민들의 생각을 오도하고 변질시킬 위험"이 있다고 거세게 공격하고 있던 참이다. 부글부글 끓는 속을 참기 힘들어 시청자 게시판에 항의글을 올리려 했다. 어째 게시판은 항의글 하나 없이 깨끗하다. 더 화가 난다. 글쓰기 버튼을 누르려는데 어쩐지 두려운 마음이 든다. 한참을 망설이다 끝내 글쓰기 창을 닫고 과거를 원망한다.
2012년, 3년 전 그날이 떠오른 까닭
바로 3년 전 이맘때쯤 '미디어법'이 국회에서 직권상정되었다. 아직 기억이 생생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의장석을 점거했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달려들었다. 김형오 의장 대신 이윤성 부의장을 의장석에 옹립하고 육탄공격을 육탄방어로 막아내는 모습은 가히 원초적이라 할 만했다.
그걸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는 내 심정도 원초적이 되었다. 허나 그건 맛보기에 불과했다. 의결정족수가 부족해 법안이 부결되었지만 다시 투표를 시도한 것이다. 통과가 될 때까지 '재투표'를 하는 촌극은 이승만 시절의 '사사오입' 개헌을 생각나게 하는 초역사적 망신이었다.
초등학교 학급회의도 이렇지는 않지 싶었다. 사람들은 '날치기'라고 불렀다. 허나 어쨌든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송과 신문을 겸업하는 거대 언론이 나타났다.
물론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한나라당은 규제안으로 '구독률이 20%을 초과하는 신문사는 방송사 지분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조항을 두었다고 생색을 냈다. 허나 말장난이었다. 그런 신문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분모를 '구독가구'가 아닌 '전체가구'로 따지게 되었으니 대한민국의 최고 '메이저' 신문 조선일보도 10.1%에 불과하다. 애초에 규제할 마음이 없는 규제안이었다.
선택의 다양성 좋아하네... 박지성 골도 못 보는데
재벌과 보수신문이 합체한 '족벌언론'은 서서히 지방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복수신문 소유 규제조항'이 완화되었기 때문이다. 더하여 신문고시가 무력화되니 자전거, 상품권, 심지어 현찰 선물까지 부활했다. 물질공세에 꼿꼿하게 의연할 사람 많지가 않다.
곧 지역신문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고 지방의 패권은 '조선' '중앙' '동아'에게 돌아갔다. 바야흐로 '조중동'이 천하를 정복한 것이다. 무수한 언론이 인수 합병되는 북새통에 외려 매체 수가 줄어들고 일자리도 줄어들고 말았다. 분명 2만 1천 개의 일자리 약속과는 달랐다.
한나라당은 미디어법에 '선택의 다양성'이란 명분을 걸었다. 그것만은 믿었다. 그래도 미디어법이 통과되면 프로그램이 많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실상은 정반대다. 미디어법이 시행되기 전 나는 달마다 1만 원을 내고 케이블 50개 채널을 시청했다. 2만 원을 내면 100개 채널을 시청할 수 있었지만 너무 비쌌다. 2만 원짜리 상품에는 해외축구 프로그램과 고품질 뉴스가 들어 있다.
내가 보는 1만 원짜리 채널들은 질이 영 아니다. 그나마 지난달에 1만 원짜리 상품조차 없어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달마다 2만 원을 꼬박 내지 않으면 케이블 채널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 왔다. 결국 케이블 방송을 끊었다. 하루 종일 툭하면 틀어대던 조선일보, 한나라당 광고 보기 짜증났는데 오히려 잘 됐다고 위안을 삼는다.
이제 어쩔 도리 없이 지상파 4개 채널만 본다. 지난주에 벌어진 축구 한일전도 못 봤다. 중계권을 케이블 채널이 가져가 버렸기 때문이다. 돈 없으면 보지 말라는 자유시장의 논리를 따라서 나는 박지성의 결승골을 보지 못했다.
꼭두새벽부터 투표하고 왔는데... 악, 이건 꿈이야
물론 사람들이 그냥 당하고 있지는 않았다. 촛불시위도 있었다. 종로 거리를 지나다 촛불의 파도를 보았다. 시위대는 민주주의의 죽음을 외치며 대통령을 성토했다. 어림잡아도 수가 꽤 되는 것이 아무래도 천 단위 사람이 모여든 모양이었다. 허나 금방 우우,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전의경이 저쪽부터 휩쓸어 왔다. 진압봉이 가는 곳에 사람들이 부러지고 깨지고 멍들었다.
멍청하게 지켜보고 있는데 어느새 눈앞까지 닥쳐온 또래 전경이 '테이저 건'을 들이대며 '빨갱이 새끼' 운운하였다. 혼비백산, 걸음아 나 살려라 꽁무니를 뺐다. 집에 돌아와 놀란 가슴 겨우 진정시키고 뉴스를 틀었다. 허나 촛불시위에 대한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오늘 종로에서 일부 친북극좌 세력의 난동'이 있었으며 '법질서 확립'이라는 보도가 짤막한 단신으로 나왔다. 그걸로 그만이다. 시계바늘이 자정이 넘자 성인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아침 일곱 시까지 계속될 후끈한 화면 앞에서 나는 속이 싸늘해졌다.
오늘 바로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을 뽑는 투표가 있다. 잠시 뒤면 결과가 발표된다. 한나라당 후보는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안보정권을 주장했다. 지난 '좌파정권'이 김정일과 야합하여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과연, 북한에 철인 29호가 있다고 해도 믿을 법하다.
어떤 신문을 보나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이 절반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별할 방법이 없다.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는 신문은 찾기 어렵다. 그나마 싹이라도 트고 있었던 진보 언론들은 광고가 뚝 끊어져 대부분 풍비박산이 났다. 남은 것은 보수언론이다.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으면 빨갱이요, 간첩이요, 역적이 되는 분위기다.
이번에 나는 꼭두새벽부터 나가 투표하고 왔다. 투표일을 그저 공휴일로 알았던 옛날이 무던히도 후회가 된다. 순간 세상이 조용해졌다. 떨리는 손으로 텔레비전을 켰다. 드디어 대통령 선거 결과가 나온 것이다.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새 대통령을 보는 순간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안 돼! 절대 안 돼! 이건 꿈이야!"
꿈이었다. 정말이지 꿈이었던 것이 다행이다. 나는 혼곤한 정신으로 잠에서 깼다. 몸이 땀으로 끈적하게 젖었다. 지금은 아직 2009년이고 미디어법 시비도 헌법재판소에 제소되어 아직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다. 서울 길거리는 오늘도 깊은 침묵에 잠겨 있다. 그 침묵 아래에 무엇이 들끓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내 심장에 들끓는 것과 똑같기를 바란다. 나는 밤새도록 텔레비전을 켜고 홀로 앉아 있었다.
- 시사게시판에서도 올렸는데 시사게시판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사람들이 들어가는 것 같아서 자유게시판에다가 글을 올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