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에는 고려장이란 풍습이 있어서 부모가 늘고 병들면 자식들이 지게에 엎고 갖다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고려장이라는 풍습이다. 우리나라처럼 부모에 대한 효룰 강조하는 나라에서 실제로 있었던 풍습인가? 과연 고려 시대에 이 고려장이 있었던가?
해답부터 얘기하자면 철저히 꾸며진 이야기이다. 그것도 일제에 의해서 날조된 사실이라는 것이다. 고려장이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나오는 경우는 옛날 자료 그 어디에도 없다. 순장이나 후장처럼 가축이나 노예들을 부장품과 함께 묻는 제도는 있었는지 모르지만 부모를 산에 갖다 버렸다는 내용은 없다.
고려시대까지 병자를 산속 깊이 내다 버리는 풍속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병자란 전염병 환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불효죄를 반역죄와 더불어 매우 엄하게 처벌하였다. 이런 사회에서 고려장이란 풍속이 있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면 고려장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고려장이란 말은 일제시대부터 쓰이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조차도 사악하기 그지없다. 고려장이란 용어를 만든 이유란 즉 우리나라 문화재를 도굴하고자 만들어낸 용어라는 것이다. 전국을 뒤져 문화적 가치가 있어 보이는 물건은 닥치는 대로 일본으로 반출하더니 급기야는 무덤의 부장품까지 노리게 되었다. 일본인이 조선인 조상의 무덤을 파헤치기가 힘들었다. 조선인 인부들은 남의 무덤을 파헤치는 일을 꺼려했는데 이는 한민족의 정서상 당연한 것이었다. 어찌 남의 무덤을 파헤친단 말인가? 예전부터 죽은 사람의 무덤에는 영혼이 있다고 믿었고 오페르트 도굴 사건 등에서도 보듯이 남의 무덤을 도굴하는 것은 가장 죄질이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자 일본인은 조선인의 경로효친 정신을 이용해 고려장이란 말을 만들어 냈는데 "조선에는 고려시대부터 고려장이란 게 있었다. 부모를 산 채로 내다 버리는 못된 풍습이니 여기 묻힌 사람은 자기 부모를 생으로 고려장시킨 놈이므로 이 무덤은 파헤쳐도 괜찮다." 라는 논거로 조선인 인부를 회유하여 무덤을 파헤치게 되는 것이다.
예로부터 한민족은 충효를 으뜸으로 삼고 충효의 실천을 평생의 덕목으로 삼아 실천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자신의 친부모를 산채로 버리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정신이 일제의 얄팍한 상술에 이용되어 고려장이란 용어를 만들어 내게되고 이런 용어가 버젓이 교과서에 실리는 우를 우리는 범하게 된 것이다. 하루 빨리 고쳐야할 대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