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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서해교전에 대하여..
게시물ID : military_241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기발하군
추천 : 10
조회수 : 69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6/13 21:58:21
이 글은 MLBPARK에서 가져온 글이며 전문 제가 손댄 부분이 하나 없는 원본 그대로입니다. 두 개의 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김대중 전 대통령
연평도가 포격을 당하면서 또다시 서해교전에 대해서 글이 많이 올라오네요.
글이 꽤 기네요. 그래도 한번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김대중정권에 대한 비난을 각각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대통령이 북한의 눈치때문에 축구나 보러갔다입니다.
일단 주최국의 수장으로써 당연히 참석해야만 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한일정상회담도 바로 있었구요.
우리가 손님을 부른 자리이고 남북관계에 의심이 많던 상황에 오히려 참석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하게 보았겠죠.;; 당연히 가는 자리였습니다.
두번째, 왜 이렇게 낮은 보상금을 유가족에 주었는가?
김대중정부시절의 연평해전은 두번이 있었고 첫번째는 피해가 없었고
두번째인 2002년에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국회회의록에 나온 보상에 관한 내용입니다.
" □서해교전 전사자․전상자 보상내역
<전사자> ○전사자(6명)에게는 개인별 총 4억 4100~4억 4700만 원 일시보상금 지급.
-그 유족에게 매월 68만 6000~82만 1000원의 연금 지급.
※일시보상금 내역:군인사망보상금(3100~3700 만 원), 보훈처장위로금(1000만 원),
국민성금(4억 원)
<전상자> ○전상자(4명)에게는 개인별 총 4200~1억 5400 만 원 일시보상금 지급.
-그 부상자에게 매월 21만 7000~80만 8000원 의 연금 지급.
※일시보상금 내역:장애보상금(500~700만 원), 보훈처장위문금(300만 원),
국민성금(3400~1억 4400 만 원) "
정부가 지급한 전사자에 대한 보상금은 3천만원인데 이 근거는 박정희때 만들어진 법령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사자에게 일인당 지급한 금액의 나머지 4억원은 성금으로 들어간 점에 지적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박정희가 월남전 참전용사들에게 많은 보상금이 지급될 것을 염려하여 만든 헌법의 이중배상금지때문입니다.
그래서 편법인 국민의 성금이라는 명목으로 지원된 것입니다. 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어쩔수 없었던 것이죠. 만약 보상금형식이 되면 소급적용되면서 아마 국가예산이 엄청나게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성금형식으로 준 것입니다.
그리고 이점은 나중에 법령을 노무현정권때 바뀝니다.
그래서 천암함과 이번 연평도의 북한의 만행의 보상은 제대로 이루어 질수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 전사자에게는 훈장조차 없었다?
제2연평해전의 전사자에게 1명에게는 충무공훈장, 그리고 나머지 장병에게는 화랑훈장이 수여되었습니다.
이것도 조중동의 농간이죠.
그럼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국군전사자에게 어떠한 처우를 했는지 보시죠.
http://gall.dcinside.com/list.php?id=military&no=729538&page=1&bbs=
96년 강릉침투 (김영삼 정부) : 부상자 자비부담 치료. 승진심사 탈락으로 당시 부상자 대부분 전역처리.
99년 1차 연평해전 (김대중 정부) : 승리. 사망자 없음
02년 2차 연평해전 (김대중 정부) : 승리. 공무상 사망자로 처리. 전사자에 대한 법령이 없었음. 1계급 특진 및 충무무공훈장, 보상금 약 4억5천(성금 포함)
04년 노무현 정부(참여정부) : 국인연금법 개정 (적과의 교전 과정에서 전사한 군 장병의 유족들이 2억원의 사망보상금을 받을수 있도록 개정. 지금 천안함 침몰 사망자도 이 법에 의해 보상금 받는 걸로 알고있음.). 참고로 연평해전 사망자도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연금액 높혀받음.
10년 천안함 침몰 (이명박 정부) : 04년 개정안으로 전사자 처리. 1계급 특진. 화랑무공훈장(충무무공훈장보다 격이 낮음) 보상금 약 5억(성금 포함)
네번째, 연평해전의 관련 장교들은 나중에 강제제대시켰다?
연평해전당시 장교가 후에 제대가 되었다고 나온 것은 담당 사령관이 자신이 그러한 피해를 당했다고 조선일보 와의 인터뷰에서 밝히면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시각은 그사람이 해군총장을 노렸으나 다른이가 되자 일부러 그랬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그 이유는 노무현 정권당시 노통이 직접 부상치료후 복귀한 장교에게 전화로 격려했다는 점을 통해 관련장교들에게 피해를 줄 이유가 없고 정권차원에서 오히려 그들을 정권의 안보대처에 좋은 선례로 남길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일부러 정권에서 제대시킬 이유는 없었습니다.
다섯번째, 김대중은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맞습니다. 김대중은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고 월드컵결승경기로 방일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도 이점이 많이 의아했는데 찾아보니 이런 관례가 있더군요.
서해교전 영결식은 해군참모총장이 주관하였습니다.
대한민국 국군 역사상 주관하는 사람보다 높은 계급의 군인들은 참석안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강릉 무장공비때는 육군참모총장주관이라 육군총장만 참석한 것처럼요.
그러나 이점은 참석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보기에 욕을 먹을 수 있다고 봅니다.
여섯번째, 김대중이 바뀐 교전수칙으로 인해 희생이 컸다??
교전수칙은 97년 유엔사를 통해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99년 1차연평해전에서 승리후 계속 유지하게 되는 것이구요.
그것이 2차연평해전, 즉 서해교전후 희생이 생기면서 변경되게 됩니다.
잘 아시겠지만 우리가 맘대로 교전수칙을 바꿀수 없습니다. 우리한테 그런 권한도 없죠.
저는 김대중정부가 과도하게 제2연평해전으로 욕을 먹는 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비추어 비교해보면 확실히 대우를 해주고 좋은 선례를 세운 것은 사실입니다.
정권교체 6개월전에 터지고 보상금을 지급했고 다른 행사를 할 시기가 없었음에도
이상하리만큼 욕먹는 것은 조장되었다는 느낌을 버릴수 없네요.
흔 히 가스통할배들로 불리는 고엽제피해용사들에 대한 지원도 과거 정부에서는 생각도 못하던 것을 시작한 것은 김대중정권이고 또한 처음으로 6.25전사자유골발굴단을 만든 것도 김대중 정권입니다. 빨갱이라고 불리는 김대중이 빨갱이를 죽인 사람들을 찾아 위로하고 제대로 안장하는업을 시작한 것이죠.
그러한 점은 절대 언론에 노출되지 않고 연평해전을 통해 김대중정부를 욕하는 것이 많은 것은
우리가 언론의 농간에 의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가를 적나라게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정권은 여러가지 잘한점과 못한점이 공존하는 정권이지만
imf로 인해서 군 전력보강계획이 수포로 돌아갈려고 할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실행했습니다.
그래도 군에 있어서는 가장 존경받아야할 대통령입니다.
군출신인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가 못한 것을 군인들을 위해 한 것이 김대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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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가신 어떤 유가족 한분으로 가끔 대우를 못했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더군요.
그분은 좀 복잡한 이유가 있는 것같습니다.
제가 보기엔 대우를 못해줘서 이민 간 것이 아니구 힘들어서 잠깐 가신것 같더군요.
비자가 단기비자이고 또한 미국 나가고 기사가 많이 나온점..
또한 정권이 바뀌자마자 다시 돌아온 점을 살펴보면 어쩌면 언론에 희생된 생각이 들더군요.
단기비자로 불법체류하신거 보니.. 제생각엔 본인의지와는 상관없는 것 같더군요.
http://www.mlbpark.com/bbs/view.php?bbs=mpark_bbs_bullpen09&idx=893165&cpage=
2. 노무현 전 대통령
서해교전과 노통
이제 보수적인 분들의 정신적 지주인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벌어진 남북 간의 해군 교전 이후 그 양반이 어떻게 처신을 했는지 소개를 해 드렸으니, 이번에는 서해교전 이후의 노통의 행보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 드립니다.
서해교전은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근방에서 북한 해군의 기습공격으로 우리 해군 함정이 침몰당하고 윤영하 소령을 포함한 6명의 해군이 전사한 사건을 말합니다.
이 사건 이후, 노통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2003년 6월에만 서해교전 관련 행보입니다.
(1) 노 대통령, 서해교전 희생자 추모
[YTN 2003-06-27 19:51:01]
노무현 대통령은 서해교전 1주년을 앞두고 오늘 오후 해군 2함대 사령부를 방문해 당시 침몰했다 인양된 고속정 참수리 357호 전시장을 둘러본 뒤 서해교전 전적비에 헌화, 묵념하고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2) 노대통령, 보훈처 부 승격 약속
[YTN 입력시각 : 2003-06-25 16:47 ]
노무현 대통령은 오늘 청와대에서 지난해 서해교전 전사자 부모 등 국가유공자 유족 2백28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면서 이같이 밝혔습니다.
(3) 서해교전 부상자에게 전화 위로
노 대통령은 이에 앞서 지난 19일 서해교전 당시 다리를 잃고 최근 현역에 복귀한 이희완 중위에게 전화를 걸어 격려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은 전화 통화에서 이 중위의 건강상태를 물은 뒤 이 중위의 용기가 많은 국민에게 큰 힘을 줄 것이라며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겠지만 전사자들 몫까지 열심히 근무하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이렇게 서해교전일 즈음에만 전사자 가족들을 챙기는 게 아니고 설날에도 꼬박꼬박 선물도 하고 관심도 표명합니다. 2005년 설날 직전의 mbc의 기사를 보시죠.
(4) 유가족에게 설 선물
[mbc 2005-01-31]
● 앵커: 청와대는 노무현 대통령 내외 이름으로 지도층 인사와 소년소녀 가장, 경찰과 소방관 가족, 서해교전 희생자 가족 3,989명에게 설 선물로 전주 이강주와 지리산 곶감 등 농촌 특산물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사회] 김주하 앵커
(5) 유가족들과 청와대에서 오찬
또 별도로 유가족들과 청와대에서 오찬도 함께하고요.
[KBS 2007-05-02]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일 낮 군 작전 및 해외파병 임무수행 중 순직한 장병의 유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이날 오찬에는 고(故) 윤영하 소령 등 서해교전 전사자 유족 10명과 고 민병조 중령 등 동티모르 파병 순직자 유족 10명, 지난 3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순직한 다산부대 고 윤장호 하사 부모 등 모두 22명의 유족이 참석했다.
저는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아직도 조국을 위해 순직하거나 산화한 이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더욱더 많은 관심을 표명해 주신다면 저는 더 좋겠다는 바램이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정도의 발자취라면 적어도 누구에게 서해교전에 관심이 없다거나 유가족들을 방치해 놓았다거나, 왜 추모제에 참석하지 않았느냐 라는 식으로 욕을 먹을 상황은 아니라고 봐야죠.
게 다가 비슷한 시기에 화재사건으로 사망한 거리의 여성들 가족이 1억 원의 보상금을 수령하였지만 처음 서해교전 전사자 가족들이 국가로부터 3천만 원 남짓한 보상금을 받은 걸 보고, 전사자들의 목숨이 창녀의 목숨보다 헐값이냐?라는 식의 막말을 듣는 걸 보면 정말 가슴이 답답하고 이 나라의 언론 중에서 제대로 된 언론이 단 하나라도 있기는 한 건지 막막하네요.
당시 이렇게 보상금이 적었던 이유도 사실 따지고 보면, 고 박정희 대통령 당시에 제정된 군인 연금법 시행령의 사망보상금 규정에 따른 것인데 말이죠.
결국, 이 규정은 노무현 정권 출범 2년째인 2004년 1월 군인연금법시행령이 개정되어서 적과의 교전 과정에서 전사한 군 장병의 유족들이 최고 2억 원의 사망 보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바뀌었죠.
생각할수록 정말 어이가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전사한 장병이나 장교들의 유가족들이 그나마 제대로 된 보훈 조처를 받게 된 것도 그렇게 빨갱이 친북 좌파 정권 소리를 듣는 노 대통령 임기 중의 법 개정 덕분이니.
참고로 대략 3천만 원 선의 국가 보상금을 받은 서해교전 유가족들은 이후 국민적인 성금의 모집을 통해서 24억 원가량을 추가로 전달받게 됩니다.
글을 대략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씁쓸한 느낌이 드는 건
아 무리 중립적으로 생각해 봐도 노통과 DJ 임기 중에 적어도 보훈문제와 관련해서는 역대 군사정권 그 누구와 비교해 봐도 꿀릴 게 없는데, 어찌 저리도 왜곡되고 편향된 인식이 일반 대중에게 널리 퍼져 있는지 그것도 그렇게 확신에 차서 호통을 치고 다닐 정도로.
우 리 언론 이건 지난번 글에도 언급했지만, 프레시안, 오마이, 한겨레, 경향을 모두 포함해서, 정말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최소한 국민에게 기초적인 균형감을 줄 정보는 제공해야 되는 거 아닌지 지난번 글에 몇몇 진보 진영 분들이 발끈하셨죠? 한번 자신의 스탠스가 과연 균형감이 있기는 했는지 한번 점검해 보실 기회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 DJ와 노통의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
마지막으로 예전에 썼던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을 한번 더 언급하고 마치겠습니다.
6.25 이후 50년째인 2000년 6월에 6.25 전쟁 50주년 기념 사업단이 결성되고 산하 사업으로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단이 조직됩니다. 2003년까지 3년간 한시적으로 운영 계획이 짜이죠. 보수진영으로부터 원조 빨갱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DJ 정권에서 말이죠. 이 3년 동안 전사자 유해 781구와 유품 2만 6천여 점이 수습됩니다.
그런데 2003년 6월 보수진영에서 2번째 빨갱이 정권으로 찍힌 노무현 정부가 이 사업을 영구 사업으로 전환합니다. 육군 본부 유해발굴 담당부서가 정규 편제로 전환되죠. 물론 사업 예산도 넉넉지 못하고 인력도 많이 부족하지만, 노통이 집권한 이후 1천여 구 이상의 전사자 유해가 추가로 발굴이 되고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흠...역대 군사정권. 말로는 가장 국방문제에 앞장서고 전사자나 유가족 챙겼을 것 같은 그들의 임기 중에 아무런 관심 갖지 않았던 일들을, 그거 해 봐야 보수 세력으로부터 좋은 소리 한 마디 듣기는커녕 여전히 빨갱이 소리에, 좌파 친북 정권 소리 밖에 듣지 못하고 더군다나 이제는 기억하는 국민 하나 없는 환경에서.
나름대로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묵묵히 보훈 정책을 수립하고 예산을 편성해서 집행한 두 개혁 정권에 밀리매니아이자 군사문제에는 보수주의자인 저는 무한한 찬사와 존경을 표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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