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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anic_24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중없는아이★
추천 : 18
조회수 : 259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08/08/20 21:33:57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의 몸엔 멍이 잦은 날이 없었다.
그래도 소년은 기뻤다.
내게 집이 있다는 것을.
내게 부모님이 있다는 것을.
비록 그 집이 비가 오는 날엔 양동이가 있어야만 바닥이 젖지 않는 집이라도...
비록 그 부모가 자신의 몸에 멍들게 하는 장본인일지라도...
소년은 기뻤다.
소년은 바보가 아니었다.
"돈 가져와."
"없어."
"돈 가져와!"
"없어! 또 도박판에 가서 남 좋은 일만 시키려고 그러지? 없어! 이 인간아!"
"그런거 아니니까, 돈 좀 줘봐."
"없어. 이번에 생활비 빼곤 정말 한푼도 없어."
"이 년이 지금 나랑 장난해?! 돈 가져와!"
소년의 아비는 어미를 때리기 시작했다.
손바닥으로, 주먹으로, 발로...
아비는 무작정 돈을 가져오라며 어미를 때렸다.
어미는 성난 아비의 공격에 무기력하게 맞고만 있을 뿐이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는 두개의 눈이 있었다.
소년이었다.
소년은 성난 아비를 보며, 상점가의 책방에서 본 '사자'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맞는 어미를 보며, 사자에게 먹히는 '가젤'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소년이 말했다.
"아버지, 그만 하세요. 어머니가 많이 아플거에요."
성난 사자의 눈길은 소년을 향했다.
그리곤 소년에게 성큼성큼 다가서며 말했다.
"뭐라고? 이 년은 맞을 만하니까 맞는거야! 내가 우습게 보이냐!"
소년은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었으나, 사자의 눈빛이 너무 무서워 꺼낼 수 없었다.
소년은 도망치고 싶었으나, 그 역시 무서워 발을 띌 수 없었다.
사자가 소년에게 달려들었다.
"이래도 우스워?! 엉?!"
사자의 주먹질에 소년의 코는 피를 뿜었으며, 사자의 발길질에 소년의 몸은 다시금 멍이 들기 시작했다.
온갖 아픔이 스며들자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안 우스워요! 아파요! 그만 때리세요!..."
사자는 갑작스런 소년의 외침에 당황했다.
하지만 얼마안가 또다시 분노가 치밀었고, 좀 더 세게 소년을 때리기 시작했다.
"이게 어디서 소리를 질러! 이젠 말 좀 한다고 대드는거냐! 그래도 우습다 이거지!"
다시 시작된 사자의 공격에 소년은 웅크릴 수 밖에 없었다.
웅크린 체 맞는 소년을 본 가젤은 사자를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안 맞으니 다행이라 여기는 듯 했다.
지독한 이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사자는 집을 나가버렸고, 가젤은 상처를 추스리며 또다시 바느질을 할 뿐이었다.
아무도.. 그 아무도 일어날 기력조차 없는 소년을 돌봐주지 않았다.
소년은 슬펐다.
소년은 바보가 아니었다.
다음날, 밝은 햇살에 깨어난 소년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아버진 왜 내가 아프다고 말 하였는데도 계속 때린 것일까.'
'그리고 난 왜 맞은 것일까.'
얼마간의 생각 끝에 소년은 한가지를 떠올렸다.
'말.'
'내가 말을 해서 맞은 걸꺼야'
'내가 말을 안했다면 맞지 않았을꺼야'
그러고 보니 소년은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다.
사자는 사자대로, 가젤은 가젤대로 시끄럽다며 자주 때리곤 했을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소년은 결심 했다.
'앞으로 말을 하지 말자. 그러면 맞는 일도 없을거야.'
소년은 답을 찾은 것이다.
소년은 바보가 아니었다.
소년은 이후로 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날, 사자가 술에 취해 가젤을 때려 죽게 했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날, 사자가 화장품 냄새가 짙은 여자를 집에 데리고 왔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날, 화장품 냄새 짙은 여자가 자신을 집에서 내쫒았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날, 내쫒기는 자신을 바라보며 무덤덤히 술만 마시고 있던 사자를 보고도 말을 하지 않았다.
세상에 버려진 소년은 말을 하지 않았다.
소년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길을 따라 무작정 걸어가기 시작했다.
소년은 바보가 아니었다.
소년이 세상에 버려진지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더이상 소년이 아니게 된 소년은, 어떤 사람의 손에 이끌려 어느 도살장에 끌려갔었다.
어떤 사람은 도살장 주인에게 소년을 넘겨주며 돈을 받았다.
주인은 소년을 끌고가 피비린내 진득한 옷을 입혀주며 일을 시켰다.
이때까지도 소년은 역시 말을 하지 않았다.
묵묵히 주어진 일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소년은 일만 했다.
주인은 소년이 묵묵히 일을 잘하는 것에 대해 만족했다.
소년은 주인이 자신을 때리지 않는 것에 대해 만족했다.
그리고 '역시 말을 안하면 맞지 않아.'라고 생각했다.
소년은 바보가 아니었다.
어느날, 소년이 일을 하러 골목길을 지나고 있었다.
'털썩.'
묵묵히 걷던 소년의 귀에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이 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렸을 적, 사자가 가젤을 죽였을 때 가젤이 쓰러지며 냈던 소리였다.
소년은 소리가 난 쪽으로 갔다.
소년의 발길이 멈춘 곳엔 한 여인이 쓰러져 있었다.
여인의 배엔 새빨간 장미꽃이 점점 크게 퍼져가고 있었으며, 여인의 얼굴엔 붉은 피멍이 들어있었으나
소년은 개의치 않았다.
단지 여인의 얼굴만 주시했다.
매우 아름다웠다.
소년은 죽어가는 여인을 보며 생각했다.
'어떤 사자가 이토록 아름다운 가젤을 죽인걸까?'
소년이 곰곰히 생각하고 있을 즘에, 휘슬 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런 휘슬 소리에 깜짝 놀란 소년은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4명의 경찰이 휘슬을 불며 소년에게 달려왔다.
요란스럽게 달려온 경찰 중, 주황색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한 경찰이 소년에게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건가!"
"......"
소년은 말하지 않았다.
"설마 자네가 이 여인을 죽인 건 아니겠지?"
"......"
역시 말하지 않았다.
"이런 쳐죽일.. 체포해!"
경찰 중, 키가 크고 상당히 마른 경찰이 곤봉을 꺼내 소년의 머리를 내리쳤다.
소년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찔한 고통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소년은 경찰에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소년은 바보가 아니었다.
"..이에, 본 법정은 교수형을 선고하는 바이다."
'땅, 땅, 땅'
단단한 나무들의 마찰음이 3번 들리자, 소년의 곁에 있던 콧수염 경찰은 소년을 데리고 광장으로 나왔다.
광장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소년을 보러 나와 있었다.
소년은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 신기했다.
'왜들 이렇게 모여있는 걸까.'
콧수염 경찰의 인도하에, 소년은 생전 처음보는 괴상한 나무받침대에 올라섰다.
콧수염 경찰은 소년을 네모난 홀이 파여진 곳에 소년을 세우곤 나무받침대에서 물러섰다.
금색 장식에 붉은 바탕의 옷을 입고 괴상한 모자를 쓴 노인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
"..집행하라!"
노인의 말이 끝나자, 검정 두건을 쓴 뚱뚱한 남자가 소년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소년에게 동그랗게 말린 두꺼운 줄을 씌워 목에 걸치게 한 뒤, 바닥에 비스듬히 고정되어 있는 막대
옆으로 다가갔다.
굉장히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소년은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모르고 있었다.
단지 자신에게 왜 이렇게 하는지 궁금할 뿐이었으며, 무엇보다 뒤로 묶여있는 손이 불편하기만 했다.
슬픈 정적 속에서 남자는 노인을 바라보았고,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막대를 힘차게 밀었고,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소년이 서 있던 네모난 홀은
2개로 젖혀졌다.
소년의 몸은 땅으로 곤두박질쳤고, 소년은 숨이 쉴 수 없는 아득한 고통을 느꼈다.
소년은 너무 괴로웠다.
그리고 소년은 생각했다.
'정말 말 한마디 안했는데, 이 사람들은 왜 날 아프게 하는걸까.'
소년이 거센 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난..."
"사자가..."
"아니에요..."
이윽고 고통에 바둥거리던 소년의 몸에선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소년은 바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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