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고 있는 qwerty 자판배열은 타자기로 문서를 작성하던 시절, 타이핑을 할때 활자해머가 엉키는것을 최소화시키도록 디자인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자판배열에는 타이핑 속도에서 비효율적인 면이 있다. 재미있는것은 이제 타자기 대신, 활자해머 엉킴걱정이 필요없는 키보드를 쓰는 지금도 여전히 치기에 비효율적인 qwerty자판배열이 대세라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드보락 자판같은 타이핑 효율성이 검증된 자판이 있음에도, 다시 자판배열을 익히는 것이 귀찮았던 대다수 사용자들이 기존의 비효율적이지만 익숙한 자판배열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키보드가 아무리 소재가 바뀌고 인체공학적으로 디자인 되어, 터치감이 향상되고 손목이 보호되는 등의 질적으로 향상되어도 키보드는 qwerty 배열이라는 불가피한 근본적인 결함을 안게 된 것이다.
제목은 눈인데 밑도끝도 없이 자판배열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 이유는 눈에도 이것과 똑같은 맥락의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에는 두개의 눈 단면도가 있다. 우선 왼쪽 눈을 보자. 왼쪽 그림의 눈에서는 외부 빛이 렌즈를 통해 (표시되진 않았지만)유리체를 지나 빛을 감지하는 광수용신경세포체(그림의 우측 상단 그림)가 있는 망막에 도달하게 된다. 대단히 단순명료하고 자연스러운 형태다. 반면 오른쪽 눈을 보자. 유리체를 지나는것 까지는 똑같다. 그런데 유리체를 지나서 빛이 도달하는 곳은 망막이 아니라 두꺼운 신경다발이다. 이 신경다발을 지나 (묘사되진 않았지만)몇개의 신경세포층을 지나서야 빛은 드디어 목적지인 광수용체에 도달하게 된다. 광센서가 멍청하게도 광원 방향과 등진 채 배열된 오른쪽 눈은 왼쪽 눈에 비해 쓸데없이 복잡하면서도 빛에 감도도 떨어지게 되어 았다.
오른쪽 눈에는 빛의 투과율저하 말고도 몇가지 문제가 더 있다. 그중 하나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맹점이다. 뇌에서 볼때 뇌와 연결되어야 하는 신경다발이 광수용체층을 지나서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망막표면에는 신경다발과 뇌가 연결되는 구멍이 발생하게 되는데 맹점은 그 구멍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오른쪽 눈의 불안정한 구조는 왼쪽눈이라면 신경쓸 필요도 없는 안구질환을 걱정하게 만든다. 망막박리와 녹내장이 그것인데, 망막박리는 물리적인 충격등의 이유로 망막층이 안구벽에서 떨어져 나간 병적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녹내장은 주로 안압에 의한 신경다발 손상으로 발생하는 질환이다. 모두 광수용체가 수정체를 등진채 배열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오른쪽 그림 눈 구조처럼 망막이 안정적으로 안구막에 정착되어 있다면 왠만한 충격에도 망막은 떨어져 나가지 않을것이다. 또한, 신경다발이 오른쪽 눈처럼 유리체 바깥쪽에 있다면 신경다발이 안압이 손상되는 걱정을 할 필요도 없가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제정신이 박힌 제작자라면 눈을 복잡하고 힘들면서도 성능은 떨어지고 불안정한 오른쪽 형태로 설계할 이유가 없을듯 하다. 그러나 저런 눈은 지구상에 존재한다. 다름 아닌 인간의 얼굴에 밖혀있는 눈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서, 그리고 인간의 신체 중에서도 가장 정교하고 경이롭다는 눈이 사실은 저렇게 엉터리로 디자인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눈이 한번에 설계되어 완성된 것이 아니라 단순한 형태에서 오랜시간 서서히 조금씩 진화하여 지금과 같은 정교한 형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광수용체가 반대로 배열된 것은 처음에는 별로 사소한 것이었는데 진화가 진행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급기야 이전으로 되돌릴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눈의 근본적인 결함으로 남게 된듯하다. 마치 앞서 소개한 키보드의 qwerty자판배열처럼 말이다. 물론 진화는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진 못했지만 땜질식으로나마 나름 잘 수리를 하였으며 , 덕분에 인간은 쓰는데 별 불편없는 훌륭한 시각기능을 가지게 되었다.(이 진화의 땜질식 처방에 대해서는 기회되면 언급하겟습니다.)
인간이 이다지도 엉성하고 불안정하고 비효율적인 오른쪽 그림 형태의 눈을 가졌다면, 단순명료 깔끔한 왼쪽눈의 형태를 가진 생물도 있는데, 예상했겟지만 놀랍게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오징어가 그러하다. 그러니 오징어들은 눈의 구조에 관해서라면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