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 식근론으로 운영자의 공지까지 나올 정도니 식근론에대한 논의가 상당히 치열했네요.
거의 모든 글을 보려고 안 본 부분까지 훑어가며 오유의역사게는 항상 샅샅이 뒤지는데
제게 다른 무슨 일이 있었나 보네요
주욱 읽어보았더니 막스베버에 칼 막스 등은 물론 철학자들 이름까지 나오던데요.
이미 답이 나와있는 일입니다.
역사는 100여년이 넘게 흘렀고 이미 해방된 지도 70년이 지났는데 우리가 마치 근대화를 이루어 내지
못하고, 민주주의를 못 본 사람들인 양 그렇게 싸우시는지 모르겠네요.
역사를 큰 틀에서 보세요.
이미 우리는 어느 누구도 흉내 못 내는 짧은 순간에 세계정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근대화의 가치는 누구에게나 평등과 자유를 주는 가치로 설명되어야지 가치를 무슨 중립적으로
보느냐를 놓고도 논쟁하시던데 쓸데없는 겁니다.
그들의 노림수로 보시면 됩니다.
그럼에도 식근론이나 식혜론을 그냥 넘어가면 안될 것입니다.
1천년이 지난 후세에 식근론, 식혜론, 수출같은 단어가 섞인 교과서를 우리의 아이들이
보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식근론이 나오면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는 어떤 분의 말도 일리가 있긴한데요.
감정으로 대응 안 해도 충분하더군요.
제가 늘상 하는 말인데요.
상황은 누가 의도한다고 그대로 흘러가지도 않고, 그게 의도한대로 흘러가다가도 늘 뒤바뀌거나
의도한대로 되며 의도한대로 된다 해도 기뻐하지 말라. 언제 상황이란 놈의 역공이 나타날지 모른다.
서양의 근대화조차 이렇듯 말도 안 되는 상황논리에 휩싸입니다.
그런 서양의 근대화를 도식해 일제 강점기 조선에 왜 이식하죠?
대체 의도가 뭔가요? 뻔하죠.
1987년 6월 전국에서 항쟁의 물결은 전두환의 경찰력을 넘깁니다.
그렇다고 군대를 투입하자는 강경파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만 이미 미국의 압력으로 이조차도 어려워집니다.
부일 반역자는 바로 자신들이 표적이 될 것을 바로 알죠.
하여 나카무라 사토루라는 듣보잡을 내세워 식민지를 겪은 나라들의 경제가 성장함을 마치
식민지가 되어 근대화된 것처럼 둔갑시킵니다.
이를 도요타의 자금지원을 받은 안병직이 받아들여 처음 나온 것이라 하네요
-나무위키 식근론
사태의 흐름을 지켜 본 부일 반역자들은 곧바로 공세를 늦춥니다.
바로 부일 반역자들보다 직접 피해를 준 세력들에게 공세를 가하며, 빠르게
도덕적, 투명적 제도만을 요구하는 시민들에 의해서 시간을 법니다.
그렇게 안주하던 부일 반역자들이 결국 둥지를 벗어나 암약하게된 것은 바로 노무현 정권 때문이죠.
이건 아예 자신들을 들어내려 합니다.
친일 반민족 행위자 진상 규명법은 그나마 참는데 부일반역자 재산환수법까지 통과시키며 옥죄고,
그들은 결국 교과서를 손대기 시작합니다.
배경설명이 이제 끝이 났네요.
참으로 아픈 역사이고 정말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역사입니다.
식근법은 이래서 오류를 났습니다.
만약 일제강점기부터 이런 이론을 연구했다면 그나마 덜 부실할텐데 제가 본 식근론은 너무 부실합니다.
첫째 일제가 경제성장의 토대를 위해 자본주의를 이식하였다.
이에 반대하는 역사학자들은 자본주의 맹아론을 들어 ‘일제가 이식한게 아니기에 이는
일제에 의한 근대화가 아니다’ 라고 주장합니다.
제가 보기엔 이럴 필요가 없습니다.
근대화의 가치를 더욱 발전시키려는 유럽에선 이미 사회주의가 만연하고,
영국이나 프랑스는 이미 좌파가 집권합니다.
왜 우리가 추구하는 근대화의 모델은 무조건 미국이어야하죠?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이미 국가의 모델을 50년간 실험해왔던 수 많은 독립영웅들을 배출한 국가입니다.
백 번을 양보하죠. 일제가 자본주의를 이식해 우리를 근대화 시켰다고 하죠.
그런데 큰 맹점이 있네요.
무수히 많은 법을 통해 일제는 이미 수탈의 근거를 마련하고, 수탈하고 있었네요.
그런 상황에서 잡아먹기 위해 살을 찌우는 돼지나 소와 우리의 처지가 다른게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이미 토지조사 등을 통해 수탈의 환경을 모두 조성한 그들인데 조선의 경제를 뒷받침할
쌀을 다 빼앗아갔는데 무슨 자본주의가 어떻고 어불성설입니다.
1. 생산량이 느는 것보다 수탈량이 더빨리 늘었다 - 1인당 쌀 섭취량 하락
2. 공장을 지었지만 기술은 안 가르쳐준다.
3. 철도를 지어 물자를 일제본토나 만주로실어나르기만 한다.
4. 공무원이나 직원은 뽑았지만 대부분하급직원이고, 행정고시를 치뤄 조선인을 뽑았지만,
일제 말기까지 조선인 고위 간부는 드물었다. 물론 부일반역자는 빼구요.
5. 교사가 낫긴 했으나 그 인적자원도결국 앞잡이로 삼아 ‘일제에 부합하는 인적자원을 양성하기
위해’ 열어둔길이고, 조선인 남자는 총알받이로 여자는 위안부로 삼았으며 출세한 조선인들을
어떻게 보느냐는 논란이다. 교사하니까 후에 혈서 쓰고 만주로 간 누가 생각납니다.
6. 비슷한 예로 만주국에서 조선인이일본인과 중국인 만주족 사이에서 중간자적 역할을 했다는
떡밥이 있으나 조선인의 비율은 극소수이고, 그것도지역의 순사 수준이었다.
7. 일제 강점기 도시건설도 식민지 정책과크게 연관이 있다. 경부선을 축으로 도시들이 성장했는데
경상도의 경우 경주, 상주, 동래 등 원래 큰 고을이던 지역은 모두 쇠락하고 부산포가 거대화되어
동래를 집어 삼킨다.
대구의 경우는 경부선이 통과하는데다 일제의 조선 주둔군 기지가 크게설치되어 있었다.
8. 태평양전쟁의 경우에도 모자라는 철강을더욱 쏟아 부어 경부선을 복선화 할 정도로 일제에겐
큰 자원 수탈로로 경부선이 이용되었다.
이 루트로 빠져 나간 쌀 등의 곡물로 인해 일제 본토내 곡물가가 폭락하고 대형 농가가 도산하는
일이 줄지어 일어나니 얼마나 빼앗아 갔는지 짐작이 간다.
9. 반면 조선에서는 쌀의 증산에만 열을 올리고 당시 조선 농업의 절반가량 혹은 그 이상을 차지했던
밭농사를 등한시한 결과 1인당 쌀 소비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이를 국사학계의 반론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나무위키 식근론
둘째 많은 공장을 지어 근대화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학자의 말을 인용하면 ‘일제가 쫓겨난 후 공장을 돌릴 기술자가 없어 공장문을
닿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고 합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요?철저하게 자신들만 기계나 부속을 알고 운전했으며,
조선인은 그야말로 공장 내에서 이루어진 막일이나 청소 등에 동원된 것이죠.
갓난 아이에게 총을 주면 뭐합니까?
운용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기계를 준 것은 그야말로 가져가지 못해 남겨둔 것이지
무슨 개뿔의 인재양성입니까?
도대체 왜 그런 멍청한 놈들의 논리에 사로잡혀 건전한 사고를 이루어내지를 못하시는지
젊은 분들을 보며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셋째 일제강점기에도 경제 발전이 있었다.
당연하죠. 조선인들이바보입니까?
일제강점기 아니 더한 시련에도 백성들은 먹고 살기 위해 경제 활동을 합니다.
이런 경제 발전은 당연합니다.
한 명의 경제 활동도 경제에 영향을 미칩니다.
1945년 2천 6백만을육박하는 인구가 먹고 살기 위해 건물도 짓고,
철로도 놓으며 경제활동을 하는데 경제 발전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을 마치 일제가 도와준듯 이야기 한다는 겁니다.
일제가 무슨 도움을 줍니까?
이미 조선경제의 근간이던 토지의 99%가 동척(동양척식 주식회사),
부일 악질 지주와 70만의 일본인들에게 넘겨져 조선백성은 만주나
하와이등 국외로 이주하거나 소작농이 된 지 오래고, 회사령을 통해
회사의 설립을 모두 총독부의 허가로만 내주며 산림, 지하자원,
심지어 남자는 징용으로 여자는 위안부로 끌고 갔는데 무슨 도움을
주었다는 건지 참으로 한심하고 멍청한 논리입니다.
그런데도 경제는 발전합니다.
지진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도 다음 날 자신의 집을 세우는것도 경제 활동입니다.
경제활동이란 것이 특별하게 회사를 다니며 서류를 작성하고 상품을 만들며
그것을 팔기 위해 돌아다니는 행위만이 경제활동이 아니죠.
모든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 집을 마련하고, 빨래를 하며 밥을 짓는 것조차
저는 경제활동이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먹지도, 입지도, 자지도 않고 경제 활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일제는 ‘식민지의경영을 위한 경비는 식민지에서 마련한다’ 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앞세워 세금을 과중하게 올립니다.
이어 담배, 인삼, 소금, 아편 등을 전매하고, 은행을 설립하여 강제저축을 시키며
세금의 종류로는 주민세, 지방세, 면세, 학교세 등의 기본세금에서 소비세, 특별세,
교통세, 수익세, 소득세까지듣도 보도 못한 각종 잡세를 만들어 냅니다. -위키백과 일제강점기
몰락한 농민들은 화전을 일구거나 소작료로 일부를 빼앗긴 상태에서 이런 각종세금이나
강제저축을 통해 헐벗고 굶주리게 됩니다.
이런 상황일진대 뭔 도움을 주어서 경제가 발전했다는 건지모를 일입니다.
이 글을 보는 낙성대 경제 연구소놈들은 이럴겁니다.
토목공사나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냐?
그것은 기간 시설이 아니냐?
전에 작성한 글에서 왜 이런 기간 시설들이 한국을 피폐하게 만들었는지 소개드렸죠?
보신 분은 아시리라 믿습니다.
신작로나 건물건설 등의 토목공사는 낮은 임금으로 아주 혹독하게 이루어집니다.
노가다 해보신 분 계셔요? 군대에 다녀오니 좀 버틸만 하던데요.
등록금 번다고 4년의여름방학 동안 무던히도 노가다를 해봤지만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이 욕은 왜 그리 많이 하는지 술은 또 왜 그렇게 먹고 시비를 거는지
공구나 자재들은 왜 그렇게 사람들이 겨우 들 정도로 무거운지 너무 합니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상태의 노동을 여러분 어찌 보세요?
이는 노동이 아닌 착취입니다.
이런 착취와 억압속에서 위에 설명한 각종 기본세에 잡세까지내야하는 노동자들과
이미 4할의 소작료에 0.5할의 마름세 그리고 물세, 비료, 지세까지 부담 해야하는
농민들은 그래도 경제활동을 하며 경제발전을 시키는데 이게 왜놈들 도움입니까?
아니면 우리 조상들의 피땀 어린 절약의 결과입니까?
이런 전근대적인 착취와 억압 속에서 겨우겨우 연명해가며 경제활동을 벌인 대다수의
민중이 있는데 무슨 얼어 죽을 근대화가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집니까?
대다수의 민중은 전근대적 착취를 받는데 조선은 근대화된다? 말이 되나요?
그렇다면 식민지 수혜론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의 3년여 기간 동안 미국은
2차대전당시에 사용된 폭탄보다 더 많은 폭탄을 이 좁은 한반도에 뿌립니다.
(오래 전에 본 문헌에서 나온 이야기라 출처를 못 밝힘에 송구합니다. 아마 1988년
출간되어 금서가 된 ‘다시쓰는 한국현대사’가 아닌지 추측만 합니다.)
각설하고,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폐허에서 다시 시작된 것이 엄연한 한국의
현대사인데 무슨 수혜가 있다는 건지 모를 일입니다.
수혜가 있었다면 부일 반역자들인데 그들이 청산되지 못하고, 이 땅에 암약하여
끼친 악영향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죠.
제 친구였던 놈이 나라를 팔아먹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근데 그 놈은 저보다 처지가 빈궁했는데 어느새 넘보지 못할 거부가 됩니다.
그리고 사회적 지위마저 제가 넘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를 바라보는 또 다른 친구는 나라를 팔아먹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며 자신의
출세를 위해 이승만에게 부역합니다.
역시 저보다 못했던 또 다른 친구가 사회적 지위와 부를거머쥡니다.
이런 부역은 저를 빼고 다른 곳에서도 일어납니다.
이놈들이 범죄를 처음엔 멈칫하며 저지르더니 이젠 아예 대놓고 저지릅니다.
“내가 뭘 해도 나라 팔아먹은 놈보단 덜한 거다.” 스스로를 위안하며
한국전쟁 당시 수 많은 양민을 학살합니다. 부일 반역자들과 경쟁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국민방위군의 보급품과 쌀을 팔아 쳐먹어 굶어 죽는 사병이 태반입니다.
이런 부일 반역자들을 본 받은 범죄 외에도 이들은 자신의 죄과를 숨기기 위해
식근론, 식혜론을 내세우며 한국을 또 다시 쓸데없는 논쟁으로 내몰아 사회적
비용만늘어나게 만듭니다.
이제 부일반역자들과 독재 부역자들은 양민을 학살하고, 재산을 빼앗으며 자신의 배만 불립니다.
그 놈들이 살아남아 군,법원, 언론, 학교 등의 요직에 앉아 나라를주무릅니다.
그런데 무슨 얼어 죽을 수혜며 일제강점기가 근대화입니까?
글을 쓰다가 키보드를 내리친 게 한 두번이 아니네요.
젊은 분들 혹하실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 저도 혹하여 실수 저질렀습니다.
홍범도 선생께서 부대를 운용하시며 이런 원칙을 두셨습니다.
“잘못을 안 저지르는 사람은 없다. 단 잘못을 깨닫는 사람만이 사람이다.”
-김용옥의 독립운동사 EBS 다큐 10부 중 4부
참으로 어처구니 없어 말로는 표현이 안되네요.
저는 1980년대후반 대학에 입학해 역사학은 아닙니다만 다른 전공을 한 대학생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광주에서 2천여명을 학살한 전두환이 대통령을 했단 사실을 알았고,
노태우가 그 꼬봉 역할을 했음을 알았습니다.
하여 저희 학교에서 시작해 대성로를 내려가 대학로로 향해 그런 광주를 알리기 위해
시위를 해 나가던 상황이었습니다.
당연히 경찰이 막죠.
전 흥분했습니다.
‘막지 말아라.’는 심정으로 저는 화염병을 최초로 던진 신입생이되었고,
모든 이는 저에게 의아해 하며 묻습니다.
“저들도 우리와 같은 청년이거늘 다치게 하려 화염병을 던진다는게 말이 안된다”는
대다수 신입생의 인식이었고, 이미 김원봉, 홍범도, 이회영 등의 독립운동가를 흠모하던
저에겐 “광주를 알려야죠.” 한마디로 선배들 사이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신입생이 됩니다.
여담인데요. 암튼 현시기 시위에 대해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기에 여담으로 글을 올려 봅니다.
제가 소개한 여담이 폭력시위를 조장한다고 오해를 바라지 않는 게 당시 그런 학생들의 시위와
저항이 없었다면 87년의 6월항쟁은 없었을 수도 있었다는게 저의 생각이니 판단은 여러분께서
하시기 바랍니다.
그 시기엔 ‘백골단’이란 무술 경찰들이 있었습니다.
명동에서 대학로에서 잡혀 얻어터지는 저를 수 많은 시민이 항의하며 구해 주었지만
당시 저는 쪽팔림에 인사도 못하고 자리를 떠납니다.
지금 다시 인사 올립니다. “시민 여러분 감사했습니다.”
당시 저에겐 식근론이란 “구지피 살펴 봐야해” 정도의 허접한 논리고, 죄송하지만
이제껏 침묵을 지켜 온 저에겐 그다지 위험한 사상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한가지만 상기시켜 드리고 싶은게 하나 있습니다.
친일파라는 단어보다 친일 반민족 행위자 혹은 부일 반역자 등의 얼마든지 훌륭한 표현이
있으니 이제부터라도 친일파라는 용어 말고 취사선택하시길 권유 드립니다.
또 하나 권유 드리고자 하는 일은 바로 일본이란 표현입니다.
당시 갸덜은 일본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일제입니다.
사족은 그만하고 이제 독립영웅들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죠.
1907년 일제는 총포 화약류 단속법이란 법을 단행하여 호랑이를 사냥하던 포수의 총을 빼앗고
체포하기에 이릅니다.
왜냐하면 일제는1895년 민비를 시해한 대가를 톡톡히 치룹니다.
바로 전국적으로 몇 명이 거병했는지를 모를 정도로 일어난 의병 때문이죠.
그래서 조선인의 무장은 결국 의병항쟁으로 이어질 것이란 추측을 하면서 강제적으로 포수들의
생존인 무기를 체포, 포획하기 시작합니다.
이미 1905년일어난 의병의 포수계를 조직하여 일제를 대신한 조선 정부와 협약을 맺은
홍범도 선생은 거부를 하죠. (흔히들 선생을 일자무식의 포수였다는데 말도 안되고요. 1895년 의병과 같이 봉기합니다.)
1907년 조선 총포 화약류 단속으로 실제로 총을 빼앗아가자 후치령을 근거지로 삼아
일제 경찰 및 부일 반역자들을 하나의 전투에서 1천명이상 사살합니다.
그렇게 일어난 홍범도 선생의 가족은 귀순편지를 요구하는 일제에 맞서 대항하는 이옥구 여사를
필두로 차남 용환 당시(12-13세 정확한 기록은 찾아보기 힘듭니다)까지 고문을 합니다.
선생의 장남인 양순은 자신의 고문은 참고 견디겠으나 어린동생의 고문을 보며 견디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귀순 종용서를 내밀었고 결국 총을 쏘며 장남을 죽이려하고 이에 참모들이 말립니다.
“알겠습니다. 장군의 뜻을 알겠으니 제발 자식을 쏘는 일은 하지 마소서” 하는 간언을 올리며
결국 양순은 살아남아 독립군으로 최후를 맞이합니다.
왜 자신의 장남을 쏠까요?
이는 자신의 부대원들에 대한 경종이죠. 대다수가 장정인 자신의 부대원들이 누군가에겐 아
버지이고 아들이기에 부대원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 한 걸 겁니다.
제가 일화를 소개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1987년 10월 뉴라이트 운동을 시작한 안병직이 어떤 인물이건 상관없습니다.
어떤 글에선 그가 주체사상을 수용한 지식인이란 표현이 있더군요.
인터넷에서 나온 글이라100%로 신용하지는 않습니다만, 교차검증을 통해 그가 그런 인물이
맞는다는 내용이 많이 나오네요.
그가 왜 적극적으로 식근론의 태두가 되었는가는 짐작이 갑니다.
일제에 부역하던 부일 반역자들은 아주 졸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게 경쟁자는 조선백성이었습니다.
언제 자신보다 극악한 놈이 나타나 자신을 대신할지 모르는 그야말로 외줄타기였죠.
그런 놈들에게 생각이 없죠. 그저 저녁에 자기 밥상에 올려질 고기만을 생각하며, 자신의 핏줄인
조선백성을 그렇게 착취하고 억압하고 두들겨 팼겠죠.
이런 조국의 현실을 이해해야만 식근론이나 식혜론이 잡소리인지 피부로 닿습니다.
우리가 왜 미국의 근대화만 의존하느냐?
미국을 사랑한 미국만이 우리의 우상이어서 스티븐슨을 암살한 두 선생의 변호를 거부한
이승만이 저지른 죄악때문입니다.
1908년 스티븐슨은 한일의정서에 의해 메카시와 함께 조선의 외교 고문으로 복무하던 자였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스티븐슨은 “조선의 합병은 정말 축복이고, 이완용은 충신이며
이토히로부미는 아시아의 영웅이다.” 라며 극찬합니다.
이에 말도 안 된다며 일어선 재미 조선인들은 미주 전역에서 불같이 일어나고, 스티븐슨의
기자회견은 신문에 보도되기에 이릅니다.
스티븐슨의 기사를 정정하려는 시도는 두 의사에 의해 시도됩니다.
바로 전명운, 장인환선생입니다.
두 분이 사전에 계획한 것이 아닌 스티븐슨의 도망에 전명운선생이 먼저 총을 발사하고,
마침 역사로 들어서던 장인환 선생이 마무리 하십니다.
이들의 살인은 외국인에 의한 자국민의 살인으로 계획적인가 아닌가는 현재에도 그렇듯이
계획살인이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되는 사건입니다.
이승만은 변호를 전격 거부하죠. 박용만은 변호비용을 걷습니다. 왜일까요?
카스라 테프트 밀약 때문입니다.
이는 필리핀은 미국이 조선은 일본이 먹자는 밀약을 맺은 미국이 이미 일제를 인정하기에 미국에만
목매달던 이승만은 결국 신문기사에 “조선은 일제가 들어온 후 활기찹니다. 이는 조선에서 한 번도
못 본 그런 활기입니다” 란 기사를 낳게 합니다. - 민족문제 연구소 백년전쟁 중
미국은 근대화를 제창하지만 실제 영국이나 프랑스가 먼저 근대화의 초석을 다지고 이미 실험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영국이나 프랑스는 이미 수많은 사건들을 통해 잘 사는 사회가 결코 봉건이나 왕정에 있지 않고,
가능성의 사회를 지향하는 민주에 있음을 뼈저리게 통감합니다.
그 시기 미국은 남북전쟁으로 피폐된 사회를 복구할 때였죠.
독립영웅의 일화나 이승만 같은 쓰레기를 소개한 이유는 별거 없습니다.
식근론이나 식혜론은 당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며 수천 수만의 국내진공 게릴라 전투를
치르는 독립영웅들을 잡기 위해 열을 올린 일제에겐 더 많은 수탈과 억압이 있었을 뿐이니
쓰잘데기 없는 이론이란겁니다.
위에서도 설명 드린 ‘식민지경영은 식민지비용으로’란 명분을 내세운 일제놈들에겐 더 많은
형무소와 많아진 헌병경찰의 봉급 그리고 5만의 군세를 떨친 관동군의 보급과 봉급등을 줘야
했기에 더욱 치밀하게 수탈합니다.
일제 강점기의 수혜라? 왜 부일 반역자들이 수혜인거죠?
그들은 쓸어 버려야 마땅한 지금이라도 처벌해야 하는 놈들입니다.
저는 부관참시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재산 당연히 국고로 환수해야죠.
이조차도 지금 하지 않으면 천년 후의 후손들이 다시 이 나라의 강토를 침탈한 일제놈들에게
신음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다시 한번 당부 드리는데 식근론이나 식혜론, 식자론 등의 허접스런 이론을 이론으로만 봐주고
흥분하지 말자는 분도 있던데 그러지 마세요.
역사에서 하나의 학설이나 이론은 수많은 역사학자들의 토론과 논쟁에서 나와서 많은 이들이
공감을 얻어야 하는 것이지 어떤 사람이 이론이니 이론으로 두자 해서 생산되는 그런 일이 아닙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역사학에서는 절대 안 되는일입니다.
장문의 글 지루하셨겠지만 감사드립니다.
출처 | https://twitter.com/For__Justice (1.사진 2-3살밖에 안되 보이는데 이런 학살은 부모가 보는 앞에서 이루어졌다 한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5322 (2.사진 징용자들이 낙서) http://hongzstory.tistory.com/1951 (3.사진 출처)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70000000879/3/70070000000879/20100104/25178567/2# (4.사진 군산항에 모여진 쌀은 호남평야에서 나온 쌀로 일제 본토로 옮겨진다. 참 많다) http://www.snujn.com/news/1836 (5.사진 칠판의 글씨는 한문과 일본어뿐이다 조선어린이들은 조선어를 못 배운다.) http://news.donga.com/3/all/20080616/8590559/1 (6.사진 세분의 독립영웅이 계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