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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흔들리는 괘종시계(스압주의)
게시물ID : humorbest_2425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네모
추천 : 16
조회수 : 2091회
댓글수 : 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9/08/13 17:41:20
원본글 작성시간 : 2009/08/09 12:05:24
리턴 투 네모
중장편전용 네모가 다시 돌아왔어요. 뿌뿡
재밌게 읽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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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괘종시계

 

 

- 1 - 

 


PM 10:30

 

가게에서 나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어느덧 밤이 깊어 있었다. 가볍게 몸을 추스리며

 

재빨리 발을 옮겼다. 

 

가게 일이 끝나고 한잔 하고 가자는 영배형의 권유를 어렵게 만류하고 5분이라도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만끽하고 싶었다. 불철주야로 계속 되는 연장 근무에 온 몸이 거미줄

 

처럼 축 늘어진 기분이었다. 피로가 온몸에 진득한 수액처럼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택시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하고 택시에 올라탔다. 그리고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쟁

 

터를 방불케하는 그곳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따듯한 물을 가

 

득 받아 놓은 욕조에 아늑한 내 방 침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밤늦은 시간이지만 집

 

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온몸이 가볍게 부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들뜬 마음을 감추기 위해

 

유리창 밖을 내다보았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잔뜩 들어선 거리를 빠르게 지날 무렵 문득 영

 

배형이 떠올랐다. 호프집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오늘도 어김없이 그는 나를 불러세웠다.

 


“기태야, 우리집 가서 한잔 하고 가지 않을래?”

 

“다음에요. 너무 피곤해서요”

 


몇 번의 거절 끝에 영배형은 못내 아쉬운 얼굴로 돌아섰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나도 어쩔수

 

없었다. 두 다리로 버티고 서 있는게 신기할 정도로 몸이 말이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나의 몸

 

은 술보다는 휴식을 원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괜시리 영배형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방황하던 내게

 

그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선해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덕분에 강남의 한 작은 호프집에 취직

 

하게됐고 그와 함께 일하게 된 게 작년 8월쯤이니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셈이었다.

 

영배형에게 사과하고 싶었지만 어떤 명실상부한 이유도 없었다. 냉정하게 따지자면 내가 잘

 

못한 일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정중하게 내 의사표현을 했을 뿐이고 그가 내 의

 

사와는 상관없이 자꾸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몇 차례 짜증을 냈던 것 뿐이다. 짜증에 살짝 욕

 

이 섞여 있었던 건 미안한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별 일도 아닌데 의례적인 말로 머리 숙여 사

 

과하는 것 자체가 웃기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영배형이 처음부터 술을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그의 모습은 처음 내가 그를 알

 

게 됐을 때와는 너무나 달랐다. 입대 전 대학 동아리에서 알게 된 그는 한잔의 술도 입에 대지

 

않을 정도로 술을 멀리했다. 그런 그가 어떤 뜻 깊은 계기와의 조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안먹던 술을 먹기 시작한 건 6개월 전 쯤이었다. 그때부터 그의 얼굴도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

 

했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그날은 손님도 없고 가게 안이 아주 한산했다. 손님들이 남기고 간 테이블

 

정리를 하던 중 문득 영배형이 있는 카운터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초점이 없는 눈으로 허

 

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이상해서 물었다. 

 


“형 요즘 이상해요. 무슨 일 있어요?”

 


나의 물음에 영배형은 약간 당황한 듯 하다가 짐짓 태연하게 되물었다.

 


“뭐가?”

 


나는 더 집요하게 물었다.

 


“요즘 무슨 일 있죠? 그쵸? 돈 때문에 그래요? 아니면 여자? 혹시 아직도...?”

 

“그런 거 아냐, 임마”

 

“그럼 뭐예요? 그거 알아요? 형 요즘 표정이 너무 어두워 보여요. 잠은 제대로 자요?”

 

“그럼”

 

“그러지말고 내일이라도 한번 병원에 들러봐요. 사람 몰골이 장난이 아니야”
 
“네가 보기에도 그렇게 보이냐?”

 

“말도 마요. 꼭 무슨 살아있는 시체 같다니까?”

 


나의 말을 듣고 영배형은 걱정이 되는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정말 살아있는 시체의 몰골이었

 

다. 언제부터인지 눈 밑의 시커먼 윤곽이 그의 얼굴 전체를 드리우고 있었다. 눈가와 이마에 잔

 

주름이 늘어나고 광대뼈가 훤히 드러나 보이도록 바싹 말라가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점차 생기를 잃어가는 그의 모습이 걱정되서 재차 물었다.

 


"정말 별 일 없는거죠?"

 

"그렇다니까"

 


분명 영배형은 내게 뭔가 숨기는 게 있었다. 나는 처음에 그게 돈이나 여자와 같은 단순한 문제

 

인줄로만 치부했다. 어쩌면 갑작스레 형편이 어려워져 사채라도 빌려 쓴게 아닐까하는 의구심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가 걱정되었다. 하지만 그 날 나는 그에게서 어떠한 대답도 들

 

을 수가 없었다. 

 

 

 

 

 


넋놓고 창밖을 응시하다가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얼마나 달렸을까. 택시기사가 인사불성이 된 나

 

를 흔들어 깨웠다. 희미하게 눈을 떴다. 감았던 눈커플을 다시 들어올리는 일만큼 버거운 일도

 

없었다. 피로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잠에서 깬 탓인지 술마신 다음날처럼 머리가 지끈거렸다.

 

택시기사가 한번 더 세차게 몸을 흔들었다. 2만원까지 올라가 있는 미터기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왔다.

 


“여기가 어디죠?”

 

“댁이지, 어디긴 어디유. 젊은 양반이 오밤중에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셨디야?”

 

“술이라뇨, 피곤해서 그래요”

 

“어디보자, 2만 500원인데 2만원만 주슈”

 


나는 돈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나서 집까지 어떻게 가게 됐는지 기억조차 없었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내 방에 도착해 있었고 곧바로 침대에 쓰러지듯이 누워 참

 

았던 졸음을 쏟아냈다.

 

 

 

 

 


- 2 -

 


PM 11:40

 

나는 황급하게 눈을 떴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쉴새없이 베어나오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이 곤두박질

 

쳤다. 도무지 진정되질 않았다. 기분 나쁜 꿈이었다. 다시 심호흡과 함께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꿈이었지만 오히려 현실보다 생생했다.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뻗

 

어버렸던 게 마지막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나는 숙면을 취할 수 없었다. 잠깐이었지만 어떤

 

소리가 거실 쪽에서 들렸다. 규칙적이며 반복적인 소리였다. 요란한 소리가 멈추고 낮은 정적이 깔

 

렸다. 기괴한 음성이 들린건 바로 그 다음 순간이었다.

 


“기이이이...”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몸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가위에 눌린 기분이었다. 눈에 힘을

 

주어 눈커플을 밀어올렸다. 기괴한 음성이 속사포처럼 방 안으로 파고들었다.

 

침대 밑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그 기분 나쁜 움직임이 간헐적으로 느껴

 

졌다. 다시한번 듣기 싫은 소리와 동시에 검은색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무언가가 침대밑에서 스

 

멀스멀 기어나왔다. 

 


“기이이이....”

 


그 형체는 한눈에 알아보기 힘든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여자의 몸을 하고 있었지만 남

 

자의 생식기가 달려 있었고 팔과 다리의 위치가 모두 바껴있었다. 나는 그 형체의 얼굴이라는 부분

 

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눈 앞에서 이해할수 없는 모순이 생겼다. 지극히 정상적으로 생각했을

 

때 입이 있어야 할 부분에는 눈이 달려 있었고 귀, 이빨, 혓바닥, 눈썹들이 뒤죽박죽 섞여서 제멋대

 

로 엉겨붙어 있었는데 마치 억지로 끼워 맞춘 퍼즐조각들을 보는 듯 했다.

 

괴생명체가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놈이 침대 위로 기어올라오기 시작했고 나는 격렬하게 저항

 

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않았다. 잠들어있던 모공 하나하나가 열리면서 머리칼이 쭈뼛쭈뼛 섰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비명소리가 입 안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잠에서 깼다. 마른 침을 삼키며 알람시계를 들여다보았다. 한참동안 잔 것 같은데 얼마

 

지나지 않았다. 며칠 사이 몸이 많이 허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끔찍한 악몽이었다.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타는듯한 갈증을 느꼈다. 정수기에서 차가운 냉수 한 모금을 뽑아 먹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부재중 전화 여덟 통과 이십여개의 문자메시지가 핸드폰에 찍혀있

 

는 것을 발견했다. 모두 영배형이었다.

 


‘기태야, 정말 미안한데 안 자고 있으면 잠깐 우리집으로 와 줄래?’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였다.

 

 

 

 

 


- 3 -

 


AM 00:50

 

영배형의 자취방에 들어선 순간 제일 먼저 시큼하고 비릿한 냄세가 코를 덮었다. 역한 냄세에

 

머리까지 어지러워졌다. 

 


“집이 좀 지저분 하지? 앉아.”

 


그는 편의점에서 사온 소주와 마른 안주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형, 이 밤중에 무슨 일이에요?”

 


내가 자리에 앉으면서 물었다. 

 


“마셔라”

 


영배형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소주잔에 술을 따랐다. 내가 술잔을 기울이자 그가 기다렸

 

다는 듯이 다시 빈 잔을 채웠다. 그는 몇번이나 말없이 술잔을 들이키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

 

다.

 


“기태야”

 

“말해봐요. 뭐가 문제에요?”

 

“사실 그 동안 네가 모르는 일이 있었어”

 

“알고 있었어요. 돈 문제죠?”

 

“아니 그런 문제였다면 나 스스로도 어떻게 해결방법을 찾아냈을 거야”

 

“혹시 아직도 형수를 못 잊은 거예요?”

 

“그런 게 아니야”

 

“그럼 대체 뭔데요?”

 

“처음에는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보려 했는데 그럴 수 없었어.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알려도

 

아무도 내 얘기를 믿어줄 것 같지 않았거든.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미쳐가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어. 아닌게 아니라 그건 내 영혼마저 갉아 먹고 있었던 거야”

 

“네?”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나의 이 문제를 속 시원히 풀어놓고 싶었어. 막연히 네 얼굴이 떠

 

오르더라고. 너라면 내 얘기를 믿어 주지 않을까 싶었어”

 

“그게 무슨...”

 

“네가 믿든 안 믿든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는 전부 사실이다.”

 


그는 목이타는지 다시 술잔을 들이켰다.

 


“그게 언제 였냐면... 보름 정도 전이었지”


 

나는 잠자코 그의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 날도 오늘처럼 일이 늦게 끝났고 가게 사람들과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

 

었거든. 너도 알잖아? 가게에서 우리집까지 걸어서 삼십분이면 충분하다는 걸 말야. 그래서 

 

일이 끝나면 난 항상 차비도 아낄 겸 집으로 걸어가곤 했지. 근데 평소같았으면 걸어갔겠지만 

 

그날은 왠지 몸이 피곤하더라고. 꼼짝달싹하기 싫을 정도로 말야. 게다가 초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기 시작하는거야. 그래서 택시를 잡아타기로 했어.

 

택시를 기다리는데 그날 따라 택시가 아주 안 잡히더라는 거야. 글쎄 가게에서 집까지 거리가

 

가까워서였는지 택시기사들에게 목적지를 말하니까 전부 차가운 얼굴로 그냥 쌩 가버리는 거야.

 

그렇게 삼십분 동안 비 맞은 생쥐꼴 마냥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데 나의 오랜 벗 기철에게 연락

 

이 온 거야. 기철이라고 내가 전에 한번 말한 적 있어서 너도 알거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서로 얼굴을 등지고 살았으니까 그게 얼마만이겠어. 나는 너무 반가워서

 

녀석에게 인사를 건넸어.

 

그런데 그 때였을까? 녀석의 목소리가 왠지 이상한거야. 왜 그런거 있잖아.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뭔가 불안에 떨고 있는 걸 말야. 나는 단번에 알아챘어. 그리고 무슨 일 있냐고 물었거

 

든? 그런데 녀석이 아주 오랫동안 뜸들이다가...”

 

 

영배형이 한잔의 술을 입안으로 털어넣었다. 

 


“울고 있었어”

 

“울다뇨?”

 

“기철이 녀석은 울고 있었어”

 

“네?”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어. ‘녀석에게 무슨 일이 생긴게 틀림없다’ 라고. 그리고 녀석의 집으

 

로 향했지. 녀석의 집 앞에 도착해서 녀석을 불렀을 때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어. 초인종을

 

눌러보았지만 소용없었지. 이상한 나머지 나는 현관문을 잡아당겼어. 나는 그제서야 문이 열려

 

있는 것을 알아차렸어. 나는 집안으로 들어섰어. 집 안에 온통 불이 꺼져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

 

지 않았어. 전등의 스위치를 찾기 위해 벽 어딘가를 아무렇게나 더듬어 보았는데 너무 어두워서

 

찾을 수가 없었거든. 금방이라도 뭔가가 튀어나올 것처럼 무서웠어. 그리고 굉장한 악취도 진동

 

했는데 고기 썩은내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그런 역겨운 냄세가 진동 하는 거야. 나는 얼른 코와

 

입을 틀어막았어. 그러지 않으면 그 역한 냄세에 곧장 취해 버릴 것만 같았거든.

 

집을 둘러보았어. 집 안은 온통 칠흑 같았지만 뭔가가 있었어. 그것을 더 정확히 식별 해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어. 곧 거실 어딘가에 희미한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어. 어두워서 잘은 보이지 않았

 

지만 분명 누군가가 어렴풋이 보였어. 나는 좀 더 가까이 가 보았지. 희미한 윤곽이 점차 뚜렷해지

 

면서 누군가의 얼굴이 들어오는거야. 바로 녀석이었어. 녀석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어. 

 

순간 나는 ‘힉!’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나자빠졌지. 너무 놀라서 말야.”

 

 

 

 

 


- 4 -

 


“기... 기철아?”

 


어두워서 정확하게 식별이 어려웠지만 분명 녀석은 울고 있었어.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서는.

 

그리고 나를 보자 다시 베시시 웃는거야.

 


“영배 왔구나”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녀석에게 다가섰어. 그리고 물었어.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렇게 불까지 다 꺼놓고?”

 

“와 줘서 고마워”

 

“고맙다니?”

 

“내 꼴이 말이 아니지?”

 

“...”

 

“어쩌면 난 미친놈일지도 몰라. 아니 정말 제대로 미쳤지. 미치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될 리 없

 

잖아.”

 

“말해 봐, 도대체 무슨일인데 그래?”

 

“얼마전에...”

 

“얼마전에 뭐?”

 

“죽은 아버지가 다시 살아 돌아 오셨어.”

 

 

순간 녀석이 정말로 미친게 아닌가 싶었어. 녀석은 초점이 없는 눈으로 내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계속해서 응시하고 있었거든. 나는 눈살을 구기면서 다시 물었지. 녀석의 정신상태가 어떻게 된

 

건 아닌지 진심으로 걱정되서 말야.


 

 

“기철아. 도대체 왜 그래?”

 


내 말에 기철은 아무 대꾸 없이 어딘가를 가리켰어. 녀석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은 어두운 거실

 

내부였어.

 


“저길 봐”

 


나는 녀석이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 커다란 괘종시계가 보였어.

 


“저 괘종시계 보여?”

 

“저 시계가 왜?”

 

“너는 모를꺼야. 저 시계는 우리 아버지가 생전에 애지중지하셨던 유품이라는 것을. 수집가였던

 

아버지는 무엇이든 희귀한 것이면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모으는 성격이었거든. 언제쯤인가 아

 

버지가 동네 고물상에서 저 시계를 업어 온 거야. 엄마는 뭐 그런 고물덩어리를 여기저기서 얻어

 

오냐고 극성이었지만 아버지의 결연한 의지를 꺾을 수가 없었어.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가구, 옷장, 그릇, 동전, 우표, 옷, 라이터 등등... 그 종류만해도 천차만별이었어.

 

수집이라는 취미에 남다른 열정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그때까지 내가 알던 아버지의 모

 

습은 지극히 정상이었어. 저 시계가 모든 일의 원흉이자 발단인거야.”

 

“무슨 말이야?”

 

“저 시계를 들여온 이후로부터 아버지가 점점 이상해졌어.”

 

“...?”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야. 시계를 들여오고 나서 아버지의 수집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지. 심지어는 희귀한 물건만 보이면 저 시계 안에 몽땅 모아 놓는 거야. 처음엔 대수롭

 

지 않게 생각했지. 아버지가 저 시계에는 다른 물건보다 더 애착을 갖고 있었던 걸 알고 있었거

 

든. 하지만 그 때까지도 우리 가족은 모르고 있었던거야. 아버지의 그런 취미생활이 점차 광적

 

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야.

 

그러니까 아버지가 기괴한 취미(?)를 갖기 시작한 것은 이듬해쯤이었어. 그 날은 학교 레포트

 

때문에 밤늦게까지 도서관에 남아있었거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업친데 덮친격으로 비까지

 

내리는 거야. 우산도 없이 집까지 달려오는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어. 엄마였어. 지방발령으로

 

며칠간 집을 비운다는 거야. 뭐 아무 생각 없이 집까지 달리기 시작했어. 그런데 있잖아?

 

달리는 도중에도 뭔가 불길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거야. 사실 도서관에 있는 내내 그런 기분이

 

들었었거든. 그런데 비까지 내리니까 더한거야. 그런거 있지? 뭔가 큰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시감 같은 것 말야. 나는 불안해서 집까지 내달렸지.

 

집에 도착했을 때 나를 반긴 건 코를 찌르는 악취였어. 금방이라도 헛구역질이 나오려던 것을

 

간신히 참고 아버지를 찾았어. 집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

 

불길한 기분은 점점 커져갔어. 그리고 내 예상이 딱 들어맞았던거야. 악취는 아버지의 서재쪽

 

에서 나고 있었어”

 

“서재?”

 

“응. 아버지는 항상 거기 계셨어. 나는 슬그머니 서재의 문고리를 돌렸어. 천천히 열어보았지.

 

그리고 눈에 들어온 그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어. 그건 고양이의 사체들이었지.

 

죽은 고양이들이 여기저기 머리, 가슴, 배, 팔, 다리, 눈알, 이빨, 발톱 등등 토막난 채로 널

 

브러져 있었던거야. 게다가 아버지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흰자위만 가득찬 눈으로 그것을 경이

 

롭게 바라보고 있었어. 마치 무슨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 마냥 내가 방에 들어온 것조차 모른

 

채로 말야. 심장이 요동치면서 곧장 터져버릴 것 같았어. 입밖으로 소리가 튀어나오려던 것을

 

간신히 삼켰어. 그랬다간 이미 그것들에 의해 넋이 나간 아버지가 나의 존재를 알아차릴 게 분

 

명했기에. 그 일이 있고 며칠동안 나는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지.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가

 

않아. 그러다가 정신적인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었지. 게다가 일 때문에 지방으로 내려가신 어

 

머니는 며칠째 집에 돌아올 생각을 안하고. 결국 ‘수집’ 에 미친 아버지와 나의 불편한 동거

 

가 시작된거야.

 

아버지는 ‘그것’ 들을 수집하기 위해서 오늘처럼 밤늦게 비가 오는 날이면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어. 그리고 새벽 늦은 시간에 엄청난 악취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곤 했지.

 

아버지의 가방 안에는 그 수집품들이 가득 들어 차 있었는데 모두 잘라낸 고양이의 사체들이었지.

 

아버지는 아무 거리낌 없이 가방 안에서 그것들을 꺼내 저 ‘괘종시계’ 안에 집어넣기 시작했

 

어.”

 

“뭐라구?”

 

“그렇게 시계 안은 처음엔 평범한 수집품들로 가득 했는데 점점 이상한 물건들로 들어차기 시작

 

했던거야. 아버지는 점점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행동했어. 마치 이미 죽은지 오래된 사람처

 

럼. 그도 그럴 게 그 눈이 살아있는 사람의 눈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비단 그게 끝이 아니었어.

 

아버지는 그것을 수집하는 것만으로 만족을 못하신 거야.”

 

“설마...”

 

“맞아. 그것들을 좀 더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거지. 소유욕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수집품에 대한 그런 엄청난 소유욕이 큰 화를 불러 일으킨 거야. 아버지가 ‘그것’ 들을 먹기 시

 

작한건 그로부터 보름 후였어.”

 

“말도 안 돼...”

 

“그래, 믿기지 않겠지. 나도 믿기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지금부터 잘 들어야 해. 이게 끝이 아니

 

야. 한밤 중에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잠을 깼는데 부엌에서 나는 소리였거든. 그릇 부딪히는

 

소리? 틀림없이 엄마가 돌아왔다고 생각한 거야. 엄마가 돌아와서 개수대에 담긴 그릇을 보고 설겆

 

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라 생각했지. 엄마가 너무 반가웠어. 사실 나를 이 지옥에서 구원시켜줄 사

 

람이 엄마밖에 없었거든. 그래서 너무 반가운 마음에 방문을 열고 나갔는데...”

 

“그, 그래서?”

 

“부엌에서 고양이를 머리 채 뜯어먹고 있는 아버지와 눈을 마주친거야. 엄마는 없었어.”

 

“세상에...”

 

“엄마가 돌아오신 건 그로부터 일주일 후였어. 물론 나는 엄마의 얼굴을 못 봤지만 말야.”

 

“못보다니?”

 

“정확히 일주일 후 학교 수업이 모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날은 왠지 집으로 돌

 

아가기 싫더라고. 끔찍하고 더럽다 못해 역겨운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 나까지 미

 

쳐버릴것만 같았거든. 대학 동기들과 머리라도 식힐 겸 근방의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고 있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온 거야. 지금 집에 돌아 가는 길이라고 말야. 너무 반가웠지만 일부러 내색하

 

지 않았어. 나는 엄마에게 아버지에 대해서 말할까하다가 그만뒀어. 옆에 친구들도 있었고 전

 

화로 할 얘기가 아닌 것 같아서. 전화로 얘기해봤자 엄마가 쉽게 믿을 것 같지도 않았거든.

 

근데 그게 실수였어”

 

 

기철이 녀석의 말은 믿기 어려웠지만 그때까지만해도 나는 충분히 일리는 있다고 생각했어. 

 

녀석의 아버지가 그렇게 됐다는 건 다소 충격적이었지만 말야. 하지만 사람이 미치면 정말

 

뭔들 못하겠어? 녀석도 아버지 일로 미쳐버렸던 거야. 노파심에 드는 생각이었지만 녀석을

 

빨리 정신병원에 데려가야 할 것만 같았어.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

 


녀석은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어.

 

 

 

 

 

 

- 5 -

 


기철의 머릿속은 아드레날린 내분비로 끊임없이 교란되고 있었다. 어느덧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이 후끈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설사 자신이 생각하고 우려하는 일이 현실화 될 수 있다는 불

 

안감에 전신이 후들거렸다. 그는 급하게 엄마를 찾았다.

 


“어, 엄마! 엄마! 어디있어요? 나와보세요!”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집 안은 한결같이 조용했다. 빗소리가 더욱 맹렬해졌다. 장마철인

 

탓인지 비가 그칠 새 없이 퍼붓고 있었다. 기철은 숨을 헐떡이며 멀찍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비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집 안은 아무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입술이 파릇

 

파릇 떨렸다. 비가 오는 날이면 까닭모를 불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날도 그런 날이었다.

 

아버지는 비가오는 날 밤이면 피에 굶주린 짐승처럼 행동을 개시하곤 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오늘은 아버지가 집밖을 나서지 않았다. 기철은 현관에 아버지의 구두가 멀쩡하게 남아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알아차렸다. 아버지의 신발 옆에는 엄마의 구두도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불길했다. 오만가지 생각들이 교차하는 정점에서 끔찍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피어올랐다. 기철의

 

얼굴이 석고상처럼 굳어졌다.

 


“댕, 댕, 댕, 댕!”

 


괘종의 종소리가 자정을 알렸다. 갑작스런 소리에 기철이 화들짝 놀라 괘종시계가 있는 2층으로

 

눈길을 돌렸다. 순간 아버지의 서재가 뇌리를 스쳐지났다. 그는 황급히 2층 계단을 밟고 서재로

 

향했다. 서재 안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린 건 바로 그 때였다.

 

 

“오, 여보!”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오래전부터 느껴왔던 거지만 당신의 그 맛은 일품이야!”


 

소름끼치도록 갈라지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잠시 조용해지더니 이윽고 기괴한 소리가 연거푸 들

 

려왔다.

 


“우걱우걱, 쩝쩝, 우드득! 우드득!”


 

뼈와 살을 발라내서 무식하게 씹어먹는 소리임이 틀림없었다. 기철의 미간이 점점 구겨졌다.

 


“벅, 벅, 벅, 벅!”

 


누군가가 손톱으로 방문을 긁는 소리가 들린 건 그 다음이었다.


 

“제, 제발.... 살려줘요... 여보...”


 

기철은 놀란 입을 차마 다물지 못했다. 바로 엄마의 목소리였기때문이었다. 아버지에게 산채로

 

뜯기면서 엄마는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방문을 긁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고양이에게서 사람으로 그 대상을 바꾼 건 엄마가 죽고 난 그 날부터였다. 사람의 맛을

 

알아버린 아버지는 살아있는 사람의 냄세만 맡아도 침을 흘렸다. 광기에 젖어드는 아버지 때문에

 

기철은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밖으로 나갈 수 조차 없게 되었다. 혹시라도 집 안을 돌아다니다가

 

아버지의 눈에 띄게 된다면 자신도 엄마와 똑같은 꼴이 나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비오는 날 밤이면 아버지는 어김없이 집밖을 나섰다. 하지만 그 대상이 이제는 고양이가 아닌 사

 

람으로 바꼈을뿐이었다. 새벽 늦은 시간 아버지가 잘려나간 사람의 신체를 가방 한 가득 짊어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면 역겨운 피비린내가 집안을 가득 메웠다.

 


“삐걱- 삐걱-”

 


삐걱이는 나무 계단을 밟고 아버지가 2층 서재로 올라가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기철은 빠끔히 방문

 

을 열어보았다. 아버지는 늘 하던대로 피에 젖은 가방 안에서 그것들을 꺼내 괘종시계안에 담아내

 

고 있을 것이다. 기철은 보지 않고도 짐작할 수 있었다.

 

괘종시계는 아버지에게 있어서 일종의 부식고같은 개념이었다. 아버지는 그 곳에 자신이 들여 온

 

일련의 수집품들을 모두 넣어두었다가 배가 고플때마다 꺼내 먹었다. 귀중품들을 수집해서 자신이

 

가장 아끼는 창고에 넣어두었다가 결국 완전히 ‘자신의 것’ 으로 만드는 방식이었다.

 

 

하루 중 유일하게 행동 제약이 없는 시간은 바로 비오는 날 밤 아버지가 수집품 채집을 끝내고 집

 

으로 돌아온 바로 이 순간이었다. 아버지가 2층 서재에서 식사를 끝마칠때까지 기철은 1층에서 화

 

장실과 간단한 식사, 또 기타 필요한 물건들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은 너무 짧았다. 너무 오래동안 방 밖으로 나와 있는다면 2층에 있는 아버지가 사람 냄세

 

를 맡을 수 있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해야했다. 기철은 며칠동안 물과 누룩 곰팡이가 퍼렇게 핀 빵

 

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되고, 또 엄마가 죽고 나서 정상적인 식사

 

를 해 본 기억이 없었다. 누룩 곰팡이가 핀 빵 마저도 이제 거의 떨어져가는 실상이었다. 기철은

 

밀려오는 공복감을 이기지 못하고 정수기에서 한 컵의 물을 뽑아냈다. 오랫동안 필터를 갈아주지

 

못해서 정수기 안에선 시퍼런 녹물이 새어나왔다.

 

   
“삐걱- 삐걱-”

 


바로 그 때였다. 나무 계단을 밟고 아버지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곤두박질치기 시작

 

했다. 기철의 얼굴이 당황스럽게 일그러졌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기철은 다시 방으로 돌아가

 

기 위해 뒤로 돌아섰다. 부엌에서 방까지는 어느정도 거리가 있어서 방까지 도약하는데 일말의

 

시간이 필요했다. 만약 제 시간 안에 방에 도착해서 방문을 걸어 잠그지 못한다면 아버지의 눈에

 

띄어 영락없이 잡아먹히는 생쥐 꼴이 나고 말 것이다.

 

기철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버지는 이제 몇 초 후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 몇 초 안

 

에 안에 방까지 도달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삐걱, 삐걱, 삐걱, 삐걱!”

 


아버지의 발걸음이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 짧은 찰라의 순간에 기철은 굉장히 극심한 딜레마

 

에 빠져버렸다. 방으로 돌아가는게 최선책이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무리수가 있었다. 기철은

 

차선책으로 몸을 숨기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몸을 숨길

 

만한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

 

이제 아버지가 2층으로 이어진 계단에서 완연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더이상 선택의 여지

 

가 없었다. 기철은 거의 미끄러지듯이 소파밑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분명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식은 땀이 이마 밑으로 흘러내려 눈을 찔렀다. 기철은 호흡을 최대한 조절해가면서 눈커플을 힘들

 

게 깜빡였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기철은 간신히 아버지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1초라도 번복

 

됐다간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어디 쥐 새끼 한마리가 숨어 있나? 흐흐”

 


아버지가 갈라지는 목소리를 흘렸다. 어두운 소파 밑에 몸을 낮게 웅크린 기철의 시야에 들어오

 

는 거라곤 짐승처럼 털이 복실한 아버지의 발뿐이었다. 독수리처럼 길고 뾰족하게 뻗어 있는 아

 

버지의 발톱은 영락없는 짐승의 것이었다. 기철의 관자놀이와 콧잔등에 땀방울이 번들거렸다.

 


“기철이 너 맞지?”

 


순간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머리속이 또다시 하얘졌다. 기철은 바싹 타들어가는 입술을 적시

 

며 숨을 죽였다. 소파 밑의 더운 공기가 얼굴을 에워쌌다. 기철은 숨을 몰아쉬었다. 더이상 참기

 

어려웠다. 조금이라도 더 참고 있다가는 살얼음판 같은 침묵을 깨고 곧장 입밖으로 소리가 튀

 

어나올 것만 같았다. 기철은 입을 틀어막았다.

 

바닥은 기철이 흘린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불편한 자세 때문인지 뒷목이 뻐근해는 것만 같

 

았다. 기철은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는 방향으로 몸을 틀어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바닥에

 

흘린 땀 때문인지 미끄러워서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버지는 몇번이고 부엌을 서성이더니 이내 포기한 듯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아버지가 2층 서재까지 완전히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도 기철은 소파 밑에서 쉽사리 나올

 

수 없었다.

 

 

 

 

 

 

- 6 -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밤이면 아버지는 서슬 퍼런 칼을 들고 집 밖을 나섰다. 연일 계속해서

 

쏟아지는 빗줄기는 아버지의 식욕을 돋우는데 주력했다. 일기예보에서는 오늘 밤 또 한차례 폭우

 

가 있을 것이라 했다. 아버지는 일찌감치 가방을 메고 집밖을 나섰다. 오늘 밤은 몇 구의 사체가

 

아버지의 가방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돌아 올지 기철은 궁금했다.

 

빗발이 거세지고 얼마지나지 않아 일기예보에서 예견한대로 폭풍우가 몰아쳤다. 맹렬하게 몰아치

 

는 폭풍우에 창문이 매몰차게 흔들렸다. 아버지가 집밖을 나선 건 한참전이었지만 기철은 조심

 

스럽게 방 문을 열었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아버지가 다시 돌아올때까지 기철은 최대한 신속

 

하게 움직였다. 기철은 재빨리 다용도실로 향했다. 다용도실에는 여러가지 도구가 어지럽게 깔

 

려 있었다.

 

정면으로 맞서서 아버지에게 당해내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고 결국 도구에 의존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미치광이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생각해 낸 방법이 고작 이것뿐이라는 사실에 기철

 

은 괜히 측은해졌다. 그래도 아버지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 따윈 없었다. 이미 아버지라는 사람은

 

그의 곁을 떠난지 오래였다. 그건 그가 알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살육에 미쳐 날뛰는 미치

 

광이 괴물에 지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죽어 있었던 것이다. 저 빌어먹을 시계가 아버지의 영혼마저

 

잠식해버린 것이다.

 

기철은 다용도실에서 듬직한 야구배트 하나를 발견했다. 아버지의 후두부를 강타해서 그 육중한

 

몸을 무너뜨리는데에는 이것으로 충분했다. 배트가 워낙 단단하고 무게감이 있어서 약간의 힘만

 

실어서 내려친다면 잘하면 한방에 보내버릴 수도 있었다.

 

사람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폐륜아라 몰아세울 게 분명했지만 기철은 개의치 않았다. 이건 단지 정

 

당방위에 지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기철은 자신의 엄마가 당했던 것처럼 아버지의 그

 

괴기스러운 입 속으로 빨려들어갈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기철의 존재를 알아차린 그

 

날 기철은 본능적으로 생명에 위화감을 느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정말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경찰에게 과실치사로 위장시킨다면 경찰은 명백히 그의 말을 믿어줄 것

 

이다. 언론에서는 연거푸 ‘연쇄 살인범’ 에 대해서 언급했다. 기철은 그게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경찰은 그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았다. 경찰이 아버지를 연행했을 때 아버지

 

는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집안에 불을 꺼놓고 기철은 2층 아버지의 서재가 있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수집을 끝마친 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향하는 곳은 2층 서재였다. 적절한 위치에 숨어있다가 그가 방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야구배트로 내리치는 것이다.

 

신중함과 노련함이 요구되기에 기철은 모든 행동에 만전을 기했다. 한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

 

다. 한방에 보내지 못하면 자칫 전세가 역전되기 십상이었다.

 

기철이 서재로 들어서기 위해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엄청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서재 중앙에는

 

아버지의 괘종시계가 우두커니 자리잡고 있었다. 악취는 시계 안에서 나는 것만 같았다. 스산하

 

고 이질적인 기운이 시계에서 감돌았다. 마치 악령이 깃들린 것처럼 시계는 떡하니 입을 벌린채

 

서 있는 모습이었다.

 


- 어서 먹이를 넣어줘 - 

 


시계가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 7 -

 


기철이 아버지를 죽이기로 마음 먹은 그 날, 결국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아버지가 행방불명 된 지 정확히 15일이 지날 무렵 경

 

찰이 집으로 찾아왔다.

 

 

“경찰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혹시 최병호님 아드님 되시나요?”

 

“네, 그런데요?”

 


기철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제 오후 9시경, 인근 하수구에서 아버님의 시신이 발견이 됐습니다. 그 곳 주민의 신고로

 

다행히 시신이 더 부패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만, 고양이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

 

도로 뜯어 먹어서 신원을 알아내는데 저희도 애를 먹었습니다.” 

 

“...그게 무슨?”

 

“충격이 크시리라 생각 됩니다. 저희가 볼 때 아무래도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입니다. 요즘 이

 

일대 주변에서 연쇄살인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건 알고 계시죠? 아버님 일은 유감이지만 문단속

 

철저히 하시고 무슨 일 생기면 신속하게 이리로 연락주십쇼”

 

 

경찰은 기철에게 전화번호가 적힌 작은 메모지 한장을 건네주었다. 경찰이 돌아가고 기철은 잠

 

시 사색에 잠겼다. 뭔가 어긋난 조각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기분 들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기철은 마치 실성한 듯 실소를 터트렸다.

 


“뉴스 속보 입니다. 어제 오후 9시경 안산 주변 일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의 29번째

 

시신이 인근 지역에서 주민의 신고로 발견됐습니다. 검찰은 시신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점과

 

여러가지 비슷한 정황으로 미루어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 있지만 감식 결과 어떠한 단서도 찾

 

아낼 수 없음을 발표했습니다. 이지선 기자가 사건사고 전합니다. 이지선 기자-” 


 

TV에서는 뉴스속보가 한참 진행중이었다. 기철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밤새 퍼붓던 폭우는 이제

 

그쳐 제법 쾌청한 날씨였다. 그러고보니 방 안에 갇혀 시체처럼 시간을 보낸 게 어느덧 한달이

 

넘어 있었다. 아버지가 죽은 시체로 발견된 건 정말 모를 일이었지만 한달여간의 사투 끝에 기

 

철은 이 모든 길고 긴 악몽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정말 끝났다고 생각했다.

 

 

 

 

 


- 8 -

 


“댕, 댕, 댕, 댕...”

 


괘종의 종소리에 기철은 잠에서 깼다.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새벽 4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

 

었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도 2층 서재에 위치한 괘종의 종소리는 마치 먹이를 보채는 것처럼

 

음울하게 울려퍼졌다. 기철은 시계를 밖에 내다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다. 사실 

 

시도조차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시계를 박살내기 위해 2층 서재로 올라간 것만 횟수로

 

헤아리기 힘들정도였다. 그런 기철의 시도가 매번 실패로 돌아가는 이유는 시계 안에 가득차

 

있는 사람들의 사체와 또 그로 인한 역겨운 피비린내가 구토를 유발했기 때문이었다.

 

용기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비위가 약한 기철이 그런 일을 해내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댕, 댕, 댕, 댕, 댕!”

 


종소리가 더 요란하게 울렸다. 아버지가 돌아 가신 이후로 나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빨리 먹을 것을 넣어달라고 그렇게 외치는 것만 같았다. 기철은 이불을 뒤집어썼다. 창밖에서

 

하늘이 찢어지는 천둥소리와 동시에 한줄기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젠장, 또다시 불길해졌다.

 

기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머리맡에 두었던 야구배트를 손에 움켜쥐었다.

 


“오늘이야 말로 끝장을 내 주지”

 


기철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리고선 시계를 깨부수기 위해 2층 서재로 이어지는 계단을 밟았

 

다.

 


“댕, 댕, 댕, 댕, 댕!”

 


종소리는 멈추지 않고 울려펴졌다.

 


“알아, 알아! 보채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내가 지금 널 깨부수러 가는 길이니까”

 


기철은 씩씩대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기철이 서재에 다가갈수록 종소리는 점점 커졌다. 이제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마침내 저 빌어먹을 괘종시계와 결판을 낼 시간이 온 것이다.

 

기철이 서재 문을 열어재끼자 엄청난 악취가 그의 얼굴을 에워쌌다. 기생충들이 벽 이곳저곳에

 

덕지덕지 들러 붙어 비위가 상했지만 기철은 꾹 참고 괘종시계 앞까지 다가섰다.

 


“이 빌어먹을 놈의 시계가...”

 


기철이 시계 앞에 다가서자 괘종의 종소리가 마침내 그 울음을 멈추었다. 기철은 머리 위로

 

야구배트를 치켜올렸다. 있는 힘껏 시계를 내리치려는 순간 아주 기괴한 현상이 벌어졌다.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 하고 있는 기철이 자신도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

 

었다. 시계문이 자동으로 열리면서 무언가가 시계안에서 꿈틀거렸던 것이다.

 


“으, 으아아악!”

 


시계안에서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무언가가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기철은 뒷걸음질 쳤다.

 

그 흉물스런 형체를 자세히 쳐다볼수 없었지만 기철은 분명히 보았다. 눈, 코, 입이 뒤죽박

 

죽 섞인 괴생명체의 그 얼굴에서 잠깐동안이었지만 기철은 바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계에서 기어나온 그가 기철을 발견하고는 그로테스크한 소리를 냈다.

 


“기이이이...” 

 


기철은 황급히 서재에서 벗어나 계단을 밟고 뛰어내려갔다. 그건 분명 아버지였다. 죽은 아버

 

지가 다시 살아 돌아 온 것이다!

 

 

 

 

 


- 9 -

 


거기까지 듣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기철이 녀석은 조용히 흐느꼈어. 그제서야 나는

 

알게 되었던 거지. 녀석은 슬퍼서 우는게 아니라 무서워서 울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내가 닥달하듯 물었어.

 


“아버지를 죽였어”

 

“죽였다고?”

 

“응. 나를 발견한 아버지는 마치 피에 굶주린 괴물처럼 나를 쫓기 시작했고, 결국 아버지에게

 

붙잡힌 순간 나는 이성을 잃고 말았어. 들고 있던 야구배트로 아버지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

 

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아버지는 이미 죽어있었지. 하지만 문제가 생겼던 거야.”

 


나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어.

 


“아버지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 방법이 없었던 거야. 아버지가 그 안에서 기어 나온게 나도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이유야 어찌됐건 지금 내 앞에는 아버지의 시신이 있는 거잖아.

 

단지 그 뿐이었다고!”

 

“기철아...”

 


바로 그 때였을까? 기분탓이었는지 녀석의 눈동자가 점점 흰자위로 가득차는 거야.


 

“그리고 마침내 결정을 내렸지”

 

“결정?”

 

“아버지의 시신을 저 괘종시계 안에 다시 넣어두기로 말야”

 

“뭐?”

 

“그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어. 어쨋건간에 아버지가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려놓는 것

 

뿐이잖아. 난 죄가 없다고. 게다가 아버지는 이미 죽어있는 상태였어. 아버지를 죽인건 내가

 

아니야.”

 


녀석의 얼굴이 점점 광기로 스며들었어. 전신에 소름이 돋았지.


 

“그리고 정확히 새벽 4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아버지는 다시 저 괘종 안에서 멀쩡히 살아

 

나오셨어. 나는 몇 번이나 아버지를 살해해서 다시 시계안에 집어넣었지만 그건 소용없는 짓

 

이었어. 아버지는 저 시계안에서 얼마든지 부활했으니까.”

 

“세상에...”

 

“영배야”

 

“...?”

 


갑자기 녀석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다소곳하게 부르는거야.

 


“지금이 몇신 줄 알아? 히히”

 


나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괘종시계를 바라보았어. 맙소사! 4시 정각이었어. 그 순간 괘종시계

 

에서 4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거야. 


 

“끼이이...”

 


거짓말처럼 시계문이 자동으로 열리더니 시계에서 무언가가 기어나오기 시작했어. 나는 그 장면

 

을 숨죽이고 지켜봤어. 그리고 놀란 입을 다물수가 없었지. 그건 분명 괴물이었어. 주인 없는 팔

 

과 다리가 몸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달라붙어 있었는데 마치 지네의 모습을 연상케 했어. 수십

 

개의 눈, 코, 입, 귀가 얼굴에 뒤죽박죽 섞여 있었고, 더 끔찍한 건 그 중엔 고양이의 것으로 보

 

이는 눈알도 섞여 있었던 거야.

 

 
“기이이이이.....”

 


기괴한 음색과 동시에 괴물이 나를 올려다보았어. 마치 오랫동안 피에 굶주린 것처럼 놈은 나를

 

보더니 침을 흘렸어. 그리고 그 수십개의 손과 발을 움직여서 바퀴벌레처럼 ‘사사삭’  기어오

 

는거야.

 

나는 황급히 그 곳을 뛰쳐나왔어. 

 

 

 

 

 


- 10 -


 

AM 01:50

 

나는 영배형이 따라준 마지막 잔을 입속으로 털어넣었다.

 


“그래서요?”

 


궁금해서 물었지만 그건 영배형의 다음 얘기에 대한 의례적인 물음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술이 취했다지만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늘어놓을지는 몰랐다. 나는 미덥잖은 표정으로

 

영배 형을 쳐다보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떨리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어. 그 광경을 머리속에서 지워 버리기 위해

 

잠을 청하려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어. 아니 오히려 끔찍한 악몽의 되풀이였지. 며칠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제대로 된 정상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그 날의 충격은 컸던 거야. 기태, 네가

 

했던 말처럼 나의 얼굴은 점점 살아 있는 시체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던 거야.”

 


영배형이 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이건 바로 얼마전의 일이야.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앞으로 작은 편지 한장이 와 있

 

는 거야. 나는 얼른 편지를 뜯어 내용을 읽어 보았어. 기철이 보낸 거였어.”

 


- 나의 오랜 벗, 영배에게

 

안녕, 잘 지내지? 어디 다친데는 없는지...

 

그 날 네 녀석이 말없이 집밖으로 뛰쳐나가고 내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몰라.

 

영배야, 나 많이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이게 마지막인것 같아. 내 얘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그럼 안녕 -


 

“기철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한 건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 지나서였어. 경찰이 집앞으로 찾아

 

왔는데 방안에서 목을 매 자살한 기철의 시신이 심각하게 훼손돼있었다는 거야. 사인은 자살이

 

지만 타살의 흔적이 보인다고 말야. 그래서 기철의 핸드폰 내역을 조사한 결과 내 전화번호가

 

마지막으로 찍혀있는 것을 확인한 경찰이 나를 의심했던 거지.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어떤 단서

 

도 제공해주지 못했어. 그들에게 내 이야기를 사실대로 털어놓았지만 모두 비웃을 뿐이었지.

 

오히려 나를 정신병원으로 보내려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집으로 돌아왔어. 그런데...”

 

“...그런데요?”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나자빠졌어. 방 중앙에 그! 그 괘종시계가 떡하니 자리잡고 서

 

있는 거야!”

 

“예?”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왜 집에 있는지 정말 모를 일이었어. 나는 기분이 나빠져서 그걸 집밖으로 내다버렸어.

 

하지만 새벽 4시만 되면 거짓말처럼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와 있지. 정말 믿기지 않지?”

 

 

 

 

 


- 11 -

 


AM 03:20

 

나는 택시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하고 택시에 올라탔다.

 

영배형이 집 앞까지 바래다 준 다는 것을 극구 말리면서 그의 자취방을 빠져나왔다. 영배형의

 

얼굴은 매우 어두워보였다. 새벽 4시가 되기 전에 얼른 돌아가라는 그의 마지막 말은 그의 머

 

리에 정말 정신적인 결함이 있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말도 안 되는 개소리에 불과했다. 나는 영배형의 얘기를 믿지 않았다.

 

영배형은 전부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척 능청스럽게 연기했다. 그와 백년해로를 기약한 그의

 

와이프,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와이프가 될‘뻔’한 상미 누나는 이미 죽은지 오래

 

됐다.

 

영배형이 처음부터 술을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그의 모습은 처음 내가 그를 알게

 

됐을 때와는 너무나 달랐다. 입대 전 대학 동아리에서 알게 된 그는 한잔의 술도 입에 대지 않

 

을 정도로 술을 멀리했다. 그런 그가 안먹던 술을 먹기 시작한 건 6개월 전, 상미 누나가 쥐

 

죽은 듯이 실종 된 후부터였다.

 


“네 형수가 보고 싶다”

 


영배형은 그 말을 버릇처럼 내뱉었다.

 


“형, 제발 정신 좀 차려요. 누나 실종된게 벌써 두 달이 넘어가. 이쯤 되면 그만 포기할때도 됐

 

잔아요!”

 

“아니, 네 형수는 죽지 않았어. 이렇게 매일 꿈속에 나타나서 밝게 미소 짓는데 죽긴 누가 죽어!”

 

“형!”

 


상미 누나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접한 그 날부터 영배 형은 술을 달고 살았다.

 


“쯧쯧, 가엾게도”

 


나도 모르게 혀끝을 찼다. 모르긴 몰라도 영배형이 전부 눈치를 챈 게 분명했다. 내가 상미누나

 

와 눈이 맞아 잠시 바람을 피웠던 것을.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6개월 전의 바로 그 날, 상미 누

 

나와 내가 심각하게 다퉜던 바로 그 날이 그녀가 실종된 날이라는 것을.

 

 

 

 

 


“도대체 왜 그래?”

 


영배형은 모를 일이지만 나와 상미누나는 그 당시에 동거중이었다. 그 와중에도 상미 누나는

 

영배형과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고 나와 그녀는 서로에게서 육체적인 희로애락을 즐겼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당장 내다 버려, 기분 나쁘단 말야”

 

“기분 나쁘다니?”

 

“아 몰라!”

 


그 날 술에 흠뻑 취해 집으로 돌아왔을 때 거실에 들여놓은 커다란 괘종시계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그녀는 집 앞 고물상에서 얻어왔다고 했다.

 


“돈이 없으면 말을 해. 누나가 거지야? 저런 쓰레기 주어 오지 말란 말야!”

 

“쓰레기라니? 너 지금 말 다했어?”

 


사소한 말다툼은 곧 큰 싸움으로 번졌고 결국 술 기운에 이성을 잃은 나는 그녀의 목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었지만 다시 돌이키기에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나는 그녀의

 

숨통을 더 확실하게 끊어 놓기 위해서 양 손가락에 강한 압력을 밀어넣었다. 곧 그녀가 하얀 거품

 

을 물고 질식해 버렸다. 그녀가 죽고나서도 나의 분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나와 잠자리까지 함께

 

하면서 마음만은 항상 영배형에게 가 있는 누나가 미웠다. 사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미 누나에

 

대한 감정이 사랑으로 싹트고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어떤 심산으로 그런 일까지 벌이게 됐는지

 

정말 모르겠는데 ‘술기운’ 에 ‘홧 김’ 이었던 것만은 확실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상미 누나의 몸을 부위 별로 토막내고 있었고 토막 낸 시체들을 다시 괘종시계 안에 밀어넣었다.

 


“그렇게 좋으면 그 시계 안에서 평생 함께 살아!”

 


나는 씩씩대며 시계 문을 닫았다. 바로 그 때 괘종의 종소리가 음울하게 울려퍼졌다. 

 

새벽 4시 정각을 알리는 소리였다.

 

 

 

 

 


“이봐요 손님, 일어나 보세요”


 

이런, 또 잠이 들어버린걸까? 택시기사가 나의 몸을 매몰차게 흔든다. 오늘로써 벌써 두번째

 

다. 요즘 들어 부쩍 몸이 피곤해지는 걸 느낀다. 잠을 못잔 탓일까? 

 

어디까지나 기분탓이겠지만 눈만 붙이면 끔찍한 악몽이 나를 기다렸다. 6개월 전 그 날 이후로

 

나는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손님, 손님! 다 왔으니까 좀 일어나 봐요! 오밤 중에 무슨 술을 이렇게 마셨대?”

 


나는 슬그머니 눈을 떴다.

 


“얼마나 잤죠?”

 

“글쎄, 40분? 택시에 타자마자 바로 곯아 떨어지던데 젊은 양반이 쯧쯧...”

 

“피곤해서 그래요”


 

힘겹게 몸을 일으켜 택시비를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 12 -

 


AM 4:00

 

 

“댕, 댕, 댕, 댕!”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해서 거실에 불을 켰을 때 무거운 괘종시계가 거실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나는 눈을

 

비볐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순간 영배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설마 그 얘기가

 

전부 사실이었던 걸까? 손발이 오그라든다.

 

바야흐로 4시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듣기 싫은 마찰음을 내면서 시계 문이 열리기 시작

 

했고 곧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무언가가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꿈에서 보았던 그 기괴한 형체

 

였다.


 

 

“기이이이....”

 

“대체...”

 


나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심장을 파고드는 공포에 숨소리마저 삼켰다.

 

 

“기이이이이이태애애애애애애야아아아아아아....”

 

“다, 다가 오지마!”

 


주인을 알 수 없는 수십개의 팔과 다리가 지네처럼 꿈틀거렸고, 눈, 코, 입, 귀, 그리고 수십

 

개가 넘는 고양이 눈알이 작은 얼굴에 뒤죽박죽 박혀있었는데 그 중에 영배형의 얼굴로 보

 

이는 것도 있었다.

 

 

그건 시계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신체와 섞인 죽은 상미 누나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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