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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지 못했던 임진왜란 장군들 - 조헌
게시물ID : history_24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율르
추천 : 6
조회수 : 157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1/08/21 18:25:16
안녕하십니까!! 

어제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글을 올리지 못해 일단 사과의말씀을 드리겠습니다 ㅜ..

오늘은 조헌장군님에대해서 알아볼건데요!

자, 과연 그는 어떤분인가?! 지금 바로 보시죠!!

조헌장군님은 백천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어렸을때부터 총명하였던 그는, 

이이, 성혼의 밑에 들어가서 학문을 배웠죠. 1567년 그는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등용문에 오르게됩니다. 그는 아주 대쪽같은 사람이여서.. 성리학 뺴곤 다 사학이라하여

반대하였습니다. 그래서, 선조가 절에 향을 하사할때 이를 반대하여 바로 눈에 밖에나 삭직되었죠.

그러나 곧 다시 복직되었습니다. 그의 능력이 뛰어났고, 또 조정에서도 청렴하기로 소문이 났기 때문이죠.

그리고 호조,예조의 좌랑,감찰을 거쳐 통진현감으로 갔을때 형벌을 남용한다는 죄목으로 바로 유배를 떠났

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남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정에서 평소 대쪽같던 조헌을 싫어했던

대신들이 그가 외직으로 가자마자 디스를 건것이죠. 평소 왕도 그를 꺼림칙하게 여겼던터라, 그를 쫓아낼

명분이 생기고 바로 그것을 써먹었죠. 그러나 당시 이이선생은 제자인 그를 복직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죠.

그리고 여러 해가 지나 1586년 , 동인이 이이,성혼을 디스걸자 조헌이 당파싸움만하는 조정에서 회의를 느껴

관직을 내고 낙향합니다. 그리고 농사일을 짓기를 수년, 1592년에 임란이 터지자 그는 도끼 한자루를 들고

경복궁궁궐로 올라가, 왕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전하, 세치 혀를 놀리는 대신들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나이다. 그러니 이 도끼로 속히 그들의 목을 치소서
 " 라고요.

또 이일떄문에 다시 눈 밖에 나버린 조헌은 또 디스당해 강제로 낙향조치가 되어버립니다. 그러자 조헌은

자신만이라도 군을 일으켜야겠다고해서, 바로 옥천으로가 1700명의 의병을 모았습니다. 평소 그의 청렴결백

함때문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죠. 그리고 승장 영규와 군을 합세하여 청주를 탈환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전라도로 서진하는 왜군을 요격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2차공세에 조헌은 남은 병사 700명을

데리고 금산에 가서 왜군과 결전을 벌입니다. 하지만 워낙 적의 군세가 막강하여, 조헌을 비롯한 700명의

의병들은 전멸하고맙니다. 후에, 그것을 기리기위해 '700의 총'을 세웠죠.

후에 조헌장군은 영조30년에 영의정을 추증받으셨습니다. 대쪽같은 성격덕분에 파란만장한 삶을 지내셨지만

그에게 배울점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의 정치인들과는 많이 다르네요.



이것을 마지막으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임진왜란 장군들을 끝내고자합니다.

약 하루간의 휴식기간을 가지고,

율르의 야심작인


홍경래의 난. 

을 기술해보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가져주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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