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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열등감이란 가지지 못했거나 존재감이 없는 인간들의 몫이야
게시물ID : lovestory_396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콩실이
추천 : 10
조회수 : 144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01/22 01:32:04

 


박민규 作 장편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2009)


다만 누군가를 사랑해 온 인간의 마음은 오래 신은 운동화의 속처럼 닳고 해진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어떤 빨래로도 그것을 완전히 되돌리진 못한다... 변형되고, 흔적이 남은 채로... 그저 볕을 쬐거나 습기를 피해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다 태워버려요 엄마. 그런 말을 내뱉은 나 자신이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했다. 몇 번 신지 않은 운동화 같은 얼굴을 서랍 깊이 파묻은 채, 나는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닫을 때의 서랍은 이상할 정도로 삐걱이고, 무거운 것이었다. 

68p



진짜 미녀라고 할 만한 여자도, 진짜 추녀라 불릴 만한 여자도 실은 1%야. 나머진 모두 평범한 여자들이지, 물론 근사치야 있겠지만 그런 거라구. 거울을 보고 그래도 나 눈은 괜찮은 편인데 역시 이마와 턱은 아니야, 이 각도에서 보면 괜찮은 얼굴인데 문제는 종아리야, 나 입술은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코와 어울리지 않아, 뭘 어쩐다 해도 이 가슴만큼은 들키지 않아야해, 이 정도면 나 괜찮은 거야 그래도 팔과 허벅지가 굵은 건 변명의 여지가 없어, 다들 내 몸매를 부러워하지만 하이힐 속에 도롱뇽 발가락이 있다는 걸 알면 어쩌지? 난 포기야 그래도 누군가는 실은 내 코가 예쁘단 걸 알아보지 않을까? 나 ... 살만 좀 빼면 괜찮은 얼굴이라 생각해, 키는 구두로 어떻게든 되는 거잖아.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결국 그게 평범한 여자들의 삶인 거야. 남자도 마찬가지야.

173-174p



이제 스스로를 위해 저는 남자며, 소개와 같은 것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느낌의 대화를 시작해야하만 했어요. 어떤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다만 오므라이스의 절반을 남기고 나온

오후의 거리를 기억해요. 돋보기를 통과한 듯 쏟아지던 별과, 이제 다시는 납득할 수 없을 여자로서의 나 자신과... 너무나 선명했떤 그 그림자를 잊을 수 없어요. 돌아오던 먼 길과, 돌연 이 세상에서 사라진 듯한 나 자신을 잊지 못해요. 자신보다 자신의 그림자가 더 아름다운 여자는... 그림자로서 세상을 살아야 해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나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여자예요.

210-211p



결국 열등감이란

가지지 못했거나

존재감이 없는 인간들이 몫이야. 알아? 추녀를 부끄러워하고 공격하는 건 대부분 추남들이야. 실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인 거지. 안 그래도 다들 시시하게 보는데 자신이 더욱 시시해진다 생각을 하는 거라구. 실은 그 누구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데 말이야. 보잘것없는 여자일수록 가난한 남자를 무시하는 것도 같은 이유야. 안 그래도 불안해 죽겠는데 더더욱 불안해 견딜 수 없기 때문인지. 보잘것없는 인간들의 세계는 그런 거야.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봐줄 수 없는 거라구.

221p



실은 어떤 삶도 기적이 아닐 수 없다. <파반느>로서의 나의 여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비록 느리고 장엄해도

누군가를 사랑한 삶은 
기적이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던 삶도 
기적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살며시, 먼지 낀 창의 오른켠에 나는 스스로의 이마를 기대어 본다. 서른넷이란 나이가 차고 서늘한 현실처럼 머릿속에 스미는 느낌이다. 이제 편하게 이 평범한 기적을 받아들이자고... 나는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다. 반복... 재생을 누르지 않았던가? 음악이 멈춘 어두운 실내는 

더없이 현실적이다.

361-362p



인간의 영혼은 필라멘트와 같다는 사실을. 어떤 미인도 말이야... 그게 꺼지면 끝장이야. 누구에게라도 사랑을 받는 인간과 못 받는 인간의 차이는 빛과 어둠의 차이만큼이나 커.
 빛을 발하는 인간은 언제나 아름다워. 빛이 강해질수록 유리의 곡선도 전구의 형태도 그 빛에 묻혀버리지. 실은 대부분의 여자들... 그러니까 그저 그렇다는 느낌이거나... 좀 아닌데 싶은 여자들... 아니, 여자든 남자든 그런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전구와 같은 거야.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極)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무시하는 거야. 불을 밝혔을 때의 서로를... 또 서로를 밝히는 것이 서로서로임을 모르기 때문이지. 가수니, 배우니 하는 여자들이 아름다운 건 실은 외모 때문이 아니야.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기 때문이지. 너무 많은 전기가 들어오고, 때문에 터무니없이 밝은 빛을 발하게 되는 거야.

 그건 단순한 불빛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들의 무수한 사랑이 여름날의 반딧불처럼 모이고 모여든 거야. 그래서 결국엔 필라멘트가 끊어지는 경우도 많지. 교만해지는 거야. 그것이 스스로의 빛인 줄 알고 착각에 빠지는 거지. 대부분의 빛이 그런 식으로 변질되는 건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어. 하지만 어쨌거나 그들도 결국은 개인일 뿐이야. 자신의 삶에서 사랑받지 못한다면 그 어떤 미인도 불 꺼진 전구와 같은 거지. 불을 밝힌 평범한 여자보다도 추한 존재로 전락해 버리는 거야.

 인간은 참 우매해. 그 빛이 실은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걸 모르니까. 하나의 전구를 터질 듯 밝히면 세상이 밝아진다고 생각하지. 실은 골고루 무수한 전구를 밝혀야만 세상이 밝아진다는 걸 몰라. 자신의 에너지를 몽땅 던져주고 자신은 줄곧 어둠 속에 묻혀 있지. 어둠 속에서 그들을 부러워하고... 또 자신의 주변은 어두우니까... 그들에게 몰표를 던져. 가난한 이들이 도리어 독재 정권에게 표를 주는 것도, 아니다 싶은 인간들이 스크린 속의 인간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헌납하는 것도 모두가 그 때문이야. 자신의 빛을... 그리고 서로의 빛을

 믿지 않기 때문이지, 기대하지 않고... 서로를 발견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야. 세상의 어둠은 결국 그런 서로서로의 어둠에서 시작 돼. 바로 나 같은 인간 때문이지. 스스로의 필라멘트를 아예 빼버린 인간... 누구에게도 사랑을 주지 않는 인간... 그래서 난 불합격이야. 나에게 세상은 불 꺼진 전구들이 끝없이 박혀 있는 고장 난 전광판과 같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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