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나는 초조해졌다.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얼굴은 흙빛으로 변해갔다. 가방을 꼭 쥔 손에서는 끈끈한 땀이 베어나오고 있었고 정수리 끝에서는 금방이라도 푸시시시시시시식! 소리를 내며 뚜껑이 열릴 것 같은 열이 끓어올랐다. 내 두 발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연신 지하철이 덜컹거리는 박자에 맞춰 까딱거리다가 이내 그 박자마저 놓치고 제멋대로 바닥을 향해 콩콩소리를내며 흡사 떠는 모습처럼 요란하게 흔들거렸다. 심장이 미친듯이 뛴다. 더 이상은..더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아까부터 앞에 노란 머리를 한 외국인 두명이 날 이상하게 쳐다본다.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이 이상해보였으리라. 순간 외국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날 향해 사려깊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Hi" 나도 애써 웃으려 노력했지만 눈가에는 경련이 일어나고 입가는 굳어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친절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난 카인드한 코리언이니까. 얼른 머릿속에 내가 알고있는 영어단어들을 나열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s.....sh...she.......마려................” 하지만...소변이 급했던 나의 머릿속에는 'she'라는 단어말고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이게 바로 머리에 똥만 찼다는 그 말인가. 옛말 틀린거 하나 없다더니. 그만큼 난 쉬가 마려웠다. 이미 내 몸은 내 몸이 아니었다. 땀으로 일정량을 배출했음에도 라지 사이즈인 내 방광을 만족 시킬 수는 없었다. (오늘 영어 좀 되는 날임.) 나는 집인 홍대입구역을 몇정거장 앞에두고 중간에 뛰쳐내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린다고해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화장실. 지하철 역마다 화장실이 있는 위치가 다르기에 난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 남자와 여자가 나란히 서있는 화장실 표지판을 찾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화장실 이정표! 그 순간에도 나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화장실 표지판인데 왜 여자가 서 있지? 그러나 그런 의문도 잠시, 내 복잡한 머릿속을 한방에 정리해 준 것은 방광언니의 외침 “지금 니 상태로라면 서서싸든 앉아서싸든 일단 싸는 것이 중요하다.” 그랬다. 난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살다보면 누구나 남의 시선 때문에, 혹은 살아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중요한 것을 잊고 살 때가 있지. 그때 내가 그랬다. 아. 난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인가. 중2때 수학을 16점을 맞았어도 계산기만 있었어도 100점이라며 자신감을 잃지 않았던 나인데. 그 시절 내가 얼마나 오만방자했었는지 그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인생의 깨달음을 얻으며 어렵게 찾아간 화장실!! 난 문을 발로 차며, 한손은 가방을 문고리에 걸고 한손으로는 바지 지퍼를 내렸다. 이 모든 것이 0.1초만에 일어났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여러분. 드디어 나의 시간이 된 것이다. 나는 일부러 바지를 천천히 내렸다. 날 농락한 방광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다. 난 받은만큼 돌려주는 계산기같은 여자니까. 방광은 내게 욕을 퍼부으며 빨리 수문을 개방하라고 외쳤지만 난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잘못봤어 방광친구. 후훗. 그리고 드디어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내 옆에 들어온 에티켓 벨. (*여자화장실에는 쉬 소리가 들리지 않게하기 위해 벨을 누르면 쿠오아아아아앙하고 물소리가 나는 벨이 있음) 생각해보니 나의 볼일은 꽤 길어질 것 같았다. 게다가 이곳은 공중화장실 화장실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쉬 소리를 이렇게 쉽게 노출할 수는 없지. 난 잠시 수문개방을 참으며 에티켓 벨을 힘차게 눌렀고, 누름과 동시에 하체의 힘을 풀었다. 쑤아아아왕엉아ㅗ콸콰뢐롸카랔라랔라카라쉬이이이이이 에티켓벨소리는 생각보다 과격했다. 그런데 그때 들려오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 “네. 말씀하세요. 무슨일이십니까??” 누구지....? 여긴 여자화장실인데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다니. 갑자기 공포가 내 몸을 엄습해오긴 개뿔 에티켓벨인줄 알고 눌렀던 것이 알고보니 지하철 역사랑 연결된 비상벨................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 방광은 끊임없이 조잘거렸지. 수다스러운 기지배.... 쑤와아아아아아오카로카뢐뢐롸코랔뢀 “여보세요? 무슨일이세요?? 아아. 들리세요? 괜찮으십니까?” “...................쏴아아아아쉬이이이이이...” “....아! 님, 브금 표시점여!!” 역사 직원분께서는 몇 번이고 내게 말을 걸다가 계속되는 쉬 소리에 비상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후로 게시물에는 [소리주의], [BGM], [브금] 표시를 하는 에티켓이 생겨나긴 개뿔 쉬소리를 생중계한 그날을 생각하면 맨유 VS 바르샤 경기 생중계보다 더 흥미진진합니다. 그 날 나는 두개의 방광을 가진 지하철역안의 박지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