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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리뷰] 『철강왕 박태준』, 서갑경
게시물ID : readers_26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메블라나
추천 : 2
조회수 : 83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1/25 20:30:22



6ㆍ25 직후 일어난 한강의 기적이 어째서 기적인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 되는 책입니다. 그야말로 기적을 일으키는 멸사봉공이란 이런 거구나 하고 실감하게 만듭니다. 덤으로 투철한 애국심과 남다른 희생 정신으로 똘똘 뭉쳤던 앞선 세대들의 삶을 지배하는 주된 정서를 이해하기에도 좋은 책입니다.


이 책 서문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이 책은 한국의 경제기적을 대표하는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그리고 창립자이며 제1대 회장을 역임한 박태준에 대한 불가사의한 이야기이다.」

그렇다. 이 책은 불가사의한 인물에 대해 다룬 책이다. 하지만 그런 불가사의함도 다음과 같은 단어를 떠올리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 단어란 멸사봉공이다. 원래 멸사봉공이란 단어는 일본에서 유래한 것이며, 전근대 일본인들이 -특히 태평양 전쟁에서의 카미카제 특공대들이- 이상으로 삼은 것이었다. 그런 일본인들조차 감복하고 탄복한 것이 강철왕 박태준의 멸사봉공 정신이었다. 그야말로 멸사, 사적인 자신의 삶을 버리고, 봉공, 나라에 그 자신을 바친 인물이었기에 공장 설계도를 그릴 여력조차 없었던 상황에서 당시 언감생심이었던 규모의 포항제철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인천국제공항 부지가 약 1170만m²인데 포항제철의 부지가 그에 약간 못 미치는 약 890만m²인 것을 보면 얼마나 큰 규모였는지 실감난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우리 일본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이룩해 낸 일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들의 의지와 인내심에 두려움조차 느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신화화를 경계한다

그 다음 세대를 살고 있는 우리 세대, 그리고 이미 한창 자라고 있는 다다음 세대들에게는 한 인물의 위대함을 두고 어째서 위대한지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그를 위대하게 만든 개인적 면모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한 인물이 이룬 업적을 두고 그 사람을 신화화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우리는 그의 남다른 멸사봉공 정신이 어떻게 길러졌으며 그가 포항제철 건설에 뛰어들기까지의 인생 행로가 어떠했는지 냉철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인간이 이룰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없다고 굳게 믿었던 그의 태도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한계가 없음을 증명해낸 것은 사원의 삶부터 생각하는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하면서 혹독하리만치 철저했던 그의 완벽주의였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는 인간의 능력을 믿고 있었다. 그는 광범위하게 독서를 했고, 특히 위인전을 읽으면서 이들의 리더십으로부터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위인들이 엮어나간 역사적인 사건들을 살펴보고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달성해야 할 기준치를 높게 설정했다.」

「"종업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100%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긍지와 사명감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요. 종업원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이들을 지지하고 사기를 불어넣는 역할 모델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경영자들이 헌신과 열정을 통해 앞날을 비춰주면서 종업원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박정희의 그림자

60~70년대 한국 경제의 기적을 선도한 -이병철과 정주영을 위시한- 1세대 기업인들의 전설적인 일화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에 못지 않은 일화들이 이 책의 내용을 가득 채운다. 그런데 시종일관 책 내용의 이면에 박정희의 그림자가 있다. 박태준은 육군사관학교에서 박정희를 처음 만났으며, 뛰어난 제자로서 박정희의 신임을 얻었다. 둘 사이의 신뢰는 아주 강했고 그래서 박태준은 박정희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세간에서 기적이라 부르는 것들을 이룰 수 있었다. 이것은 박태준의 업적을 축소시키는 사실이 아니라 애초에 박정희와 박태준 두 명 모두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렇기에 책에 자주 등장하는 박정희와의 일화들은 지금도 박정희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박정희가 어떤 지도자상이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정주영 씨는 불도저같이 일하시는 분이지. 나라의 경제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하신 분이기도 하고..."

대통령은 연필을 몇 번 더 톡톡 치더니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긴장감이 팽팽하게 나돌았고 비서관들의 눈에는 일말의 희망을 기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철강은 역시 박태준이야."」

「"순 이익이 1,200만 달러라고? 정말 믿어도 되는 거야?"

"사실입니다, 각하."

"임자가 기적을 일궈냈구먼!"」

일본의 강직한 기업가들

포항제철의 또 다른 주역은 일본의 기업가들이다. 이 책은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일본의 의식 있는 지성인과 기업가들과의 일화들을 다루고 있는데, 특히 기업가들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부채감을 가지고 한일 관계 개선에 진정성을 보임으로써 일개 기업인을 넘어선 기업가였다 할 수 있다. 특히 양명학자 야스오카와 기업가 이나야마 요시히코에게 박태준이 느끼는 끝없는 감사함이 마치 그가 박정희에게 느끼는 감사함에 맞먹는 듯이 보일 정도이다. 이나야마는 당시 중국이 한국과 거래하는 일본 기업과는 관계를 끊겠다고 엄포를 놓았을 때, 다른 일본 기업들이 그에 굴복하는 가운데 홀로 약속을 지킴으로써 포항제철이 첫걸음을 떼는 중대한 고비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인물이다. 이런 이들이 있었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한일 관계에 대한 밝은 전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나야마 사장님은 대단한 용기를 가진 분이었습니다. 모두들 중국의 압력에 굴복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 소신을 지키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지요. 그분은 확고한 비전을 갖고 있었습니다. 정치적인 견해와 관계없이 소신을 지키는 사람은 언제나 성공하는 법입니다.」

지난 12월에 타계한 박태준

철강왕 박태준에 대한 책을 읽고 이 글을 쓰는 시점에 지난달 박태준이 타계했음을 알게 되었다.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훨씬 유명했던 박태준은 참으로 대단한 사나이였다. 그는 단순히 굴지의 기업을 세운 창립자이자 전설적인 경영인이기 전에, 한 나라의 경제를 재건한 인물들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다른 기업가들은 박태준처럼 뛰어난 성과를 거둘 수 없었을까? 내가 보기에 포철과 다른 기업들과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박태준이 스스로 역할 모델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역설했던 바를 그대로 실천했다. 그는 항상 종업원들에게 모범이 되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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