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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시가 뭐고? -칠곡 할매들 시를 쓰다.
게시물ID : readers_244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18
추천 : 3
조회수 : 43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3/21 23:5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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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들 어릴 적에는 배움이란 사치였을 겁니다.
장남이나 되어야 소 팔아서 읍내 학교도 보내주고 했다고들 하지요.
딸은 또 얼마나 구박을 받았나요. 딸만 낳는 어머니를 말할 것도 없고요.

경북 칠곡에서 글을 배우는 할매들은 다들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내오셨습니다.
아들 손주 다 키우느라 푸른 젊음은 흩어져버린지 오래지만, 꽃이 안 핀다고 나무가 죽은 건 아니죠.
배움에 대한 갈망은 주름지고 갈라진 나무껍질 아래에서 봄이 오기만을 기다렸을 겁니다.

이 시집은 칠곡군 한글 교실에서 글을 배우신 할머니 250 분의 시를 모아 엮은 시집입니다.
그 중에 여든 여덟 분의 시가 실렸죠.
시집엔 할머니들의 글들이 고스란히 실려 있습니다. 오타 하나 수정하지 않았죠.
닭을 닥이라고 쓰는 건 예사입니다. 한글이 과학적이라고는 하는데 배우는 입장에서 쉬운 문자는 아니니까요.

여든 넘어 공부를 하려니 돌아서면 잊고, 돌아서면 잊고 해도
글자 배워 아들에게 편지도 쓰고, 읍내 우체국 가서는 택배 주소도 직접 쓰셨습니다.

놀라운 게 어디 공부 뿐일까요.
감자 오 키로 심어 백 키로를 거두는 건 너무 즐겁죠.
밑비료는 복합, 윗비료는 요소를 주면 고추가 주렁주렁 열리는 것도 퍽이나 기쁜 일입니다.

춥고 배고팠던 피난길도 떠올려 보고, 5남매 남겨두고 먼저 떠난 영감님 생각도 해봅니다.

타향에서 헬스 체육 가르치는 음식 솜씨 좋은 딸에게는 다 좋으니 시집은 가야지 않겠느냐고 묻습니다.

시라는 문학작품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는 생각은, 뭔가 우아하고 몇 번을 곱씹어야 의미를 알 수 있는 고급 음식에 비할 수 있을 겁니다.
할머니들이 삐뚤빼뚤 쓰신 시는 살아오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여과 없이 담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시라는 것에 대해 가진 고정관념에 비해 너무 날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습니다만, 제게는 그런 생생함이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풀리지 않는 일에 마음이 답답하거나,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다고 느끼는 분들께 조그마한 것에 대한 고마움과 무언가를 익히는 즐거움을 듬뿍 담은 이 시집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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