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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 맘대로 분석] 김두한 對 이소룡, 승자는 누굴까
게시물ID : humorbest_24510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_-)
추천 : 29
조회수 : 6692회
댓글수 : 6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9/09/06 12:18:24
원본글 작성시간 : 2009/09/06 10:33:35
*출처: 딴지일보

[내맘대로 분석] 김두한 VS 이소룡, 승자는 누굴까

2009.9.4.금요일 


남자라면 평생 꼭 한번은 스쳐 지나가는 생각.

세상에서 제일 쌈 잘 하는 넘은 누구냐?

대체 우리 남자들은 왜 이런 생각에 빠지곤 하는지 모르겠고, 또 이게 열라 유치한 발상이라는 것도 인정하고, 총포는 물론 원자폭탄의 시대에 최고의 주먹 싸움 대장을 밝혀내야 하는 이유도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답을 알고 싶다.

물론 현실적으로 지구상에 살고 있는, 아니 살았던 모든 인간 중에 최강자를 가려낼 방법은 없다. 알고 보면 어릴 적 뒷산에 움막 짓고 살던 털보 아저씨가 인류 최강이었을 수도 있고, 켄시로나 한마 유지로 같은 넘이 옛날 어딘가에 살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국 우리는 잘 알려진 사람들, 그래서 우리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이끌어내는 몇몇을 통해 그 질문의 해답을 찾아볼 수 밖에 없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라면 그 대표적 인물이 대략 위의 두 사람이 되겠다(사실 최배달도 포함되어야 하겠지만 싸움의 특성상 세 사람을 갖고 이야기하기는 좀 그러니 다음 기회에).

하긴 최근에는 K1이나 종합격투기의 발전으로 많은 새로운 후보가 등장한 것도 사실이다. 효도르는 상당히 오랫동안 그 물망에 오르내렸고 400전 무패라는 믿기 힘든 전적의 보유자인 힉슨 그레이시나 핵주먹 타이슨, 최근으로 보자면 무적이라던 새미 슐츠를 1회 KO로 꺾은 바다 하리(입식 타격가지만 막싸움에도 엄청 능할 듯 하지 않냐), 프로레슬러 출신으로 단 4전 만에 UFC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브록 레스너. 무패의 UFC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으로 역시 무패의 전 챔피언 라샤드 에반스를 작살낸 료토 마치다, 또 미들급에서 라이트 헤비급으로 체급을 올린 후 전 챔피언 포레스트 그리핀을 농락한 앤더슨 실바 등등도 물망에 오를지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가면 또 끝이 없으니 결국 우리는 결국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전통의 인물들, 즉 김두한과 이소룡 정도로 복귀하는 수 밖에 없다. 특히 한국 사람이 껴 있는 관계로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는 승부가 아닐 수 없을 터.

십대 초반부터 이소룡 및 무도가들의 광팬이자 90년대부터 K1 및 종합격투기의 열렬한 팬이며, 어려서 다양한 실전(관전) 경험을 쌓은바 있는 필자로서 이 질문은 평생 풀어나가야 할 사나이의 숙명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싸움과 관련된 기본 전제부터 좀 정리를 해 보자. 저 둘을 어떤 방식으로 싸우게 하느냐와 관련하여, 다소의 배경 정리 없이는 논의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글고 그 김에 싸움의 '본질'에 대해서도 한번 이야기를 해 보자꾸나.

격투기 중에서는 MMA, 즉 옛날 프라이드나 UFC 류의 종합격투기가 가장 실전적이라는 말들을 하지만 이것 역시 글러브와 룰로 보호된 스포츠일 뿐 실전은 분명히 아니다. 진짜 싸움에서는 링과 룰로 컨트롤된 격투 환경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조건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MMA에서는 유도가 약세로 지적되곤 하지만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싸움에서 유도의 효력은 엄청나다. 매트나 링과는 달리 콘크리트 바닥에 메쳐져 등과 허리, 어깨, 머리 등을 부딪히는 경우 다시 일어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괜히 한판이라고 부르는 게 아닌 거다. 한편 주짓수의 서브미션 기술인 삼각조르기(트라이앵글 초크)는 매우 효과적이지만 국부 공격에 무방비가 되기 때문에 진짜 싸움에서는 의외로 쓰기 어렵다. 사실 복잡한 서브미션 기술이 없어도, 새끼 손가락 하나만 제대로 꺾어도 상대를 무력화 할 수 있는 게 실전이다.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김두한이 마루오카와 겨루는 단성사 앞에는 이처럼 모래가 깔려 있었다. 실제로도 이랬다면 유도가 마루오카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이다.


트라이앵글 초크를 시도하면서 이렇게 거시기 주변이 상대 얼굴
앞에 놓이면 맞는 것은 물론 물어 뜯길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현실의 막싸움에서는 링이나 옥타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벼라별 일이 다 벌어진다. 그래서 사실 진짜 싸움의 철학은 격투 경기의 링이 아니라 '싸움에 비겁한 게 어딨어'라는 영화 대사나(싸움의 기술) 옥상에 맞짱 뜨러 올라가다가 뒷통수를 먼저 갈겨 버리는 장면(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찾아야 한다고들 말하기도 한다.

실제 내 어린 시절에도, 주변의 싸움질에서 쌍절곤 같은 기본 무기는 물론이고 자전거 체인, 자물통 매단 허리띠, 깨진 유리병, 심지어 레저용 손도끼 같은 위험천만한 흉기가 동원되는 일이 있었다(필자의 성장기 주변 환경은 영화 <친구>의 분위기와 비슷했다고 보면 된다). 그런 넘들한테 두들겨 맞고 나서 '나는 맨손이었는데 그 새끼는 체인을 갖고 있었다...' 고 말해 봤자 위로해주는 건 그저 주변의 친구들뿐이다. 나는 이미 두들겨 맞은 다음인 거다.

그러나, 과연 그렇다고 해서 싸움은 정말 아무 룰도 없이 그야말로 사생결단의 마구잡이로 진행되는 걸까? 격투 스포츠에 대비해 '그렇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현실은 마냥 그렇지는 않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싸움에도 흔히 '정치'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하는 사생결단 상황에서의 싸움에서라면, 혹은 상대가 다수인 상태에서 신변의 위협이 느껴지는 경우라면 아무 제약도 있을 수 없다. 잡히는 것이 곧 무기요, 눈을 후비던 아킬레스 건을 물어뜯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 즉 단지 힘의 우열을 가리기 위해 하는 싸움이나 정식 맞짱을 뜰 때는 좀 다르다. 이런 싸움의 목표는 상대를 굴복시켜 나의 우월함을 인정하도록 하고 또 주위에 증명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의 우월함 속에는 남자다움이나 정정당당함 같은 덕목도 포함되어야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꼭 그런 건 아니지만).

예를 들어 김두한이 하야시파의 김동회를 꺾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이때 만약 그가 맥주병으로 머리를 때리거나, 숨겨놓은 자전거 체인으로 등짝을 후려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면 과연 나중에 친구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혹은 마루오카와 단성사 앞에서 붙으면서 숨겨 쥔 무기 같은 것을 사용했다면 이 싸움을 구경하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었을까?


유도 고단자 마루오카 경감.
일본인이지만 김두한과의 승부 후
그를 존중하고 도와준 것으로 알려진다.
'남자 대 남자'의 결투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결국 길거리 싸움도 상황에 따라서는 이처럼 무언의 룰 같은 것이 개입될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쉽게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제 1급소 '낭심'(생각해 보면 이 표현은 오직 격투나 호신술 관련될 때만 쓰인다는 사실...)의 가격에 대한 무의식적 자제일 것이다.

낭심 공격을 격투기 시합에서 금지하는 것은 그 효과가 너무도 큰 관계로 경기가 싱겁게 끝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만큼 빠르고 확실하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급소가 바로 이 낭심인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무조건 이겨야 하는 진짜 싸움에서는 처음부터 여기만 집요하게 공격하는 게 당연한 일 같지만, 실제로 그런 식으로 싸우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물론 싸우는 중에 기회가 나면 공격할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낭심만을 계속 노리는 싸움 태도를 가진 사람은 드물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머 이게 상대가 싸움을 좀 하는 경우 쉽게 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한편 그런 모습이 스스로와 상대, 그리고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정서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은 승리로는 상대를 마음속에서부터 굴복시킬 수 없다. 아예 첨부터 원수급의 적이거나 다시는 보지 않을 넘이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단지 승리만을 위한 과격한 전술은 결국 주위의 반감과 상대의 원한을 불러 온다.

낭심 가격뿐 아니라 눈 찌르기, 깨물기, 꼬집기, 간지럼(이건 상대방에게 제압당한 상태에서 손가락이 자유롭다면 의외로 효과가 있으나, 바로 빠져 나오지 못한다면 웃음바다가 잠시 후 피바다로 변한다) 등등, 이런 식의 무언의 룰이 적용되는 경우들은 생각보다 많다.

여튼, 싸움이란 건 이렇게 우리 생각보다 복잡한 면이 있다는 말씀이다.


이제 두 사람의 스펙과 장단점을 살펴보자. 먼저 김두한부터.

우리에게 김두한은 대게 나이 든 이후, 즉 국회의원 시절의 퉁퉁한 모습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창 주먹질 할 때는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날렵한 근육질 몸에, 다양한 설이 있지만 대략 180cm 정도의 신장(당시로서는 매우 큰)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키를 기준으로 아래 사진상의 몸매를 고려하면 전성기 때 체중은 70~75kg 정도였을 것 같다.


한창 때인 31세 때 김두한의 몸매. 큰 근육들은 아니지만
소위 '싸움 근육'이라는 양 어깨 아래의 광배근이
발달되어 있어 날렵함과 힘을 겸비했음이 느껴진다.
비록 바지를 끌어올리긴 했으나 당시 한국인
기준으로 짧지 않은 하체에도 주목.


국회의원 시절. 키 165 정도의 박정희와 비교할 때 모자를 빼고
생각하면 약 15cm 정도는 더 크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약관 19세에 주먹계를 평정한 이 싸움 천재는 일본인들에게 잇봉(한방) 이라는 이름으로까지 불릴 정도로 원 펀치로 유명하지만,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사실은 점프력과 발기술에 아주 능했다고 한다. 공중으로 점프해서 상대방의 따귀를 세 번 때릴 정도의 실력이었고(속칭 발따귀) 영화 옹박에 나오는 것처럼 많은 적들의 어깨를 밟고 뛰어다녔다는 증언도 있다.

물론 이런 말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일단 위의 사진에서 보듯 당당한 체격과 키, 잘 발달되었지만 크지 않은 근육에서 비롯되는 펀치력과 스피드 및 내구력, 그리고 긴 하체를 이용한 화려한 발차기 기술이 장점이라고 보면 무방할 것이다.

거기에 흑인 헤비급 복서와 권투 경기를 벌여서 이긴 적이 있다고도 하니 전반적인 파워나 체력도 남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의 거친 생존조건과, 이후 많은 실전 경험을 통한 자신감과 배짱이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단점은 최고의 타격가인 대신 그라운드(레슬링 등)나 서브미션(관절기) 기술 등은 전무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머 실제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그쪽 능력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는 것이 없다. 그러나 권투나 K1 류의 입식 타격경기와는 달리 막싸움에서는 아무래도 밀고 당기고 붙잡고 쓰러지는 일이 다반사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유도가 출신의 마루오카와의 결투에서는 실제로 다른 상대에 비해 어려움을 겪은 것 같다. 씨름꾼 출신으로 해방 이후 정치 주먹의 대명사였던 이정재도 껄끄러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런 심리는 타격가 입장에서는 강함과 약함을 떠나 흔하다.

여하튼 타고난 순발력과 감각, 빠르고 강한 몸에서 나오는 펀치와 킥, 수많은 막싸움 실전경험(때로는 칼 등 무기를 든 상대와의), 어릴 적부터 몸에 밴 생존 근성, 처절한 승부욕 등이 김두한의 장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어 이소룡.

이소룡에 대해서는 인터넷상에서도 너무나 많은 갑론을박이 있어 솔직히 논평하기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소룡이 실전 무도가이며 단지 영화배우가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세냐는 게 핵심일 터.

174센티에 60킬로그램 초반의 몸무게니 김두한에 비해 체급이 두 체급 이상 아래다. 일단 체격 조건에서는 다소 열세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 다 일반인이 아닌 만큼 이런 차이가 주는 영향은 절대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일당백의 화려한 5연속 회전 차기 따위는 실전에서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으니 배제하자. 그러나 그에게 매우 빠르고 강한 발과 손놀림이 있었던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스피드와 수련을 통해 쌓은 체력, 뛰어난 두뇌회전 및 체계화된 전술이 그의 최대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소룡의 무시무시한 광배근.
비정상적이라고 할 이 크기를 보면 그가
펀치의 힘과 스피드 강화에 얼마나 큰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이소룡의 사이드킥.
비록 이 사진에는 엄청난 파괴력이 있는 것으로 나오고
<맹룡과강> 중에 데몬스트레이션도 등장하지만
실은 미는 킥에 가까운 것이라 실전에 큰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또 그의 경우 당시 기준으로는 그라운드 기술에도 다소나마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당산대형>에서 빅 보스와 땅바닥에서 구르며 싸우는 모습이나 <사망유희>에서 카림 압둘 자바를 '초크'로 꺾는 모습 등을 통해 이런 관심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무도가임에도 무술이 가진 폼이나 허식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었고, 다양한 무술과 격투의 장점을 흡수한 실전성을 강조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무술 철학인 절권도이다.


팔과 머리카락을 잡고 스탠딩 상태에서
일종의 굳히기 공격을 구사하고 있는 브루스.

그러나, 그런 그가 과연 실전에서 정말로 강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비록 많은 대련 승리의 스토리가 전해져 오고 있지만 그 경기 조건들이 대부분 무술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점과, 살벌한 주먹계에서 진짜 보스로 등극했던 김두한처럼 구체적으로 증명되지는 못했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이소룡에 대해서는 무도의 신에 가까운 추앙에서부터 허황된 액션배우일 뿐이라는 격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관점이 존재하며, 이 모두는 일정부분 다 사실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머 떠들다 보니 서론이 좀 길어졌는데 이쯤하고 이제 이 둘의 결투의 틀을 좀 정해 보자.

싸우는 방식은 일대일의 맨손 싸움이다. 김두한 가죽장갑 못 끼고 이소룡 쌍절곤 못 든다. 글러브는 착용하지 않는다. 


흔히들 글러브를 끼지 않으면 훨씬 강력한 펀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렇지도 않다. 일단 주먹 전체의 무게와 크기가 작아져
종합적인 위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고, 손에 큰 부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반달레이 실바의 롱 훅과 같은 큰 펀치는 구사하기 어렵다.

나머지 룰은 없다. 넘어진 넘 밟아도 되고 눈 찌르기나 낭심 가격도 가능하며 똥침 놔도 되고 물어도 된다. KO 카운트 따위는 물론 없고 승패는 한쪽이 항복하거나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질 때 결정된다. 결투장 공간은 평평한 흙 바닥. 대략 권투 링 크기 정도의 평지다. 사방이 막혀 있기 때문에 골목으로 도망가 숨어 있다가 '비겁하게' 반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현실 길거리 싸움에서는 이런 일도 일어난다).

그럼 이제 두 사람이 붙는 광경을 그려 보자. 어차피 양인의 인성적, 심리적 특성에 따른 상상일 뿐이지만 머 그 수밖에 다른 방법 있냐.

싸움에 임하는 자세는 두 사람 다 복싱이나 K1에 가까운 형태일 것이다. 둘 다 일종의 입식타격가에 가까운데다가, 경험과 이론을 통해 안면 공격이 매우 치명적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에 양팔은 턱 부위까지 올리고, 몸은 옆으로 세운 자세가 된다. 참고로 태권도나 가라데의 기마 자세나 당랑권, 원숭이 권법 등 동물을 흉내 낸 자세는 급소를 노출하며 다리 움직임을 제한하기 때문에 실전에서는 쓰일 수 없다.


영화 <카라데 키드>의 필살 깽깽이 킥 자세(우측)
이건 현실에서는 싸움이던 무술 대련이던 절대로 써서는
안 되는 필패 자세다. 중심이 불안하고 체력이 쉽게
떨어지며 안면이 노출되고 공격과 수비 수단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특히 저 자세로는 카운터 킥만이 가능할 뿐
상대가 공격해 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영원히
저러고 서 있어야 된다...


이런 류의 자세도 마찬가지다. 보기엔 멋지지만 이건
'난 다리는 싸움에 안 쓰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이 자세를 잡고 킥을 한번 시도해 보면 내 말이 먼 말인지
안다. 게다가 앞이나 뒤로 몸 전체를 움직이기도, 내민 다리를
쉽게 거두어 들이기도 어렵기 때문에 무릎이나 발목을
밟히고 꼬꾸라지기 십상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빈틈을 보면서 천천히 회전하는 가운데 이소룡은 빠른 '오른손' 안면 잽을 던지고, 김두한은 몸을 다소 웅크리고 거리를 둔다. 그러다가 먼저 과감한 파이팅을 시작하는 쪽은 아무래도 싸움꾼 김두한이다. 상대와의 거리와 공격 패턴에 익숙해 진 후 그는 머리를 숙이고 양팔로 성기게 가드한 상태에서 몸 전체로 빠르게 밀고 들어간다.

무술의 특성상 이런 식의 마구잡이 육탄 공격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 이소룡은 킥과 펀치로 밀어내려 하지만 상대는 이미 자신의 거리 안으로 들어와 있다. 그 상태에서 어퍼컷과 훅을 날리는 김두한. 정통으로 맞지는 않았지만 이소룡은 약간의 데미지를 입는다.

그러나 소룡은 빠른 움직임으로 옆으로 빠져 나오고, 그 과정에서 김두한의 무릎을 낮은 사이드 킥으로 차 주저앉힌다. 동시에 사커킥에 가까운 또 한번의 발차기가 두한의 가슴팍에 작렬한다. 고통스러워 하지만 잽싸게 굴러 구석으로 피하는 두한. 두 사람 모두 코와 입에서 피가 흐른다(격투 스포츠와는 달리 맨주먹 실전에서는 단 한번의 부딪힘으로도 피를 보기 십상이다).

그러나 두한이 자세를 잡기 전에 소룡의 공격이 이어지고, 아직 일어서지 못한 두한의 복부를 다시 걷어찬다. 두한은 연이은 강타에 큰 데미지를 입은 듯 했지만 순간적인 순발력과 깡을 발휘하여 소룡의 발목을 붙잡고 뒤로 밀어 넘어트린다. 그리고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낭심을 찬다...


이소룡 영화에 자주 나오는 머리 밟기는 상대가
회복 불능 상태가 아닌 한 절대 써서는 안 된다.
특히 이런 표정을 지으며 제 멋에 취해
적을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밟으면 큰일남

머, 상상 속의 중계를 더 이상 쓰는 건 의미가 없지 싶다. 암튼 이런 식으로 싸움이 진행된 결과, 내가 선정한 최종 승자는 다름아닌...

김두한이다.

그럼 지금부터 이유를 설명해 보자. 위의 가상 격투씬 중 굵은 글자로 적힌 부분들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 참고하면서 보시면 좋겠다.

이소룡의 절권도 이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속전속결에 있다. 그 자신도 '6초 이내에 대결을 끝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제 아무리 빠른 손과 발을 가진 사람이라도 6초 이내에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는 횟수는 기껏해야 3, 4회 정도다. 즉 불과 서너 번 이하의 타격으로 상대를 반격 불능의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이를 위해서는 안면이나 낭심 등 효과가 빠른 급소의 선공을 통해 일단 기선을 제압하고 자세를 흐트러뜨린 후, 이어 빠르게 나머지 급소를 타격하여 무력화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실제로 많은 대련에서 그는 이런 방법으로 채 10초를 넘기지 않고 승리했다고 전해 진다.

이런 이소룡 전법의 특징은 격투 기본 자세에 대한 그의 주장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오른손잡이임에도 흔히 사우스포(왼손잡이) 자세라는 방식으로 선다. 그는 이 자세가 힘이 좋고 빠른 오른손을 적에게 가깝게 두고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권투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격투에서는 힘센 오른손이 뒤쪽으로 가야 한다.


이소룡의 기본 자세는 이처럼 왼손이 뒤로 가는 왼손잡이 자세다.

이 자세는 실제로 맨주먹 속전속결 전법에 상당히 유용할 수 있다. 일단 뻗은 오른손으로 거리를 잡고, 몸을 약간 앞으로 내밀면서 상대의 안면이나 명치를 짧고 빠르게 친다. 권투식으로 말하자면 잽이나 다름 없는 것인데, 글러브가 아닌 맨 주먹을 불시에 코나 인중, 눈 부위 등에 맞게 되면 상대는 순간적으로 혼란과 빈틈을 보이게 마련이다. 그 틈을 노려 왼손이나 다리 등으로 다른 부위들을 공격해 무력화 하는 거다.

이소룡은 유명한 1인치 펀치 등을 통해 앞으로 내민 주먹을 짧게 치는 데 있어서 많은 수련의 성과를 보이고 있으며, 이런 그의 빠르고 효과적인 오른손 사용법은 아래 용쟁호투 중 오하라와의 격투씬에서 잘 드러난다. 마지막에 싱하형 표정도 덤으로 감상해 보시라.

그러나 이 기술은 매우 유용하지만 단점도 갖고 있다. 먼저 상대방이 이런 전법에 미리 대비하고 있다면 적중시키기 어렵다. 예컨대 거리를 주지 않고 아웃복싱을 하면서 빈틈을 엿본다면, 혹은 안면과 상체를 흔들면서 가드하여 방어에 신경 쓴다면 이 주먹이 먹혀 들어가긴 힘든 거다. 마루오카와의 일전에 앞서 후배 김무옥을 보내 철저히 그의 유도 기술을 분석했던 김두한이라면 이소룡의 이런 기술에는 이미 대비가 되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상대는 싸움 경험이 많고 기술이 좋은 길거리 싸움의 천재다. 이소룡의 이 전법은 당시만해도 안면 타격에 소극적이던 무술인들에게는 쉽게 통할 수 있었겠지만(최고의 실전성을 표방한다는 최배달의 극진가라데조차도 주먹에 의한 안면 타격을 현재까지도 금하고 있다) 안면을 주 공격 목표로 삼는 실전 싸움꾼에게까지 통하기는 쉽지 않다..

위 싸움 시나리오에서 '몸을 웅크리고 거리를 두다가', '양팔로 느슨하게 가드한 상태에서 몸 전체로 밀고 들어가는' 김두한의 수법은 바로 이런 이소룡의 오른손 기습 타격을 무력화 하기 위한 전술인 것이다. 이렇게 이소룡의 6초 철학은 첫 기습이 성공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으며, 그 다음부터의 싸움은 그의 이론대로 흘러갈 수 없고 임기응변과 여러 돌발 상황에 지배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소룡과 절권도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K1의 제롬 르 밴너도 오른손잡이면서 사우스포 자세를 고집한다.
그러나 어차피 글러브를 끼고 하는 시합에서라면 이소룡을
모방하는 이 자세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오히려 그 무지막지한 스트레이트나 훅을 자신의
주완인 오른팔에 실었다면 더욱 파괴적이진 않았을까?

반면 김두한은 일자 무식의 길거리 출신으로, 중국집 주방장에게서 무술을 배웠다고도 하지만 아무래도 진짜 무술가는 아니고 이론을 정립시킨 적도 없다. 그러나 그는 어쩌면 싸움에서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는, 동물적인 격투 본능과 죽음을 불사하는 투쟁심을 가진 사람이다.

19세에 서울 중심가의 대표 주먹들을 모두 꺾고 '큰형님'의 자리에 오르는 성취는 무술 이론 같은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재능의 증거다. 이런 능력은 기본적으로 타고난 임기응변과 관련되는 거라서, 상대가 강할수록, 상대의 움직임이 의외의 것일수록 빛을 발하게 된다. 거기에 김좌진 장군의 아들로서(아니라는 주장도 많지만) 타고난 체격과 체력, 근력, 순발력, 호승심 등에 어려서 거지나 다름없이 자라면서 거친 생존력을 체득했다.

따라서 김두한은 설사 이소룡의 빠른 로우킥에 무릎을 맞고 배를 차인다 하더라도, 그 고통이나 공포에서 비교적 빠르게 극복해 반격을 노릴 수 있는 독함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회만 보이면 주저 없이 낭심이나 기타 급소 부위를 타격해 올 것이다.

물론 이소룡도 절권도를 통해 물어 뜯기 등 다양한 실전 기술의 활용을 강조하고 있지만,  도장을 운영하고 화려한 영화배우의 길을 걸었던 이소룡에 비해, 길거리에서 주먹 힘만으로 먹고 살며 수많은 도전자들을 제압해야 했던 김두한의 독함은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요컨대 이소룡의 실전과 김두한의 실전은 의미도 질도 서로 다르다는 말이다.

게다가 해방 직후 그는 극우 성향의 백색테러단체를 이끌며 많은 좌익 인사들을 폭행하고 심지어는 죽이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그의 폭력성이 단지 힘을 겨루고 싸움에서 이기는 수준을 넘어선 궁극의 경지에까지 도달했다는 점을 의미한다(폭력의 궁극은 물론 살인이다). 협객의 이름 하에 감추어진 그의 이런 잔인하고 무자비한 일면은 사진상의 눈빛과 표정에서도 드러난다.


차분한 듯 하면서도 냉혈무비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그의 눈빛은
일반인들이 마주보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물론 한 시대를 풍미한 사람이니
그 속에 한 줄기 우수는 있다...


'피로 물들인 건국전야'
냉전시대 백색테러리스트를 자처한
김두한의 기록이 스스로의 구술을 통해
실려 있다.

한편, 영화에서의 광기 어린 표정과 괴조음으로 유명한 이소룡이지만 실제 얼굴과 눈빛은 잘생긴 걸 넘어서 지성으로 온화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열혈 무술가이고 또 위대한 무술철학자지만, 진짜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살기나 잔인함은 절대 갖지 못한 사람이다. 이런 점이 바로 김두한과 이소룡의 결정적인 차이다.


비록 어려서 거칠게 놀기도 했다지만
이소룡은 기본적으로 지적이고
섬세한 사람이다. 특히 이후에 비해 살이 다소
올라 있던 <당산대형> 이전의 모습은
그런 내면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체격이나 힘이 엇비슷하고 싸움 기술이 탑 클라스인 두 사람을 붙여 놓는 경우, 최종적인 승자는 독하고 잔인한 넘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지금 제시한 싸움의 조건, 도망갈 곳도 없고 룰도 없고 레프리도 없는 상황에서라면 지성적이고 논리적이고 생각이 많은 사람은 거칠고 잔인한 사람의 무자비한 터프함을 견뎌내기 어렵다.

따라서 싸움이 길어질수록 이소룡은 지치고 김두한은 더욱 광포해진다. 결국 종이 한 장 차이, 하지만 가장 중요할지도 모를 깊숙한 내면의 차이로 인해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이소룡이고, 갈비뼈가 부러지고 어깨가 탈골된 상태에서라도 마지막에 서 있는 것은 김두한이 될 것이다...

이런 말씀이다.


머, 이런 결론에 대해 많은 반대 의견이 있을 것으로 안다.

특히 이소룡의 팬들이 그러할 텐데, 사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필자 역시 이소룡의 평생의 팬이다. 심지어 몇 년 전 이소룡을 주제로 삼은 딴지 관광청의 다른 글에서는 아래와 같이 적은 적도 있다.

...마지막으로 앞서 인용한 네티즌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내면서 오늘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자. 김두한과 이소룡이 싸우면 과연 누가 이길까?

물론 답은 이소룡이다. 진짜 주먹 싸움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소룡이 자주 인용하던 중국 병법가 손자의 말마따나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짜 이기는 것' 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째서 그가 싸우지도 않고 김두한에게 이긴단 말인가...?

글쎄다. 그 답은 바로 필자 같은 사람이 사후 30년이 지나도록 이런 예찬론을 쓰고 있는 상황 자체가 증명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김두한은 죽었지만 이소룡은 아직도 살아 있으니.

(전문을 보고 싶으면 여기를 클릭)

지금도 위와 같은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오늘 이 글의 맥락에서 보자면 바로 이런 면 때문에 실전에서 김두한이 이소룡을 이길 거라고 나는 생각하는 거다. 김두한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짜 이기는 것" 같은 고차원적인 정치 철학은 잘 모른다. 그는 그저 '진짜로 싸우고 진짜로 이기는 것'을 생각할 뿐이다. 그런 성향이 결국 그를 때이른 죽음으로까지 이끌었을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진짜 주먹 싸움의 강자로도 만든 단순무식의 힘이기도 하다.

머 그럼에도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많을 테니 아래 게시판에서 알아서들 싸우시기 바란다. 어차피 이런 문제에는 정답이 없고 해석과 분석만이 있을 뿐이다. 사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 자체가 정답을 내기 위한 게 아니다. 그저, 쌈박질에 대한 관심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남자들이 서로간에 갑론을박하며 실컷 떠들어 대기 위한 핑계거리일 뿐이다.

아니냐.


이소룡의 탈을 쓴 각성한 시민의 조직화된 힘.
...니가 제일 세다.


딴지 논설위원 파토([email protected])
              트위터 : pato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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