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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키 165 어린시절 얻어맞은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는다.txt
게시물ID : readers_245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와룡대장
추천 : 0
조회수 : 40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3/25 23: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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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열 다섯 살 무렵 한창 리바이스에 아디다스 트랙탑 유행일 때 무슨 병이 도졌는지
 
애들 입고다니는게 그렇게 이뻐보이더라
 
해서 옷 이라곤 '이랜드 주니어'만 고집하던 엄마한테 졸라서
 
리바이스 501 인디고랑 아디다스 져지를 사러 백화점에 갔다.
 
지금도 키가 작아 (165cm) 고민이지만 당시에는 150대 초반의 키였으니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고민의 크기는 다들 짐작할 거다.
 
게다가 그때는 옷 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잘 잡혀있지 않았던 시기라
 
입는 사람의 옷걸이가 핏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리 만무했다.
 
여튼 백화점 매장에서부터 뭔가 옷들이 나보다 크다는 것을 어렵풋이 인지만 하고 있었다.
 
바지 역시 무릎 아래로 대충 20센티 가량 기장 수선을 맡겼는데 원래 그정도 줄이는 건 줄 알았다.
 
여담이지만 바지를 수선하게 되면 상품 본래의 핏이 죽어버리기 때문에 웬만해선 기장 수선을 맡기지 말고
 
자기 다리길이에 맞는 바지만 사라고 하더라...(이게 말이 쉽지 여태 수선하지 않은 바지는 없다.)
 
뭐 암튼 그렇게 처음으로 내 스스로 맘에 들어 엄마에게 졸라서 산 옷들을
 
자랑스레 학원에 입고 갔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였다.
 
당시 일진이었던 애가 나와 똑같은 바지와 똑같은 트랙탑을 입고 학원에 온 것이었다.
 
그때부터 뭔가 등골이 오싹해지고 뒷골이 쌔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직감은 꼭 들어맞았다.
 
대뜸 나를 본 그 일진놈은 가방을 집어던지기가 무섭게 정확히 내 명치 부분에 프론트 킥을 갈겼다,
 
매서운 한 방이었다.
 
순식간에 나는 교실의 중앙에서 뒷편 가장자리까지 내동댕이 쳐져 있었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한 마디가 떠올랐다.
 
"아! 오늘 이렇게 내가 죽는구나..."
 
그 한 방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그 일진놈은 내가 쓰러져 있던 뒷편으로 쏜살같이 다가와
 
내 머리채를 잡고 교실 중앙으로 끌고갔다.
 
"너 이새끼 앞으로 한 번만 나랑 똑같은 옷 입고 오면 진짜 그땐 죽여버린다 알겠냐!?"
 
그는 신고왔던 쓰레빠를 이내 벗어다가 내 정수리를 흠씬 두드리며 내게 엄포를 놓았다.
 
내가 왜 맞아야 하는지, 걔는 뭐가 그렇게 아니꼬왔는지
 
수치스럽고 창피하고 쪽팔렸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수치심보다 공포심이 더 컸다.
 
살고 싶었다.
 
어서 이 공간을 벗어나고만 싶었다.
 
한참을 그렇게 열을 내던 그놈은 지쳤는지 날 두드리던 쓰레빠를 내려놓고 숨을 골랐다.
 
사춘기 남학생이 내뿜은 페로몬의 뜨거운 열기만이 한바탕 폭풍우가 휩쓸고 간 폐허마냥 공허한 교실을 가득 매웠다.
 
이내 그 적막함을 깨는 한 마디가 내 귓가에 맴돌았다
 
"키 작으면 그런 거 함부로 입지마라. 격 떨어지니까... 이게 내가 널 때린 이유다."
 
내게 그런 수모를 주는 이유가 단지 같은 옷을 입고 와서 인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으나 단순히 그것 만은 아니었다니...
 
그가 그렇게 열을 내는 이유가 바로 나 같이 키작고 왜소한 놈들이 자기와 같은 옷을 입으면 격이 떨어진다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에서 였다니...
 
쉽게 납득이 가질 않았지만 더 큰 수모를 겪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기에 아무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학창시절 다니다 보면 나같이 왜소한 애들은 영문도 모른 채 얻어맞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친히 나를 때린 이유에 대해 나름의 이유를 들어 설명을 하니 황송할 따름이었다.
 
잠깐이나마 내가 맞았다는 게 정당하다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마치 내가 대의를 위해 핍박받고 희생당한 순교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뿐 이었다...
 
암튼 그렇게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 지나고 그는 수업을 받으러 다른 교실로 갔고
 
교실에는 나 혼자만이 덩그러니 남아 교실 가득 채운 폭행의 흔적들을
 
넌지시 바라보고만 있을 뿐 이었다.
 
한동안 어지럽혀진 교실을 바라만 보다가 도저히 수업받을 기분이 나질 않아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그저 내방 침대에 누워 하얀 벽지의 천장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 뿐 이었다.
 
그렇게 원장에게 말도 없이 집으로 향하는 길에 뭔가 명치 쪽에서부터 올라오는 매스꺼림을 느꼈다.
 
금방이라도 거리에다 토악질을 할 것 만 같았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내 스스로 순교라고 받아들이고 싶었던 좀 전의 일을 게워내고 싶었다.
 
가로수에 기대 서서 크게 한 번 숨을 고른 나는
 
이내 이차돈이 순교할 때 내뿜었다는 하얀 피 마냥
 
그것들을 쏟아냈다. 있는 힘껏 쏟아냈다.
 
개운했다.
 
천근 처럼 무겁게 느껴지던 채증이 내려간 듯 시원하고 개운했다.
 
그 수모를 애써 잊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잊게 될 것만 같아 실성한 듯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나는 좀 전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지우기 위해 옷을 벗어놓고
 
욕조에 누웠다.
 
그리고 벗어 놓은 옷 가지 들을 보며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된 그 옷들에 대해 내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를 대가며 장롱 속에 쳐박아 두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렇게 그때의 기억은 내 가슴 깊숙한 심연의 밑바닥에 깔리게 됐다.
 
허나, 이따금씩 나와 비슷한 옷치레를 한 건장한 남성들을 마주칠 때면 그때의 기억이 송곳처럼 솟아 나를 찔러댄다.
 
그 통증은 익숙하지만 썩 유쾌하지는 않은
 
평생 무감각해 지지는 않을 어린 날의 회상 때문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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