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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 정치평론] 2PM 재범이 남기고 간 것
게시물ID : humorbest_2455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_-)
추천 : 37
조회수 : 4391회
댓글수 : 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9/09/11 00:44:13
원본글 작성시간 : 2009/09/10 21:54:01
억센 표현이 있지만 일단 퍼왔습니다. 한 번 읽어보세요. ^_^ *출처: 딴지일보

[본격 정치평론] 2PM 재범이 남기고 간 것
- 그래, 난 이걸로도 정치평론이다!

2009.9.10.목요일

어제 오전, 내가 왜 이 욕을 먹어가며 글을 쓰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변모씨 원고를 넘겼을 때 신짱에게 문자가 왔다. 그는 어제도 역시 내가 욕먹을 걸 예감했는지 이왕 욕먹는 김에 확실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생각이 있으면 재범을 옹호해 보라는 제안이었다. 나는 당시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 마녀사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이니 한번 써보겠노라고 말했다. 나는 원체 욕먹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지만 이 정도 이슈에 뛰어들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결심한지 불과 몇 시간이 지나기 전에 내가 매달려야 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는 철수하기 시작했다. 재범은 미국으로 떠났고, 한국 사회는 갑자기 집단적 반성을 시작한 것이었다. 게시물의 유출, 언론 보도, 재범의 사과, 빗발치는 비난 여론, 재범의 탈퇴, 그리고 반성... .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단 나흘이었다. 그야말로 모든 일이 개그콘서트 '씁쓸한 인생'의 쌍칼의 대사보다 빨리 지나가 버리는 한국 사회의 진풍경이었다. 정말이지, 씁쓸했다.


2PM 재범의 사과문 

과연 애국주의의 문제였나?

그리고 반성조차도 획일적이다. 애국주의의 과잉을 문제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물론 애국주의라는 분석은 '무난한' 것일 수 있다. 오프라인매체의 경우 지면의 한계 때문에 더 이상의 분석을 하기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뭐가 어떻게 됐는지를 알고 반성하기 위해서라면 '애국주의'라는 말에 뭉뚱그려진 우리의 욕망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봐야 할 필요가 있다.

왜 우리는 재범의 말에 그토록 분노했을까. 먼저 문화적 코드의 차이가 이해되지 못했다는 측면이 있다. 누리꾼들이 문제삼은 재범과 그 친구의 감정표현은 그 지역 하층민 갱스터들의 코드에 근접한 것이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 랩 좋아하던 아이를 데려다가 훈육시킨 건데 그런 정서가 아니었다고 추측한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가령 에미넴 주연의 영화 <8mile>을 떠올려 본다면 어떨까.

하지만 그런 정서는 한국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의 하층민 문화는 부르주아와 중간계급의 정서를 혐오하지만, 한국인들은 '하층민'이라고 불리는 것조차 싫어 한다. 우리는 소득이 낮은 사람을 표현하기 위해서 빈곤층이나 차상위계층과 같은 말을 써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불리는 이들은 결코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나 정서를 형성하려고 하지 않으며, 필사적으로 '중산층'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 이러한 문화는 계층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한국의 사회구조의 반영이다. 그래서 우리 누리꾼들은 그 친구들이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언제나 그 정도의 욕은 했을 거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들의 대화에선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도 자주 욕먹었을 거라는 사실도.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되지 못하는 점이 있다. 누리꾼들의 분노는 재범의 정서가 삐딱하다는 데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재범의 정체성이 미국인일 거라는 의구심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한국사회의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난 소년이 아이돌 가수가 되기 전에 싸이 비밀덧글을 통해 그런 종류의 얘기를 했다는 사실이 유출되었다고 치자. 물론 한국 사회에서 태어난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자녀들은 자신의 고생담을 미담으로 바꾸어 사람들의 감동을 쥐어짜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이런 일이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졌더라도, 누리꾼들의 분노는 인터넷에 국한되었을 것이고 그 아이돌 가수가 그룹을 탈퇴하는 일까지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아마 구설수를 끌어안고 계속 활동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분노가 인터넷의 표출을 넘어 재범에게 실제적인 압력을 행사해야겠다는 강한 의지로 나타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무엇이 아고라 네티즌들로 하여금 '재범 탈퇴'를 넘어 '재범 자살'을 청원하도록 만들었단 말인가. 어쩌면 그 분노는 '나'와 '재범'의 차이를 비교하는 문맥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들이 생각한 차이는 재범에게는 '돌아갈 곳(=미국)이 있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사실 여자들도 군대를 가라고 얘기하는 예비역들이 언제나 '국방의 의무는 신성'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국방의 의무는 X같다.'고 생각하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여자들도 나누어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재범에 대한 분노는 국가에 대한 사랑의 발로일 수만은 없다. 오히려 나도 한국 사회가 X같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해봤자 도망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이 돌아갈 곳이 있는 재범에 대한 분노로 번지는 거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히려 군대에 온 젊은이가 "군대 X같다. 집에 가고 싶다." 쯤의 의미로 얘기한 것과 비슷할 순진하고 자유분방한 청년 재범의 발화를 미국 사회와 한국 사회의 우열을 비교한 불경스러운 짓거리로 받아들였다. (이미 미국 사회가 더 우월하다는 것을 그 역시 내면적으로는 받아들인 채로!) 언제든지 도망칠 곳이 있는 우월한 이가 그렇지 못하는 열등한 이들을 조롱하고 있다는 문맥에서 재범의 발화를 받아들인 거다.

그래서 이건 그저 단순한 '애국주의'는 아니다. 남에게 애국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애국주의이지만, 스스로 애국을 하겠다는 그런 애국주의는 아니다. 이 애국주의는 결국 평등주의의 다른 표출이다. 군부독재 세력이 도덕적으로 주입한 국가주의 체제에서 한국인들은 부르주아든 프롤레타리아든 똑같이 국가를 위해 헌신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헌신하고 '너'는 헌신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진실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분노를 쌓이게 한다. 그 분노가 어떤 사건이 주어질 때 희생양을 찾아 터져 나온다고 말한다면 사건은 대략적으로 설명될 것이다. 그래서 부유하지 않은 재미교포의 자녀로 청소년기에 한국 땅에 와서 수년의 노력 끝에 이제 막 빛을 볼 수 있는 처지였던 재범은, 졸지에 강만수가 옹호하는 "이중국적을 허용 안 해 주니 우리가 애를 못 낳고 그러니 나라가 저출산이지."라고 투덜대는 한국적 부르주아지의 상징이 되어 몰매를 맞아야 했던 거다.

인터넷 여론 형성에 편승하는 옐로우 저널리즘

이러한 대중적인 감정의 폭발이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러나 언제인가부터 생겨난 문제는 이 인터넷의 여론에 편승하여 상업주의를 추구하는 옐로우 저널리즘이다. 인터넷에서 논란이 된 문제가 각종 매체를 통해 재생산되는 구조 자체를 비난하기는 어렵다. 자본주의 사회의 언론 매체가 상업성을 완전히 도외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황색언론과 정론지가 구별되지 않는 한국적 언론환경의 특수성은 우리에게 주의를 요구한다. 이를테면 스스로를 '정론지'라고 주장하는 언론 중에서 조중동처럼 많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신문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조중동의 발행 부수는 해외의 정론지가 아니라 타블로이드 신문과 비교될 수 있을 뿐이다. 그 많은 독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이 신문들은 극단적인 상업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원론적인 지적을 떠나, 재범의 사건이 일반적인 사례와는 달리 시시콜콜한 연예뉴스가 아니라 동아일보의 특종으로 최초로 기사화 되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엽기적이다. 동아일보는 유출된 재범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킬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국가와 공공성에 대한 이해를 거부하고 미국 시민권을 욕망하는 한국 부르주아지의 가장 저속한 대변자가 재미 교포 청년에게 동포애를 요구하는 것이 합당한 일일까?


이 사건을 최초 보도한 9월 5일 동아닷컴 기사

더 황당한 일은 재범의 논란이 확대된 이후에 드러났다. 동아일보 이진영 인터넷 뉴스팀 차장이 인터넷 문화에 대한 자성을 촉구한 것이다.

"(...)기자가 주목하는 것은 어떻게 친교 사이트에서 주고받은 사적인 글이 공론장을 달구는 최대 이슈가 됐느냐는 점이다.

박재범이 '한국인이 싫다'고 털어놓은 공간은 몇몇 지인을 위한 친교 사이트였다. 모두가 듣고 있었다면 결코 내뱉지 않았을 적나라한 속내는 몇 년이 지난 후 누군가에 의해 내밀한 공간 밖으로 드러났고 곧바로 '인기 스타의 한국 비하 발언'이라는 뉴스로 터져 나왔다.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경계를 간단히 허물어뜨리는 디지털 미디어의 위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디지털로 한 번 기록된 것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겹겹의 잠금장치를 둘러놓아도 비밀을 보장할 수는 없다. 전파 속도도 매우 빠르다. 동아닷컴이 추적한 바로는 문제의 발언이 5일 새벽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와 뉴스 사이트의 보도를 거쳐 소속사의 공식 사과로 이어지기까지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공인'과 '알 권리' 논리로 사생활 침해가 쉽게 정당화되는 유명인이 자신의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무심코 남겨 놓은 속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고장 난 시한폭탄과도 같다. 유명 인사가 개인 미디어에 올린 사적인 글이 매스미디어를 통해 증폭돼 메가톤급 이슈가 되는 현상은 더는 새로울 것도 없는 일상이 돼버렸다. 어느 블로거는 이를 두고 '사소함의 사회화' '사소한 일상의 과장'이라는 해석도 제기한다.

인터넷은 수많은 장밋빛 전망 속에 등장했다. 하지만 공동체와 공론장 복원이라는 기술적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문제는 외면한 채 소모적인 논쟁에 집단적으로 한눈을 파는 난장(亂場)이 지금 온라인 세계의 실상이다.

말이 곱지 못했던 연예인의 퇴출 여부보다는 정보기술(IT) 강국의 하드웨어를 이렇게 활용할 수밖에 없는 척박한 뉴미디어 문화에 대한 반성이 '재범 한국 비하' 논란의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 [동아일보/광화문에서] '재범 한국 비하' 논란이 걱정되는 이유 9. 10

이 글은 이전의 동아일보 보도가 없었더라면 비록 동아일보 기자의 글이라 하더라도 핵심을 짚었다고 칭찬해줬어야 하는 글이다. 하지만 '국민 정서'의 폭주를 가능케 하는 디지털 미디어의 위력을 '공론장'을 위해 제어하지는 못할망정 편승하여 증폭시킨 언론의 종사자가 이제 와 반성의 여론이 거세지자 다시 한번 거기에 편승하면서도 자신들의 책임은 쏙 빼놓고 인터넷 책임을 하는 것은 아무리 잘 봐줘도 누워서 침 뱉기일 뿐이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인터넷 여론의 감성적 선동성을 비난하던 이들 '정론지'가 실은 인터넷 여론만큼이나 조변석개하는 집단이었음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사실 그것도 하나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지금껏 조중동 등 이른바 '정론지'들이 보도를 한 방식은 공동체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공론장을 만든 방식이 아니었고, 원한과 증오와 배제의 감정을 선동하고 증폭시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취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에 대항하여 인터넷이 그들의 비이성과 거짓됨을 폭로할 새로운 매체가 되리라고 믿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터넷은 그 자체로 조중동의 대항마가 아니라, 우리의 역량에 따라 달리 활용될 수 있는 매체임을 이번 사태도 확인시켜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재범 사태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성을 촉구하는 연예인들은 대개 악플러 문제를 거론한다.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는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민주적 의사소통을 고민하는 입장에서는, 인터넷 여론의 선동성과 조중동의 선동성이 (무작위적인 힘과 작위적인 힘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같은 방식으로 폐해를 가져 오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에 반대되는 (이성을 사용하여 공론장을 만드는) 방식으로 우리의 인터넷이 활용되어야 한다고 제언해야 할 것이다.

가수는 기획사의 부속품일 뿐인가?

외국인들이 본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재범의 국외 축출 해프닝을 만들어낸 또 하나의 축은 JYP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재범은 논란이 일어난 지 사흘 만에 2PM 탈퇴를 선언했다. JYP는 재범의 탈퇴를 만류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범이 결단을 내렸다는 식으로 보도되어 있지만 한국적 현실에서 그 보도를 곧이 곧대로 믿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적어도 JYP가 소극적으라도 재범의 탈퇴에 동의하지 않았더라면 재범이 불과 사흘 만에 그렇게 전격적인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논의의 맥락에서 사람들이 재범에게 분개한 또 하나의 이유를 꼽자면 이른바 '소비자 의식'이다. '소비자는 왕'이란 도식에 맞춰, 겉과는 달리 속으로는 소비자를 무시했던 저 생산자(=재범)는 부도덕하다는 생각이 그들의 분개심에 깔려 있다. 그러나 '소비자는 왕'이란 구호는 정녕 소비자들에게 득이 되는 것일까. 언제나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가령 우리가 서비스 문제에 있어 소비자의 권리를 요구하면 할수록, 자영업자와 노동자가 다수인 사회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노예로 종속된다.

손님은 자신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받는 것이 싫어서 식당 종업원에게 친절함을 요구한다. 누리꾼들이 한국을 단지 돈 벌 곳으로만 취급했다며 재범을 비난한 것이 그와 같다. 손님의 요구가 거세지면 사장은 손님을 충족시키기 위해 종업원을 부속품처럼 부릴 수밖에 없다. JYP가 재범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이와 비슷하다. 인격적 대우에 대한 요구는 이렇게 역설적으로 쌍방의 관계를 다시 한번 엄격한 자본의 룰에 종속시킨다. '손님'은 사라지고 소비자가 남는다. 종업원은 소비자의 말에 복종한다. 재범은 사과하고 그것도 모자라 미국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손님은 자신이 애초에 원했던 것, 즉 진심을 나눌 권리를 박탈당한다. 팬들과 팬들이 아닌 한국인들은 재범의 마음과 접속할 기회를 잃어버린다. 이쯤 되면 설령 재범이 다시 어떤 방법으로 한국에 복귀하게 된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돌아온 재범은 왕인 그저 소비자들에게 굽실거리며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일치시키는 방법을 배울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원래 이런 것이랄 수도 있겠지만, 생산자의 캐릭터에 큰 영향을 받는 문화상품의 영역에서까지 이렇게 철저한 자본의 룰이 관철되는 사회는 흔치 않을 거다. 재범의 사례는 한국 사회가 작동하는 철두철미한 구조를 암시한다. 이곳에서 우리 소비자들은 서로가 왕이 되면서, 또한 서로의 노예가 된다. 고용주로부터 부속품 취급을 받는다.

소비자 의식에도 모종의 정치성이 있다. 가령 2008년 촛불시위는 원치 않는 생산품을 강제로 시장에 떠넘긴 도매상(=정부)에 대한 소비자의 리콜 요구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촛불시위에 힘입어, 소비자 운동은 '낡은' 방식의 노동 운동과 대비되는 기표가 되어 한국의 정치 담론을 뒤덮었다. 물론 소비자 운동에는 커다란 시사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가령 광고주 불매운동에 대한 MB시대 검찰의 탄압은 기득권 세력이 '새로운' 방식의 소비자 운동에도 충분히 '불법'의 범주를 적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노동운동만 불법이 아니라 소비자 운동도 허용되지 않으면 불법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비자 의식, 그리고 운동은 소비자 개개인이 또한 생산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발전해 나가야 한다. 소비자이면서 생산자인 자신이 스스로를 배려하면서 다른 소비자/생산자와 연대할 수 있는 그런 운동이 되어야 한다. 아직까지 우리의 소비자 의식은 그런 수준까지 올라서지는 못했다.
 
파시즘이라 봐야 할 것인가?

이 모든 요소를 분석하고 나면, 이 사태를 '우리 안의 파시즘'이란 논리로 해석하는 일반적인 조류에도 이의를 제기하고 싶어진다. 물론 이 사태 안에는 파시즘적 요소가 개입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드러나는 파시즘이 한국 사회의 무엇을 보여주는 무슨 파시즘인지를 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것은 MB 정부를 쉽사리 파시즘으로 재단하는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과 비슷한 논점이다.

재범 사태를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 칭할 때, 그 파시즘은 어디서 온 파시즘일까? 2002년의 붉은악마 역시 파시즘의 유산이라고 본 박노자 등의 시각에 따른다면, 그것은 군부독재의 청산되지 않은 유산이다. '우리 안의 파시즘'을 논할 때 우리가 흔히 하는 생각도 그런 것이다. 우리는 파시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해 왔지만, 그것이 충분치 않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파시즘적 현상이 출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해는 지나치게 피상적이다. 역사적인 파시즘은 번듯한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면서 나타났다. 자신의 권리를 누리고 싶어 하는 대중의 욕망이 스스로 선택하는 체제가 파시즘이다. 이에 견주어 본다면 우리네 군부독재 정권들은, 비록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파시즘 흉내는 냈지만 기본적으로는 대중의 지지를 업지 못하고 무력으로 집권한 전체주의 정권들이다. 파시즘의 욕망은 오히려 시장주의가 군부독재의 통제에서 해방된 후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이 민주주의의 시대에 새로 생겨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본인의 불안정한 처지에 대한 분노를 외국인이나 여성 등 공격하기 쉬운 대상에게 치환하여 해소하고 싶은 것이다. 파시즘은 비록 계급적으로는 대자본을 보호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와 같은 노동자 대중의 뒤틀린 분노를 정치적으로 해소시켜 주는 체제일 게다.

정치적인 영역에서 그런 파시즘이 실현되지 않았음에도 문화적인 영역에서 파시즘적인 현상들이 그렇게 많이 나타났다면, 오히려 문제는 어째서 한국정치가 파시즘으로 이행하지 않느냐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 대답은 역설적으로 한국사회가 '충분히 민주화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실 한국 사회는 군소정당 출신의 선동가가 대중의 욕망을 뒤틀리게 대변하여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오를 만큼 민주적으로 열린 사회가 아니다.

박근혜는 촛불시위의 절정기에도 이명박을 버리지 않았다. 굳이 길바닥에서 대중을 만나는 모험을 하지 않아도 한나라당의 차기 대권주자를 노리는 것만으로 다음 대선을 기약할 수 있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보기 드물게 아웃사이더에서 대통령이 된 사람이었지만 그 역시 적어도 민주당의 틀 안에는 속해 있었다. 그의 재임기간에 노동자 투쟁이 일어나면 대통령과 지지자들은 '전투적 노동운동의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우리는 민주정권이니까 그런 방식으로 대항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다. 갈등주체들의 의사를 수렴하여 결정을 내리는 게 민주주의일 텐데, 그저 우리가 민주주의이므로 너희들은 갈등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던 셈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선거로 뽑힌 정권이니 퇴진을 논하지 말라는 MB 정부의 논리와 일치한다. 이렇게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저 대통령 한번 국회의원 한번 뽑을 권리만으로 다른 종류의 발언권을 억압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민주 vs 반민주(혹은 파쇼)'의 익숙한 도식 속에서 우리 사회는 민주사회이거나, 그렇지 않거나다. 참여정부 때는 민주사회였으므로 노동자의 소란이 불만이었고, MB정부는 반민주 정권이므로 반독재 투쟁을 해야 한다. 이 도식을 벗어나 말한다면, 우리는 87년부터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하지 않았으며, 더구나 MB정부 이후로는 그것이 후퇴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적인 영역에서 대의되지 못한 온갖 대중의 욕망들이 문화적인 영역에서 파시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문화적 영역의 파시즘적 현상들이 정치적 파시즘으로 옮겨 붙지 못하는 것이 민주화가 덜 된 탓이라면, 우리는 파시즘의 출현을 막기 위해 (MB처럼 무능한 권력자의 손에 국가를 맡겨 두더라도) 민주화를 반대해야 하는가? 재범 사건은 이 점에 있어 하나의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준다. 재범의 탈퇴를 부르짖던 그 사람들이, 막상 그것이 실제로 실현되자 그 섣부른 행태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실제로 권력을 지니게 되면 사람들은 그 권력을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 더 깊게 성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외국인 노동자를 혐오하는 이들이 실체가 있는 정치세력으로 등장했을 때엔 오히려 사람들의 자성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겠다. 그러나 그 요구의 과정은 재범에 대해 우리가 한 행위를 반성하는 문맥에서처럼, 사회문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우리들의 의사소통능력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과정이어야 할 게다. 주인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을 감당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뉴라이트 사용후기>,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 저자 한윤형
([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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