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왕은 자신의 자식이 왕이 되는 것을 고려해 일부러 개똥 같은 짓으로 욕을 산 거 들어보셨죠? 그래야 지 아들이 욕을 덜 먹거나 되레 더 찬양될 테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느끼시는 거 없으세요? 두 왕에 관한 얘기와 관련이 있는데.
점 위에 선 균등왕과 선 위를 점한 균점왕 얘기 아니더냐.
예, 그 짐작대로요. 균등왕은 균온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고 균점왕은 세상을 균배하고자 했죠. 그러거나 말거나 '균온한 세상'이라는 구절과 '세상을 균배'한다는 구절이 다를 게 있겠냐만요. 뭐 그러든 말든간에, 사실 중요한 건 이거지요. '그런 사상의 탈을 품은 그들의 할애된 시간이 비로소 군중들의 눈 앞에서 드러나기까지'의 총 과정이 구체적이든 추상적이든 형이상학적이든 형이하학적이든 원론적이든지 원초적이던지 재생적사고인 건지 뭐였던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가 되었었든 잘 아시는 대로 전후무후한 정법이었다는 실리로서는 필히 변함이 없죠. 사실상 '같은 바람이기에 먼저 시작한 근면한 자'와 '같은 바람임에도 늦게 시작한 게으른 자'. 즉 '균등왕과 균점왕'을 어울러 일컫는 칭호기 있다보니 전후무후가 아닌 전유후유겠지만요. 앞에도 시작된 자가 있고 뒤에도 시작된 자가 있으니까요? 예 그렇겠죠 . 뭐, 어찌저찌하든 실제로 그들의 바람은 그들의 소망대로 이루어졌죠. 하지만 균등왕은 균점왕처럼 이루진 못했어요. 오히려 이루어졌었다고 할 순 있겠죠. 그가 노쇠를 이기지 못하고 탄갈하기 전까지는. 건강했을 때는 어떤 자그마한 소란이라도 멎게 하는 철옹성 같은 기지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제깟 이야기를 소설처럼 과장한 그의 실록과 자서전에만 보아도 그의 업보는 까마득할 정도로 쌓여 전해지고 있지만 정작 균등왕 자신은 그런 노고 따위 자기 알 필요가 아니라는 듯 이젠 그저 바가닥하는 입소문마저도 악몽이라 치부하고 아예 건너뛰잖아요. 지금이든 전이든 옛적이든 언제든간에 저 따위가 지껄이면서 막 퍼트리는 소문조차요. 그쵸? 아, 명줄도 너무 삭아서 이젠 총고해할 수명도 없는 가엾은 임금. 어이 이리도 불쌍하여라. 값비싼 속세의 찌꺼기가 되어가니 곧 불에 스러지겠구나. 그쵸?
반은 맞았다 쳐줄 수 있는 말이긴 했으니. 그렇다고 다른 반쪽이 틀린 말도 아니니 한 번 다른 반쪽의 오류를 찾아 보거라.
음, 균등왕은 선하긴 했죠. 착했죠. 아무래도 균등왕은 자신의 대명사격인 임금말, '점 위에 선' 이라는 호칭을 '점 위에 선한'으로 갈든지 아니면 아예 탈적하든지 해야 했다고 봐요. 아마도 아저씨가 말하는 다른 반쪽의 오류는 제 생각상 제가 말한 '균등왕의 결함'이거나, 제가 말하지 않은 '균점왕의 완벽'이라 생각하는데. 아니면 제가 결함인가요? 아니면 제가 완벽인가요? 아니면 인물상으로인 '균등왕과 균점왕, 저' 셋 다거나 사상으로인 '결함과 완벽' 둘 다인 건가요? 아, 죄송해요. 말해놓고 이제 알았네. 반쪽이라 하셨으니 세 인물이 아니라 두 인물의 사상에 정리되어 있었겠네요. 반쪽은 짝수로밖에 나눌 수 없으니까. 어쨋든 그 '결함과 완벽, 두 사상'을 또 갈라보면 '결함 혹은 완벽 하나'만을 고집하고 있을 테니까, 여기서 또 한 번 더 가르면 '완벽'만이 남네요. 전 결함만을 얘기했었고 완벽은 얘기한 적도 없었으니. 완벽이 아저씨가 말한 오류고, 이른바 균점왕의 완벽함이 아저씨가 말한 오류라는 거죠?
.... 대체 어찌 하면 그런 즉답을 분사하는 거냐?
어라? 제 답이 맞지 않았나요? 균등왕의 결함에 오류가 있다 함은 제 말 모두 오류가 되어버리니 반쪽이 아니라 전체가 되어버릴 텐데요. 전 그래서.... 아, 맞는 답이었다는 거에요? 난 또. 제가 틀린 말을 한 줄 알았네요.
...... 균점왕은 늙어도 지략가였다. 책사의 의무를 꾸준히 행했지. 그래서 왕권을 질기게 잡고 있었다지만, 결국, 그는 군중들의 손에 의해 다시 무덤 속에 들어갔지. 그 과정에서 그가 남긴 그의 자국 중에 돌풍과 파도에도 건재히 남아있던 한 자취가 있었고, 그래서 그 자취를 보았었다. 멀리서도 보았고 가까이서도 보았다. 흥미로웠기 때문이었지. 그리고 그 흥미의 대상은 두려움의 대상으로 되기 충분했었다. 머리가 박살난 채 그 쪼개진 사이로 과즙처럼 진득한 게 확산하고 있었으니. 이상하게 느끼진 마라. 내가 말한 건 피는 아니라 피를 타고 있던 구더기들이니. 따라서 확산이 맞다. 벌레는 어디에서나 그 주위에 꼬여 있었고, 그것의 정체모를 용모의 마담격으로 독특하던 옷은 그 시신이 누구인지 알게 했지. 벌레가 파먹어 알아볼 수 없게 된 그의 용모를 대신하여.
균점왕이었죠?
.... 그래. 그는 두 가지의 오류를 범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을 균배의 대상으로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법치한 것'. 아니, 다시 말하자면 자신을 균배의 상, 쉽게 말해 자신을 자신이 키우는 관객들의 군상으로 매김하고자 하였겠지. 결국, 또 다른 오류는 '그 오류를 받아들이지 못해 스스로 절벽 위에서 돌진한 것'이고, 이것이 부인되지 않는 한 첫 번째 오류가 어찌되든지간에 첫 번째 오류의 두 번째 오류에 의해 부조리는 절대 없어지지 않으니.
흠, 저에게는 꽤 머다란 답감이네요. 두 번째 오류가 첫 번째 오류보다 크면 당연히 첫 번째 오류는 묻히기 마련 아닐까요. 아무래도 사는 것보단 죽는 것이 오래니까요. 기억하는 것보단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오래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큰 것과 많은 것을 혼동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는 못한 행동인 듯 싶구나.
어? 많기에 크고,적기에 작다 말할 수 있는 거 아닐련지요? 누구나 어릴 적엔 자유가 많기에 꿈이 크고, 점점 자라나 자유가 적어지면 꿈이 자유를 먹고, 자유가 다시 태어났을 때야 꿈과 몸은 삭아 있고, 길거리에 나도는 노옹/노파 거지들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때서야 삶이 적다 느끼기에 비로소 작아지는 거겠죠. 풍선처럼요. 풍선도 안에 뭐가 들어있느냐에 따라 막 뜨고 막 가라앉않아요? 균점왕의 시신은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였다 하셨죠? 풍선은 얼굴이 없잖아요. 작금 무덤에 묻힌 균점왕의 얼굴처럼. 혹은 절벽에서 자기 인생을 거른 채 추락한 그 시절 균점왕의 얼굴처럼. 그럼 풍선이 떨어진다는 건 얼굴이 제대로 으깨진 균점왕처럼 질 좋은 인생사를 섭취한 자들의 결말이라 믿고 싶어요. 아무리 저처럼 이리도 질 나쁘게 자라난 인생사를 편식하지도 못 한 채 그대로 먹고 자라왔다고 해도, 이런 날카롭게 솟은 절벽에서 발을 잘못 디디면 균점왕과 같은 꼴이 나는 건 순식간이겠죠. 이런 높은 데에서 떨어지면 얼굴이 그처럼 같은 꼴이 나는 데에는 변함이 없을 테니까요. 저같아도 뭐 등에 날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뭐, 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이런 곳에서 저리 아스라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면 제 몸과 땅의 몸이 격렬한 한 번간의 입맞춤 끝에 일어날 끝물이 눈 앞에서 싹 보이거든요. 객관적인 결말이 될 테니까요. 누구든 지금 제가 말한 입맞춤 속의 도화사가 되어 본다면, 제아무리 누구라 한들 사지조차 온전하리라 생각할 상상은, 도저히 그런 상상은 만들어 누구도 내지 못할 거에요. 하지만 적어도, 저만이라도 공상 속의 순교자가 구상의 날개를 달아줄 거라고는 믿고 있어요. 심히. 이런, 예상 외였는데 이리 말이 많아졌네요. 벌써부터. 물론 제가요. 안녕히 계세요. 그동안의 보답으로 이번만. 단 이번만. 제 명줄을 편식할 게요. 아까만 해도 균점왕 흉내라도 내보고는 싶었거든요. 지금도요. 같잖은 얘기 들어주셔서 고마웠어요.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