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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그 어느날에
게시물ID : readers_246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방울성게
추천 : 6
조회수 : 512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6/04/08 22:05:23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kfeZZ
 
 
 
그는 눈을 감고 잠자코 귀를 기울인다. 아주 잠깐만 눈을 감으면 주변의 것들이 천천히 흐려지기 시작한다. 몰입에 걸리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증거다. 곧 바람소리가 옅어지고, 그늘 사이로 떨어지는 햇볕이 따뜻해지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느껴온 것임에도 아직 낯선 기운이 남아있다. 그리고 막, 백 번째 타임워프가 시작됐다.
 
 
눈을 뜨는 시간은 거의 비슷하다. 오후 한 시에서 두시 즈음. 타임워프 관계자는 본인이 가장 바라는 시간대일 거예요, 하고 이야기했다. 어째서 그가 그 시간대를 바랐는지, 팔십이 넘는 그는 기억할 수 없다. 다만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좋소. 그가 했던 대답만 선명하게 남아서 그를 비출 뿐이다. 자, 이제 그는 고등학생이 되어서 주위를 바라본다. 기억 속에 아련하게 남은 교실의 풍경이다. 그는 언제나 그랬듯 손을 든다. 선생님, 양호실 좀 다녀와도 될까요.
 
 
양호실로 가는 발걸음은 가볍다. 이후의 60년이 넘는 세월조차도 지금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천천히 걷다가, 이내 나이를 잊은듯 뛰기 시작한다. 심장의 울림이 조금씩 커져간다. 복도의 끝까지 내달려, 서른 여덟개의 계단을 빠르게 내딛고, 아랫층으로 내려가면 전혀 다른 느낌의 햇볕이 쏟아진다. 그는 더이상 늙지 않았다. 세 번쯤 쉼호흡을 해야 하지만 오늘은 더욱 진정이 되지 않아서 두 번이나 호흡을 가다듬는다. 자, 그리고 문을 연다.
 
 
그런데
 
 
그녀는 있다. 그의 입 꼬리는 늘 그랬듯 올라갔다가, 이번에는 힘없이 떨어진다. 그녀가 앉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두 걸음을 뒤로 물러나서 들어온 곳을 확인한다. 제 1음악실. 그는 고개를 살짝 젓는다. 벌써 백 번째였다. 역시 잘못 들어왔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치매가 온 모양이지. 그는 쓸쓸하게 웃으면서 다시 정면을 바라본다. 그녀는
 
 
그가 올줄 알았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 여전한 교복으로, 여전한 리코더를 들고, 여전한 눈빛을 보내면서. 그는 어렵사리 입을 연다. 처음 타임워프를 했을 때보다도 더 떨리는 심장을 움켜쥐고. 저기, 음악부에 가입하려고 하는데요. 그녀는 대답한다. 그럼요.
 
 
네?
그럼요. 가입하려고 한다면서요.
 
 
그는 숨을 삼킨다. 그러면서 조금 당황해서 그녀를 쳐다본다. 타임워프는 이미 상용화된 지 오래지만, 세부사항은 바뀐 적이 없다. 그는 그간 주의사항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고, 구십 아홉 번의 타임워프를 경험했다. 과거의 사람이 타임워프를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곧 그는 그 사실을 잊는다. 마지막 여행이었고 그녀는 여전한 미소로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육십 팔 년을 건너온 과거에서 천천히 눈을 감는다.
 
 
이번 여행은 어떠셨습니까.
어땠냐고 물어도, 늘 똑같지요.
 
 
여행에서 돌아온 그가 대답한다. 눈 앞의 청년은 아무렴요, 하고 웃어보일 뿐이다. 그러면서 옆의 침대에 누운 여자에게 말한다. 어머님도 일어나셔야죠. 청년의 어머니인 듯한 여자는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는 그 미소가 낯이 익다고 느낀다. 그는 잘 움직이지 않는 휠체어에 앉아 리모컨을 잡는다. 이제는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움직이는 게 가능하다. 병실을 나서면서 진료기록이 쓰인 종이를 본다. 병명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치매라 쓰여있다. 그는 속으로 웃는다. 나는 아무것도 잊지 않았는데. 뒤를 바라보자 여자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다. 홀가분한 바퀴로 병실을 나가려고 하지만 어쩐지 마음에 걸려서 뒤를 돌아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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