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인육사건은 1981년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사건입니다.
당시 프랑스에서 유학중이었던 사가와 잇세이가 네덜란드 유학생을 사살하여 그 고기를 먹었습니다.
사가와 잇세이
태어났을때는 아버지의 손바닥에 올라올 정도의 미숙아였으므로 양친은 과연 아이가 몇세까지 살아있을까 걱정했으나 허약체질이긴 했어도 순조롭게 성장을 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이기도 했고, 문학에서는 '폭풍의 언덕', '전쟁과 평화' 외에 셰익스피어에 흥미를 보였으며 음악은 베토벤이나 헨델을 즐겨 듣는 예술소년이었습니다. 소학생 무렵, 어린 아이를 유괴해서는 솥에 넣어 쪄먹는 마법사 이야기를 숙부에게 여러 차례 들었으므로, 인육을 먹는 것에 흥미를 가졌다고도 하며 고등학생때는 정신과 의사에게 종종 상담을 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가와는 일반적 상식으로 보면 이상한 성벽을 종종 드러내곤 했다고 합니다. 대학생 시절 인근에 사는 독일 여성을 먹을 목적으로 무단으로 자택에 침입, 습격하다 체포되었습니다. 당시 사건은 부친의 합의금에 의해 고소가 취하되었었습니다.
1977년에 프랑스로 유학, 파리 제 3 대학에 재적해 있었지만, 1981년 6월 11일,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유학을 하고 있던 사가와 잇세이(당시 32세)는 친구인 네덜란드 여학생(당시 25세)를 집으로 불러 라이플로 쏴 죽였습니다. 사가와는 옷을 벗기고 시간을 한 후 유체의 일부를 생으로 먹었고, 유체를 해체한 사진을 촬영하고 유체의 일부를 프라이팬 등으로 요리해 먹었습니다.
6월 13일, 남은 유체를 수트 케이스에 넣어 인근 연못에 버리려다가 목격당해 도망, 목격자가 유체를 발견하여 경찰에 통보하여 2일후 체포되었습니다.
사가와는 범행을 자백했지만, 정신감정 결과 재판에서는 심신상실상태에서의 범행이었다고 판결했고, 불기소 처분으로 무죄가 되어 프랑스 아린 콜랑 정신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가 병원에 있는 동안 인육사건을 영화화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사가와는 극작가에게 의뢰했고, 이 작가는 이것으로 쓴 소설판 '사가와에게서의 편지'로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혐오스러운 사진이라 링크로 남겨둠..)
먹고 남은(?) 다리
1984년 귀국했고 동경도립 마츠자와 병원에서 1년간 입원한 후 퇴원했습니다.
퇴원 후 소설가가 되었지만, 사건에 관해서 사가와는 정말로 심신상실이었는가, 올바른 사회적 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적 의견이 있습니다. 양친도 이 사건 결과 부친은 회사를 퇴직하게 되었고 모친은 신경증을 잃게 되었습니다.
저서
http://media.daum.net/foreign/japan/view.html?cateid=100022&newsid=20090901113704255&p=segye
실제 시체 사진(혐오주의)
http://k.daum.net/qna/view.html?category_id=QGL&qid=2aRRi&q=%B3%B2%C4%A3%C0%BB%C0%AF%C8%A4%C7%CF%B4%C2%BF%A9&srchid=NKS2aRRi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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