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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와 잇세이
게시물ID : humorbest_2471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럼™
추천 : 19
조회수 : 3128회
댓글수 : 9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9/09/26 19:33:19
원본글 작성시간 : 2009/09/24 16:37:36


사가와 잇세이(Issei Sagawa)

1949년 고베에서 태어났다. 미숙아로 태어난 그는 의사로부터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일본 내에서 입지전적인 사업가로 알려진 그의 아버

지 사가와 아키라는 불쌍한 아들을 위해 무엇이든 해주겠다는 결심을 한다. 의

사의 말과는 다르게 그는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의 발육 성

장은 그다지 좋지 않아 다 자란 그의 키는150cm도 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신체에 상당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으며 상대적으로 체구가 큰 여자들을

좋아하게 되었다.이때부터 그는 서양 여자들에게 특이한 판타지를 품게 됐는

데, 바로 자신의 식탁에 여자들을 요리해 올리는 것.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

났던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이상형의 여자를 발견한다. 잇세이의 클래스메이

트였던 네덜란드 여성 르네하테벨트(Renee Hartevelt). 이들은 서로 무척 가까

웠는데 연인 사이였다기보다는 학문을 함께 배우며 토론하던 동성적친구였다

잇세이에 의해 살해당한 르네 하테벨트.
굉장한 미인이었던 그녀는 잇세이에 의해
눈 뜨고 보기 힘을 정도로 참혹한 모습의 사체로 전락한다.

어느날 잇세이는 자신의 오랜 판타지를 실현하기 위해 르네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권총으로 살해한다. 그리고, 그녀의 신체 부위를 잘라내었으며 그녀가

녹음해 준 시를 들으며 그녀를 뜯어 먹었다. 또한 요리를 위해 찢겨진 그녀를

시간(屍姦)하기도 했다. 그는 르네의 시체를 다 먹지 못하고 사체를 여행용 가

방에 넣어 공원에 버리려 했다. 이 와중에 경찰에발각, 가택 수색 끝에 체포된

다. 그의 집에는 피해자의 것으로 보이는 인육과 프라이 팬에 요리된 신체 부

위가 널려 있었다.

경찰에 체포된 잇세이.
그는 자신의 범죄를 단 한 순간도 뉘우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정신병 판정을 받은 그는 병원에 수감되어 있다가 여러가지이유로

(재계에 영향력이 있던 아버지의 노력 등) 일본으로 돌아오게 되고 일본 정신

병원에서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는다. (그는 국지주의 범죄 규정에 따라 일본에

서마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렇게 풀려난 그는 일본내에서 일약 유

명인사가 되어 자신의경험을 담은 책을 출판해 큰 돈을 번다. 시간이 지나며

그는 점차 잊혀져 갔고 아버지의 사망 후 재산을 상속받은 어머니는 살인마아

들에게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아직 살아 있으며, 현재 일본

의 일간지에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그는 한때 일본 매스컴의 주목을 받던 인기인이었다.
당당한 자세와 지적인 언행이 그의 인기 비결이었다.





파리의 인육사건은 1981년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사건입니다.
당시 프랑스에서 유학중이었던 사가와 잇세이가 네덜란드 유학생을 사살하여 그 고기를 먹었습니다.

사가와 잇세이

태어났을때는 아버지의 손바닥에 올라올 정도의 미숙아였으므로 양친은 과연 아이가 몇세까지 살아있을까 걱정했으나 허약체질이긴 했어도 순조롭게 성장을 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이기도 했고, 문학에서는 '폭풍의 언덕', '전쟁과 평화' 외에 셰익스피어에 흥미를 보였으며 음악은 베토벤이나 헨델을 즐겨 듣는 예술소년이었습니다. 소학생 무렵, 어린 아이를 유괴해서는 솥에 넣어 쪄먹는 마법사 이야기를 숙부에게 여러 차례 들었으므로, 인육을 먹는 것에 흥미를 가졌다고도 하며 고등학생때는 정신과 의사에게 종종 상담을 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가와는 일반적 상식으로 보면 이상한 성벽을 종종 드러내곤 했다고 합니다. 대학생 시절 인근에 사는 독일 여성을 먹을 목적으로 무단으로 자택에 침입, 습격하다 체포되었습니다. 당시 사건은 부친의 합의금에 의해 고소가 취하되었었습니다.

1977년에 프랑스로 유학, 파리 제 3 대학에 재적해 있었지만, 1981년 6월 11일,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유학을 하고 있던 사가와 잇세이(당시 32세)는 친구인 네덜란드 여학생(당시 25세)를 집으로 불러 라이플로 쏴 죽였습니다. 사가와는 옷을 벗기고 시간을 한 후 유체의 일부를 생으로 먹었고, 유체를 해체한 사진을 촬영하고 유체의 일부를 프라이팬 등으로 요리해 먹었습니다.


6월 13일, 남은 유체를 수트 케이스에 넣어 인근 연못에 버리려다가 목격당해 도망, 목격자가 유체를 발견하여 경찰에 통보하여 2일후 체포되었습니다.

사가와는 범행을 자백했지만, 정신감정 결과 재판에서는 심신상실상태에서의 범행이었다고 판결했고, 불기소 처분으로 무죄가 되어 프랑스 아린 콜랑 정신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가 병원에 있는 동안 인육사건을 영화화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사가와는 극작가에게 의뢰했고, 이 작가는 이것으로 쓴 소설판 '사가와에게서의 편지'로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혐오스러운 사진이라 링크로 남겨둠..)

먹고 남은(?) 다리

1984년 귀국했고 동경도립 마츠자와 병원에서 1년간 입원한 후 퇴원했습니다.

퇴원 후 소설가가 되었지만, 사건에 관해서 사가와는 정말로 심신상실이었는가, 올바른 사회적 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적 의견이 있습니다. 양친도 이 사건 결과 부친은 회사를 퇴직하게 되었고 모친은 신경증을 잃게 되었습니다.




저서
http://media.daum.net/foreign/japan/view.html?cateid=100022&newsid=20090901113704255&p=segye



실제 시체 사진(혐오주의)
http://k.daum.net/qna/view.html?category_id=QGL&qid=2aRRi&q=%B3%B2%C4%A3%C0%BB%C0%AF%C8%A4%C7%CF%B4%C2%BF%A9&srchid=NKS2aRRi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C%82%AC%EA%B0%80%EC%99%80_%EC%9E%87%EC%84%B8%EC%9D%B4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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