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국의 반대가 개방이라면 일본을 제외한 비서구에서는 대부분 상업개방의 수준에 머물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청나라의 양무운동도 일정부분 서구의 제조업을 도입하기도 하였지만 결국 상업개방이 제조업성장에 비해 훨씬 빨라 국부이탈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경우 전통적인 영국식 자본주의화와는 달리 농업자본가가 아닌 상업자본가가 산업자본가로 전환되는 경향을 보이며 상업개방으로 인한 수탈이 제조업성장과 조선이라는 시장확보를 통해 상쇄 역전되는 모습을 보였죠.
이러한 대규모 자본성장의 여지가 없었던 상황에서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조선으로서는 당시를 기준으로 최선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근대화를 상업개방과 등치시키는 것보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자본주의화라고 정의했을때,
나폴레옹전쟁시기 대륙봉쇄령으로 영국제품의 도입저지로 프랑스의 산업화가 시작되었듯이,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지속되면서 당시 상업개방을 주된 내용으로하던 조약체결과는 무관한 신속관계였던 청나라를 활용하여 서구기술을 도입하고 지배세력이 아니던 상업자본을 강력한 중앙집권력으로 산업자본으로 전환한 후 서구와 접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전혀 현실성 없는 것도 아닌것이, 비록 일본이 미국을 필두로 서구국가들과 조약을 체결하였지만 최대지분을 차지하고 있던 미국이 남북전쟁 후처리와 서진운동 등 자국의 산업혁명에 더 큰 힘을 쏟고 있었던 터라 당장의 시장수탈은 면할수 있었고 일본은 국내정치사정을 정비하고 중앙집권력을 이용하여 상업자본을 산업자본으로 빠르게 전환시켰죠.
즉 일본-미국의 관계와 유사하게, 조선도 청이 막 양무운동으로 근대화를 시작하고 내부근대화에 정신이 팔려있던 1880년대까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에게 쇄국정책을 유지하면서 산업자본을 성장시킬 기회가 있었지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