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대 공신' 가운데 한명이라고 하더군요.
정율성은 한국인 출신(광주시 출생)으로 한국의 항일 독립운동가이면서 중국의 음악가입니다. 본명은 정부은.
1930년대 초반 중국으로 망명할때, 약산 김원봉의 의열단에 가입, 조선혁명간부학교 나와 수료합니다.(중국에서 '야사'로 알려진 얘기인데, 정부은의 이름 '율성'을 지어준 사람이 김원봉이라고 하더군요. '작곡 율'의 '이룰 성'을 따서, '음악으로 성공하라'고 김원봉이 이름을 지어줬다는것.)
이후 조선민족혁명당 당무를 보면서 상하이와 난징을 오가며 음악공부를 하고 다녔고, 중일전쟁 발발 후. 김원봉의 조선의용대에서 활동하다 최창익따라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로 옌안으로 이동해 팔로군과 같이 활동하게 됩니다. 이후 조선의용군 소속으로 팔로군과 같이 항일 활동하면서 여러 음악 작곡들을 남겼다고 합니다.(대표적으로 팔로군 행진곡, 옌안송 등. 이 가운데 팔로군 행진곡은 오늘날 중국인들에게 매우 인기많은 노래.)
2차 대전 이후 중국 공산당쪽에서 활동하면서 중국에서 지냈다고 하더군요. 1947년~1951년 기간 북한에 머물면서 북한정권 수립에 참여하기도 했죠.(이 때문에 오랜기간동안 그의 이름은 금기시 되다 시피했죠.)
1951년 중국으로 돌아가 작곡가로 활동하였는데, 문화대혁명 시기에 협력하지 않은 죄로 시련을 겪기도 합니다. 말년에는 복권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광주광역시에서 적극적으로 기념사업 관련 지원을 하고있더군요..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51217195601779)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가는곳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