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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파의 이야기5
게시물ID : gomin_2773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메이파
추천 : 0
조회수 : 18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2/03 11:30:33
너무 오랜만에 오네요. 혹시 제 글을 꾸준히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었다면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직장생활도 하고 장도 보고 대학 준비도 하다보니 
시간이 매번 부족하네요. 

<2부 북경편>

한국에 돌아와 한 달 정도가 흘렀습니다.
간간히 메일 등을 통해 아이들과 연락을 취하기는 했지만 점점 뜸해질 즈음,
세 명의 남자는 다시 인천공항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저와 남동생, 그리고 어머니의 친구 아들이자 우리 모임 중 한 명인 제 친구 한 명이었죠.
저희가 인천공항에서 만난 것은 북경에 가기 위해서였죠.
오랜동안 여러 유학사를 통해 나름의 정보를 수집했고 간간히 어머니들끼리
북경에 다녀오기도 하면서 고른 학교였습니다.
어머니도 무석 때의 일이 마음에 걸렸는지 정말 열심히 심사숙고를 하셨습니다.
성격만 다정다감하면 정말 좋은 어머니인데, 하면서 저는 이 때부터 어머니에 대한 앙금을
조금씩 누그러뜨리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성격적으로는 지나치게 가혹한 면이 있었던 어머니지만 사실 우리에 대한 애정과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아직 어머니를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조금만 더 어렸다면 솔직하게 어머니에게 고맙습니다 라고 말했을 것이고
조금만 더 나이가 들었다면 내가 얼마나 바보같은 녀석이었는지 깨달았겠지만
십대 후반인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워진 저는 그저 남동생과 한국에서 놀기만 하다가
별 준비도 없이 북경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무석에서의 일로 저희는 한국인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하게 되었고,
특히 유학을 하며 한국인끼리만 모여있다는 것이 여러모로 좋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된 것은 북경의 학교에 온 지 이튿날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북경에서도 다소 도심지와는 먼 곳에 있었던 이 학교는 전의 학교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학교 내에 초목이 더 많아서 훨씬 아늑한 분위기었습니다.
더불어 기숙사는 전에 있던 곳과는 달리 철저히 한국인들끼리만 쓰고 있었는데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제대로 된 책상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저희는 8개월가량 있으면서 교실 이외에는 공부를 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었죠.
4인실인 기숙사는 방마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설적인 부분은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며 첫 수업을 받게 되었는데,
첫날부터 폭력사태를 눈 앞에서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유학생들 중에서도 굉장히 호전적이고 개념이 없는 학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남동생과 동갑이었던 그 학생이 수업 중에 말을 마음에 들지 않게 했다는 이유로
다른 학생을 피가 튀도록 때리는 일이 제 바로 앞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수업 첫날부터 이런 일을 겪게 되자 저희는 이 학교에 대한 기대감은 싹 접어버리고
냉정히 이 학교에 대해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분명 면학이라는 점에서 전의 학교보다는 나은 환경을 갖추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내부를 채우는 한국 학생들의 인성은 그다지 칭찬할 만한 인간이 못 되었죠.
인간성이란 면에서는 무석의 학생들이 훨씬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거긴 뭘 할만한 것도 없기도 했긴 했지만요.
이렇게 냉정하게 학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우리 셋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기선 공부만 한다. 누구랑 친하게 지낼 필요는 없다.
우린 중국을 배우기 위해 온 것이지 중국에서 한국인들의 친목과 탈선놀이에
굳이 동참할 필요는 없으니 우린 우리끼리만 다닌다.
이것이 제가 제안한 방식이었습니다.
마침 우리는 기숙사도 우리 셋끼리만 쓰고 있었고
만일 뭔가 필요할 때는 한국 유학사 원장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방침을 정했습니다.

북경에서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 뒤로 집에서는 자주 연락이 오곤 했었습니다.
당연하지만 걱정을 많이 하셨죠.
어머니도 어머니지만 여동생과 통화하는 것이 매우 즐거웠습니다.
이제 9살이 된 여동생이 무언가 말하는 것이 수화기 너머로 전해질 때마다 
여동생의 얼굴이라던가 몸짓이 떠올라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통화라는 것이 반드시 그렇게 훈훈한 모습만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전에도 말했든 우리에 대한 기대와 스스로의 자존심이 너무 강했고
이번에도 굉장히 무리한 주문을 하셨습니다.

"HSK(Hanyu Shuiping Kaoshi, 중국어 능력시험이며 특히 중국 각 대학에서 유학생을
평가하는 주요 항목 중 하나.)말이다. 최소 5급 정도는 따라."
"아, 네. 언제까지요?"
"이번 학기 내로."
"...네? 이번 학기는 이미 2달도 남지 않았는데요? 그리고 저희는 아직까지 한번도
HSK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요. 무석에서 시킨 적도 없는데요."
"하지만 무석의 인간들이 너희를 주목하고 있어. 그러니 따주지 않으면 
어머니 자존심이 많이 구겨진다."
 
지금은 HSK의 시험이 4급부터 시작해 6급이 최상등급이 되었고 시험 구성도 그 때와는
많이 달라졌으며 각 등급의 시험을 따로 쳐야만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당시의
HSK는 초급(3급, 이건 거의 아무도 안 봅니다.), 중급(3급~8급), 고급(9급~11급)의
세 단계로 나뉘어 있었고 대학에서 요구하는 등급이 5~6급 정도일 때였습니다.
어느 정도 중국에서의 생활이 익숙하고 HSK공부를 꾸준히 했다면 무난히 딸 수는
있는 등급이었지만, 저희는 무석에서 생각보다 중국어를 할 기회가 많지 않았고,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는 했지만 그리 흡족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죠.
솔직히 기본실력만 따진다면 3급도 딸 수 있을까 말까한 상황이었습니다.
셋 중에 그나마 가장 실력이 나은 제가 이런 정도이니 나머지 둘에겐 더 어려운
미션이었습니다.
남동생의 경우 한국에서 공부보다는 운동이나 싸움을 했던 그 성향이 아직 남아서
공부에 아직 그리 흥미는 없었고,
다른 친구의 경우는 아예 전의 무석에서도 거의 맨 뒷 등수를 차지하던 친구라서
어머니의 말씀을 듣다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저는 한국에서도 어머니에게 실망만은 안 시키는 아들이었고
그래서 일단 해 보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만일 한 달 남짓한 시간 내로 HSK 5급을 따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먼저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HSK 교재가 있어야 했습니다. 일반적인 중국어 회화를
위해 배우는 지금의 수업과 교재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공부를 할 시간도 많이 필요했습니다. 매일 학교 수업에 휘둘리면
HSK공부를 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어지는 것은 뻔했습니다.
게다가 하다못해 수업 분위기도 그리 차분하지 못하고 선생들이 애들 자제시키다가
한 세월 다 보내는 일이 일상이라서 기초적인 실력을 더 키우기 위한 취지로도
수업에 의존하는 것은 그리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무석에서도 다 배운 내용으로
가르치는 기초중의 기초수업이라는 점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수업시간에 양해를 구하고 HSK공부를 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듯했습니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다른 두 아이들에 비해 제 초조함이
극에 달했습니다. 남동생이나 제 친구는 '에이 불가능해 그런거.' 라는 분위기었죠.
그래도 최대한 해보자는 제 생각에는 동의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다니며 늘 강조한 건
근성이었으니까요.

그 때부터 우리는 처절하게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HSK교재조차 없었던 우리는
그 폭력사태의 피해자인 친구가 마침 그 사건 이후에 우리와 한 기숙사를 쓰게 되어
이 친구를 통해 교재를 살 곳을 찾았습니다. 이 친구의 성격은...솔직히 안드로메다에 
개념을 좀 많이 두고 온 듯했지만 북경 여기저기를 워낙 많이 쏘다니던 
친구라서 그런지 별별 희한한 장소를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인적조차 뜸한 곳에
외국인 전용 HSK서적판매를 하는 서점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죠.
게다가 덕분에 오도구나 왕징, 왕푸징 같은 도심의 교통편 및 주요 이용처 등을
알게 되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습니다. 만일 그대로 고립되어 우리끼리 해결할 생각만
했었다면 크게 어려움을 겪었을 겁니다. 남동생 또래인 그 친구와 지내는 내내 
그 친구의 성격은끝내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어쨌든 많은 도움을 받아 참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주말동안 HSK공부를 위한 준비를 마친 우리는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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