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이 이상야릇하다. 효성의 비리를 수사한 검찰의 행보가 이상하고, 의혹 제기에 대처하는 효성의 행태가 야릇하다. 보고 또 봐도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다.
검찰이 2007년 말에서 2008년 초 사이에 보고서를 작성했다. 효성과 관련된 범죄 첩보 10여 가지를 모은 보고서였다. 하지만 덮었다. 효성건설 임원의 사기 및 효성 건설부문의 70억원대 비자금 조성 사실만 확인하고 수사를 종료했다.
부실수사였다. 수사권을 갖고 있지 않은 네티즌이 밝혀낸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한 엉성한 수사였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주)효성 사장이 2002년 미국 LA의 450만 달러짜리 호화 빌라를 구입한 사실을 네티즌이 밝혀냈는데도 검찰은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검찰이라고 해서 완벽한 건 아니라는 변명, 천라지망을 펼쳐도 빠져나가는 미꾸라지는 있다는 변명은 성립되지 않는다. 검찰의 보고서에 따르면 턱밑에까지 갔었다. 효성그룹이 효성아메리카 등 해외 법인을 경유해 수출을 하면서 해외 법인들에 수천만 달러를 과잉 지급하는 방법으로 재산을 해외로 유출한 의혹이 있다며 외국환거래법 등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내용이 보고서에 적혀 있었다.
캤으면 나왔을지 모른다. 효성아메리카를 추적했으면 네티즌인 안치용 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호화 빌라 구입 사실을 폭로하기 전에 먼저 확인했을지 모른다. 해외 비자금 조성 사실과 연관돼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포착했을지 모른다. 조현준 사장이 출처 불명의 돈으로, 그것도 450만 달러에 이르는 거액을 현찰로 지급하며 호화 빌라를 사들인 사실을 포착했을지 모른다. 국외체류자에 한해 30만 달러 한도 내에서 해외 부동산 구입이 허용되던 그 때, 국외체류자도 아닌 조현준 사장이 30만 달러의 15배에 이르는 금액으로 해외 부동산을 사들인 연유와 그 위법성(외환거래법 위반)에 주목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검찰은 하지 않았다. 안치용 씨처럼 등기소 등에서 자료를 찾아보기만 했어도 포착했을 사실을 그냥 지나쳤다. 검찰의 효성 보고서에 이름이 올랐던 효성아메리카의 한 상무가 조현준 사장에서 조현준 사장이 세운 법인으로 호화 빌라 명의가 바뀌는 과정에 개입했는데도 검찰은 그냥 지나갔다.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눈 뜬 장님이 아닌 한 누구라도 부여잡을 법한 실마리를 두 눈 멀건이 뜨고 놓친 검찰의 행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 효성 관련 글이 블라인드 처리된 안치용 씨의 블로그 ⓒ시크릿오브코리아
효성도 그렇다. 지난 5일 안치용 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조현준 사장의 호화 빌라 구입 사실을 폭로하자 다음날 인터넷 포털 '다음'에 삭제를 요청했다. 사실이 아닌 내용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주)효성의 이름으로 이같이 요청했다.
하지만 말을 바꿨다. 어제 MBC '뉴스데스크'에 의해 호화 빌라 구입 사실이 확인보도 되는 과정에서 효성은 "조 사장 개인 문제여서 아직 사실 확인을 못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오늘 '한겨레'에 의해 또 다시 확인보도 되는 과정에서 "빌라 구입 등은 사실이지만 조 사장 개인의 문제"라고 밝혔다.
효성은 이렇게 말을 바꾸었다. 처음엔 '허위 사실'이라고 했다가 나중엔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처음엔 (주)효성의 명예를 거론하더니 나중엔 조현준 사장의 개인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불과 이틀 사이에 손바닥 뒤집듯 주장을 바꾸는 효성의 행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달리 방법이 없다. 의지를 살피는 수밖에 없다. 검찰은 수사할 의지가 없었고, 효성은 덮을 의지가 충만했던 것은 아닌지 되짚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살피는 게 아니라 기필코 캐야 한다.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이 "수사할 만큼 다 했다"고 반박한 마당이니, 그리고 회사 문제로 받아들였다가 개인 문제로 좁힌 효성의 속사정이 갈수록 궁금해지는 터이니 반드시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