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 벌써 한 달 됐나요?
법정에 나갔더니, 지만원씨가 와 있더군요. 변호사 없이 모든 소송을 혼자서 하고 있었습니다. 걸어놓은 소송이 몇 건인데, 그걸 다 일일히 쫓아다니려면, 휴..... 좀 안쓰럽더군요. 원래 이 분이 꽤 합리적인 분이었지요. 미국에서 막 귀국했을 때에는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쓰기도 하고, 인물과사상에도 기고를 했었지요. '시스템'이라는 것도 당시로서는 꽤 괜찮은 생각이었고....미국식 합리주의를 배워와서 안보와 국방 문제에 대해서 뇌 없는 수구꼴통들의 시각과는 완전히 다른 시각을 제시하기도 했었고... 그랬던 분이 점점 이상해지더군요.
안보와 국방에 관해 합리적 시각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보수쪽은 모두 꼴통들이고, 진보쪽은 그쪽에 별 관심이 없고... 그러다 보니 나름대로 합리주의자가 대한민국에서는 설 땅을 찾지 못했던 거죠. 안타까운 일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국방과 안보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자기 수준을 수구꼴통의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사실은 어떤 면에서 비극적이기까지 합니다.
판사님 앞에서 설전을 벌였습니다. 백분토론 분위기였다고 하나? 판사도 은근히 즐기는 듯..... 둘이 서로 논쟁을 하도록 내버려두더군요. 그 자리에서 제가 좀 발라드렸습니다. 워낙 소송 자체가 논리적으로 무리가 있는 데다가, 변명을 하는 도중에 외려 자기한테 불리한 진술을 하더군요. 그걸 제가 놓칠 사람이 아니고... "보세요, 지금 지만원 박사님 스스로 문근영 양까지도 공격했다는 것을 제 입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쯤에서 판사님이 얼굴에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싸움을 끝내더군요. "판결은 10월 8일, 두 분 다 법정에는 안 나오셔도 됩니다."
법정을 나가면서 지만원씨에게 남은 소송에서도 되도록 좋은 판결을 얻기를 기원한다고 하면서, 한 마디 덧붙였지요. "사실 저도 고소하려면 할 거 많거든요. 그런데 저는 지박사님 고소 안 할 겁니다." 서로 좋은 분위기에서 헤어졌습니다. 논리적 이유라기보다는 다분이 감정적 이유에서 고소를 했으니 당연한 결과지요. 한 군데인가 빼고 나머지 줄줄이 패소를 하는 모양이던데, 그때 거국적으로, 심지어 보수진영에게까지 비난을 받은 게 큰 상처가 된 모양입니다. 이기려는 소송이라기보다는 자기 치유적 소송이랄까?
너무 극단적이어서 그렇지, 이 분, 인간적으로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발언으로 충분히 사회적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번 패소건으로 다시 비아냥거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건 불필요한 공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