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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하고 싶어” 미군장병들 효순·미선양 집 4년째 봉사
게시물ID : sisa_248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수호이
추천 : 12
조회수 : 405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06/10/20 03:58:26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해마다 찾아오는데 뿌리칠 수도 없고…. 그래도 고맙게 생각합니다.”

지난 18일 오전. 2002년 6월 경기 양주시 광적면 도로 갓길에서 훈련 중이던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신효순양(당시 14세)의 아버지 신현수씨(53)는 미군들에게 밭일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들이 농사일을 돕겠다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찾아온 때문이다.

밭 한쪽에서 말없이 잡초를 뽑던 어머니 전명자씨는 “아이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미군부대측에 오지말라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미2사단 소속 장병 25명과 인근 한국부대 장병 15명은 이달 초 신씨가 낙상사고로 허리를 다쳐 농사일을 미루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고 했다.

미군 장병들은 효순양 집 근처 500여평의 밭에서 익은 고추와 가지를 땄다. 일부는 서툰 솜씨로 김매기를 했고, 쓰러진 고춧대를 세웠다. 폐비닐도 거두고 기울어진 비닐하우스의 받침대도 손질했다. 금방 이들의 이마와 얼굴에 구슬땀이 흘렀다.

점심은 미리 부대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효순양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생각에서다.

한 미군 장병은 “장갑차 사고를 속죄하고픈 마음으로 효순양 집 일손 돕기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미군은 “우리들을 맞이해 준 효순양 부모에게 오히려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미군 장병들은 장갑차 사건 이듬해인 2003년부터 자발적으로 모여 해마다 봄·가을에 효순양 집과 함께 숨진 심미선양의 집을 각각 방문해 농사일을 돕고 있다 

이런 일도 있군요. 훈훈하고..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위의 사고는 2002년 6월쯤에 일어났고, 서해교전도 그 쯤 일어났었습니다.
그런데 국내 반응이 어이가 없더군요.
여학생 2명의 죽음은 사고이고, 서해교전때는 북한군의 고의적 도발이었습니다.
여러 단체에서 서해교전보다 장갑차사고가 더 큰일처럼 선동하고, 촛불시위까지 열던 그 때를 저는 이해할수가 없습니다. 서해교전 때 전사한 장병들을 위해서도 촛불을 밝혀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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