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람들은 백제(百濟)를 ‘구다라(くばら)’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백제라는 한자를 일본말로 읽으면 ‘하쿠사이’가 되며, 고구려는 ‘코우쿠리’, 신라는 ‘시라기’라고 본래 발음과 비슷하게 부르면서 왜 백제만은 ‘구다라’가 되었을까요?
한 일본인은 이에 대해 “‘구다라나이(くだらない)’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 뜻은 ‘시시하다’라는 뜻입니다. 원래는 ‘백제가 없다.’라는 말인데 ‘구다라나이’는 백제 것이 아닌 것은 ‘좋지 않다, 시시하다’ 이런 뜻이 아닐까요? 고대 일본인들이 백제에서 들어온 것, 백제식 물건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그런 표현이 생겼겠습니까? 백제의 선진 문물을 동경했던 고대 일본인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학문으로 입증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럴듯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종종 일본인들이 백제 또는 백제 문화에 대한 경외심을 여과 없이 드러낼 때면 저으기 놀랄 때가 많다.
일본 교토 부 오쓰 시에는 오우미 신궁(近江神宮)이라는 고대 백제와 인연을 지닌 사당이 있다. 660년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에 구원군을 파병한 일왕 ‘덴지천황(天智天皇·626~672)’을 모신 사당이다. 그는 일본으로 망명한 백제인들에게 많은 땅을 내주며 정착하게 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일본인들은 덴지 천황에게 ‘백제 마니아’라는 별칭을 달기도 한다.
오우미 신궁은 그런 내력 때문인지 한국인들을 매우 살갑게 맞이한다. 그러면서 백제에 대한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 일본 속의 백제 문화 취재차 인터뷰를 했던 이 신궁의 책임자 사토 히사다다 궁사(宮司)의 말이 걸작이다. 그는 “백제인들은 키가 크고 잘생겼다. 그래서 나도 백제인의 후손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유머를 담아 백제 예찬론을 폈다.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목조건물’ 호류지 금당(위 왼쪽)과 5층탑은 백제인이 건축했다.‘구다라나이(百濟無い)의 속뜻 ‘구다라나이(百濟無い)’라는 말이 있다. ‘백제가 없다’는 말로 일본에서는 ‘하찮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것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는 의미로, 백제에 대한 최상의 칭송이다.
고대에 탄생한 백제 칭송의 신조어가 1400여 년이 흘러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① 일본 오사카 시 이쿠노 구 한인촌 입구에 위치한 미유키모리 신사. 신사 관계자는 “한일 관계, 북핵 문제 등 남북한 관련 뉴스를 전할 때면 ‘한인촌’의 상징인 이곳을 배경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② 이쿠노 구와 나란히 붙은 히가시스미요시 구의 남백제 소학교(미나미구다라 소학교). 오사카 시에는 백제역, 백제시계점, 백제대교 등 다양한 백제 관련 지명이 존재한다. 미유키모리 신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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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카 곳곳에서 만난 백제의 흔적들
오사카의 최대 중심지이자 한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난바(難波). 이곳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위치한 이쿠노(生野) 구(區)는 오사카 내 최대 한인촌이다. 구민 4분의 1 이상이 한국인이다 보니 구청 홈페이지에 한글 버전이 따로 있을 정도이다. 이쿠노 구에는 백제 관련 유래가 전해 내려오는 신사는 물론이고 ‘백제’의 일본 음독인 ‘구다라’라는 명칭을 그대로 쓰는 지명이나 시설물이 많다. 미유키모리(御幸森) 신사만 해도 백제인들과 긴밀한 교류를 맺어온 왕인(王仁) 박사의 제자 닌토쿠(仁德) 천황을 모시는 신사이다.
이쿠노 구 옆 히가시스미요시(東住吉) 구도 한국과의 인연이 남다른 곳이다.
백제역(구다라 에키), 백제강(구다라 가와), 백제 시계점(구다라 도케이텐) 등 다양한 백제 관련 지명이 있었다. 이 중에 ‘미나미구다라(南百濟) 소학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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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형태도 일대 변화를 맞았다. 5세기 전까지만 해도 벽이 없이 지붕만 있는 움막집에서 살던 일본인들이 본격적으로 단단한 지붕과 흙벽을 만들어 살게 된 것도 백제인들로부터 영향 받은 바 크다. 오사카 부 나라(奈良) 현 가시하라(강原) 시에서 이런 형태의 집터가 처음 발견됐는데, 1990년대 중반 한국 공주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집터가 나오면서 백제식 주택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동북아역사재단 연민수 실장은 “6세기에는 백제식 부뚜막이 널리 퍼져 일본의 식생활을 크게 바꿨다”고 했다. 그전까지 일본인들은 캠핑장처럼 야외에서 취사를 했다는 것이다. 사비를 들여가며 한일고대사를 연구하고 있는 하나무라 회장은 “어린 시절 친구들이 건너온 나라(한국)와 내 조국(일본)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너무도 닮은 것이 많아 전율이 일 정도”라며 “교류의 역사를 젊은이들에게 더 많이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 구다라 ::일본 사람들은 백제를 ‘百濟’라 쓰고 ‘구다라’로 읽는다. 고대 오사카를 구다라스(百濟州)로 불렀다. 백제를 일본말로 ‘구다라’라고 부르게 된 것은 부여의 백마강 나루터인 ‘구드래’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