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은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불교를 대표하는 경전 중 하나입니다. 영롱한 지혜의 눈길로 한 단어 한 단어 빚어낸 구절들로 이루어진 법구경을 아직 제대로 접해보신 적이 없으신 분께서는 이 책으로 시작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종교를 떠나서 법구경을 읽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 중 하나입니다.
법구경은 불교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 중 하나입니다. 불교의 다른 경전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점이, 법구경이란 제목에서 드러나듯 하나의 경구 단위로 이루어진 내용들을 모아놓은 경전이란 것입니다. 물론 그 경구들 하나하나가 붓다의 말씀입니다. 그 경구가 '법'에 대한 것이기에 제목이 법구경입니다. 타종교인이나 비종교인에게도 그 말씀이 와닿을 수 있는 것은 그 법이 종교의 테두리를 아득히 초월하는 지혜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 지혜는 붓다의 지혜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혜 그 자체이며, 붓다는 손가락을 들어 그 지혜를 가리켜 보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기 두 길이 있으니
하나는 이익을 추구하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대자유에 이르는 길이다.
참수행자들은 이 이치를 깨달아
남의 존경을 기뻐하지 마라.
오직 외로운 길 가기에 전념하라.」
다시 한 번 주지하듯이, 법구경이 불교의 경전이라 하여 불교라는 종교의 색채에 젖어있는 글인 것은 아닙니다. 붓다가 이 말씀들을 하실 적에는 '불교'란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았고, 당시 붓다를 따르던 사람들도 스스로 '종교'의 구성원이라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이같은 사정은 예수가 하늘의 음성으로 말씀들을 하실 때에도 마찬가지였음을 언제나 상기하여 종교의 테두리에 스스로 갖히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지혜가 흘러나오는 근원으로서의 진리는 종교의 색채에 물듬도 없이, 종교의 테두리에 국한됨도 없이, 그 자체로 완전하여 사람들의 추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지혜를 담은 말씀들의 특성은 주장하지도 않고 설득하지도 않고 그저 담담히 사실 그대로를 묘사한다는 것입니다.
「잡념이란 잡념은 모두 끊어 버리고
먹고 입음에 구애받지 않는
그런 사람의 깨달음의 경지는
텅 비어 아무 흔적도 없기 때문에
허공을 나는 새의 자취처럼 알아보기가 어렵다.」
「잠 못 이루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지쳐 있는 나그네에게는 지척도 천 리
바른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는
윤회의 밤길이 아득하여라.」
이미 기존에 나와 있는 법구경에 관한 책들은 국내외에 그야말로 무수합니다. 개중에는 깨달음을 얻으신 분이 투명한 필체로 서술한 책도 있는가 하면, 원어 그대로 팔리어를 아름다운 한국어로 직접 번역한 책도 있습니다. 다른 경전들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특히 금강경이나 반야심경 같은 반열에 있는 경전들에 관한 책들은 헤아려 보는 일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법구경 같은 한 가지 경전을 두고 그에 관한 무수한 책들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바로 여기에 독서하는 즐거움의 핵심이 있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궤어야 보배요,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짭니다. 이미 많은 학자와 고승들에 의해서 법구경에 대한 해석서, 해설서 등이 나와 있습니다. 이 책은 학문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닙니다. 50여 년간 불교와 인연 맺고 책 속에 묻혀 사는 필자가 짧고 간략하게 법구경의 지혜를 나누고자 엮은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친숙한 것에 이끌립니다. 그런데 경전 속의 말씀들은 쉽게 친숙해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가령 우리는 성경 속에 예수가 이러이러한 말씀을 하셨다는 사실엔 쉽게 친숙해질 수 있지만, 그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자신의 심령에 와닿으면서 스스로 예수의 가르침에 친숙한 심령으로 거듭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하자면, 원곡에 대한 저마다의 다양한 이해를 드러내는 변주곡들을 감상하고 음미하면서 우리의 심령이 그 원곡에 보다 친숙해질 수 있도록 길들인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친숙해지는 대상이 드높고 위대할수록, 그 친숙해지는 과정이 그 자체로 기쁨이며 즐거움이게 됩니다. 이것이 제가 앞으로도 계속 나오게 될 법구경 관련 책들을 읽어나가려는 이유입니다.
「깊은 못은 맑고 고요해
물결에 흐려지지 않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진리를 듣고
마음이 저절로 깨끗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