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 마지기, 되, 홉, 말, 돈,, 언제 어디서나 접하고, 아름다운 우리 단위이고, 듣기도 정겨운 우리 말이기도 합니다. 정부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이들 전통 단위법을 평방미터와 킬로그램 표기법으로 바꾼다는 기사를 보니 국어학회에서 외국지명 통일방안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북경은 베이징으로 동경은 도쿄로 바꾸어 버렸던 통일방안(여기에 대해서는 차후 설명할 기회가 있을겁니다) 저는 이런 정부 방침이 나오면 항상 씁쓸합니다. 앞서 여기 올라온 글을 보자니 효율적인 측면에서 지지하는 글도 있고, 이게 또 정권 비방용 의도로 보이는 글도 있기도 하지만 정작 중요한 내용은 빠진 듯합니다. 앞쪽에 보니 '흐음'님께서 '40년 넘게 권장했으나 안고쳐졌으니 이제 제도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단속 지지 입장을 밝히셨지만, 동의하지 않습니다. 경우는 다르지만, '설날'의 경우를 하나 들어봅시다. 1895년 양력이 도입되고, 일제 시대를 거치며 1980년대까지 정부가 '구정(舊正)'이라고 격하시키고, 양력 1월 1일을 '신정(新正)'으로 그렇게 권장을 했건만 결국 지금처럼 다시 '설날'로 복귀한 사례만 봐도 알 것입니다. 일제 시대때에는 도시락 검사해서 명절 음식이 들어간 '벤또' 싸온 학생들 벌주기도 했고, 해방 후 본격적으로 박정희 시대때 '신정'을 강력하게 추진했건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보통 겨울 방학끝나고 2월 학기에 구정이 되면 학교에서는 거의 교육도 하지않는 시기가 되면서도 굳이 그 날 등교하게 했던 걸로 압니다. 제 기억에는 학교장 재량으로 오전 수업만 했던 것같기도 한데,,,기억이 가물가물 효율성으로 따지자면, 아무 의미없는 날을 기준으로 잡은 양력 1월1일만큼 비효율적인 기준일도 없을 겁니다. 음력설은 봄기운이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고, 또한 오차가 있는 양력에 비해, 음력은 오차가 없어 인간에게 더할나위없이 효율적인 달력입니다. 이 참에 양력을 폐지해 버릴까요?^^ 식민지와 분단, 전쟁을 겪으며 이 때 우리나라 국민들 생각은 항상 '우리들은 못난이들, 우리 문화는 열등한 것'이라고 천시한 반면, '서양 문화는 최고, 특히 미국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뿌리박히게 됩니다. 10여년전에 돌아가신 '김희갑'씨가 출연한 1960년대인지, 70년대인지 만들어진 어느 국산 영화중에는 '늙은 아버지가 미국에 자식을 만나러 갔는데, 아들이 아버지를 데리고 미국 이곳 저곳을 보여주며, '우리는 우리 것 버리고, 이렇게 우수한 미국의 합리주의를 배워야 한다.~'라는 식으로 상업영화인지 미국 홍보영화인지 헷갈리는 영화도 있었을 정도로 미국이라면 아주 푸욱 빠져있었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부정하려고 했던 시대가 만연했습니다.(그 결과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혔지만', 새로 지은 슬레트집은 바깥에서 보기만 좋았지, 여름엔 덥고, 겨울엔 더 춥기만 했었죠.^^) 문제는 아무리 국제 기준을 따르지않는다고 치더라도, 각국가별로 해당 단위는 조금씩 차이나는 게 어디에나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는 양력마저 다르게 사용하고 있고, 어디는 크리스마스가 다른 날에 달라붙어 있고, 일본만 해도 서기가 아니라, 일본왕을 기준으로 달력을 사용하고 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지요. 우리나라도 정부 지침으로 단군 기원인 '단기력(檀紀歷)'을 버리고, 순수 '서기(西紀)'로 전환한 게 노태우가 대통령할 시절이었는데, 후에 노태우가 재임 기간중 제일 후회되는 일이 이 점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반발심이 드는 건 단순히 이미 익숙한 것을 바꾸기가 귀찮다는 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것도 중요한 요소이죠)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우리 독자적인 '문화' 한가지가 상실된다는 요소가 더 크다고 봅니다. 여러분 수첩뒤를 보면 도량환산표가 있을 겁니다. 세계 어느 수첩에서나 꼭 빠지지 않고 끼어 들어가 있는 부록이지요. 대각선 아랫방향으로 숫자 '1'이 쭉 내려가는 이 표. 얼마나 보기도 쉽고 분별하기도 좋습니까? 이 도량환산표 우리 나라 사람이 발명한 겁니다.(이 분이 아마 세계에서 두번째로 발명 많이 한 양반으로 알고 있읍니다. '음료수 종이팩'이랑 '전화자동응답기'도 그 분이 발명) 한국사람이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고, 한국만의 도량법이 있다고 해도 우리가 꼭 손해보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설마 이런 방침이 '외국인들이 불편히 여기지 않을까?'라는 취지에서 도입한 건 아니겠지요.(만에 하나라도 그렇다면,,,, 공무원 바보ㅡㅡ;) 제가 여기 세계물류전략에 관한 좋은 글을 계속 펌질해왔는 걸 보신분들이라면 표기법 정책 전환 하나로 부산이 물류기점으로서의 입지가 얼마나 흔들렸는지 보셨을 겁니다. 단순히 숫자 바꾸기에 불과하지만, 정부의 주장대로 '표기가 통일되있지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만큼이나'단위법을 바꿈으로 인해서 발생 가능한 문제 또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여지가 충분'하기에 함부로 '바꾸자'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의도는 좋은' 이러한 정부 지침에 일단 반박하고 싶어지는 것은 그 행정적 계획에 얼마만큼 치밀하게 정부가 고민을 한 끝에 나온 제도인가하는 '감동'이 국민한테 보여지지는 않고, 단속이니 벌금이니 하는 '겁주기' 작전부터 하고 있으니, 국민 입장에서는 '한심한 거 스스로 아니깐, 단속부터 하는구만'이라고 여기기 마련입니다. 이 뉴스는 어제 나왔습니다. 옳고 그른 건 둘째치고, 국민들에게는 '왠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느끼지 않으신 분 계십니까? 생뚱맞을 뿐입니다. 오늘 단위 고치기 시행하고, 내일은 또 좌측통행기준방안 발표하고, 모레는 초등학교 5년제 개편안 발표하고,,, 이렇게 나가도 될까나요? 정작 모범 보일 일이 있는 곳에서 솔선수범하는 모습 보여준 바가 드문 정부가 '정부 방침이니깐, 무조건 따라'라는 명령형 행정 처리는 지금까지 정부한테 당할만큼 당한 경험이 있는 국민들에게는 '개기면 멋진 놈'이라는 내성만 키워왔음을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억지로 시행하다가 국민들 반발에 결국 또 한번 백기를 들면 그건 우리 문화 유산만 두번 죽이는 결과가 되고, 가뜩이나 없는 정부 신뢰가 또 한번 더 없어져 버리는 겁니다. 딴에는 고민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쉽게 말하는 것 아닙니다. 이래서, '공무원이 제일 효율적인 순간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이라는 얘기가 있나 봅니다. '공무원이 무언가 한다'하면 국민들은 피로해지게 마련입니다. 보통은 이 정책 시행하다 안되면, 그만두고 또 잊혀질만하면 비슷한 제도 다시 시행해보고, 또 그만두고,,, 이런 식의 제도는 참으로 많습니다. 즉, 공무원이 제일 효율적일 때는 '복지부동 상태'. 공무원이 아무 것도 하지않도록 국민들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요샌 또 그런 식으로 '섬머타임' 도입하겠다고 했죠?(그렇다고 '으이구, 우리나라 공무원들~쯧쯧'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몇 나라 빼곤 세계 공무원이 다 비슷비슷합니다^^) 국제적인 효용성으로 따지자면 순수 국내용인 한국어 폐지하고 영어쓰는 게 더 효율적인 거 아닌가요? 우리 단위도 고유 문화이고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은 왜 안해보았는지 참 아쉽습니다. 고대 백제의 고유 단위법은 사라졌지만 그 길이는 지금 일본에 남아 있을 정도로 고대 우리 문화는 이미 '한류'를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은 인치와 파운드를 사용하고, 유럽은 미터와 그램단위를 사용하고 있지만, 서로 다르다고 해서 '내가 바꿔주어야겠다'라는 식의 정책을 함부로 도입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