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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진출했음에도 허정무감독이 계속 욕먹는 이유
게시물ID : fifa2010_24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생을즐
추천 : 13
조회수 : 83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0/06/23 11:06:55
사람들은 말합니다.
한국이 뭐 언제부터 그리 강팀이었길래 2002년에 4강 한번 가본거 가지고
그리 무리한 기대를 걸어놓고 욕을 하느냐고.

또 사람들은 말합니다.
16강에 올라온 것만 해도 칭찬해줄 일인데 칭찬부터 해주기도 바쁜 시기에
왜 자꾸 못했다 못했다 핀잔만 주느냐고.

우선, 제가 축구에 대해 그리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은 밝혀두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한국은 축구를 매우 잘하는 팀입니다.

2002년에 4강 한번 가본걸 가지고 강호 운운한다고 하지만 그 전부터 제가 봐온 한국 축구는 아무리 강팀과 붙더라도, 그래서 초반부터 실점하며 끌려가더라도 바득바득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근성을 보여주던 팀이었습니다. 가끔 약체팀을 얕잡아보고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강팀과 맞붙어 불리한 상황에 처할수록 오히려 투지를 불태우는 불가사의한 정신력을 가진, 많은 가능성을 숨기고 있던 팀이었습니다.

다만 한국축구의 약점이자, 때때로 한국팀의 축구경기를 보며 한숨과 짜증을 유발하는 단점은 중요한 대회에서 이러한 강한 정신력을 계속해서 유지하지 못하고 자주 느슨해져버리는 모습을 보여줬던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독일/스페인 등의 최정상급 강호들과 승부할때엔 기적같은 경기력을 보여주던 선수들이 볼리비아 같은 상대적으로 약한 팀과의 경기에서 맥빠진 졸전을 펼친다던가, '비기기만 해도 다음 단계로 진출한다' 같은 안일한 조건이 주어지면 곧바로 힘을 빼버리고 느슨하게 플레이를 한다거나, 한 골 앞선채 경기 종반이 되면 그저 경기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패스 미스를 남발하고 걸어다닌다던가 하는 모습들 말이죠.

제가 히딩크 감독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그가 이룬 월드컵 4강이라는 결과 때문만은 아닙니다. 히딩크 감독의 전술은, 한국의 이러한 투지와 정신력을 계속해서 강한 상태로 유지시키는 방향으로 짜여졌었죠.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도 꾸준히 공격의 틈새를 노리고, 득점을 지키기 위해 문을 걸어잠그는 상황에서도 경기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고,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포기해버리고 넋을 놓아버리기 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이고... 이기고 있는 상태에서 이제 2분 남았는데...라며 슬렁슬렁 걸어다닌다거나 지고 있는 상태에서 이제 2분 남았는데 대충 차버리지 뭐...라며 공격이고 수비고 아무곳으로나 뻥뻥 공을 차 지르는 축구가 아니었으니까요.

거기에다 '한국축구는 체력과 스피드와 조직력이다'라며 중원에서부터 강력한 압박을 가해 적을 당황시키고 우리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은 것이 맞물려 그간 한국축구가 보여왔던 가능성을 극대화해 '대한민국식 축구'를 정립했다고 봅니다. 그것이 결국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 것이고 말이죠.

한국 축구엔 메시도 없고 호날두도 없고, 절묘한 크로싱을 올리는 재주도 없고 현란한 돌파 기술도 없고 뭐 그러니까 약팀이다...라고들 하지만 축구는 11명이 하는 경기이고, 11명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그 보이지 않는 '조직력', 어떠한 상황에서든 방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집중하는 징그러울 정도의 '정신력과 투지', 이것들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의 잣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점들은 바로 우리의 장점이구요.

16강에 올라간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고 축하할 일이지만 과정에 있어 제가 불만을 가지는 부분들은 허감독이 바로 이런 우리의 장점들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수비수 개개인의 면모를 보자면 자질이 딸리는 선수들도 없고, 어차피 메시네 테베즈네 이런 외계인들은 아무리 준수한 수비수라 해도 1:1로 막기가 힘든 선수들이죠. 문제는 우왕좌왕하며 수많은 공간을 만들어줘버리는 모습이 자주 연출됐고 그게 4실점으로 연결되었으며, 비록 무승부로 16강 확정을 지은 경기라고는 하나 나이지리아전에서도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났었습니다. 이건 수비수 개개인을 탓하기보다 수비조직력 전체가 흔들리고 와해되고 있다는 얘기겠죠. 이제 16강 토너먼트부터는 '패해도 되는 경기', '비겨도 되는 경기'따위는 없습니다. 한골 한골의 실점이 치명타가 될 수 있는 경기들을 앞두고 나날이 향상되고 교정되기는 커녕 갈수록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가는 수비 조직력을 보며, 그것을 방치해둔 코치진을 질책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요?

게다가 아르헨티나 전에서부터 이어져온 허정무 감독의 전술은 너무 안일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강팀 상대로 약체팀이 수비위주로 경기를 시작한다거나, 비기기만 해도 되는 경기에서 1점차 리드를 하고 있을때 수비위주 전술로 돌아선다거나 하는 건 정석에 가까운 이야기들이긴 하지만, 한국의 강점인 강한 정신력을 발휘해볼 기회도 없이 그나마도 전 경기 대승으로 자신감에 차있는 젊은 선수들을 감독이 먼저 위축되고 웅크려들게끔 만든다던가(아르헨전), 한국의 약점인 '이 정도만 해도 대~충 되겠지'병이 스믈스믈 기어오르도록 나태하게 '지키는 축구'로 돌아서게 만든다던가(나이지리아전), 후반 체력이 떨어진 선수들을 적재적소 교체해주며 한국의 강점인 체력과 압박을 이어가게 만들어주지 못하고 아까운 교체카드를 그저 시간떼우기 용도로만 2장이나 허비한다거나... 이런것들이 어째저째 먹혀 나이지리아에게 패하지 않고 무승부까지 만드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지금 당장 16강전을 앞둔 상황에서 자신감과 투지는 무뎌지게 만들고 나태함과 쉽게 방심하는 고질병은 자꾸 키우고 있는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는 거죠.

그래도 사람들은 말합니다,
16강 올라왔는데 이제 못했다 못했다 소리 그만하고 이제 좀 칭찬해주면 안되냐고.

하지만 저는 한국팀의 능력과 가능성을 믿습니다. 한국팀은 이제 막 16강에 올라왔을뿐, 앞으로 8강까지 갈지 4강까지 갈지 준우승을 할지 우승을 할지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한게임 한게임 계속해서 이겨나가다 힘이 다해 멈추는 그 지점이 (올해) 우리의 한계일뿐, 미리부터 한계선을 그어놓고 거기 올라섰다고 축배를 터뜨려야 할정도로 약한 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지금 한국팀에게 필요한건 '그래가지고 16강전에서 이길 수 있겠어? 수비가 약점이니 보완해야 될거 같은데'라는 격려와 질책이지, '16강까지 왔으니 목표 달성했네. 이만하면 잘했으니 져도 상관없다'는 섣부른 축하와 만족감은 아니라고 봅니다.

축하는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마쳤을 바로 그순간, 바로 그때 "n강까지 올라간 것을 축하한다! 잘싸웠다!"라고 말하기 위해 아직 아껴두고, 지금은 그저 다음경기, 다다음경기에서 이기려면 뭘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어떻게 싸워야 할까를 생각하는것도 나쁘지 않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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