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티지 마스터 택틱스>에서 컷신은 전투 서너판을 끝내야 겨우 한번쯤 나왔다. 그것도 별반 설정이나 줄거리라는 게 없으니 뜬금없이 던지는 말 한마디에 불과하다. “인간은 왜 싸워야 하는 걸까요?” 식상한 대사다. 특히 장르 문학이나 게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수십, 수백번은 들었을 말이다. 그런데 이 구태의연한 한마디의 무게에 휘청인다. 어느새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게임 속으로 들어가 언덕 밑 불타는 대지를 바라보며 서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아마 오로지 전투에서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머리를 쥐어짜며 몇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게임에 동화됐기 때문일 것이다. 변변한 스토리가 없기에 오히려 싸움이, 그리고 게임이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니라 내것이 되어버렸다. 몇 시간의 긴장이 끝나고 느긋하게 성취감에 도취되어 있을 때 누군가 말한다. “인간은 왜 싸워야 하는 걸까요?” 자신의 행동을 부인하는 데 대한 즉자적 반발이 일면서도 이유를 모를 회의와 후회도 밀려온다. 게임이 감동을 주는 것은 이렇게 게임이 캐릭터가 아닌 게이머 자신에게 말을 걸어올 때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
출처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19185
재밌는 글이네요. 게임이 캐릭터가 아닌 게이머 자신에게 말을 걸어올 때라....
우선 제일 먼저 생각난 게 메타녀네요. 아무 생각없이 죽인 자코 캐릭이 정말이지 그 세계의 여고생이 할 법한 대사를 하며 죽을 때,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싶더라구요.
그리고 폴아웃 2의 그 랜덤 이벤트인 까페 오브 로스트 드림인가하는 1 편의 PC가 모여있는 까페, '내 플레이어는 이런 플레이를 하더라고 난 하기 싫었는데 말이지" 이런 투의 대사를 하는 캐릭터들을 보면서 정말이지....
다음은 아이스윈드데일 1, 신나게 모험을 마치고 여유있게 엔딩 동영상을 보는데, 엔딩 동영상이 뒤통수를 딱! 네가 여태껏 한 모험 말이지, 그건 복기야, 두 번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한.... 이라고 말했는데 2 편이 안나와버렸어..... 그리곤 이상한 게임을 2편이라고 팔았.....
그리고 이런 얘기할 때마다 빼먹을 수 없는 플레인스케이프:토먼트, 왜 그 답이 what can change a man's nature?인지 이해하는데 근 6년의 시간이 흘렀으니까..... 그래도 정숙한 서큐버스가 킹왕짱입니다요!
알파센타우리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정말이지 엄청 싫어하는 광신도인 미리엄의 we must descent 연설을 들을 때(불가사의 완성하고 나서 나오는 동영상에서), 내가 엄청 반대하는 사람의 사상임에도 뭔가 동조할 부분이 있다는 점에..... 그리고 그 동조가 내가 찬양해 마지 않는 사상의 어두움을 반영하는 거라는 점에..... 참....
해머 앤 시클도 있네요. 사일런트 스톰-사일런트 스톰 센티널-해머 앤 시클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전작들에서는 당연했던 쿵쾅끽의 향연으로 이어가면 어김없이 나오는 배드 엔딩. 이영도의 '피를 마시는 새'에서 나오는 '신념을 가지고 패배하라'라는 말이 절절히 와닿죠. 그러니까 GOG 해머 앤 시클 내놔라!!!
리틀 인퍼노도 있네요. 아무 생각없이 낄낄 거리며 물건들을 불태우다가 무심코 선택한 '내 사진' 속 사진들을 불태우면서 느꼈던 그 미묘한 느낌.....
여러분은 어떤 경험을 해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