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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가야 신화가 실려 있는 일본서기 신대기
게시물ID : history_249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요들의유머
추천 : 2
조회수 : 2698회
댓글수 : 103개
등록시간 : 2016/01/15 21:01:10
아뇨, 일본서기의 내용을 인용한 것은 그것을 사실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변방지역인데 굳이 신화를 만들어서 민족의 시원점으로 띄워줄 필요가 있었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었던겁니다.

일본이 이주민들에 의해서 세워진 국가라는 데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일본의 역사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성립되기 이전에 여러 소국들이 있었고, 야마토국이 소국들을 통합하면서 시작됩니다.

인구도 부족하고 땅도 척박한 열도인지라 문명을 생성하는데 있어서 대륙과 한반도의 세력과 문화가 영향력을 미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서서 말씀 드렸듯이 저는 동의하지 않지만 설령 백제가 혼슈에 담로를 설치하고 영향을 주었다고 해도 그것이 일본의 국가성립을 주도한다거나 국가성립을 의마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 아닌가 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또한 말씀해주신 것처럼 한 집단의 결속력을 형성하는 데에 정치선전물이 큰 역할을 합니다.

그 중에서 고대사회에 가장 두드러진 것은 종교였고, 일본은 고사기를 통해서 정립된 신토와 한반도로부터 유입된 불교가 그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국가가 성립된 이후에 통치체계를 정비하고 국토를 안정시키는 과정이었을 뿐입니다.

담로섬 토론 댓글 중에서

지난번 제가 담로섬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현재도 아와지섬으로 알려져 있는 일본서기 신대기에서 일본 탄생의 포胞 로 사용되었다는 .. 일본 신대기의 전설에 대한 토론에서 어떤 분이 달아준 댓글입니다. 일단 많은 고민의 흔적이 보이고.. 이것이 아마 통상적으로 일본 고대사를 보는 시각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답글보다 좀 제 생각을 정제해서 이야기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위의 이전 토론을 한번 읽으시고 아래의 글을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일단 댓글을 다신 분과 저와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은 저 담로섬이 도저히 문명의 시원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한 지역이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은 일본의 형성이 한반도 계열 국가들의 분국.. 가야 신라 백제의 분국들이 전쟁과 타협을 통해서 일본이라는 나라로 형성되어 갔다는 것이 제 시각이고 댓글을 다신 분의 의견은 저런 것입니다만 ..

 

그럴 경우 이런 의문이 남게 됩니다. 틀림없이 담로섬 혹은 아와지시마는 문명의 시원과는 거리가 먼 곳임에도 일본서기라는 위서를 만든 집단은 일본이라는 나라는 저 담로섬 혹은 아와지시마를 모태로 해서 태어났다고 적고 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님의 생각에 따르면 도저히 문명의 시원이 될 수 없는 지역이 일본 탄생의 모태로 기록되어 있는 것에서는 동의는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 담로섬.

 

님과는 고대 일본의 형성과정에 대해서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제 입장에서 저 담로섬은 이렇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영국계 청교도 아일랜드인 프랑스인 기타 여러 유럽 국가의 이주민의 분국? 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미국이라고 하는 정체성이 생기게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보스톤 차 사건과 같은 사건입니다만.. 이것을 신화적으로 본다면 미국은 보스톤을 모태로 해서 생겼다. 라는 신화가 탄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경우 보스톤은 고고학적으로 보았을 때에 미국의 문명의 시원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는 보스톤을 모태로 해서 생겼다는 시각이 반드시 틀렸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동의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댓글을 다신 분과 저의 고대 일본의 형성 과정에 대해서 크나큰 이견이 있어서인데.. 이 시점에서 님이 잘 알고 있는 일본서기 신대기의 수수께끼 하나 이야기 드립니다. 가야 구지봉 설화와 일본서기 천손강림 신화 이야기 입니다 .

.

 

 

                                                                                   

後漢의 世祖 光武帝 建武 18년 壬寅(AD42) 契浴日에 그들이 살고 있는 북쪽 龜旨에서 무엇을 부르는 이상한소리가 났다. 사람들 2,3백 명이 여기에 모였는데 사람의 소리 같기는 하지만 그 모양은 숨기고 소리만 들렸다. “여기에 사람이 있느냐?”九干 등이 말했다. “우리들이 여기 있습니다.” 그러자 또 말했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냐?” “구지(龜旨) 입니다이에 또 말했다. “하늘이 나에게 명하기를 이 곳에 나라를 새로 세우고 임금이 되라고 하였으므로 일부러 여기에 내려 온것이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산봉우리 꼭대기의 파면서 노래를 부르되 龜何龜何 首其現也 거북아 거북아 네 머리를 내어라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만일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겠다. 하고, 뛰면서 춤을 추어라. 그러면 곧 大王을 맞이하여 기뻐 뛰놀게 될 것이다.“ 九干들은 이 말을 좇아 모두 기뻐하면서 노래하고 춤추다가 얼마 안되어 우러러 쳐다 보니 다만 자줏빛 줄이 하늘에서 드리워져서 땅에 닿고 있었다. 줄 끝을 찾아보니 붉은 보자기에 金閤이 싸여 있으므로 열어 보니 해처럼 둥근 黃金 알 여섯 개가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삼국유사 구지가 설화입니다. 그리고 일본서기 신대기의 이야기를 보도록 합니다.

 

【일본서기 2 9단 一書 제 4 日本書紀 卷第二 第九段 一書第四 】

 

 一書曰 高皇産靈尊 以眞床覆衾 裹天津彦國光彦火瓊瓊杵尊 則引開天磐 排分天八重雲 以奉降之 于時 大伴連遠祖天忍日命 帥來目部遠祖天津大來目 背負天磐 臂著稜威高 手捉天梔弓 天羽羽矢 及副持八目鳴鏑 又帶頭槌劍 而立天孫之前 遊行降來 到於日向襲之高千穗日二上峯天浮橋 而立於浮渚在之平地 膂空國 自頓丘覓國行去 到於吾田長屋笠狹之御 時彼處有一 名曰事勝國勝長狹 故天孫問其曰 國在耶 對曰 在也 因曰 隨勅奉矣 故天孫留住於彼處 其事勝國勝者 是伊奘諾尊之子也 亦名鹽土老翁

 

http://www004.upp.so-net.ne.jp/dassai1/shoki/frame/02/09_04/fr.htm <-- 여기가 원문입니다

 

일서에 말하기를 고황산영존이 상을 덮는 이불로 裹天津彦國光彦火瓊瓊杵尊 에 입혀서 돌문을 열고 八重의 구름을 헤치고 내려가게 했다. 때에 대반련의 선조 天忍日命이 내목부의 선조 아마노구시노오오구메를 데리고 등에는 天磐 짊어지고 팔에는 稜威高 끼고 손에는 天梔弓과 天羽羽矢를 잡고 八目鳴鏑를 가지고 또 頭槌劍을 차고 내려와서 日向襲의 구시히( ) 二上峯의天浮橋에 이르러서 바다 가까이의 평지가 있는 곳에 서서  무네구니(가라구니?? 空國)를 먼 언덕을 지나 좋은 나라를 찾아 吾田의 長屋의 笠狹 해변에 다달았다.

때에 一神이 있어 이름은 事勝國勝長狹이라 하였다. 천손이 그 신에게 물어 " 나라가 있는가?" 라고 말하였다. 그리고나서 " 말씀대로 바치겠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천손이 거기 머물렀다.事勝國勝長狹은 伊奘諾尊의 아들로서 鹽土老翁이다.

 

기마 민족설을 주장한 에가미 교수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구지가 부분과 일본서기 신대기의

이 기록이 이야기의 서사 구조가 같고 거기에 등장하는 소품의 일치 ( 왕을 덮는 이불)

도저히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자가 다를 뿐 구지봉..구시히 라는 지명이 일치하는 점.. 그리고 일본서기에서는 空國 이라고 적고 무네구니로 적었지만 가라구니로 읽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보면.. 역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님의 생각대로 일본의 형성이 한반도 분국들이 주체로서 형성된 것이 과장된 생각이라면

어째서 일본서기라는 위서를 만든 사람들은 가야 신화를 일본서기의  신대기에 넣었을까요?

다시한번 후지와라 사다모토의 글을 올립니다. 제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시리라 봅니다만

만일에 후지와라 사다모토의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일본서기의 음독에 따라 니니기라고 읽혀온 저瓊瓊杵가 정말 니니기라고만 읽어야 하는 것인지..한번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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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기(日本紀)>를 읽으면 처음 이 나라가 마한·진한의 이한(二韓)에 의해 열렸고, 아울러 변한(弁韓)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읽는다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옛날부터, ()으로부터 일이 비롯되었다는 것이 숨겨져 있음을 알지 못하고, 이 나라(일본) 것만으로 무엇이나 다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한어(韓語)를 왜어(倭語)로 보고서 가지가지 설()을 내세운 나머지 마침내는 그 본 뜻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결국 일본역사는 馬韓· 辰韓의 二韓으로부터 비롯되었고, 한편 변한과의 관계를 알지 못하고 읽었다면 진정 일본기를 읽었다고 할 수 없다.”

후지와라 사다모토 충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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