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했다. 베이징올림픽 여자핸드볼 4강에서 막판 역전골이 인정되는 것만큼 억울한 일이 경찰서에서 벌어졌다. 어느 날 브래지어씨에게 '살인미수혐의'가 적용되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지구를 든 아틀라스처럼 근면성실하게 일해온 그의 눈앞으로 그간의 세월이 파노라마로 스쳐지나갔다. 그의 눈꼬리에 눈물이 맺혔고 '억'하고 울음이 터져나왔다. 너무나도 억울했다.
태어나서 뼈가 부서져라 고생해왔다. 브래지어씨를 착용하는 시간이 길수록 유방암 걸릴 확률이 20배 이상되고, 밤애는 혈액순환을 위해서 풀고 자는 것이 좋다는 의사들의 경고에도, 한국 여성 중에는 풀고자는 사람보다 그냥 자는 사람이 훨씬 많다. 외국에서는 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도 가끔 있지만, 한국 여성에게는 꿈도 꿀 수 없는 일.
그리하여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은 브래지어씨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노동시간이 길었다. 브래지어씨의 일과 속으로 '와이어'가 들어오면서 그의 노동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공기 한 모금 안 통하는 접착면을 유지하면서 근무시간 내내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브래지어씨는 자신이 '살인용의자명단'에 있었던 사실조차 몰랐다. 어떻게 내가 살인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팬티씨만큼 결백했다. 아니, 팬티씨에게는 고무줄이라도 있지않은가? 늘어진 팬티씨 고무줄이라면 '대량살상'도 가능하다. 고무줄뛰기하는 수십 명의 소녀는 패거리를 지어 서로 "너, 죽었어. 나가"하면서 상대편 여러 명을 차례차례 죽이곤 한다.
하지만 브래지어씨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연결 부분의 고리 두 쌍과 와이어 한 쌍. 이것으로 어떻게 죽이지. 고리로 죽을 때까지 찌른다. 손에는 잘 잡히지도 않겠지만, 와이어로 죽을 때가지 졸라본다. 팔뚝을? 발목을? 브래지어씨는 용의자로 검거된 뒤 처음으로, 살인 방법을 모의하여 살의에 불타올랐다.
브래지어씨를 용의자로 검거한 경찰은 "바로 너 자체가 살인 도구"라고 말했다. 존재 자체가 흉기로 변했음을 선고받은 브래지어씨는 결심했다. 그래, 내가 죽어버리자. 브래지어씨는 죽기로 결심했다.
보관함 철창에 갇힌 브래지어씨의 마음은 분노를 넘어 절망으로 가득찼다. 그렇게 서울 시내 마포 경찰서1, 강남경찰서5, 중부경찰서3, 서부경찰서6, 등 모두15개의 브래지어씨가 절망에 빠져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
구들래 기자
[email protected] 한겨레21을 읽다가
재미있어서 옮겨봤어요.
브래지어를 강제로 벗기네 마네하며 많은 말들이 쏟아졌었는데...
참 재미있네요. 이 기사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