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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단 7정 논쟁과 사망유희 - 변희재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 하다
게시물ID : sisa_2497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거북이두루미
추천 : 2
조회수 : 72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11/19 19:29:24

요즘 토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논쟁이 이른바 '사망유희'로 불리는 진중권교수와 변희재(변희재와 변희재측 논객들)간의 토론배틀이다.

 

이러한 토론전쟁이 조선시대에도 있었으니 그것이 이른바 4단 7정 논쟁이다.

 

 

<남인의 정신적 지주이자 조선유학의 거두인 이황>

 

4단 7정 논쟁은 조선시대의 대유학자 퇴계 이황이 자신의 제자 정지운에게 편지를 쓰면서 촉발된다.

편지에는 선의 네가지 뿌리에는 4단이 있고 이것은 이로 표현되고, 일곱가지 감정인 7정은 현실에서 기로 표현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른바 리발기발설이다.

 

그 편지를 재야의 선비들이 돌려보다가 이중 기대승이란 선비가 이 학설에 의문을 품고 이황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7년간의 답신배틀(?)이 시작된다.

 

오늘날로 따지자면 고등학생이 서울대 교수에게 전공과목에 대해 논쟁을 신청한것과 같은 것이다.

 

기대승은 7년간의 편지 논방에서 4단 7정이 리기공발한다고 주장한다. 즉, 선의 네가지 뿌리인 4단과 감정의 형태인 7정은 그 구분이 모호하며 발현이 될 때에도 같이 표현됨을 주장한 것이다.

 

처음 얼마동안의 답신공방에서는 유학의 거두인 이황의 우세가 보여졌으나 점차 기대승의 학설을 지지하는

선비들이 늘어만 갔다.

 

이러자 이황도 자신의 학설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즉, '사단은 즉 이(理)가 발(發)함에 기(氣)가 이것을 따르며, 칠정은 즉 기(氣)가 발(發)함에 이(理)가 이것을 탄다'라는 수정학설(이기호발설)을 내세웠던 것이다.

 

7년간의 사단칠정논쟁은 유학의 거두 이황으로서는 체면을 많이 구기는 결과로 나타났다. 반면에 이 논쟁에서 이황의 학설수정을 이끌어낸 기대승은 초야의 선비에서 단숨에 조선유학의 한 뿌리로 거듭나게 된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망유희 배틀에서도 회가 거듭해 나가면서 점점 변희재의 이름 회자가 늘어가고 있고 두번째 토론에서는 변희재의 승이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사망유희 토론. 좌 변희재, 우 진중권 교수>

 

 

이러한 토론을 통해 변희재가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카네기 성공론'의 저자 카네기는 저서에서 '유명인을 인신공격하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즉, 변희재는 이번논쟁으로 자신이 얻고자 하는바(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를 어느정도 성취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반면에 진중권 교수의 경우 앞서 살펴본 이황의 경우처럼 얻는 것은 없고 오히려 명예에 흠집이 갈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중권교수의 통큰 배틀수락은 토론문화가 전무한 현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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