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제가 올린 글이 제가 마치 회사의 경영자나 조직을 대표하는 위치에서 글을 쓴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간단히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90년대 소위 한국의 명문대라는 곳중에 한군데에 공대생으로 입학하였습니다. 학교는 괜찮았는데 과는 묻지마로 들어간 전형적인 케이스입니다. 그리고 졸업할 때 IMF가 터졌지요.
꿈이나 목표, 비전을 논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무조건 취업해야 한다.라는 각오로 여기저기 서류넣고 면접보다가 제법 대기업이라는 곳에 입사하였습니다. 개발자였지요. 여기 프로그래밍이나 개발관련 직종자가 많으신것 같은데 지금도 많이 다르진 않겠지만 그때 개발자는 프로그래밍, DBA, 웹디자인, 기획을 몽땅 다하는 전혀 일이 세분화되지 않은 직종이었습니다. 그냥 전산직, 그나마 구분한다면 '웹개발자', 'CS개발자' 정도로 구분하던 정도였습니다.
한번의 이직을 하고 두번째 회사를 다니는 7년동안 개발자로서 지냈습니다. 그간 결혼했다가 너무 잦은 야근에 이혼 당할 뻔하기도 하고 전셋집 계약을 야근하다가 못해서 곤란해진적도 있었고 주말에 부모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는데도 회사에 불려나갔다가 집에서 욕 먹기도 하고 아마 지금의 개발자들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때 제가 개발자로서의 잡을 선택한 이유는 대학에서 선택했던 전공보다는 제가 더 좋아하는 일이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잘 할수 있는일과 좋아하는 일'에 대한 구분이 모호했던 때였습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IT산업은 창의성을 논하지 않습니다. 맨먼스, 건설현장의 공수와 같은 개념입니다. 단순히 교체가 가능한 하나의 부품일뿐입니다. 거기다가 말그대로 개나소나 닷넷, jsp, flex 합니다. 위에서 볼때 '그 개발자 능력있어~' 라고 하는 건 그사람의 창의성을 논하는게 아니라 일하는 속도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말하는 거지요. 얼마나 현업과 대화가 잘되고 개발한답시고 자존심 세우지 않으며 고깝게 굴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개발자들끼리는 'php하는 놈도 개발자라 할수있는가!, 유닉스도 모르고 ms-sql만으로 DBA라 할수 있는가'라며 서로 자존심 싸움을 하는 경우도 많이 봤지만 결국 위에서 보기엔 다 그놈이 그놈인 개발자입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다 소위 잘나간다는 동기를 만났는데 뭐 부러운건 둘째치고 그때 깨달은건 샐러리맨들은 회사라는 좁은 창을 통해 사회를, 인생을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저같이 혹독한 회사생활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이 세상 모든 샐러리맨들이 다 그런거라 믿는거지요. 잘나가는 친구들은 그 당시 저의 회사생활의 팍팍함을 이야기하면 거짓말하지마라, 엄살피지 마라, 그런게 어딨냐 라며 자기들의 기준으로 사회를 보고 판단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내가 잘할수 있고 좋아할 수 있는 일을 찾기 힘들다면 지금 당장 절대 아니다 싶은 일은 때려치자라는 생각으로 이직했습니다. 사람대우가 받고 싶었죠. 몇번을 더 이직하여 드디어 저는 말그대로 제 뼈를 묻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도 다녀봤고 망해가는 중소기업도 다녀봤으며 좋다는 외국회사도 다녀봤습니다.
여기 제가 무슨 회사생활을 통달하고 주인정신이 투철하게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 것 같은데 결국은 저도 파리목숨인 샐러리맨의 하나일뿐입니다. 지금 직장생활 9년차입니다. 과장이지요. 예전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도 하고 경영자들의 생각이 어렴풋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경영을 할 정도가 아니라 그들 눈에 벗어나지 않는 눈치정도 배운 정도입니다.
열정을 말하고 충성심을 말하며 맹목적인 팀웍을 강요합니다. 아직도 많은 회사들이 그걸 강요합니다. 대부분의 대기업은 더 잔인합니다. 야근비 준다는 회사가 좋은 회사일까요? 줘봤자 밤새도 2만원 이상 못받습니다. 차라리 야근비 안받고 웬만해선 야근 안하는 회사가 좋지요. 중소기업은 그나마 인간적이기라도 하지요. 외국기업도 한국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일하는 한 대동소이합니다.
저의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아버지세대때나 통하는 얘기일 겁니다. 사실 우리 아버지 세대들에게는 꿈과 목적, 열정을 가지고 일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때였고 먹고살기 힘든 때 당장 돈벌어오는게 급선무인 때였으니까요. 무조건 열심히, 무조건 충성을 다해서, 열정을 다해서.
열정을 얘기해볼까요. 앞에 누가 열정은 강제로 만들수 없다고 하셨는데, 동의합니다. 열정은 키워나가는 것이지 어느날 갑자기 내일의 면접을 위해 만들수 있는게 아닙니다. 그럼 열정을 언제부터 키웠어야 했을까요. 열정을 보일만한 대상을 언제부터 찾아야했을까요. 그건 우리나라 교육제도를 건드려야 할만큼 얘기가 다른 곳으로 빠집니다. 기본적으로 한국교육은 대량교육 대량취업 대량생산의 패러다임을 아직도 벗지 않고 있습니다. 탈락자는 돌보지 않는, 뒤떨어지면 바로 병신취급 당하는 교육제도가 아직도 계속 되고 있지요.
앞에 농구화 디자이너가 된 친구를 말씀드렸는데, 학교다닐때 선생님들에게 매일 두들겨 맞고 친구들에게도 병신취급 당하는 아이였습니다. 말그대로 병신취급이었습니다. 그런 아이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었고, 또 한국 교육의 가치관으로는 절대로 성공해서도 안되는 아이였지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게 보이시지 않나요? 어느날 갑자기 예전엔 별볼일 없는 아이였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소위 출세해서 나타나는 친구들,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런 친구들이 점점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들과 똑같은 잣대로 승부를 건다면 성공할 확률은 높지 않습니다. 영어점수? 얼마 쓰지도 않는 영어점수로 승부하는건 소모적인 일입니다. 그런데도 회사에서 영어점수를 요구한다구요? 제가 장담하는데 영어점수가 낮다고 훌륭한 인재임이 확실한데도 안 뽑는 회사라면 안가는 것이 더욱 현명합니다. 남들이 영어점수 낼때 뭔가 그 회사에 더욱 직접적으로 다가 갈 수 있는 스펙을 만드세요. 그럼 필요하다면 회사에서 앞서 말씀드린 친구처럼 회사비용으로 교육 시켜줄겁니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영어도 잘하는 그런 인재를 경력으로 데려오는 것보다 신입을 뽑아서 영어교육만 시켜 바로 투입시키는 것이 비용적으로도 경제적이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장점을, 자신의 열정을 쏟아부을 곳을 찾는 것이 당연하지만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실제로 제 밑에 들어오는 친구들중 그런 친구들과 아닌 친구들은 구별하기 싫어도 구별이 됩니다. 아마 과장쯤 달게 되면 모두가 그 정도는 공감하실 겁니다.
도대체 그런 창의성은 언제 누가 찾아줘야 하는걸까요. 결국은 제가 올린 글들은 어쩌면 공허한 바램이었을 겁니다. 어차피 그렇게 교육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창의력을 논하고 그에 맞는 열정을 바라기 때문일겁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발견되어야 할 사람들은 계속 해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소수이겠지만 계속 해서 나타나고 있지요. 물론 그 중에는 그런 척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만 아예 그 부분을 놓치고 면접을 들어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척이라도 하는 사람들은 척하고 있다는걸 알면서도 뽑습니다. 중요한게 뭔지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오유는 저도 가끔 들어와서 머리도 식히곤 합니다. 여기 계신분들은 그래서 한번도 보지 못한 분들이 대다수이지만 웬지 친근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무도 해주지 않을 이야기, 그리고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전달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결과로 면접을 보던,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제 경험과 제 주위에서 일어난 일들을 타산지석 삼아 좀 더 수월하게 인생을 꾸려 나가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