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때부터 오오츠카 아이의 ‘퐁퐁’이라는 노래를 즐겨 들었습니다. 일본어로 된 노래를 어린 제가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퐁퐁’ 이 두 어절만은 알아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퐁퐁퐁퐁 퐁퐁퐁, 퐁퐁퐁퐁 퐁포로 퐁퐁, 퐁퐁퐁. 제가 그렇게 ‘퐁퐁’을 따라 할 때면, 어쩐지 입속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는 것만 같았습니다. 퐁퐁의 사전적 의미는 ‘작고 무거운 물건이 얕은 물에 잇따라 떨어지는 소리’입니다. 저는 마치 얕은 물이 된 것만 같았습니다. 이쪽에서 퐁퐁, 어라. 이번엔 또 저쪽에서 퐁퐁. 그런 식으로 말입니다. 저는 그것이 싫지 않아 늘 그 노래를 불렀습니다.
저는 그렇게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중학생 때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혼자 끙끙 고민하기 마련입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저는, ‘닥터 드레’헤드폰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유명한 흑인 래퍼인 닥터 드레가 직접 만들었다는, 새빨간 색의 헤드폰을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빨간색이 어울리지도 않을뿐더러 그걸 살 정도로 돈이 많지도 않았는데 왜 그랬나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아, 그 헤드폰이요? 인터넷에서 나온 최저가가 아마 이십삼만 원인가 그랬을 겁니다. 중학교 2학년, 열다섯 살의 저에게는 정말 너무나도 큰돈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희 집 앞에 있는 인형 뽑기 기계를 아무 생각 없이 들여다보다가, 저는 정말 소리를 지를 뻔했습니다. 그 뽑기 기계 안에는 제가 늘 가지고 싶어 했던, 닥터 드레 헤드폰이 있었거든요. 그것도 새빨간 색으로 말이지요. 저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뽑기 기계는 한 판 하는 데 오백 원이고, 만 원을 넣으면 무려 서른두 판을 시켜 준다고 친절히 기계에 쓰여 있었습니다. 닥터 드레는 아무리 싸게 사도 이십만 원이고요. 저는 당장 집으로 가서, 안방 옷장에 걸려 있는 부모님의 외투 주머니를 하나하나 뒤졌습니다. 뒤지는 동안, 저는 한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고 있었습니다. 퐁퐁, 퐁퐁퐁. 하고 말이죠.
저는 외투 주머니에서 찾은 돈을 전부 합쳤습니다. 만이천 원이나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미 닥터 드레 헤드폰을 가지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느꼈습니다. 다시 뽑기 기계 앞으로 가서, 기계에 만 원을 집어넣었습니다. 기계에 적힌 ‘CREDIT’에 32라는 숫자가 빨간 불로 적혔습니다. 저는 조심스레 집게를 레버로 당겨 옆으로 움직이고, 또 옆으로 움직이고, 닥터 드레가 있는 위치에 정확히 맞춰서, 집게를 움직이려는 순간- 집게는 그대로, 처음 있던 곳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한 판이 끝났습니다. 타임아웃이었죠.
순식간에 크레디트는 31로 줄어들었습니다. 저는 침을 꿀꺽 삼키고 한 번 더, 시작 버튼을 눌렀습니다. 이번에는 시간에 맞춰서 정확하게 닥터 드레가 있는 곳까지 레버를 이동시킬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버튼을 눌렀습니다. 집게가 닥터 드레가 담긴 철망을 잡았지만, 금세 힘없이 떨어트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눈앞에 펼쳐진 이 어이없는 상황에 헛웃음을 지었습니다. 떨어지면서 드러난 철망의 아랫부분에는, 거대한 분홍색 지우개가 달려 있었습니다. 도대체 저게 뭐야. 저는 무식하리만치 커다란 지우개를 보고 입을 쩍 벌렸습니다.
크레디트는 30대에서 20대, 그리고 10대로 바뀌어 갔고. 그에 따라 제 손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크레디트가 15를 기록할 무렵에는 너무 땀이 많이 나서 옷자락으로 땀을 훔쳐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 동안에도 닥터 드레는 여러 번 움직였고, 여러 번 떨어졌습니다. 그 와중에도 저는 입으로 끊임없이, 퐁퐁을 부르고 있었지요.
결국 크레디트는 한 자리 수로 떨어져 가고야 말았습니다. 닥터 드레는 손만 뻗으면 닫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는데, 어떻게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순간, 뽑기 기계의 유리창을 깨트리고 들고 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제게 말했습니다. 비켜봐.
저는 말이 들린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딱 봐도 저보다 나이가 어린 여자아이였습니다. 네가 갖고 싶어 하는 게, 저거야? 헤드폰? 여자애는 그렇게 말하며 헤드폰을 가리켰습니다. 저는 반신반의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여자애는 두말없이 스타트 버튼을 눌렀습니다.
이상하게도, 집게가 바뀌기라도 했는지, 여자애의 손놀림 한 번으로 닥터 드레가 배출구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지우개가 달린 닥터 드레를 손에 들었습니다. 근데 왜 이런 걸 가지려고 해? 여자애가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저는 무슨 소리인지 몰라, 그냥 여자애를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줘봐. 여자애는 그렇게 말하며 닥터 드레의 박스를 뜯었습니다. 그러자 나타난 건, 헤드폰은 헤드폰이었지만, 절대 닥터 드레라고 볼 수 없는, 그런 헤드폰이었습니다. 이거 가짜야. 이런 거 저기 청주역 뒤에 완구 도매상 가면 삼천 원에 사는데, 하여튼 난 간다. 여자애는 헤드폰을 제 손에 들려준 채 저쪽으로 사라졌습니다.
저는 가짜 닥터 드레를 손에 들었습니다. 닥터 드레는, 헤드폰을 접을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대로 닥터 드레를 핸드폰에 꼽고, 노래를 재생했습니다. 퐁퐁, 퐁퐁. 젠장. 저는 그대로 헤드폰을 뽑아 길바닥에 내던졌습니다. 헤드폰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노을이 환했습니다. 퐁퐁, 퐁퐁…. 머릿속에서는 자꾸 퐁퐁 노래가 들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