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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게시물ID : humorstory_2781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리로로
추천 : 29
조회수 : 1613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2/02/07 19:34:58
한때 난 게임중독에 빠져있었다. 특히 중3때는 그 증세가 가장 극에 달했을 때로, 하루라도 게임을 하지않으면 하루에 다섯끼를 먹는 등의 금단현상이 나타나서 돼지가 되느니, 게임폐인이 되겠다 결심! 오늘날 내가 잉여인간이 되는데 가장 큰 부분을 일조했던 시기였다. 그때 내가 빠져있었던 게임은 보글보글. 이대에 있는 오락실.. 보글보글 한판에 백원하던 그 시절. 내가 보글보글기계에 투입했던 금액만 해도 하루 2천원... 돈을 펑펑쓰고나서 집에 갈 차비가 없어 한시간동안 집에 걸어가면서도 난 게임을 멈출 수 없었다. 2등신 보글이가 보글보글하며 내뿜는 동그란 방울은 마치 평화로운 둥근 지구를 나타내는 것 같긴 개뿔, 조금만 지체해도 튀어나오는 유령들 때문에 손을 부들부들 떨며 컨티뉴 30초가 지나기전에 투입구에 기어코 백원을 넣고야마는 내 미친 오른손을 볼때마다 난 자괴감에 빠졌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그때 내 왼손은 스틱을 현락하게 움직이며 게임을 거들뿐, 오른손의 완강한 의지를 말리진 않았다. 그렇게 이대에 있는 몇몇군데의 오락실을 전전하며 점점 다음 판으로 가는 단계가 높아질수록 나의 잉여력도 높아져가고 있었다. 이 게임을 멈춰줄 사람 어디없나. 난 방울을 마구마구 쏘고 있는 내 오른손을 쳐다보면서도 스스로 게임을 멈출 수 없었다. 주머니에 있는 동전이 짤랑 소리를 내지 않을때까지 나의 오락은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게임을 멈추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날도 난 보글보글의 방울안에 갇혀 나의 열여섯 청춘을 허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자꾸만 시선이 느껴졌다. 뭐지. 궁금했지만 내게 주위를 둘러볼 여유따윈 없었다. 2등신 보글이의 생명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다시 컨티뉴가 떴고, 내 주머니엔 50원 짜리 하나뿐 더 이상 게임을 이어갈 돈이 남아있지 않았다. 난 좌절했고, 동그란 버튼에 머리를 쳐박고 절규했다. 그때였다.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쳤다.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우리동네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오빠들이 우루루 몰려있었고, 내가 무슨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내게 저돌적으로 말을 걸었다. “삐삐 번호 뭐에요?” “네? 그건 왜요?” 이것이 그 말로만 들어본 헌팅? 나는 두근거렸다. 게다가 교복입은 오빠들은 잘생기기까지했다. 그건 왜요라고 반문하면서도 이미 내 손은 종이를 꺼내 삐삐번호를 적고있었다. 오빠들은 씨익 웃으며 몇 살이냐 물었고,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는 교복이 없었기에 사복차림의 내 나이가 가늠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중 3이요.” 그러자 오빠들은 중3 중에 이렇게 보글보글을 하는 여자는 니가 처음이야라고 말하긴 개뿔, “차라리 내가 싫으면 싫다고 말해요. 누나.” 라며 슬픈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내 진지한 눈빛을 보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집에가는 그 길, 내 발걸음은 유난히 가벼웠다. 아니 날고 있었던가. 그리고 집에가는 그 길. 나는 결심했다. 보글보글을 끊기로... 오빠들 무리중 한명에게 반한 나는 조신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내 삐삐는 1818이나 4444라는 호출말고는 내 방 장롱 구석에서 잠들어 깨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후. 486이라는 번호로 음성메세지가 도착했다. 그때 난 집에가는 길이었고, 얼른 근처 공중전화로 뛰어가 음성을 들었다. “어...안녕? 나야. 며칠전 오락실 오빠. 어... 잘지냈니? 어.... 넌 분명 나보다 동생이지만 말 놓기가 이렇게 어색한건 니 얼굴탓은 아니겠지? 어.. 널 한번 다시 만나고 싶은데 나한테 연락줘. 내 번호는 01577 0000 0000 이야. 그럼 기다릴게.” 난 보글이보다 더 큰 방울을 입으로 쏘며 환호성을 질렀다. 아, 내게도 핑크빛 로맨스가 찾아오는가. 그간 오락실에 투자했던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역시 사람은 한 우물을 파야 한다고 했던가. 난 그길로 집으로 달려가 그 오빠에게 음성메세지를 남겼고, 집전화로 통화까지해서 일요일 동네 공원에서 만날 약속을 정했다. 결전의 그 날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나는 혹시나 그 오빠가 날 못알아볼까봐 그날 입었던 옷을 똑같이 입고 약속시간보다 10분 먼저 공원에 도착했다. 10분이 이다지도 길었던가 한시간 같은 십분이 흘렀고, 멀리서 그 오빠가 다가오고 있었다. 역시나 내가 생각했던 그 오빠가 맞았다. 오빠는 공원을 두리번 거리다가 날 알아보고는 날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뚜벅뚜벅하는 발자국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내 가슴은 더욱 두근두근 요동쳤다. “어... 안녕?” “안녕하세요?” 하지만 오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왜 말이 없어요. 오빠.” 그 물음에도 오빠는 땅만 바라볼뿐 여전히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러기를 잠시, 그오빠와 나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첫 번째 소박했던 공원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 나는 너무 신이 난 나머지 브레이크 댄스를 췄다. 그때 양현석이 날 봤다면 지금 공민지의 자리에 내가 서있었겠지. 후후. 하지만 양현석은 날 보지못했고, 난 얼굴만 공민지가 되었다.(공민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며칠이 지나도 오빠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난 음성도 남겨보고, 호출도 해보았지만, 역시나 묵묵부답. 이렇게 한여름밤의 꿈같은 나의 청춘 로맨스가 끝나가는건가 좌절하고 있을때쯤.. 0이라는 번호로 음성메세지가 하나 도착했다. “어...안녕? 나야. 오락실 오빠.. 네 음성은 잘 들었어. 근데... 솔직히 얘기할게. 나는 사실 그때 스트리트파이터를 하고있었는데, 그때 내 친구 캐릭이 춘리였거든. 근데 춘리한테 발리고 난 후, 옆을 봤는데 니가 딱 보이는 거야. 그때 니 모습은 춘리보다 강해보였어. 그래서 니가 마음에 들었었는데. 그날 다시 만나고보니 우린 인연이 아니었던 것 같아. 물론 네 얼굴이 아니라는 소리는 아닌게 아니야. 오해하지말아줘. 공부열심히하고 잘지내. 안녕.” 마지막 그 음성. 나는 펑펑울며 다시 오락실로 향했고, 2등신 보글이로 빙의해, 분노의 방울을 발사하며 다시 기술을 연마한 지금, 내 몸이 2등신이 되었습니다. 이런 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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