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칠게 안성탕면의 옷을 찢었다. 브이자로 찢어진 옷 사이로 하얀 속살이 드러난다. 라면에 굶주린 나의 손은 안성탕면을 인정없이 움켜쥐었다. 양 손에 가볍게 잡히는 아담한 체형인 안

성탕면의 등이 활처럼 휘어진다.

"아, 아앗. 상냥하게 해주세요..."
"뭘 그렇게 숙녀처럼 굴어? 후후, 어차피 한 번 먹히면 끝인 주제에......!!"
"꺄아아앗!!"
"훗. 입은 건방져도 몸은 솔직하군. 이것봐... 이렇게나 음탕한 부스러기가 흘러내리고 있다구!!"

나의 손가락이 굴곡을 따라 부드럽게 쓰다듬어가자, 안성탕면은 흐느끼듯 중얼거린다.

"안돼요... 나... 부서져버려..."

겁에 질렸는지 몸을 부르르르 떠는 안성탕면을 보며 나는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많은 라면이 등장하고 사라지던 난세의 20세기. 라면계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삼양라면을 언론 

플레이로 밀어낸 안성탕면은, 자신의 자매품인 신라면과 함께 대한민국의 라면 시장을 호령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겉으로만 드러나는 화려한 양지. 실상 그 그림자에서의 안성탕면은 편

의점 매장에서의 고고한 자태는 간데 없이 이렇게 내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진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안성탕면의 옷을 벗겨낸 뒤, 우리는 부엌으로 몸을 옮겼다.

"어째서 넌 건더기와 분말 스프가 하나로 합쳐져 있지?"
"그, 그건 주인님이 편하게 드실 수 있도록......"
"허어. 그렇다면 신라면은 어째서 따로 되어있는 걸까? 날 불편하게 하려는 건가?"
"그게 무슨.....!"

상황파악을 못하던 안성탕 면은 싱크대에 있는 자신의 자매품-신라면을 보고 경악했다. 자신과 함께 나에게 팔려왔던 신라면은 이미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물론 신라면을 먹은 건 나

다. 처음에는 거칠게 저항하던 신라면도, 결국은 몸의 힘이 풀린채 몸 여기저기에 더러운 건더기가 덕지덕지 달라붙은 신세가 된 것이다. 반쯤 면발이 풀린 신라면은 힘없이 웅얼거린다.

"어... 언니......도망쳐...."
"왜, 왜 나로는 만족못하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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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나는 냄비 속에서 촛점을 잃은 채 너부러진 신라면을 보고 안성탕면은 분노했다. 그러나 그 분노는, 가스렌지 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뜨거운 물을 본 순간 공포로 바뀌었다.

"주, 주주주인님 서..설마 저도?"
"아무래도 신라면만으로는 만족 못하겠더라구."

나는 입술을 혀로  햝으며 말했다.

"어 그래. 다음부터는 그냥 자매를 한꺼번에 먹어야겠군. 크큭."
"너....넌 인간도 아니야!!"
"말버릇이 건방지다. 난 너희들을 산 주인이란 말이다!"

나는 이성을 상실한 안성탕면을 냄비에 집어넣었다. 냄비 입구가 좁아서 조금 뻑뻑했지만, 잠시 기다리자 물을 머금은 안성탕면의 몸이 부드럽게 풀렸다. 애처로운 얇은 저항감은 순식간에 사

라진다. 스무스하게 물 속으로 가라앉는 안성탕면은 힘없이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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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뜨거워... 뜨거운게 가득 들어왔어..."

모든걸 체념한 안성탕면의 독백은 나의 웃음소리와 섞여 부엌을 가득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