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낮에 쫑쫑쫑 걷는 녀석이 귀여워 들어올렸는데 갑자기 꿀럭꿀럭하더니 위액같은 걸 뱉어냈습니다... 처음엔 헤어볼인가 싶었는데 털도 안떠있고 그냥 투명하고 살짝 노란색이 나는 묽은 액체... 녀석이 뱉어내고 아무 일 없었다는듯 총총총 가버려서 별 것 아니겠거니...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고양이 화장실을 나대신 치우고 있던 언니가 갑자기 큰소리로 저를 불렀습니다. 모래에 피가 뭍어있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대충 씻고 택시를 불러 동물병원에 데려갔습니다.
병원가는 택시 안에서 별 게 다 생각나더군요... 기침하듯이 팽! 하던 걸 코가 간지럽나보다 하고 넘긴 일, 요며칠동안 유난히 화장실을 자주 들락날락거린 일, 겨울이라 심장사상충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일, 자고 일어나면 눈에 눈꼽이 껴 있던 일... 어쩌면 이 모든게 아프다는 신호였을 수도 있다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제가 참 눈물이 많은데 왜인지 눈물은 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데 선생님께선 호흡기질환(사람으로치면 감기라고 하셨습니다.)과 방광염인 것같다고 하시더군요. 방광염은 며칠 더 지켜봐야 하니 오늘은 일단 구토를 멎게하는 주사와 소염제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구토보단 혈뇨증상이 더 심각한게 아닐까싶었는데 선생님께선 혈뇨증상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시는 것같아서 좀 답답했지만 별 말은 하지않았습니다ㅠㅠ 14개월이라 하니 아직은 어려서 신장쪽에 큰 문제가 없을거라던데... 진짜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볼 때마다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 했다는 죄책감이 들어 고양이를 따뜻한 방에 두고 저는 계속 거실에 있었습니다.
자려고 방에 들어가니 제 침대에 누워 예쁘게 자고 있는 이 녀석을 보니 또 가슴이 먹먹해 지더군요. 평소라면 침대 한가운데 떡 누워있는 이 녀석을 콕콕 찔러 깨우고 위치를 바꿨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3시간 정도 자지도 않고 옆에 누워있는데 녀석이 깨서는 화장실에 가더군요. 따라가서 볼 일 보는 걸 지켜보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라 혈뇨증상이 사라졌나싶어 확인을 해보니 이럴수가... 시뻘건 피가 고여있었습니다. 그걸 보자 이제서야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울자 도도하고 새침한 이 녀석이 머리를 부비면서 애교를 부리는데 가슴이 찢어지는 것같네요
이제야 이 녀석이 아프단게 실감이 가서 너무 무서워졌어요.
우울증 치료를 위해 집을 떠나 이모집에서 머무르던 때 언젠가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한다는 걸 깨닫게 될 때마다 무서웠어요. 아무도 제 말을 들어주지 않는 곳에서 혼자 설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를 위로해주고 저를 웃게해줄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싶어 동물을 입양하자 생각했어요. 우리 집은 마당에서 개를 키우기때문에 고양이를 입양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 다시 집으로 돌아오던 그 날 바로 고양이를 데려왔습니다. 가족들과 마찰이 있어 울던 때도 친구들에게 상처받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도 막막한 내 미래에 마냥 우울해있을 때도 무심한듯 다정한듯 내 옆을 지켜주던 니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너무 무서워 라이야 의사선생님 말대로 별 것 아니였으면 좋겠는데 너무 무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