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드라마는 주로 주인공인 한정호와 최연희의 입장에 시점을 둔다. 연출과 이야기는 한정호와 최연희의 입장에서 겪는 감정선을 따라가며 다른 배역들은 한정호와 최연희가 바라보는 대상으로서 묘사된다.
한정호와 최연희는 가장 많은 분량이 할애되고 그들이 겪는 현재의 감정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시청자가 한정호와 최연희를 횡포를 부리는 갑질의 대마왕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잘 키운 아들이 자랑스러운 명문대에 들어가는 절정의 순간에 급이 맞지 않은 임신한 여자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일을 겪는 보통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의 주인공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한-최 부부는 봄이를 떼어놓으려 하거나 봄이에게 막말을 하거나 봄이 가족을 마음대로 하려고 수를 쓴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며느리와 손자를 이뻐하고 합리적인 지원을 한다. 대부분 이런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들이 이성적이고 긍정적으로 상황을 잘 해결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한정호와 최연희는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봄이와 그 가족들에게 모욕을 주기도 하지만 그건 특이하고 귀여운 캐릭터 정도로 이해된다. 그만큼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유쾌한 풍자같은 이런 드라마의 궤적을 따라가고 이 두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사람들은 시트콤의 괴팍한 캐릭터를 보는 재미를 느낀다. (하이킥의 야동 순재 같은...)
그런 한 편 이상한 불편함의 신호들은 여기 저기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한정호와 최연희의 우월의식과 나머지 인간들에 대한 경멸, 비서나 봄이 가족을 무시하는 불편한 말과 행동들이 쌓여간다. 받아들일 수 없는 귀족주의적 세계관이 드러난다. 또한 민주영과 서철식의 입에서 한송의 행적과 그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정호와 최연희에게 공감을 두고 마음을 준다. 왜? 답은 간단하다. 이 드라마가 그렇게 포지셔닝을 하고 있으니까. 모든 씬과 연출은 철저하게 한정호와 최연희의 시점에 시청자를 위치시킨다. 한송의 과거 행적은 간접적 대사에서 디테일 없이 암시된다. 한정호와 최연희의 평범한 부모, 부부로서의 희노애락은 자세히 묘사 되지만, 피해자의 이야기는 숨겨진다. 누군가는 피해자의 이야기가 숨겨진 것이 실수라고 하나, 절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의도된 것이며 급조된 것이 아니다.
일부러 민주영의 오빠는 등장하지 않으며, 서철식의 팔의 상처는 굳이 보여지지 않는다. 민주영은 눈물 흘리지도 않고 냉정하게 반란을 계산하고, 서철식 역시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아프게 보이지 않는다. 작감이 왜 이 피해자들을 그렇게 묘사하는 걸까? 역시 같은 답이다. 이 드라마를 풀어가는 시점이 한정호와 최연희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등장하는 다른 드라마의 연출기법을 생각해보자. 그들의 아픔과 안타까운 사정, 그리고 가해자의 악날함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기억해보면 이 드라마가 얼마나 특이한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시청자에게 제시하는지 느낄 수 있다. 한정호가 피해자들을 보는 시선 딱 그만큼의 냉정함과 비공감, 거리감으로 시청자가 그들을 바라보도록 연출과 장면은 최소한의 정보만을 제공한다.
드라마는 곧 봄이의 시선을 따라가기도 한다. 가죽소파의 달콤한 유혹에 제일 먼저 당한 건 봄이였다. 시청자들의 일부는 봄이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봄이가 갑이 되고 싶은 욕망을 따라가듯, 갑의 입장에서 상황을 따라가던 시청자들은 봄이의 시선을 따라 갑의 세계로 화려하고 통쾌하게 입문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뭔가 불편하다. 그것은 이 드라마의 옳은 방향인가? 갑을 풍자하겠다는 드라마에서 갑이 되려는 봄이의 시점으로 드라마가 전개되는 것은 옳은가? 또 다른 시청자들은 이 불편함으로 인해 혹은 다른 이유들로 봄이를 욕하기 시작한다. 이미 갑인 사람과 갑이 되려는 사람... 누구의 편을 드는 것이 옳은가?
갑이 되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은 추하다. 그렇다면 태어날 때부터 갑인 사람은 고귀한가? 갑이 되려는 개인의 노력은 정당화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갑질이 좋은 거라고 말하는 건가? 혼란스럽다. 한편 이 혼란을 초래한 작가에게도 화살은 돌아온다. 그 지점에서 드라마는 새로운 터닝을 한다. 이제까지 비호감을 유발할만한 추한 모습이 직접적으로 보여진 적 없는 한정호였는데, 그의 시점을 그대로 따라가는 건 변함이 없으나 이제 한정호의 적나라한 추한 욕망이 똑같은 방식으로 시청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이제까지의 귀여운 한정호는 어디갔는가? 시청자는 화가 난다. 일부의 시청자는 마음을 바꿔 한정호를 저주한다. 캐릭터에 밀착하여 이야기가 전개될 때 선한 주인공에게 밀착하거나 악한 안타고니스트에게 밀착하거나 다 가능하다. 후자의 경우 시청자는 악한을 미워할 권한을 부여받는 셈이다. 이제까지의 귀여운 한정호를 순식간에 저주의 대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일부는 저주에 적응하고 일부는 한정호를 180도 바꾼 작감을 욕한다. 한정호는 캐릭의 일관성을 잃은 것인가? 아니. 작감은 단지 숨기고 보여주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한정호의 시선을 따라가는 연출이 피해자들의 아픔을 인식하지 못하듯, 한정호의 시점은 미화된 자신을 보고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 문제였다. 한정호는 원래 그런 캐릭이었다. 이제 작감은 주인공의 추한 모습을 따라 흘러간다. 시청자들은 불륜의 피해자이자 또 다른 주인공인 최연희를 응원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곧 최연희 역시 한정호와 그다지 다를 바 없는,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지 않고, 갑의 권력으로 을을 탄압함으로써 문제를 덮음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사수하려는 뼈속까지 위선적인 갑인 것을 드러낸다.
그리고 진짜 피해자들이 움직였다. 삼촌이 운다. 그러나 카메라는 여전히 롱샷이다. 삼촌은 자신의 아픔을 자세히 항변하면서 우는 게 아니라 봄이한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어찌보면 비겁해 보이는 눈물을 흘린다. 연출은 여전히 시청자로 하여금 을의 하는 짓을 멀리서 바라보는 갑의 위치에 둔다. 삼촌과 민주영은 주도면밀하게 갑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다. 연출은 공격당한 한정호의 분노와 방어를 위한 결의를 확대하여 보여주지만, 복수를 시작한 민주영과 삼촌의 감정은 전혀 담지 않는다. 아무런 정서적 공감을 유도하지 않는다.
아들이 한정호를 공격한다. 시청자들의 눈에 "풍문"외에는 한정호가 아들에게 잘못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버릇없는 놈이다. 아들과 대면하여 어색한 아버지 한정호의 감정은 클로졉 된다. 아들의 시점에서 겪은 참을 수 없는 한정호는 묘사되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더욱 큰 혼란에 빠진다. 가슴이 말하는 것과 머리가 말하는 것이 다르다!
나는 19-20회차에 뭔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이 드라마는 철저하게 갑의 시선을 따라가고 있구나. 마치 한정호의 목덜미에 1인칭 관찰 카메라라도 달아 놓은 것 처럼. 그렇게 갑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을을 바라보는데 과연 갑을 풍자하고 비판할 수 있는가? 의문이 든다. 그러나 답은 곧 찾아진다. 아무리 스스로를 합리화 하고 덮고 외면하더라도 누군가 흔들면 숨겨진 위선과 추함은 나오게 되어있다. 그런데, 한정호의 시선은 상대적으로 갑인 내가 나의 을들을 보는 시선이다. 갑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을은 모순 투성이이며 역시 추하다. 그들의 피해? 난 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다. 아프다고? 그만큼 아프면 된 것 아닌가? 아픈 사람이 한 둘인가? 더 불행한 사람도 많다. 불행해도 남탓 안해야 해결이 되지. 가서 생업이나 종사하시지. 시끄럽고 짜증난다. 피해자들 왜 이렇게 앞뒤가 안맞고 여유도 없고 모순이 많고 모지리들인가? 왜 정치꾼들에게 선동당해서 피해자 답지 못하게 나대는 건가? 금전적인 것에 욕심을 내고 있네. 다른 가족은 생각하지 않나? 한정호가 바라보는 피해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바라보는 피해자들에 대한 시선이다. (이건 누구를 까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 고백컨데 진심으로 내가 이렇게 보고 있었다. )
잠이 오지 않는다..... 이 드라마가 앞으로 남은 회차에서 어떤 시점을 유지할 것인지, 또한 피해자들의 아픔은 정말로 한 번도 자세히 묘사되지 않을 것인지, 한정호와 최연희의 본색은 어디까지로 설정될 것인지, 을이지만 갑이 되려고 했던 봄이는 이제 어떤 선택을 할 것이며, 갑이지만 갑을 혐오하게 된 한정호의 아들은 또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피해자들의 공격은 어떤 복수의 효과를 낼 것인지, 과연 갑은 스크래치라도 날 것인지, 그리고 나름 이제 다 파악한 줄 자신한 내가 또 작감에게 한 방 얻어맞을 수 있을 것인지.... 그것이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가 되겠다.
최근 풍문을 보면서 다소 불쾌하다던가 산을타는것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러한 이유인듯 하네요.... 참 잘써진글같아 퍼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