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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짖는 소리 - 1
게시물ID : gomin_2808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Keaton_Zunu
추천 : 1
조회수 : 25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2/09 12:05:26
우울한 맘에 적어보는 데 괜찮은지 어떤지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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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며칠 추운 날씨가 계속됐다. 새벽 사이에 물이 얼음으로 변하고, 해도 늦게 뜨기 일쑤였다. 가방을 들쳐 메고 독서실을 가기를 며칠, 오랜만에 친구의 전화가 왔다.
 “준우야, 오랜만이다. 잘 지내냐.”
 “그래 진석아, 니도 잘 지내나, 별일 없고?”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오고가는 대화다. 굳이 친해서 그렇다기보다는 전화를 하곤 할 때 주고받는 일정한 패턴이라는 느낌이다.
 “아, 그냥 니 오늘 시간되면 나온나. 내가 기분이 좀 글타. 시간되나?”
 “언제쯤?”
 “보자 한, 한 시간쯤 있다가 6시쯤에 내가 거 동내 막창집 알제? 걸로 갈게.”
 나도 독서실에 와서 책만 보고 있자니 답답했기에 잘 됐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쯤 남았으니 조금만 더 보고 만나자고 생각했지만, 책을 보자니 같을 줄을 네 번씩 읽고 있다는 걸 깨달고 그냥 책을 덮어 버렸다.
 조금 일찍 나서서 담배 한 대 피우며 주위를 둘러봤다. 이 동네에 있는지도 십년이 넘었다. 건물이 사라지고 새로 생기고, 높은 아파트가 댐처럼 우리 동넬 둘러쌓다. 이제 더 이상 우리 집 옥상에서 우방타워는 보이지도 않는다. 문뜩 ‘동네가 참 낯설구나.’ 느낄 쯤 익숙한 모습이 다가왔다.
 “아 춥네. 언제 왔노, 추븐데 드가자.”
 진석이가 허연 입김을 내뱉으며 안으로 들어가자 재촉했다. 
 늘상 먹던 대로 막창 3인분에 소주, 사이다를 주문했다. 진석이랑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다. 늘 붙어 다니면서 동네 슈퍼에서 콜라도 몰래 빼먹고, 오락실도 가고, 동네를 뛰어놀고 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도 같은 학교였다. 그러다 대학을 갈 때쯤부터 자주보지 않게 되었다. 나름 오랜만에 봐서 할 이야기가 많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주변 애들 소식을 나누고, 누구는 유학을 갔다더라, 누구는 휴학하고 있다더라, 누구는 군대가 있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소주가 한 병이 비워졌다. 두 번째 병을 뜯을 때쯤에는 옛날에 사고치고 놀고 했던, 서로 부끄럽지만 시간이 지나가서 괜찮을 법한 이야기들을 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그때가 재밌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매번 누구를 만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자주하다보니 사실 식상하기도 했다. 그래도 매번 이야기하는 건 그때가 많이 그립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옛날이야기도 할 만큼 하고나서 잠시 적적함이 흘렀다. 나는 익숙한 듯이 담배를 찾아 물고 불을 붙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진석이였다.
 “야.”
 나는 불을 붙이며 대답도 하지 않고 눈으로만 반응했다. 진석이가 이야기를 계속 이었다.
 “우리 집에서 키우던 개 알제? 글마 얼마 전부터 좀 시름시름 거리디, 그저께 죽어뿌따. 밥도 제대로 안 묵고 카디만, 요 며칠 디기 추벗다 아니가. 그래서 집안에 며칠 들라놀라켔는데, 아빠가 냄새난다꼬 안된다 카데. 그래가 어쩔수 없이 밖에 내놨는데, 담날 밥줄라고 가니까 반기도 안하드라. 그래가 보이 마…….”
 여기까지 이야기하고는 진석이와 잔을 쳤다. 진석이는 사실 중학교 때 좀 심한 따돌림을 당했었다. 체구도 작고, 소심한 성격이라 누가 놀려도 반항 한번 못하던 녀석이었다. 학교에서 나름 주먹을 쓴다던 현수이가 진석이를 때린 다음 날 진석이는 학교를 며칠 나오지 않았다. 학교에서 보통은 이런 일이 있어도 교내봉사 정도로 끝났었는데, 현수는 전학을 갔다. 며칠 뒤 학교로 돌아온 진석이는 전과 다름없었다. 다만, 소심한 성격이 다소 누그러졌다는 느낌뿐이었다. 현수가 전학가는 걸 보고 주변에서는 더 이상 진석이를 건들지 않았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진석이 집에서도 진석이가 소심한 것 때문에 많이 걱정을 하셨다. 그러다 진석이가 동물에 관심있다는 걸 아버지께서 아시고 강아지를 사오셨다. 강아지도 진석이를 잘 따르고 진석이도 강아지를 많이 아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진석이가 흐느끼고 있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방금 따른 잔을 마저 비우며 말했다.
 “글마 죽었는데, 죽었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해준 게 암 것도 없는 거 같더라. 암 것도 해준 게 없는 거 같아가 내가 너무…….”
 눈물을 흘리며 목이 멨는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진석이가 많이 취한 것 같아 계산을 하고 바래다주기로 했다. 집으로 가는 동안 강아지랑 있었던 즐거운 이야기들을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학교 갔다오면 집에 부모님이 다 나가계셔도 쫓아와주고, 양말 하나만 던져주면 정말 재밌는 장난감이 생긴 양 가지고 놀더라는 이야기, 계단에 가끔 앉아있으면 옆에 와서 같이 앉았던 이야기. 사실 나는 크게 공감이 되지 않았지만, 진석이의 상실감만은 내게도 어렴풋이 전해지고 있었다.
 진석이네 대문 앞에 가니 역시나 개 짖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가끔 진석이네 놀러 가면 집 가는 골목만 들어서도 짖곤 했었던 기억이 났다. 오늘은 조용했다.
 “야, 오늘 내가 사줄라 켔는데, 니가 샀노. 내가 니부른 건데.”
 “담에 니가 사라 그럼.”
 “그래 알겠다. 담엔 내가 꼭 살게. 바래다 줘서 고맙데이. 니도 조심해가 가라.”
 “그래 간다. 푹 쉬라.”
 진석이를 바래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해봤다. 
‘내게도 진석이네 강아지처럼 소중한 것이 있었나?’
 우리 집 앞에는 작은 화단이 있었다. 다른 곳에 말 못할 정말 답답한 이야기들을 화단에 대고 이야기하곤 했었다. 짜증나는 선생 이야기, 미운 친구 이야기, 가족과의 문제, 좋아하던 여자애. 대답이 없어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나면 속이 후련해지곤 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찾아가지 않았고, 속에 담아두는 것이 어른이 되는 거라 스스로 여기고 지내왔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쯤, 발은 집 앞까지 날 데려왔었다. 진석이의 슬픔이 옮겨온 것인지, 오늘따라 달이 참 시리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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