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5공 대륙설의 이론적 토대 3- 삼청 교육대는 중국 대륙 광동성의 심천에 있었다.
* 지금까지의 내용들
1. 5공 대륙설은 무엇인가?
2. 제5공화국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인가?
3. 전두환全斗煥 이라는 이름속에 우리 역사의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4. 전두칸은 왜 돈을 좋아했는가?
5. 칸汗(Khan)에 숨겨져 있는 더욱 놀라운 사실들
6. 3S 정책의 진실
7. 전설의 왕 프레스터 존 Prester John 은 누구인가?
8. 삼청 교육대는 중국 대륙 광동성廣東省의 심천深圳에 있었다.
삼청 교육대는 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설립되었던 교육기관이다. 일각에서는 삼청 교육대가 아무런 잘못 없는 사람들을 무차별로 잡아다가 수용소에 집어넣고 가혹행위를 자행한 야만적인 교육기관이었다며 사실을 왜곡하고 있으나, 이와같은 시각은 우리의 역사를 은폐시키려는 일제의 식민사관에 불과하다.
더욱이 강단사학계에서는 삼청 교육대가 반도내에 존재했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는 문제가 많다. 만일 정말로 삼청 교육대가 반도내에 있었다면, 그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전국을 뒤져봐도 삼청 교육대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하다못해 삼청 교육대라고 적혀있는 현판조차 단 한 개도 남아있지 않다.
몇 년전에는 뜻있는 재야 역사학자들이 사비를 털어, 자신이 삼청 교육대의 피해자 였다고 주장하는 몇몇 사람들에게 용돈까지 쥐어주며 그들과 함께 삼청 교육대들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삼청 교육대가 아닌 일반 군부대였다. 삼청 교육대라는 현판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XX 부대'니 '통신보안- 안다고 나불거리지 말고 조용히 입다물자', 내지는 '이 음식은 부모님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남기면 죽는다' 따위의 문구들만이 요란하게 적혀 있었다.
자칭 피해자들은 그곳이 삼청 교육대였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으나, 재야학계에서는 그들이 강단사학계의 사주를 받았거나 세뇌를 받아 정신이 이상해진 사람들이라 의심하고 있으며 이와같은 인식이 재야학계 내부에 팽배해있다. 강단사학계에서는 재야학계가 삼청 교육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며 비난하고 있지만, 이와같은 억지주장은 재야학계의 연구 방향 자체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재야학계는 삼청 교육대의 존재를 인정한다. 이와같은 기본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 다만, 재야학계는 삼청 교육대가 조선반도에 있었다는 강단사학계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을 뿐이다. 더욱이 삼청 교육대가, 매우 폭력적이며 비 인간적인 교육기관이었다는 그들의 주장은 명백히 반민족적이기에 규탄을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지금부터 삼청 교육대의 진실에 대하여 하나도 빠짐없이 규명할 것이니 반민족분자들은 이 글을 똑똑히 읽기 바란다.
재야학계는 오랜 시간동안 삼청 교육대에 대하여 연구를 해왔다. 하지만 심도있는 연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재야학자들은 하나의 딜레마와 싸워야 했다. 그것은 바로 삼청교육대가 조선반도에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가 없기에 더 이상의 연구가 무의미하다는 점이었다. 존재 자체는 인정했지만, 실체는 묘연했다.
오랜기간동안 '삼청'이라는 말은 지명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반도 내에는 삼청이라는 지명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일부 정신나간 강단 사학자들은 서울의 삼청동이 바로 그 삼청이라는 헛소리까지 늘어놓으며 역사를 왜곡했다. 그러나 삼청 교육대와 같은 대규모의 교육기관이 고작 삼청동 정도의 작은 행정단위에 몰려 있었다는 주장은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그즈음, 오공고기五共古記가 뜬금없이 발견됨으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재야학자들은 흥분했고, 삼청 교육대의 비밀역시 깨끗하게 규명되었다.
삼청 교육대의 삼청은 한국의 삼청이 아닌 중국의 심천深圳이었다. 영문으로는 Shenzhen이라 표기하며 한국에서는 선전으로도 불리는 곳이다. 심천이 음운변화를 거치며 삼청이 되어버렸기에 우리 민족은 엉뚱한 반도에서 삼청 교육대를 찾으며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던 것이다.
* 음성학적으로 규명해 낸 심천深圳의 발음상 변화 루트 *
심천-심쳔-샘쳔-쌤쳔-쌤쵼-쌈쵼-쌈춍-삼춍-삼총-삼청
식민사관에 젖어 거짓말을 일삼는 한 대학교수는 삼청이 지명이 아닌 사람의 이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재야사학계를 공격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사람의 이름 마지막 글자를 ‘청’자로 짓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예외적으로 가수 위일청, 탤런트 이청, 김청등이 있지만 이와같은 사례는 매우 희귀한 경우일 뿐이며 그들의 이름이 예명일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고려시대의 묘청妙淸을 예로들며 반박하는 강단사학자들이 일부 존재하기도 했다. 묘청妙淸이라는 이름의 땡중은 고려시대에 서경천도遷都를 주장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서경천도운동은 실패하였으며 이후에 일으킨 반란 역시 신속하게 진압되어 묘청은 자신의 부하인 조광趙匡에게 피살되어 개경에 효시되고 만다.
일각에서는 묘청의 칭제건원론稱帝建元論이나 금국정벌론金國征伐論이 자주정신에 입각한 민족기상의 표출이라 과장하고 있으나, 묘청이라는 중대가리는 출신성분 자체가 미스테리 그 자체인 인간이었기에 이름 역시 가명이거나 애시당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허구적인 인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겠다. 출생년도 조차 불확실하여 1135년에 죽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몇 년도에 어디서 태어났는지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근본 자체가 없는 불한당에 불과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묘청을 예로들며 삼청을 두고 사람 이름 운운하는 것은 강단사학계의 고질적인 수법인 눈가리고 아웅하기에 다름 아니다. 만일 삼청이 사람의 이름이라면 성씨가 ‘삼’씨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삼씨 역시 매우 드물다는 것 역시 문제라면 문제다.
다음은 우리나라의 성씨 비율을 나타낸 통계자료다.
1. 김(金) 3,102,537가구, 9,925,949명. 21.60%
2. 이(李) 2,113,007가구, 6,794,637명. 14.80%
3. 박(朴) 1,215,918가구, 3,895,121명. 8.50%
4. 최(崔) 676,773가구, 2,169,704명. 4.70%
5. 정(鄭) 626,265가구, 2,010,117명. 4.40%
6. 강(姜) 325,288가구, 1,044,386명. 2.30%
7. 조(趙) 306,022가구, 984,913명. 2.10%
8. 윤(尹) 294,708가구, 948,600명. 2.10%
9. 장(張) 287,195가구, 919,339명. 2.00%
10. 임(林) 237,145가구, 762,767명. 1.70%
불과 상위 10개의 성씨 만으로 전체 성씨의 60%를 넘어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삼씨는 얼마나 존재하는 것일까?
263. 삼(森) 13가구, 49명.
281. 삼(杉) 1가구, 2명.
이게 전부다. 우리나라 전체를 통털어 삼씨가 겨우 51명 있다는 이야기다. 강단사학계에서는 이러한 통계자료가 몇 년도 자료인지를 밝히라며 애써 흠집을 내려 하고 있으나 이 통계자료가 오늘 나온 것이건, 30년전의 것이건간에 문제는 별반 다르지 않다. 삼씨들이 자식을 낳아봐야 얼마나 낳았겠는가? 사람이 무슨 돼지인가? 삼씨들은 자식을 한번에 10명씩 낳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고작 51명이 애를 아무리 열심히 낳았어도 삼씨 인구의 총수는 전체인구수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할 것이다.
강단사학계의 주장대로라면 ‘삼청’이라는 사람의 실체에 대하여 파악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얼마 되지도 않는 삼씨들의 족보를 추적하는것은 매우 간단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단사학계는 여전히 삼청이 누구인지에 대한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결국 삼청이 사람의 이름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재론의 여지조차 없다 할 수 있겠다.
한번은 무슨무슨 역사연구소의 연구원이라는 작자(강단사학계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추정됨)가 삼청이라는 사람의 성씨는 삼이 아닌 ‘청’씨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을 펼쳐 웃음거리가 된 적도 있다. 단언하건데 우리나라에는 ‘청’씨 성을 가진 사람이 없다. 청씨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성씨임이 분명하다.
더욱이 무슨 패티김이나 앙드레김도 아니고, 삼청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성을 뒤쪽에 썼을 가능성 자체가 희박하다. 미쉘위같은 사람들은 그나마 미국 국적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기에 성을 뒤에 쓰는 것이다. 삼청의 성이 정말로 '청‘씨라면 강단사학계는 삼청이라는 사람이 미국 국적자임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강단사학계의 오류는 다음과 같은 육단논법으로 완벽하게 격파 할 수 있다.
(1) 반도내에는 삼청교육대와 관련한 유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2) 반도내에는 삼청이라는 지명도 없다.
(3) 삼청이 사람의 이름이라는 근거 역시 희박하다.
(4) 이에 반하여 중국에는 삼청과 유사한 심천深圳이라는 지명이 광동성廣東省에 존재한다.
(5) 심천의 발음이 삼청으로 변화 되었으며, 삼청 교육대의 본래 이름은 심천 교육대였다.
(6) 중국 심천에서 심천(삼청) 교육대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심천(深圳, Shenzhen, 선전)은 과연 어떠한 곳인가? 심천은 광동성廣東省 남부 주장강珠江 동쪽에 있는 도시로서, 광동요리로 유명한 광동성과 홍콩香港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구룡반도 북부의 선전강深川河 연안에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구글 어스로 살펴본 심천의 사진을 확인해보도록 하자. (검색어는 Shenzhen.)
http://gall.dcinside.com/list.php?id=google&page=&keyword=&no=4757&k_type=&search_pos= 사진 중앙을 보면 우측으로 대만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홍콩香港, 광저우廣州가 보일 것이다. 심천은 그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중국, 광동, 선전'이라는 낱말로 표기되어 있다. 한반도와의 위치를 비교해보면 반도와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천 (삼청) 교육대는 반도가 아닌 중국 대륙 남단에 위치한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교육 기관 이었던 것이다!
구글 어스의 줌을 조금 더 당겨보자.
http://gall.dcinside.com/list.php?id=google&no=4758&page=1 홍콩과 접하고 있는 심천의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다음 사진은 더욱 확대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http://gall.dcinside.com/list.php?id=google&page=&keyword=&no=4759&k_type=&search_pos= 지금부터 이어질 심천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그 중요성으로 인하여 광주사태, 평화의댐 문제등을 다루며 뒤에서 재차 언급할 것이니 주의깊게 읽어주기 바란다. 심천은 중국 광동성을 기반으로 하여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중국의 최초의 경제특구經濟特區중 하나다. 1979년에는 바오안현寶安縣의 심천(삼청) 시로 승격되었고, 1980년에는 심천 경제특구가 설치되면서부터 화교의 자본과 외국과의 합착기업에 의해서 공업이 급속도로 발전, 근대적인 공업도시로 변모했다.
주변 농업지대에서는 채소재배와 가금류, 가축사육이 발달하였으며, 시내에서는 방직, 제약, 전자, 화학, 가공식품, 건축재료 등의 제조업이 활발하다. 가공업이 주로 발달했으며 홍콩으로 통하는 육로가 있어서 홍콩을 찾는 여행객의 중간 기착지로서 활용되고 있다. 홍콩으로의 관광사업도 활발하다. 중국의 다른 지역보다 개방되어 있고, 주민들의 생활수준도 높은 편이다.
중국 광저우廣州와 홍콩을 잇는 광저우철도廣九鐵道가 시내를 관통하고 있으며 심천강을 경계로 구룡반도九龍半島와 접하고 있다. 바오안현寶安縣을 관할하며 시내에 있는 심천댐 (일명 대응댐, 평화의댐) 은 홍콩에 식수를 공급하고 있다.
구글 어스를 통하여 심천을 더욱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http://gall.dcinside.com/list.php?id=google&page=&keyword=&no=4760&k_type=&search_pos= 총 두장의 사진이 올라와 있는데, 첫 번째 사진은 심천(삼청) 교육대 제1정신교육소다. 마치 대학교 운동장과도 같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심천 교육대의 위용과 전두칸汗(Khan)의 웅대한 기상을 음미해 볼 수 있는 사진이라 할 수 있다. 주위에 산재하여 있는 파란색의 원은 심천 교육대의 지휘통제실, 본부 및 부식창고, 식당등으로 추정된다. 양옆으로 교육대를 관통하며 고속도로로 보이는 도로들이 길게 뻗어 있다.
두 번째 사진은 심천(삼청) 교육대 제2정신교육소다. 우측 중앙부를 보면 커다란 숲이 마련되어 있는데, 행정보급단장의 지휘아래 작업을 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위의 파란색 원들은 순화교육당, 근로교육본부, 관심생도강제순화소 등으로 풀이되고 있다.
심천(삼청) 교육대는 반도가 아닌 중국 대륙에 있었으며, 그 규모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심천 교육대는 고구려의 태학太學과 고려의 국자감國子監, 그리고 조선의 성균관成均館에 버금가는 20세기 최고의 교육기관으로서 그 위치는 비록 중국에 있었으나, 우리 민족의 웅대한 기상을 떨친 국보급國寶級 유산인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심천 교육대를 통하여 민주 시민으로 재탄생하였고, 그 결과 전두칸이 재임했던 제5공화국은 진정한 의미의 정의사회를 구현하여 대한민국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이제는 자신의 안방에서도 중국에 남겨진 우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강단사학자들은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며, 앞으로 다가올 역사의 심판앞에서 보다 겸허한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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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홍콩 간다', '방콕 갔다왔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10. 88 올림픽 고속도로는 중국에 준공된 우리 민족의 고속도로였다.
11. 광주사태는 전라남도의 광주光州가 아닌 중국 광동성廣東省의 광저우廣州에서 발발한 사태였다.
출처 : [기타] 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no=237001&page=1&search_pos=-229514&k_type=1000&keyword=%E4%BA%94%E5%85%B1%E9%81%93%E4%BA%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