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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 재탕
게시물ID : history_251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친일파박살
추천 : 6
조회수 : 983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6/01/24 12:4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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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근대화란게 무얼까요? 

근대화에서의 '화(化)'란 글자는 '그렇게 만들거나 됨'을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근대를 만들거나 되게하는 일련의 노력을 근대화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다'란 신채호 선생의 글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역사는  동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의 총체적 활동과 투쟁에서 나온 하나의 사건이나 일련의  흐름을 통털어 연구하고 
토론하여 만들어지는 인문학의 일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제 강점기를 본다면, 일제 강점하의 조선은 일제가 통치한 조선이 됩니다. 

이런 흐름속에서 민족사를 연구하는 사람의 관점은 민족적이 될 수 밖에 없죠.  
사람이 무슨 기계가 아닌 이상 연구를 시작하면서 그 사람의 개인적 성향 즉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적 자본주의적 무슨적 적적적 등의 사상을 어려서부터 배우고 익힌 성년이 되어서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나 그를 받아들여 토론하는 사람들의 인식에 어떤 기본적인  
사상이 총체적으로 내재되어 있을지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아는 부부라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근대로 만들어지거나 노력으로 만드는 근대는 이미 자생적으로 조선에서 있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적 역사관과 문학관에 의해 내재적 발전론과 자본주의 맹아론이 여지없이 
박살나  이제는 학계에서조차 사장되어 전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짐조심레이너의 
말처럼 자본주의를 이식해  일제가 수탈의 기초로 삼았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내세우는데요. 

조선후기 상업은 이미 정조시절부터 장려되어 큰 규모의 상단을 낳게 되고 이들은 조선은 
물론 대외  무역을 통해 세를 확장해 갑니다. 
상평통보가 주조되어 활발하게 이용되죠. 모두 교과서에서 보신 내용이죠? 
이거 상행위, 화폐의 활발한 유통 자본주의적 활동 맞죠? 
내재적 발전론 자본주의 맹아론 다 맞네요? 
이처럼 자본주의화는 빠르게 조선을 변화시켰고, 조선을 자본주의화하려 나가려던 고종에 의해 
통리기무아문이란 관청은 물론 전차를 한성부에 두며, 우체국 전기까지 사용하는 나라로 발전해갑니다.
이런 명백한 근거가 있기에 조선은 자본주의화를 실현하려는 움직임을 명확하게 보입니다. 

한편, 1910년 조선을 강제 침탈한 일제는 토지조사사업과 함께 수탈의 대상인 조선인을 호구조사하고, 
경찰을 확대해석한 헌병경찰을 이미 1911년 1만5천 여명으로 늘립니다. 
이 시기 조선인을 추정함에 어떤 기록은 1천만에서 1천7백만까지 다양하여 어떤 자료를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대략 중간인 1천 4백만이라 보더라도 1,000대 1이라는 막강한 경찰력을 그것도 헌병이라는  
막강한 권력 즉 용의자임에도 즉시 처형을 할 수 있는 권한까지 줌으로 무단통치를 이루어냅니다. 
1919년 3월 1일 발생한 만세혁명은 나무젓가락보다 얇은 나무에 태극기를 매달은 소녀와 노인에겐 
무자비한 구타로 이를 항의하는 젊은이에겐 총으로 위협하여 7천 여명이상을 죽이고 
5만이 넘게 구속을  하며 잔인하게 이루어지고 이 혁명이 있기까지 이런 일련의 조치는 쭉 이어집니다.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 - 독립기념관 편찬 60권 중 제 4권 5장 조선태형령과 범죄즉결령) 

1911년 105인사건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이 잔학성입니다.  
105인 사건은 실제 독립영웅들이 총독을 암살하려 모의한 것이 아닌 일제의 자작극이었고, 
투옥된 분들은   우리가 잘 아는 이승훈, 양기탁, 이동휘, 김구, 김홍량, 유동열 선생등이 그들이며,
윤치호도 이때 잡혀   변절하여 부일 반역함을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토지소유자의 지세만 1911년 6백 여원이던 1920년 1100여 원으로 2배가량 상승했으니 
수탈을 짐작 가능케  하고 황실의 토지와 문중의 토지 그리고 문맹으로 신고조차 제대로 할 수 
없던 자영농의 토지는 전부 몰수  되어 동양척식주식회사(이하 동척)로 넘겨졌으니 수탈은 
총체적으로 강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 - 독립기념관 편찬 60권 중 제 5권 2장 토지조사사업과 수탈) 

1920년 문화통치라는 허울좋은 명분을 내세우지만, 더욱 교묘하고 악랄하게 조선민중을 옥죕니다.  
문화통치는 민간인 조선총독의 파견과 민족교육을 내세우지만 1945년 도망친 일제는 단 한명의 
민간 총독도  절대 총독으로 파견치 않고 오로지 군장성이나 예비역장성만을 파견합니다. 
2.3차 교육령은 학교에서 조선어 교육을 점점 축소 아예 없애버리고, 내선일체만을 교육하게 됩니다.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 - 독립기념관 편찬 60권 중 제 5권 1장 1920년대의 일제의 문화통치)  

여기서 잠시 이애라 여사의 일화를 소개드리자면, 아현동고개에서 백일된 자신의 아이를 업고 가던 
자신을   체포한 일제의 헌병은 아이를 빼앗아 땅바닥에 내리 꽂습니다.  
아이는 울음과 함께 즉사하고, 아이의 울음을 들으며 이애라 여사는 체포됩니다.  
백일된 아이를 집어던져 죽이는 일제의 헌병이 악마가 아니면 무얼까요? 
(1988년 국가보훈처에서 발간된 한국 독립운동자 공훈록에서 발췌)  
이조차도 거짓말이다 일화다 우겨댈거 같아서 찾아서 올립니다. 
 

   
 1930-1945년엔 이루 말로 다 못하는 강압통치가 이루어집니다. 
1928년 개정된 치안 유지법에 의해 엄벌주의를 택한 일제는 전향정책은 뒤로한 채 무자비하게 
독립영웅들을  고문하여 죽이고, 1937년 중국을 침략한 일제는 조선의 병참기지화를 단행합니다.  

전시동원령, 강제징용, 위안부 강제 연행등 이루 말로 다 못할 인적 물적 수탈이 이루어지고, 
조선백성들은   그야말로 신음하며 이 모든것을 당합니다.  
우당 이회영 선생은 석주 이상룡 선생과 함께 현재가치 1천억에 달하는 거금을 들고 만주에서 
전액   무료인 신흥무관학교를 세우시고, 자신들은 굶으면서도 학교를 운영하셨으며, 
이회영 선생은 1932년 대련  항에서 무자비한 구타에 실신하며 일제의 가혹한 고문으로 
옥에서 3일만에 돌아가시고, 이상룡선생은   병사하십니다. 
(제가 알기론 동지의 죽음에 아사하신거로 아는데 보훈처는 좀 다르네요 저의 의견 대신 보훈처에 따릅니다.)
 (이회영선생 - 1988년 국가보훈처에서 발간된 한국 독립운동자 공훈록 4권에서 발췌 이상룡선생 - 국가보훈처 대표블로그) 

 67세의 노령의 할아버지를 때려죽인 일제놈들. 
전재산을 털어 독립에 바친 두 선생을 기립니다. 

 1945년 도망갈 때까지 조선의 수 많은 징용인과 위안부는 대체 몇 명이 끌려갔는지 통계도 내기 어려우며 
(불법 편법적으로 이루어졌으니 통계내기가 불가능하죠.) 조선을 살찌울 물자까지도 통계가 어렵다.  

이런 배경설명이 없이는 도저히 글을 작성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올립니다. 
일제가 마치 순한 양이라도 되는 듯이 이야기를 엮어내며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하는데요. 
이외에도 전 자료를 찾지 않아도 그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조선의 독립영웅을 다루었고, 
조선인을   핍박했는지 얼마든지 글로 쓸 수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사실이 존재하는데 어디서 되도 않는 거짓말을 하는지. 

이제 정말 근대화로 넘어가죠. 
근대화로 넘어가는게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저들의 속셈이 어차피 부일 반역의 역사는 속일 수 없으니 독재를 미화하자는 방향이라고 
어떤 분이 댓글  하셨는데요. 
저는 부일 반역자들이 역사마저 왜곡하여 자신을 마치 독립영웅인 것처럼 미화하는 작업까지 
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근대로 넘어가거나 노력하여 만드는 일을 근대화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여러분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에 무슨 적적적하며 역사를 바라보고 역사를 연구하고 토론합니다. 
그런 역사적 사실들에 가치가 빠진다면, 그게 빈껍데기를 연구하는 것이지 제대로된 역사의 연구일까요? 
다른 이야기를 예로 들어볼게요. 

임진왜란 당시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왜놈은 얼레빗, 뙤놈은 참빗'이라며 조선에 들어온   두 외국군을 풍자했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전라도를 기점으로 한 이순신 장군은 바다에서 철저하게 한 번도 패전한 적이 없죠. 
왜 우리는 이순신 장군을 성웅이라 부르며 칭송할까요?  
여기엔 왜놈을 물리친 장군의 영웅적 성공담도 끼어있지만, 왜놈을 몰아내 조국을 안정시킨 가치가   들어있기에 
그 분을 성웅이라 칭송하며 기리는게 맞지요. 

또 다른 예로 정조를 왜 성군이라 칭송하며 아직도 많은 학자들이 그를 파헤칠까요? 
이덕일 같은 학자는 물론 그의 말이 다 맞는다 생각지 않지만 정조가 5년만 더 살았다면 조선은 근대화를 
일찍 이루어냈을 것이다란 주장마저 합니다. 
이런 주장이 역사엔 가정이 없다는 주장에 허무맹랑하게 들리는 이야기지만 말입니다. 

그럼 노예제나 봉건제 혹은 고려나 조선에서 이루어진 중앙집권적인 신분제등을 왜 우리는   야만성을 간직한 
중세국가로 인식할까요? 
당연히 사람을 신분으로 차별하고, 법치가 아닌 기분내키는데로 죽이며 야만성을 간직하기에 그럽니다.  

여기엔 가치가 들어간 것이지요. 
이렇게 모든 역사엔 가치가 들어갑니다. 
무슨 가치 중립을 이야기하는데요. 
역사에서 그런 가치중립은 존재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미 하나의 가설이나 이론으로 받아들여진 이론들도 결국엔 무슨적적 하는 이론에 가까운 학자들이  써내고 
무슨적적하는 이론에 가까운 학자들과 토론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기계라면 가치중립적 역사에 가깝죠. 
그리고 읽고 해석해내는 우리가 가치중립적으로 읽고 해석해 내야 하는 과제입니다. 
모든 역사에선 가치를 따지고 왜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식자론 식혜론에서만 가치중립적이야 하죠? 
뉴라이트가 그걸 강요한다고 거기에 세뇌되서는 안되겠죠. 

제가 배경으로 설명한 일제 강점기의 수탈과 독립영웅들의 일화는 그래서 필요하다 생각되었습니다. 
가치 중립적인 사고란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기에 싸우지 말라고 한 것이구요.  

좋습니다. 
그까짓 가치 일제 강점기때만 뉴라이트 주장대로 없다고 치자구요.  
역사는 나와 다른사람의 투쟁인 동시에 지배층과 피지배계층의 투쟁으로 이루어지죠. 
그런데 왜 지배계층의 역사만 따로 떼어내어 마치 조선이 자본주의화 되어 갔다는 말을 하죠? 

아니 무슨 조선왕조실록만 역사고, 홍경래의 난 이괄의 난은 역사도 아닌가보죠. 
솔직히 저는 조선백성들은 자본주의가 먼지도 모르고 수탈당했다 여겨집니다.  
이런 조선의 백성이 1920년엔 무려 1400만 1945년엔 2600만을 육박했는데 이런 많은 사람들은  
제쳐두고 일제만을 역사로 인식해서 자본주의가 되었으니 식민지 조선은 일제에 의해 근대화된  나라다. 
그러니 백성들이여 이제 '와우 ~~근대화된 조선' 하며 박수를 치거라. 
 이게 말이 된다고 보세요? 

교활한 놈들의 멍청한 논리를 그대로 앵무새처럼 부르짖는 저들 
조선의 백성 중 사회주의나 무정부주의를 받아들인 지식인은 물론, 백성들 모두가 일제의 잔혹함에 
치를 떨며 독립영웅들을 몰래 돕고, 그들을 숨겨주며 고문에도 굴하지 않았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 역사적 사실은 모두 팽개치고, 일제와 그에 부일한 부일 반역자 몇이 행한 일을 일제강점기의 
대표  역사로 인식하며 '와우~~ 조선은 근대화된 나라야' 부르짖으라고 강요하는 뉴라이트와 저들 

아니라고 강변하며 네이버에서 근대화란 정의를 들고 그게 마치 신의 논리인듯 떠받드는데요. 
왜 우리가 네이버같은 포털에 떠도는 인터넷 정보를 받아들여 우리의 머릿속 역사를 재단해야 하지요?  
우리는 각자 개개인이 살아 온 방식이 다르고, 그 다름을 알기에 서로 토론하며 논쟁하는거죠.  
그렇게 다른 개개인의 사람들을 자신의 사고에 따르게 하려고 온갖 말장난에 지나지 않은 말들을 
가공해 내어 설득하려 하는데 제가 그런 설득에 넘어갈 것처럼 보이나 봅니다. 
칼막스나 모택동이나 되야 저를 감동시켰는데요. 

저 여기서 밝히지만 사회주의자는 아니고 유럽식 사민주의에 가깝습니다. 
이를 밝히는 이유는 무너지는 동구권과 러시아, 북한을 보면서 자본주의의 단 하나의 이로운 점 
바로   경쟁을 현명하게 이용하여 복지는 튼튼하게 하고, 교육, 의료는 무상으로 하며 살기좋은 나라로 
꼽히는   유럽의 국가들을 보면서 경쟁이 인간의 본능에 가깝고 이를 무시할때 오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생산성  저하가 얼마나 국가를 피폐하게 만드는지 잘 보았기에 변절(?)하고야 말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간단하죠. 
이런 경쟁을 통한 99%에 해당하는 조선백성의 사유재산을 일제가 인정했나요? 
아니죠. 철저하게 수탈하여 보릿고개가 되면 아사자가 속출했죠. 
단순한 철로, 공장 몇 개, 항만시설이 갖추어졌다고 자본주의라면 말도 안되게 영국의 우수한 공산품 
몇 만개가 시중에 풀려 백성들이 그 풍요로움을 누렸다면 오히려 자본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일제의 자본주의 이식이 말이 된다면, 영국으로부터 수입된 공산품도 이식이죠. 
자본주의화 된 거 맞자나요? 
저들이 우기니 저도 우겨볼랍니다. 
이렇게 우기는것이 능사가 아님을 성인이라면 어느정도 인지할텐데 매번 똑같아요.  
어떤 분이 앵무새 같다는데 맞다는 생각이 저는 듭니다. 

역사는 그야말로 과거의 답이 나와있는 일을 해석하는 일입니다. 
미래처럼 실체가 모호하지 않아요.  
그러니 실체가 모호한 포스트 모더니즘적 담론이나 일제를 찬양하는 말로 절 화나게 하지 마세요. 

★호러씨(2015-11-18 20:48:12)(가입:2013-05-09 방문:416)112.186.***.58추천 5/0 
일제는 아쉽게도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같은게 아니랍니다.. 
합리적이고 법치적으로 악랄하게 수탈했죠.. 
산미증식계획만 봐도 쌀 수탈량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한번도 강제로 뺏은적은 없습니다.. 
다만 일본의 쌀값이 조선의 2배였고, 일본이 좋은 종자를 지주들에게 심게했을 뿐이죠.. 
물론 그결과 단일경작이 일어나고 농촌이 시장에 종속되어갔지요.. 
그러다 대공황이 왔고.. 곡창에 쌀이 쌓여있는데 사람들은 풀죽을 못먹어 죽어갔을 뿐이죠.. 
일제를 절대악으로 설정하는건 굉장히 쉬운일입니다. 
기분도 좋구요.. 하지만 그 착취구조를 밝히는 일은 일본을 악마로 만드는걸로는 할 수 없는 일이죠.. 



(사진에 출처가 있어 따로 밝히진 않을게요 731부대에서 생체실험하는 모습 이게 악마가 아니면 뭐요) 
뭐가 그렇게 아쉽소. 
살아있는 사람을 생체실험하는 이가 천사요? 
합리적 - 이치에 맞고 타당하다. 이치에 맞고 타당하게 수탈한게 문맹으로 신고하지 않은 
자영농의 토지를  갈취하는게 합리적이오? 

법치적 - 법률로서 나라를 다스림. 법률로서 일제가 조선에서 이런 일을 실행하는건 맞는데 
그 법을 누가  만들었소? 조선의 백성이요 아니면 일제요? 어디다 법치를 대시오. 

'악랄하게 수탈했죠.' 당신 혹시 글만 쓸 줄 아는 문맹 아니오. 
합리적이고 법치적인 악랄한 수탈.  이런 말이 이치에 맞다고 보오? 

산미증식계획만으로 쌀을 수출한게 아니고, 일제는 저미가정책이란 것도 같이 실시한다오.  
그래서 추수때가 되면 낮아진 곡물가에 저미가 정책 이전의 부를 거머쥐지 못하는 부일 악질 지주에 
의해서 당시 막 소개되어 소작농에게 개념파악이 어려운 미터법으로 위장계약서를 만들어 더 탈취했고,  
소작권의 강제 탈취나 이동등을 통해 위협했으며 그러기위해 1년 단위로 계약하는데 이건 바로 생사 
여탈권이었고, 이것은 일제가 모두 조선에 심어넣어 일어난 일이오.  

암태도에선 문재철이란 지주가 밭에선 70% 논에선 80%를 소작료로 걷게 되오. 
이를 부일 악질 지주들을 은연중에 돕는 목포의 일경 수십에 의해 이루어지고 왈패들까지 끌어모아  
항의하는 농민들에게 구타를 일삼으며 행해지오. 
이게 왜 일어났겠소. 
이게 구조적이고 강제적인 수탈이 아니면 무엇이오. 
공부좀 하고 떠드시오. 

점입가경이로구만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을 마치 조선의 위험으로 인식하는데 이미 
1925년  조선엔 대홍수가 일어나 큰 피해를 입었고 그 이후 흉작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굶어죽었는데 
이조차 처음 듣는 이야기일테니 곡창에 쌀이 쌓여있는데 쌓여있긴 머가 쌓여있다는 건지. 
일제로 넘어간지 오래요. 

 '일제를 절대악으로 설정하는건 굉장히 쉽고 기분좋은 일입니다.'
 '착취구조를 밝히는 일은 일본을 악마로  만드는 걸로는 할 수 없는 일이죠.' 
터진 입이라고 말은 참 


이보시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 장소에서 죽는데 이게 천사가 한 일이오?  
난 당신과 말섞기 싫은데 이건 일제를 일제보다 더 찬양을 하니 어떻게 해얄지. 

기운없이 매맞는 것도 죽을 지경인데 이젠 아예 입을 다물라 하더라고, 그러더니 그때부터 뺨을 후려치기 시작하는거야. 
각목으로 허리뼈를 맞고 정신을 잃고 쓰려졌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온몸이 젖어있는거야. 
옆에 보니 양동이가 있더라고. 그래서 뱉어보니 어금니가 세개나 부러졌더라고 
어찌 맞았는지(김계순 86세 홋카이도 지역 탄광징용자)  

나주초교 6학년이던 1944년 5월 교장선생님과 선생님이 일본에 가면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상급학교에도 진학할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은 양금덕 여사는 불과 13살의 나이에 나고야의 
한 군수공장에 끌려가 강제노동과 굶주림에 시달렸다한다. 
http://blog.daum.net/yeonsili/12340836 빼앗긴 청춘 돌아오지 않은 원혼 중에서  

하루 평균 50여 명의 일제군인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까무라치기 일쑤인데 물을 끼얹어 정신을 차리게 한 후 그짓을 해댔습니다. 
그래서 성기가 부르트고 다리가 아파 더이상 일제군을 상대할 수 없게 되자, 주사를 놓아주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마약주사였습니다. 그 주사를 맞으면 덜 아팠습니다. 
토요일 일요일엔 100여명의 일제군을 상대해야 했기에 주사는 4-5방씩 계속 이어졌고, 
그때문에 저는 팔이 마비되어 지금도 사용을 못합니다. 

밤에 술먹고 처소로 들어온 일제 장교놈들은 '벗어라. 춤춰라' 하며 연신 칼을 찔러댔고, 
제겐 그런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http://emoonk0.tistory.com/m/post/683 

위안부 정서운 할머니는 놋그릇까지 빼앗아 가는 일제군에 치를 떨며 놋그릇 모두를 
땅에 묻은 아버지가 잡혀가자 매일 면회오는 정서운 할머니를 일제 본토로 가면 아버지를 
풀어준다는 꼬임에 넘어가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자 면장의 딸까지 위안소로 보내야하는 
동원쪽지를 받은 면장이 사표를 내자 면장딸과 함께 동아시아의 섬나라인 뉴기니아와 자카르타 
등지로 보내졌다. 
당시 할머니의 나이 고작 15세였다 한다.  이런짓을 한 놈들이 악마가 아니라구? 

당신 일본인이요 한국인이요? 
아니 일제의 전범보다 더한 말을 하면서 일제를 찬양하는데 당신 러시아 사람이요? 
이런 사람들과 동시대를 살아야 한다니 참으로 서글픕니다. 

아직 완전한 근대화를 못 이룬 조국의 현실을 생각할 때 가슴 아픕니다. 
짧게 해보려하는데 잘 안되네요. 
긴 글 읽어주심에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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